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 100년사
알프레드 챈들러 지음 | 베리타스북스
1장 기본개념과 접근시장경제에서 기업의 경쟁 우위는 학습역량이 높은 조직에서 나온다. 역량은 사용된 기술과 팔리는 시장에 따라 제품에 특화되어 있으며, 제품에 특화된 역량은 조직이라는 단위에서 발전되고 체화된다. 기업에서 조직의 학습과정은 경쟁력 있는 회사가 이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출발하며, 이때 기술적, 기능적, 경영적 지식이 중요한 몫을 한다. 기술적 지식은 전문적인 조직의 훈련과정에서 창출되는 과학적이고 공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얻어진다. 이는 연구를 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이라고 볼 수 있다. 기능적 지식은 제품에 특화되어 있으며 이는 개발역량(혁신의 결과물을 상업화하는 노하우), 생산역량(비용면에서의 효율성 추구), 마케팅 역량(시장의 속성을 이해하고 폭넓은 유통망을 갖추는 것)같은 조직 역량을 형성한다. 경영적 지식은 마케팅 지식과 경험에 근거한 조직역량으로서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선발 기업이란 자국에서 개발, 생산,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학습한 후 세계시장에 진출하여 첨단기술 산업에서 기반을 구축하는 기업을 말한다. 선발 기업은 통합된 조직의 역량으로 기술 및 시장 변화 같은 요인을 극복하고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은 학습기반을 만들면서 핵심기업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시설 및 인력의 확장 및 향상을 위해 투자를 지속하며 그 과정에서 통합적 학습기반은 강력한 진입장벽을 구축한다. 일단 핵심기업이 경쟁력 있는 산업의 틀을 구축하게 되면 신생 기업은 들어오기가 어려워지며, 핵심기업 또한 어느 시점이 되면 스스로 산업을 창출하지 못하고 공급자, 연구기관, 유통기관, 광고사 등 연계기업들과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면서 연결체를 이루게 된다. 한 국가의 경쟁우위는 기업 활동을 효과적으로 만들고 통합적으로 학습기반을 유지하는 핵심기업의 역량에 의존하게 되며 이 기반이 쇠퇴하면 산업의 지원 연결체와 경쟁우위도 사라지는 것이다. 산업이 일단 형성되면 학습은 강력한 추진력을 받는다. 선발주자의 통합적 학습기반은 새로운 기술 지식의 상업화를 통해 생산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통합적 학습기반에 녹아 있는 기술과 기능적 지식은 매우 강력해서 소수의 기업만이 새로운 기술 지식을 대규모 시장에 상업화하여 학습경로를 규정짓게 된다.
가전제품과 컴퓨터의 계속적 진화는 새로운 기술을 상업화하고 기존의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축적해온 학습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은 전자산업에서 기술 지식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새로운 제품으로 상업화되었는지, 어떻게 전자시대의 기반을 만들었고 20세기 후반을 변화시켰는지를 역사적 순서에 따라 기록한다.
2장 가전제품 - 미국의 국가적 산업 가전제품은 미국의 국가적 산업의 성공과 실패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가전산업의 세계사에서 전환점은 비디오카세트-리코더의 상업화에서 미국의 RCA, 유럽의 필립스, 일본의 마쓰시타와 소니라는 4자 경쟁체제가 성립된 때이다. 이 경쟁에서 RCA의 패배는 미국 가전 산업의 멸망을 가져오고, 일본의 우위를 점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19년 GE 부회장 오웬 영이 마르코니 무선 회사를 인수하여 RCA라는 자회사를 세우고 GE의 라디오 특허를 RCA로 양도한다. 1923년 556개의 방송사가 인가되고 미국 전역에 걸쳐 라디오 방송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RCA는 라디오 산업의 표준을 정하고, 기술이전 정책을 수행하면서 무선전신, 엔터테인먼트 방송, 진공관 분야에서 독점적인 권리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1930년 GE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제품 개발, 생산, 마케팅 및 유통을 할 수 있는 조직으로 탄생한다. 2차 대전 후 RCA는 TV산업의 표준을 만들 목적으로 자사가 갖고 있던 TV기술을 공개하고, 이를 통해 1960년대까지 진공관 및 TV부품 산업에서 70%에 달하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다. 또한 컬러 TV 시대를 여는데도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는데, 당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컬러 진공관을 탄생시키면서 컬러 TV 관련 신기술을 완전히 지배했다. 기술적 역량을 바탕으로 RCA는 라디오, 흑백 TV, 컬러 TV 시대를 거치면서 수신기 자체보다는 기술이전이나 부품 판매에서 주된 수익을 올리는 전략을 사용했고, 그 결과 1960년대 미국에서 26번째로 큰 기업이 되었다.
1965년 RCA의 경영진은 회사의 번영에 큰 영향을 미칠 두 가지 프로젝트를 정했는데, 그것은 가전제품과 데이터처리 장비였다. 1970년까지 동사는 연구개발비의 50%와 연구 인력의 40%를 데이터처리 기술개발에 할당하였지만, 가전제품에는 많은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일본기업과 유럽의 필립스가 RCA로부터 이전받은 기술을 응용하여 전자제품과 프로세스를 개선해 나감에 따라 RCA는 가전제품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RCA는 “컴퓨터에서 IBM에 도전하는 한편 거대기업으로 변화한다.”는 2단계 성장전략을 세웠지만, 1970년대 동사의 두 가지 전략은 실행에 있어 근본적인 약점을 보였다. 컴퓨터의 유혹은 첨단 산업에서 기술 있는 선발주자(IBM)를 따라잡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거대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다른 생산기술을 가진 여러 기업을 관리하는 것도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컴퓨터 부문의 투자 실패와 가전 부문의 경쟁력 약화는 RCA의 경영을 악화시켰다. 1980년 가전제품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불과했고 동사의 부채는 26억불에 달하고 있었다. 결국 1986년 GE에 인수된 RCA는 대부분의 사업부문이 폐쇄 또는 매각됨으로써 해체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인수나 직접투자를 통해 미국시장에 진입하고 있었으며 최신 생산 장비를 갖추고 미국 가전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반면 규모가 작은 미국기업들은 진공관이나 전자부품 등 단품만을 만들었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나 범위의 경제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RCA를 제외한 미국 기업들은 기술적 역량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에 RCA가 무너지자 미국 가전 시장이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RCA가 컴퓨터 산업에 뛰어들지 않고 거대기업이 되려고 하지도 않은 채 일본 기업들처럼 본연의 영역에 집중했다면 산업의 경로를 결정하는 기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RCA는 실패했고 일본 기업들은 가전제품의 상업화를 지배하게 된다.
3장 가전산업 - 일본의 세계 시장 진출비디오 리코딩 장치를 개발하려는 노력은 미국 RCA에서 시작되었다. 1956년 신생기업 암펙스가 비슷한 기술로 성공을 거두자 RCA는 이익의 1/3을 받는 조건으로 암펙스와 합의한다. 1960년대 후반 소니와 마쓰시타는 대형 암펙스 리코더를 소형화 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는데 소니는 베타방식이었고 마쓰시타는 VHS 방식이었다. 한편 유럽의 필립스는 V-2000 방식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1975년까지 비디오카세트-리코더를 둘러싼 경쟁은 소니, 필립스, 마쓰시타, RCA 4자 구도로 압축된다. 1975년까지 소니는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베타맥스 방식을 선보였고 마쓰시타는 VHS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갖추는데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기술적 역량은 부족했지만 마쓰시타의 기능적 역량은 시장에서 소니를 앞지를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1984년까지 시장점유율에서 VHS가 베타맥스를 네 배나 앞서면서 VHS의 성공은 RCA와 필립스의 추격에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마쓰시타의 성공은 기능적 역량과 풍부한 자본에서 비롯된다. 동사는 파나소닉과 퀘이사의 영업과 유통을 통해 미국시장에 집중했으며, 자회사 JVC를 통해 유럽시장에서도 같은 유통전략을 펼쳤다. 다음으로 마쓰시타는 일본 가전 시장의 선두 기업인 산요와 샤프에게 기술을 이전하고 히타치와 미쓰비시일렉트릭의 세계적인 유통망을 통해 VHS를 대량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제 VHS는 여섯 개의 거대 일본 기업에 의해 생산, 판매, 유통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일본과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 VHS의 생산은 OEM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마쓰시타의 OEM 전략은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째 생산과 유통에서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달성하여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었다. 둘째 지속적으로 자신만의 혁신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함으로써 외국기업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결국 마쓰시타는 의도적으로 비디오테이프 시장에서 세계표준을 만들어 경쟁자로 하여금 생산 및 마케팅 역량을 구축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세계를 정복한 것이다.
마쓰시타가 기능적 역량을 통해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 소니는 기술적 역량을 효과적으로 창출하고 유지하면서 이를 기능적 역량으로 통합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1968년 소니의 트리니트론은 RCA가 개발한 컬러 TV를 앞질렀고, 1970년에는 카세트-리코더의 기반 기술이 되는 유매틱을 생산하였다. 또한 1979년에는 라디오, 테이프재생기, 헤드셋을 결합한 워크맨을 탄생시켰다. 워크맨의 성공은 소니가 필립스와 함께 CD를 상업화할 수 있는 재정적 뒷받침을 마련해주었다. CD가 세계시장에 등장하면서 소니는 디지털사운드를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였고 필립스는 광학레이저 기술을 개척했다. 1979년 양사는 합동으로 연구팀을 구성했고 1982년 처음으로 CD를 상업화하는데 성공했다. 소니와 필립스는 CD를 생산하는 회사를 상대로 까다로운 기술 이전 조건을 제시하면서 CD의 표준을 구축해 나갔다. 1986년 양사는 문서저장 기능과 오디오, 비디오 기능을 갖춘 CD-ROM을 생산하여 기존의 데이터처리에 국한되었던 컴퓨터를 멀티미디어 장치로 변환시켰다.
CD의 개발로 소니는 컴퓨터라는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고 엔터테인먼트 영역을 확대할 수 있게 되었으며, DVD라는 후속 제품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소니는 DVD라는 혁신적 제품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었지만 필립스는 CD 인터액티브를 개발하다가 재정위기에 봉착한다. 이후 소니는 1993년 플레이스테이션을 개발하여 가정용 게임시장에 진출하고 1997년 이후 노트북 시장과 데스크톱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두게 된다. 베타 방식과 VHS 방식의 경쟁 이후 가전제품 시장에서 일본의 핵심적 학습기반은 마쓰시타와 소니라는 두 선발주자와 산요와 샤프라는 두 후발주자에 의해 창출되었다. 또한 컴퓨터 제조의 3대 거대 기업인 히타치, 미쓰비시 전기, NEC가 주요 생산업체가 되었다.
일본 기업이 세계의 가전 시장을 제패한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일본에는 경쟁력 있는 핵심기업들이 많이 있었다. 둘째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모두 대량으로 제품을 생산했다. 일본 기업들은 처음부터 새로운 기술을 상업화해 제품을 생산하고 기존의 제품을 향상시켜 통합적 학습기반을 구축했다. 또한 기술과 기능적 조직이 쓰일 수 있는 관련 분야로의 진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쓰시타는 제품개발과 생산은 물론 마케팅과 유통에 있어서도 지속적인 학습을 하였고, 소니는 기술적 역량을 지속적으로 학습하여 새로운 제품을 상업화하고 기존의 제품을 향상시킨 모범적인 사례이다.
4장 메인프레임과 미니컴퓨터 - 미국에서 탄생한 컴퓨터 산업1911년 창립된 IBM은 원래 펀치카드 시스템을 개발하던 회사에서 출발하였으나 1950년대 디지털 컴퓨터로 사업방향을 전환하여 세계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IBM의 기능적 역량은 펀치카드 시스템 제조과정에서 얻은 학습기반에서 창출되었는데 이것은 주변기기 개발에 특히 효과적이었다. IBM은 전 세계에 걸친 마케팅, 유통 조직을 활용해 새롭고,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기업 고객들에게 제공하였고, 더 나아가 제품과 프로세스 개발을 통해 기존 제품라인을 향상하고 제품을 상업화하여 이익을 얻으려는 전략을 폈다.
1961년 IBM은 소프트웨어, 입출력 장비, 테이프, 저장장치, 카드리더, 프린터, 터미널, 주변기기들에 적용되는 표준 인터페이스(시스템 360) 개발을 추진했다. 이것은 트랜지스터가 아닌 직접회로를 만드는 것을 포함하여 제품과 프로세스 면에서 이전에 없었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IBM은 엄청난 돈과 인력을 들여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달렸다. 1964년 예정대로 시스템이 개발되고 1967년 제품생산이 본격화되면서 IBM의 수익은 1963년 12억 달러에서 1973년 87억 달러로 뛰어올랐다. 독점적이고 내부적으로 통제된 기준은 이렇게 거대하고 통합된 시장의 경계를 규정하게 하였고 현재와 미래의 경쟁자들을 대상으로 높은 진입장벽(IBM이 당시 70%의 시장을 점유)을 형성하였다. 50년의 개발활동과 60~70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된 결과 IBM의 시스템은 전 세계 컴퓨터 시장에서 메인프레임의 학습경로를 규정했으며, 이때까지 어떤 회사나 정부기관도 이러한 역량을 보유하지 못했다.
IBM의 위협적인 도전자는 1957년 케네스 올슨에 의해 세워진 DEC이다. 올슨은 IBM의 메인프레임 경로에서 틈새를 공략했는데 주로 과학자용, 엔지니어용 미니컴퓨터에 집중하였다. 그는 “수공 제품과 같다.”는 호평을 받으면서 소프트웨어는 공급 하지 않고 저가에 제품을 공급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낮은 가격 대비 높은 성능을 추구하는 전략이 성공하면서 1970년대 초 DEC는 컴퓨터 산업에서 가장 역동적인 기업이 되었다. DEC의 경우에는 후발주자가 금방 추격을 해 왔는데 데이터제너럴, HP, 왕 연구소, 탠덤 컴퓨터 등이 대표적인 후발주자들이다. 데이터제너럴은 IBM 시스템과 연결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가진 제품을 내놓았고, HP는 뛰어난 계산능력과 다양한 컴퓨터 언어를 지원하는 제품을 개발했다. 왕 연구소는 최초의 스크린 기반의 워드 프로세서를 개발했고, 탠덤 컴퓨터는 시스템 다운과 데이터베이스 손상이 없는 제품을 개발했다. 1970년대 미니컴퓨터 회사들이 상업용 시장에 도전하자 IBM은 4300이라는 중간 규모의 시리즈를 내놓았다. 그 결과 1985년까지 IBM이 1위, DEC가 2위, HP가 3위를 차지하면서, 이 세 기업의 수익이 미니컴퓨터 시장의 70%를 차지하였다.
1970년대 이후 IBM은 거대기업이 되었지만 컴퓨터 산업의 시장점유율은 감소하였다. 저가의 미니컴퓨터와 고가의 슈퍼컴퓨터 제조업체와의 경쟁이 원인이었다. 가장 심각한 경쟁자는 IBM 호환제품(클론)을 만드는 회사들이었다. 클론 제조업체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드는 선발주자의 비용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IBM에 비해 싼 가격에 제품을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메인프레임 분야에서 암달은 일본의 후지쯔와 제휴함으로써 IBM과 경쟁할 만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1980년에서 1985년까지는 미국의 데이터처리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기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 메인프레임에서 IBM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 선두업체가 된다. 슈퍼컴퓨터는 콘트롤데이터가 선두 자리를 차지하였고 미니컴퓨터에서는 DEC와 다른 경쟁자들이 메인프레임 제조업체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주변기기는 주로 대형컴퓨터 제조업체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는데, 이들은 주로 IBM 호환제품을 생산하였다.
5대 기업(후지쯔, 히타치, NEC, 도시바, 미쓰비시)이 창출한 일본의 컴퓨터 산업은 1970년대 중반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이는 초기에는 IBM 호환 하드웨어를 잘 활용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건은 IBM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한 암달의 메인프레임을 인수한 것이었다. 또한 1960년대 메모리 칩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리드하던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가 1968년 일본에 진출하면서 집적회로 기술(킬비 특허)을 모든 일본기업에게 이전하게 된다.
1980년대 초반 실리콘 밸리와 미국의 컴퓨터 산업은 가전산업과 컴퓨터 산업에서 작은 회사와 큰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