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경제 대통령 버냉키 파워
가토 이즈루 & 야마히로 츠네오 지음 | 달과소
1. 버냉키의 금융정책 - 인플레이션 타깃팅의 방향
벤자민 S. 버냉키(Benjamin S. Bernanke)는 1953년 조지아 주 오거스타에서 유대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교시절 전 과목 A학점을 받은 버냉키는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79년 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스탠포드와 프린스턴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논문과 책을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2002년 8월 부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FRB(Board of Governors of the Federal Reserve System,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이사에 취임한 버냉키는 광범위한 경제문제를 잇달아 거론하면서 시장에 대량의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에는 미국경제의 디스인플레이션 경향을 우려하여 금융정책에 관한 자극적인 발언을 반복함으로써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헬리콥터에서 중앙은행이 돈을 뿌리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경제학상의 사고실험을 디플레이션 대책으로 주장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월가나 언론에서 차기 FRB의장 후보 중의 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2005년 10월 부시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그린스펀 FRB 의장의 후임으로 버냉키를 임명했다. 버냉키가 임명되자 월가의 관계자는 부시 대통령이 연줄인사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대통령이 FRB의장이라는 요직을 친구에게 맡긴다면 세계경제는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2005년 11월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FRB 의장 취임을 심의하는 청문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버냉키는 인플레이션 타깃팅(물가안정의 목표를 수치로 나타내는 것)에 반대하는 의원들과의 마찰을 피한 결과 의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2006년 1월 31일 상원 본회의는 구두 표결로 버냉키의 제14대 FRB 의장 취임을 정식으로 승인했다.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버냉키가 했던 증언은 향후 수년간 그의 금융정책 스타일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당시 그의 발언요지는 다음과 같다. "금융정책의 투명성 향상을 위한 첫걸음은 FOMC(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인플레이션율과 그 범위를 수치로 발표하는 것이지만 나는 장기적인 물가안정의 정의를 수치로 나타내는 것을 성급하게 추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흥미로운 점은 버냉키가 인플레이션 타깃팅 도입에 의욕을 나타내면서도 인플레이션 타깃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그가 "인플레이션 타깃팅을 채택해 이를 엄격하게 운용하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라고 발언했다면 위원회는 들고일어났을 것이다. 연방준비법은 FRB에 "고용 최대화와 물가안정"이라는 두 가지 사명을 부과하고 있는데 의원들은 물가안정을 우선시하는 인플레이션 타깃팅은 연방준비법에 반한다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먼저 물가안정을 추구함으로써 고용의 최대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원들과의 충돌을 피해 의장 취임 승인을 얻어낸 버냉키는 실용주의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의회증언에서도 말했듯이 버냉키는 무리하게 인플레이션 타깃팅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FRB 내에서도 찬반양론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찬성파는 인플레이션 목표수치가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새로운 도구가 된다는 입장이지만, 반대파는 인플레이션 타깃팅이 FRB에 부과되어 있는 두 가지 사명(고용 최대화와 물가안정)과의 정합성이 없고 타깃 속박한다는 입장이다. 필자가 FRB 이코노미스트들로부터 느끼는 인상도 "인플레이션 타깃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때가 오면 채택하면 된다"는 중립적인 자세가 많다고 느껴진다. 이는 뒤집어 보면 "현 시점에서 FRB는 시장과 국민들의 인플레이션 기대를 잘 제어하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다. 사실 버냉키가 이끄는 FRB가 앞으로 인플레이션 타깃팅을 정식으로 선언하더라도 이것은 하나의 중장기적 정책운용의 기준이 되며 기계적 규칙은 되지 않을 것이다. 즉, 실제 인플레이션 타깃팅을 결정해도 FOMC 금융정책의 운영과 판단은 그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 타깃에 시달리는 FRB - 자산 가격과 금융정책의 관계
국제결제은행은 2002년 중앙은행이 추구하는 안정적인 低 인플레이션율의 달성 그 자체가 금융의 불균형을 달성해 버블의 온상이 된다고 지적하면서, 금융정책은 인플레이션율만 목표로 해서는 안 되며 버블 초기에 보이는 신용의 급격한 확장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제창하였다. 이처럼 금융정책이 타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논의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 활발해졌는데, 이는 세기말경부터 주택가격 급등과 같은 타깃에 시달리는 중앙은행이 세계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1996년 12월 5일 그린스펀 FRB의장은 강연에서 "근거 없는 열광이 언제 자산 가격을 과도하게 끌어올리는지 알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발언은 몇 시간 후 도쿄 증권시장의 급락을 초래하고 아시아, 유럽, 그리고 뉴욕시장까지 연쇄적인 혼란에 몰아넣었다. 그린스펀의 문제 제기에 대해 의회는 FOMC가 주가 상승을 핑계로 금리를 인상하려 한다고 반발하고 나섰지만 1997년 3월 25일 FOMC는 만장일치로 0.25%의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경기과열에 따른 인플레이션 억제가 주목적이었다. 그러나 그해 여름 아시아 금융위기가 주식시장을 강타하면서 버블 파열에 대한 우려가 발생하자, 그린스펀은 "주가 하락은 미국경제의 과열을 억제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썼고, FOMC는 긴축방향을 중립으로 전환했다. 이듬해 8월 러시아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그린스펀은 "미국 혼자 번영의 오아시스에 머무를 수 없다"고 하면서 금리를 5.5%에서 4.75%까지 낮추어 버렸다.
그러나 러시아 금융위기로 인한 저금리의 결과 미국경제가 가열되고 주식시장의 버블이 가파르게 진행되자 FOMC는 1999년 5월 금융정책을 다시 긴축으로 전환하고 금리인상에 나섰다. 1999년 말 금리가 5.5%를 회복하고 2000년 3월 6.0%까지 상승하자, 뉴욕증권시장과 나스닥이 사상 최대의 하락폭을 기록하면서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FOMC의 금융정책이 금리인하 방향으로 전환된 것은 버블이 완전히 터져 버린 그해 12월부터였다. 경기후퇴를 우려한 FOMC는 2001년 1월부터 8월까지 금리를 3.25%까지 떨어뜨렸다. 연초의 6.5%가 반 토막 난 것이다. 그리고 9.11테러로 금리인하는 계속되어 연말에는 1.75%까지 떨어지게 된다. 그린스펀은 나중에 2000년 후반기의 금리인상이 버블 진압을 의도한 정책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FRB는 IT(정보통신) 주식 버블 붕괴가 일정기간에 걸쳐 계속되었다는 것을 관찰하고 이 수축과정을 확실히 하기 위해 고금리정책을 유지한 것이라고 한다.
그린스펀은 버블 파열 전의 1999년 미국경제에 대해 생산성이 주도하는 강한 성장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신 경제론을 제시했지만 버블 파열 직후에는 이와 같은 하이테크 부문의 과잉생산은 지속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물론 그 자신도 IT 주식 버블에 대한 FRB의 대응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과거의 정책대응에 대해 대외적으로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금융정책을 비롯한 FRB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것을 경계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린스펀은 논리 모순을 교묘한 화술로 포장하여 비대칭적인 FRB 토크의 세계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명인(마에스토로)이다. 그는 2005년 주택버블에 대해 "전국적인 버블이 아니며 과거와 같은 붕괴는 없다"고 단언하다가 5년간 2배 이상 주택가격이 급등한 지역이 확산되자 프로스(카푸치노 커피 위에 떠 있는 작은 버블들이 모인 덩어리)란 말을 끄집어냈다. 일단 버블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형세가 위태로워지자 경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소프트한 프로스라고 돌려 표현한 것이다. 프로스는 카푸치노 커피의 달콤한 거품이 연상되어 이 발언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커피타임에 적절한 화제를 제공하여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한편 자산버블에 대해 버냉키는 1999년 발표한 논문에서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두 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산 가격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 타깃팅을 주장했다. 인플레이션 타깃팅의 틀 안에서는 자산 가격이 붐일 때 금리가 인상되고 파열시에 금리가 인하되기 때문에 금융공황의 가능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1999년 논문과 달리 FRB이사가 된 이후 버냉키는 2002년 강연에서 버블 터트리기를 위해 급격한 금융긴축을 발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는 2002년 IT 주식 버블 때 FRB가 얻은 교훈이 바탕이 된 면도 있을 것이다.
<<버블에 대한 버냉키 FRB 이사의 발언요지 - 2002년 10월 5일 강연->>
FRB가 자산버블을 인식하는 것은 어려우며, 또 경제에 대한 심각한 타격을 입히지 않고 자산 가격을 적정수준으로 이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안전하게 버블을 파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위세 좋은 버블 터트리기는 경제 전체를 불황으로 빠뜨릴 것이다. 따라서 버블 발생을 억제하고 금융시스템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시적 레벨의 정책을 사용하는 편이 훨씬 좋은 접근법이다. 일에는 적절한 도구를 찾아야 한다.
일에는 적절한 도구를 찾아야 한다고 FRB이사 시절에 말한 버냉키지만 의장의 입장이 된 지금은 자산시장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가령 투기열기가 높아져 있을 때 FRB의장이 금리정책으로 자산버블에 대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담담하게 말해 버리면 유포리아(euphoria)를 심하게 부추길 우려가 있다. 원칙적으로는 정론이지만 FRB의장의 입장이 되면 말해서는 안 될 국면도 있는 것이다. 그린스펀의 토크는 때때로 논리모순을 일으킨 것처럼 보인 때도 있었지만 상황에 따른 논리사용법은 시장을 회유해야 하는 FRB의장에게 필요한 기술이다.
3. FRB의 무대 뒤 - 조직의 성립과 FOMC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는 분산화된 중앙은행이라고 불린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12개의 지역연방준비은행(FRB)을 워싱턴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Board of Governors of the Federal Reserve System)가 총괄하는 체제인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승인한 7명의 이사로 구성된다. 이사의 임기는 14년으로 재임은 없다. 이사회의 의장과 부의장도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이 승인한다. 의장과 부의장직의 임기는 4년이며 재임이 가능하다. 이사의 임기가 14년으로 장기인 것은 정권의 의도로 이사들이 대폭 바뀌는 일을 막기 위함이다. 전미 12곳에 있는 지역연방준비은행 네트워크는 FRB의 하부기관으로 그 결정에 근거해 전국적인 결제 시스템, 화폐공급, 가입은행의 감독 및 규제, 국고의 재무대리인 역할을 담당한다. 지역연방준비은행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공정금리의 결정인데, 공정금리는 각각의 지역연방준비은행 이사회가 워싱턴의 FRB에 신청하고 FRB가 FOMC의 페더럴 펀드 금리 결정에 연동시켜 승인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에는 FRB 멤버 7명과 지역연방준비은행 총재 12명이 참가한다. FRB 회장이 의장을 맡고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부의장이 된다. FRB 멤버 7명과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항상 투표권을 행사하지만 나머지 11개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은 4명이 매년 돌아가며 투표권을 행사한다. FOMC 정례회의는 연간 8회 열린다. 경제정세가 급변하면 의장이 긴급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 IT 주식 버블 붕괴와 9.11테러에 휩싸인 2001년에는 정례회의가 8회, 긴급회의가 3회 열려서 11회 연속 금리인하가 결정되었다.
통상 하루인 FRB 회의는 오전 9시에 시작되어 오후 1시경에 종료된다. 회의에서 채택된 성명은 오후 2시 15분 전후에 공표된다. 회의 진행은 먼저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공개시장조작 지배인들이 지난 회의 이후의 금융시장 동향에 관한 설명을 한 다음 FRB 조사통계국장이 미국의 경제현황과 전망에 관해 보고한다. FRB 조사통계국이 제출하는 경제현황과 전망은 녹색표지의 보고서로 정리되어 있어 '그린북'이라고 불린다. 그린북에 게재된 경제전망은 종종 FOMC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에 시장참가자들도 항상 주시하고 있다. 그린북은 비공개지만, 회의 3주 후에 발표되는 의사록에 그 개요가 소개되므로 FRB의 최신 조사내용을 알 수 있다. FRB 조사통계국의 설명을 바탕으로 FOMC 멤버들 중 의장을 제외한 FRB 이사 6명과 지역연방준비은행 총재 12명이 전국경제와 지역경제에 관한 의견을 표명한다. 지역연방준비은행은 회의에 앞서 관할지역 기업을 대상으로 청취조사를 실시한 결과 보고서를 FOMC 회의에 제출하는데, 이 보고서는 표지가 베이지 색이어서 '베이지북'이라고 불린다. 베이지북은 첫 페이지에 12개 은행 전체의 움직임을 총괄하고 이어서 개인소비, 제조업, 금융업, 농업, 고용, 임금, 물가를 항목별로 기술한다. 베이지북은 FOMC 정례회의 전에 공표되기 때문에 회의의 향방을 점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경제동향과 전망에 대한 의견교환이 종료되면 가장 중요한 금융정책 결정을 둘러싼 협의에 들어간다. 우선 FRB 금융정책국장이 금융정책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는 푸른색 표지로 정리되어 있어서 '블루북'으로 불린다. 블루북은 특정정책을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금리인상, 금리인하, 금리동결이라는 세 가지 선택에 대해서 그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목적이다. 또 FOMC 성명에서 금융정책의 전망을 시사하는 가이던스(guidance, 지침)가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블루북에 그 선택 방향도 게재하게 되었다. FOMC 회의 당일에는 금융정책당국의 설명과 FOMC 멤버들의 질의응답이 종료되는 시점을 적당히 보아 의장이 전체를 총괄하고, 그 후 성명 가이던스나 적절한 금융정책에 관한 의장의 견해를 표명한다. 그 후 멤버들이 순번대로 견해를 표명하는데 의장의 견해에 따라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것을 지향한다. FOMC 구성은 1935년 은행법에 따라 FRB가 전체를 통괄하는 구도가 만들어졌지만, 전통적으로 지역연방준비은행 총재를 포함한 만장일치를 지향하는 풍조가 있어 컨센서스를 위한 논의가 가장 고조된다.
FOMC에서 금융정책 표결에 있어 의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의장 한 명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 안이 부결되면 의장이 사임한다는 불문율도 있다. 그 때문에 그린스펀은 FOMC 멤버들의 견해가 양분되면 어느 쪽 방향으로 기울어도 대응할 수 있도록 양 진영에 발판을 쌓았다고 한다. 멤버들 사이의 의견조정이 종료된 후 금융정책 표결에 들어가며, 표결이 끝나면 FOMC는 새로운 페더럴 펀드 금리의 유도목표 수준과 장래의 경기와 물가에 대한 리스크 밸런스의 평가내용을 담은 성명내용을 채택한다. 그리고 지시형태로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공개시장조작 지배인에게 통고하고 회의를 마친다. 그 후 FRB 멤버들은 FOMC 회의실과 문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FRB 의장실로 자리를 옮겨 공정금리를 결정한다. 공정금리는 페더럴 펀드 금리에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공정금리 결정은 몇 분 만에 종료된다.
모든 것이 종료된 후 FRB 홍보담당관은 FOMC 성명문과 공정금리의 결정 내용을 기록한 기자 발표문을 오후 2시 10분 전후에 재무부 기자실에 팩스로 보낸다. 기자실 간사는 십여 명의 상주 기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