일본을 통해 본 부동산 10년 대폭락 시나리오
다치키 마코토 지음 | 21세기북스
1장 되짚어보는 버블 붕괴
세계대전 패배로 시작된, 토지변화
일본의 토지는 제2차 세계대전 패배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연합군 사령부가 1헥타르 이상의 소작지를 지주들에게 강제로 사들인 후 소작농들에게 저가로 매각한 것이다. 일본 국민들은 갑자기 토지가 증가하자 너도나도 토지 사들이기에 돌입했다. 시간이 지나자 기업도 토지 사들이기에 가세했고 과도한 경쟁은 지가결정 기준에 왜곡을 불러왔다. 일본 국민의 토지소유욕은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보다 강해져 '부실토지본위제'를 확립하기에 이른다. 토지본위제란 말 그대로 토지를 바탕으로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자본주의는 토지, 즉 지가 자체가 돈이었기 때문에 필자는 '부실토지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일본의 토지본위제의 확립과 붕괴 과정을 살펴보자. 2차 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무역을 통해 생존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비슷한 집에서 살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일본 근로자들은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게 공업제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세계 제일의 자동차와 가전제품을 만들어 내는 극동의 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토지 가격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성장을 이끌던 수출품은 미국 산업에 치명타를 입힌다. 이는 미국의 노여움을 사는 계기가 되어 일본은 원치 않는 환율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갈 곳을 잃은 Japan Money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엔화 폭등으로 샐러리맨들은 세계 1위의 임금을 받게 되었다. 살인적인 임금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은 인건비가 저렴한 아시아 각국으로 살길을 찾아 나섰다.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일본 샐러리맨들은 직장을 잃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것이 일본 토지본위제 붕괴의 본질적 원인이다.
일본열도를 뒤흔든 세 번의 버블
일반적으로 일본의 버블은 1989년 헤이세이 버블을 정점으로 보지만 그 이전에도 세 차례의 버블이 있었다. 첫 번째는 1960년 이케다 내각의 '소득배증계획'이었다. 당시 이케다 내각은 산업기반을 바탕으로 계획을 달성한다는 목표하에 태평양 연안의 거점개발을 추진했다. 이 때문에 공업용지의 가격이 크게 상승하여 1961년 42.5%의 지가급등을 가져왔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 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1972년 다나카 내각의 일본열도 개조론이다. 이 계획의 골자는 일본해 연안부터 산간벽지까지 골고루 경제성장의 성과를 분배하는 것이었다. 일본열도 개조론은 대상지역뿐 아니라 일본 전역에 지가상승을 가져왔고, 도쿄 수도권은 전년 대비 36%의 지가 상승률을 보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하는 것보다 토지를 갖는 것이 최고'라는 공동의식이 퍼져 나갔고, 일본 국민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토지신화가 발생하였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지가를 뒤흔든 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부동산 버블이다. 흔히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부동산 버블은 도심 상업지에서 촉발하여 일본 전역으로 급격하게 퍼져 나갔다. 현재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제3의 종교, 부동산 불패신화
1985년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의 엔화를 평가절상한다"는 내용의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정부는 엔고의 영향으로 일본기업들이 입을 타격을 우려하여 대폭적인 금융완화 정책을 펼치기에 이른다. 그 결과 1983년 연 5%였던 금리는 1987년 연 2.5%대로 하락하고 1989년 초까지 초저금리 시대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금리인하 조치는 부동산으로 돈이 몰리는 계기가 되었다.
1983년 도쿄 도심에서 시작된 부동산 가격급등은 1986년 도쿄 전체 지역으로 확산되어 1987년 무려 68.8%의 지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대량의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빠른 수요로 공급을 앞지르자 도심부의 지가는 급등할 수밖에 없었다. 도심의 토지를 처분하여 여유 자금을 마련한 사람들은 고급주택, 억대 아파트, 재개발 건물 등을 매수하기 시작하였다. 고급주택지의 가격이 급등하자 주변 지가 역시 연쇄반응으로 상승했다. 마침내 지가 폭등은 전국 주요 도시에 확산되었다. 말 그대로 부동산 광란의 시기였다. 일본인들이 부동산 불패신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광란의 시기는 1986~1991년까지 무려 51개월 동안이나 지속된다. 그러다가 1990년 1월 주식이 대폭락하고 자산가치가 급락하면서 금융자산과 실물자산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버블이 붕괴된 것이다. 버블 붕괴 이후 도쿄의 평균지가는 1992년부터 13년간 연속 하락했다. 부동산 불패신화가 붕괴한 것이다.
대출금 상환에 저당 잡힌 인생
재정붕괴 위기에 놓인 일본정부는 이미 자금의 흐름을 움직일 능력을 상실했다.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가계를 상대하는 주택자금대출뿐이다. 지역경제와 지가를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공공사업을 계속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는 어떻게든 서민들이 주택을 구입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8년 전 B는 결혼과 동시에 신주쿠선 교외에 있는 아파트를 3억 2천만 원에 구입했다. 그러던 중 그는 집을 넓히기 위해 부근에 위치한 지금의 주택을 4억 4천만 원에 구입했다. "우리가 살던 집(아파트)의 시세가 1억 7천만 원이라는 말에 쇼크를 받았죠. 그래도 망연자실 앉아 있는 것보다 빨리 이사를 해야겠다는 결론이 들었습니다." B가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주택 감세 제도의 혜택 때문이다. 이는 일본정부가 신규주택 구입에 대해 제공하고 있는 주택자금대출 공제제도이다. B의 경우 주택구입으로 인해 연간 5백만 원 정도의 감세 혜택을 10년 정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일본정부는 버블 붕괴 후인 1990년대부터 주택금융대출 세일과 고액의 주택 감세라는 미끼를 던져 왔다. 이에 따라 저출산화와 취업난, 조기퇴직의 고용 불안에도 불구하고 주택 감세에 현혹된 샐러리맨들이 끊임없이 내 집 마련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택금융대출을 이용한 내 집 마련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지가가 상승했고 높은 임금과 상여금이 날짜에 맞춰 꼬박꼬박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다르다. 상환해야 하는 대출금이 끝도 보이지 않는데 경기불황의 여파로 소득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꿈같은 내 집을 마련하고 여유 있고 행복한 생활을 꾸려야 하는데 대출금 상환에 인생을 저당 잡힌 것이다. 지금 내 집은 남성의 '미래 구속 장치'인 셈이다.
텅 빈 뉴타운의 아파트
47세의 한 남성은 치바 뉴타운 중앙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29평 아파트를 3억 2천만 원에 분양 받았다. 그런데 그는 최근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바로 옆 동의 아파트가 1억 2천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현재 집에서 1시간 걸리는 도쿄의 회사까지 전철로 출퇴근하고 있다. "대출금을 다 갚지 못해서 여기를 떠날 수 없을 겁니다.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1994년 치바 뉴타운은 지가가 높은 신도시였기에 사람들의 기대가 컸다. 당시 치바 뉴타운은 거주, 활동, 학습, 휴식 등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다기능성을 겸비한 종합도시 구축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공염불에 불과했다. 2000년 도심에 대형 아파트가 잇달아 분양되기 시작하자 시내에서 급행열차로 1시간 걸리는 뉴타운의 매력은 소멸해 버렸다. 교외를 선호하지 않는 도심회기현상도 원인이었다. 지금 어마어마한 규모의 뉴타운에 홍수처럼 넘친 건물들은 여전히 입주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치바 뉴타운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지가하락의 영향으로 도심에서도 쉽게 주택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교외의 아파트는 빛을 잃은 지 오래다.
2. 일본의 근본을 위협하는 사회 현상
국가위기를 부르는 저출산
일본 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17.34%에 불과했지만 오는 2030년대 29.57%에 이를 것이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를 이룩하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급격한 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일본의 인구 구성은 점차 왜곡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저출산 문제는 앞으로 일본의 주택을 남아돌게 할 것이다. 2005년 1.26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던 출산율은 2013년 1.21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독신자의 증가, 늦어지는 결혼 시기, 한 명의 자녀를 두려는 경향, 빠른 속도의 고령화가 진행되어 세대 당 인구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05년을 기점으로 노동인구는 눈에 띄게 감소하는 가운데 부양해야 할 고령자 등의 종속인구는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고령자들이 은퇴 후 여가 생활을 위해 전원생활로 돌아가면 주거 이전에 따른 새로운 주택 수요가 창출된다. 하지만 이런 주택의 수요를 해결할 사람이 없는 관계로 전원생활로 돌아간 고령자들과 동일한 수의 빈집이 생겨날 것이다. 단순히 인구문제만 보더라도 일본의 경제는 정체 기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더욱 위축될 것이 분명하다.
일본 여성들의 결혼 조건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본 내 전문대 졸업의 여성들은 결혼식장 카펫을 밟을 무렵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운다. 전업주부인 그녀들은 항상 집에 있기 때문에 도시외곽 부실주택이라도 개의치 않는다. 내 집 마련의 신화는 전문대졸 여성들이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대졸 커리어우먼들은 결혼을 뒤로 한 채 원룸을 구입하여 애완동물과 생활하는 일상을 지향한다. 일본에서는'30살이 지나고, 아이가 없고, 이혼한' 여성을 '마케이누(싸움에서 진 개)'라고 부른다. 그러나 진정한 마케이누는 샐러리맨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보통 40세까지 회사에 모든 것을 바치다 구조조정을 당한다. 높은 학력에 능력이 있는 여성들은 이런 남성들과 결혼할 생각이 없다. 독신 커리어우먼은 출퇴근하기 편리한 곳에 있는 자기 취향의 공간에 집착하기 때문에 원룸을 선호한다. 그러나 원룸은 거주환경이 열악해지기 쉽고,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지 못하고, 환금성이 나쁘다는 위험성이 있다.
전문대졸 여성의 경우 집은 단순 주거공간이 아닌 이익을 얻기 위한 투쟁이다. 일반적으로 주택자금 대출은 남성이 부담하므로 여성이 손해 볼 것 없다. 자존심과 주위의 부러움을 생각하면 훨씬 이득이 되는 행위인 것이다. 혹여 이혼하더라도 양육비 대신 집을 얻을 수 있다. 전 남편에게 대출금을 갚게 하면서 자신은 공짜로 집에 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그녀들은 더 더욱 내 집 마련에 민감하다. 많은 남자들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내 집을 장만하지만 실제 그곳의 주인은 아내들인 것이다.
언제나 희생양은 중산층
주택마련이라는 단순 논리로 일본인의 삶을 살펴보면 독신 시절 목조 아파트를 거쳐, 결혼 후에는 임대 아파트에 둥지를 튼다. 자녀가 생기면 아파트를 분양 받고, 교외에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을 마련하여 노년을 보내는 것이 순차적인 삶의 단계다. 일본인에게 내 집 마련은 부동산 불패신화처럼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또 하나의 국민성이라 할 수 있다. 10년 전 부동산 버블기의 주택자금대출 금리는 7%였다. 지금은 상상도 못하는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내 집에 눈이 먼 일본인들에게 높은 금리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일 35세에 35년 상환기간의 주택자금대출을 받았다면 70세에 대출상환의 늪에서 벗어나게 된다. 주택이 구입 당시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어렵게 장만한 주택이 현재 구입가격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서민들이 정부 정책에 힘입어 거액의 주택자금대출을 했고 그 결과 중산층은 가족 붕괴의 위기를 맞고 있다. 결과적으로 주택자금대출의 여유 있는 상환은 인생을 멍들게 하는 대출이었다.
직장을 찾지 못하는 성인들과 관련된 신조어로 프리터족과 니트족이 있다. 프리터족이란 프리 아르바이트를 줄인 말로서 일반 아르바이트생을 말한다. 현재 일본에서는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평생직장을 찾지 못한 프리터족이 급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니트족이다. 니트는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의 머리말을 딴 합성어로 교육이나 직업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젊은이를 말한다. 수많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해 아무 희망도 갖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연명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바로 일본의 중산층 자녀라는 데 있다.
급증하는 개인파산자
대기업이 잘못되면 금융지원이나 채무탕감 같은 구제책이 있다. 그러나 일반 가정의 서민들은 아무런 구제도 받지 못한다. 아파트 가격이 붕괴되고 단독주택의 자산가치가 바닥에 떨어져도 주택자금대출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개인파산 신청자가 급증하는 결과를 낳았다. 버블기에는 낭비와 도박으로 인한 파산자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주택자금대출을 상환하지 못한 일반 가정의 파산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2003년 개인파산은 24만 건이 넘었는데 이는 10년 전에 비해 5.6배나 증가한 수치다. 물가는 상승하고 있지만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샐러리맨이 평생 벌어들일 소득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대출은 공돈이 아니다. 주택을 구입할 때 순간적인 판단을 잘못하여 평생을 많은 빚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만큼 노후에 필요로 하는 생활비도 증가한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고려하여 대출 부담을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고령자들에게 연금은 주택과 동일한 자산이다. 그러나 이를 부담하는 현역세대에게는 버블기에 구입했던 고가의 부실토지와 똑같을 뿐이다. 일본의 토지자산은 장부상으로 여전히 일본 GDP의 3배인 1경 2천조 원 가까이 된다. 하지만 정상적인 경우 지가는 GDP와 동일한 수준에서 형성된다. 때문에 일본 경제가 비정상에서 벗어나 제자리를 찾을 경우 GDP의 2배인 약 8천조 원가량 하락할 여지가 있다. 지가는 지금의 절반 수준이 되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경제적 노화가 심화되면 지가하락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일본의 공적채무 중 연금채무는 현재 1경 6천조 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납세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금융자산은 8천조 원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나머지 8천조 원을 보전하는 주체는 부동산 등 가계자산이 될 것이다. 잠재적인 공적채무의 부담을 고려하면 개인의 유산상속은 이미 부채상속 수준에 진입하고 있다. 다음 세대는 마이너스 유산을 상속받게 되는 것이다.
3장 토지도 수입하는 현대사회
토지도 수입한다
여전히 일본은 국토가 좁기 때문에 땅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오랜 관습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망상에 불과하다. 부족한 토지는 해외에서 수입하면 그만이다. 제조업에 바탕을 둔 기업이 일본 현지가 아닌 중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토지를 수입하는 것과 똑같다. 토지를 수입하게 되면 제조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기 때문에 일본 내 샐러리맨의 일자리가 위협받는다. 해외에 제조업 본부를 둔 일본 내 회사들의 구조조정 역시 실업자 증가의 한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일본은 제대로 된 토지 가치를 형성하기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그 좋은 예로 간사이 지역 주민들이 부동산 판매업자를 상대로 제소한 '주택가격 하락분 반환청구 소송'을 들 수 있다. 이를 필두로 부동산 가격하락에 따른 수많은 소송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자산버블이 붕괴되었을 때에는 토지를 팔기 위해 가격을 내리는 것조차 문제가 되었다. 고가에 건물을 구입했던 사람들이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