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문화창조자들
폴 레이 & 셰리 루스 앤더슨 지음 | 한스컨텐츠
1부 문화창조자들에 대한 소개
1960년대 이래, 미국 성인 인구의 26%에 달하는 5,000만 명의 사람들이 세계관, 가치관, 생활방식(간단하게 말해 자신들의 문화)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창조적이고 낙관적인 이들 수천만 명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여러 가지 문화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문화창조자들'이라고 명명한다. 이들은 일일우일신(一日又一新)하면서 21세기 미국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에는 인간이 매순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고난을 해결하는 상당한 양의 해결책이 간직되어 있다. 이를 소중히 여기는 자세처럼 '문화'를 유용하게 바라보는 시각은 없다. 따라서 이들은 미래사회에 필요하고 뛰어나며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해결책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 두 사람은 이들의 이야기와 이들이 우리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1960년대 초엽만 해도, 5% 미만의 미국인들만이 이러한 중요한 변화에 동참했다. 이 수치는 과학적인 연구를 하기에는 너무도 미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로 꾸준히 증가해 한 세대가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는 미국인의 26%가 문화창조자가 되었다. 나노세컨드(nanosecond)를 말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한 세대는 매우 긴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의 척도로 측정해 볼 때 몇 세대라는 단위로 장족의 발전을 이룬 인류 문명에 비하면 한 세대는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짧은 시간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문화를 주도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것의 진폭이다. 매우 뛰어난 관측자들의 시선을 잡아당길 정도이니 말이다. 미국에 상당수의 문화창조자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유럽연합 관계자들은 1997년 9월 유럽 15개국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놀랍게도 미국만큼이나 많은 문화창조자들이 유럽에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책은 문화창조자들이 누구인지, 이들의 출현이 이들과 우리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심도 있게 살핀다. 그리고 우리의 집단의식과 인식을 날카롭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당신이 문화창조자에 속하든, 사무실이나 집이나 침실을 이들과 같이 사용하고 있든, 문화창조자들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고자 하든, 비즈니스를 하고자 하든, 당신은 이들의 현존이 당신의 삶에 가져오는 변화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문화창조자들은 누구인가?
현재 미국인들은 개인의 진정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만들어 낸 사람들이 바로 문화창조자들이다. '진정성'이란 한 사람의 신념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하위문화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에 눈과 귀를 열고, 자신이 진정 느끼는 일에 관여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성향은 직접 겪는 개인적인 경험 그리고 지적인 배움과 방식에 관련이 있다. 이러한 성향은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인상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실질적이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들이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드러난다. 이들은 중요한 것들만 요약해 놓은 프레젠테이션을 불신한다. 어떤 면에서 이런 종류의 프레젠테이션은 곧잘 조작적이고, 주제와 깊은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창조자들은 외부적인 것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저널리스트 스타일의 설명을 몹시 싫어한다. 이들은 번지르르하고 의미 없이 과장된 광고 스타일에 특히 민감하다.
문화창조자들은 누구보다도 값지고 직관적이며 감각적인 삶을 원한다. 그래서 이런 요소들이 삶에 배어들 수 있도록 상세하면서도 관련 깊은 지식을 배우려 한다. 이들은 특히 인류학자인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 여사가 처음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직접 참여하고 중요한 부분들을 만든 다음 과정을 다시금 시작하는, 즉 감각으로 인지하는 방법을 배우는 '전체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초기 문화창조자로 꼽히는 교육자 진 휴스턴(Jean Houston)은 "세계는 지나치게 복잡한 까닭에 선형적인 분석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다. 지구 마을에서 현명해진다는 것은 역동적으로, 유기적으로, 그리고 자신을 자연에 속해 있는 한 부분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생각하면서 직관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시간이나 비용을 소요해야 할 경우 문화창조자들은 프로젝트의 전체 과정에 관여하려 하고, 개인적으로도 관계를 맺으려 한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나가며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지원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얻은 개인의 직접적인 경험처럼 문화창조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없다. 이들은 자신이 직접 참여·실천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끝까지 실현하리라 생각한다. 다수의 문화창조자들은 직접 관여하지 않으면, 자신의 믿음 역시 단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여느 미국인들보다는 이상주의와 이타주의를 대변하는 동시에, 냉소주의는 대변하지 않고 있다. 이들 가운데 65%는 "사회에 기여하도록 일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하고, 45%는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일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나아가 이들은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치와 부합되게 행동한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의 경우, 일반 미국인의 60%가 자원봉사를 하는 데 반해 이들은 75%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생각이 바뀌면 최선을 다해 말과 행동을 바꾼다.
문화창조자들이 전통적인 미국인의 삶에서 대체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들은 보다 많이 소유하려는 물질만능주의, 탐욕, '나 먼저'라는 의식,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여 태만해지거나 만족하지 못해 불안정한 자세, 인종 및 계급에 따른 사회적 차별, 노인 · 여성 · 아동을 보살피지 못한 사회적 실패, 현대사회의 현실주의로 간주되는 쾌락주의와 냉소주의라는 미몽에서 깨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나아가 사회 보수주의자들과 종교적 우파(Religious Right)의 편협한 자세와 속 좁은 자세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기업과 정부를 비롯해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협소한 분석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본 것을 묘사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직접 경험해서 깨달은 것들을 설명하지 못하는 언론매체의 파편적이고 피상적이며 그럴 듯한 설명을 몹시 싫어한다.
문화창조자들이 그들의 가치를 변화시킬 때 그들의 세계관이 변화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세계관이란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이 사실(신(神), 경제, 기술, 지구… 이와 관련된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일과 놀이를 어떻게 병행할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 등)이라는 것이고, 자신이 값지게 여기는 모든 것이라는 개념이다. 세계관이 먼저 변한 다음 가치에서 우선순위가 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우선순위가 변한 다음 세계관이 변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가치와 세계관이 차례로 변화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다가 가치와 세계관이 곧 혼합되고 만다. 그러나 세계관은 자주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를 번갈아 타는 10대와 다를 바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리 충동적이지 않다. 기껏해야 세계관을 평생에 한 번 정도 바꾼다. 세계관이 우리 의식에 있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문화창조자들은 미국 문화를 구성하는 3개의 커다란 하위문화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공적인 담론이 관계되는 한, 문화창조자들을 제외한 2개의 하위문화만 있을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현대주의자들이라는 하위문화와 전통주의자들이라는 하위문화가 있을 따름이다. 반세기 전에는 실제로 이렇게 2개의 하위문화만 있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단순한 삶의 방식을 지켜나가느라 이분법적으로만 생각했다. 2개의 거대한 하위문화 간의 충돌과 경쟁은 수백 가지 이야기로 계속해서 되풀이되어 온 친숙한 이야기다. 현대주의자들과 전통주의자들은 건국 이래로 미국 사회에 불편하게 공존해 왔다. 이들의 관계는 장기간 계속되는 가족 싸움과도 같으며, 일명 '문화전쟁'으로 불리어 왔다. 21세기 벽두에 문화창조자들은 제3의 대안을 상징하고 있다. 이들의 뿌리는 2개의 초기 문화에 기초했지만 이미 그 가지는 현대주의와 전통주의를 초월해 있다. 이들이 등장한 의미는 문화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새로운 세계로 치유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있다. '문화창조자들은 하나같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그토록 많은 문화창조자들이 갑자기 한밤중에 어떻게 불쑥 솟아날 수 있을까?' 가장 간단하게 답한다면, 이들은 땅속에서 수세기에 걸쳐 준비를 하고 있다가 지난 2세대에 걸쳐 파종되어 장기간에 걸쳐 성장해 왔다. 이를 좀 더 길게 설명하면, 이들은 점진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변화시켰던, 그리고 많은 경우에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켰던 개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믿어 온 그 어떤 것을 통해(지난 40년 동안의 역사를 통해)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엄청나고 갑작스런 변혁을 기대했던 소수의 몽상가들 눈에는 문화창조자들의 출현이 오히려 늦은 감도 있을 것이고, 그것을 배태시킨 과정이 아닌 표면의 사건만을 본 보통 사람들에게는 문화창조자들의 출현이 놀라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문화창조자 되기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문화창조자가 된 대부분의 사람은 한때 확실하고, 안전하며, 편안하다고 느낀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길로 들어서는 모험을 감행한다. 이 같은 결별로 기분이 좋아지든지, 걱정 근심이 생기든지, 슬픔을 느끼게 되든지, 단호한 마음을 갖게 되든지 할 것이다. 이들은 외로움을 느낄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무리에서 떨어져 있고 외톨박이로서 타인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는 일종의 원초적 두려움을 느끼기 쉽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앞서 이미 그 길로 들어섰고, 가까이에서 걷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까닭에 이들은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을 떨치지 못할 수도 있다. 문화창조자들은 삶의 길을 바꾸는 것이 외국어를 학습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규칙에 걸려 넘어질 때까지는 얼마나 많은 무언의 규칙이 있는가 알 수 없는 법이다.
첫 번째 단계 : 내면의 결별
모든 성인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짓말을 간파할 때, 어린 시절에 겪었던 오래된 문화의 황홀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부분의 문화창조자들의 경우, 내면의 결별은 삶의 후반기에 시작한다. 내면의 결별이 텔레비전에서 본 어떤 것에 의해서든, 조간신문에 나온 어떤 기사에 의해서든, 개인적 충격과 상실감에 의해서 촉발되었든, 어린 시절에 시작되었든, 삶의 중반기에 시작되었든, 은퇴한 이후에 시작되었든 이전에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사태가 진행되는가에 대해 설명했던 것들은 더 이상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과거와의 결별은 어렵기는 하지만 결국 문화창조자가 된 모든 사람들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배적인 문화에 깃든 이야기의 끊임없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당신은 보이지 않는 관문을 넘어간 것이다. 사실 당신은 이미 관문을 넘었고, 새로운 영역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중대한 시점에서 당신은 내면에 완전한 결별을 고했고, 문화창조자가 되는 첫걸음을 떼어 놓은 것이다. 외부에는 변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면에 오랫동안 간직해 온 세계관에 대한 당신의 충성심은 구멍이 많이 나 있는 스위스 치즈와 다를 것이 없다. 오래된 문화의 뛰어난 구성원처럼 구멍들을 채우는 대신에 당신은 오히려 그것들을 크게 벌리고 있다. 당신은 새롭게 보는 방법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에 대한 오래된 이상의 일부나 전체를 비롯해서 오래된 아이디어에는 결점이 있고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한 잘못이 있다고 말해 주는 증거를 보게 된다.
두 번째 단계 : 출발
다음 단계는 실제로 새로운 생활방식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단계를 어떻게 밟을 것인가 마음과 정신을 통해서 결정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 있다. 조 크레스(Joe Kresse)가 경험한 것처럼 당신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이러한 단계는 예측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조의 60회 생일 전에 우리는 조와 그의 아내인 바바라를 만났다.
"30살 즈음에,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하는데, '그럼 됐다. 직업도 가졌고, 아내도 가졌다. 집도 가졌고, 아이도 있다. 그럼 다음은 뭐지?'라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는 어떻게 할 줄 몰랐다.
"저는 지금까지 이룬 것들을 보다 많이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저를 원하는 커다란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계기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는 생각조차 못 했고요."
그럴 즈음 한 동료가 조를 크리에이티브 이니셔티브(Creative Initiative, Foundation for Global Community의 전신 단체-역주)라는 그룹의 미팅에 초청했다. 그제야 비로소 문이 열렸고 조는 기회를 잡았으며 그룹 활동에 참여했다. 조 크레스의 정신적인 출입구는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열렸다. 이후 몇 년이 지난 다음에 이 같은 질문에 힘입어 그의 내면의 삶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그는 심리학을 깊게 파고들어 갔고, 하루도 빠짐없이 명상 훈련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 부부는 보다 단순한 라이프스타일을 개발시켰다. 그는 계속해서 일을 했고, 기업 사다리에서 보다 높은 자리로 올라갔지만 삶의 우선순위는 바뀌었다. 50세가 되었을 때 그는 다니던 직장에서 나왔다.
세 번째 단계 : 비판과 마주치기
새로운 삶의 경로를 시작할 때 문화창조자들은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비판을 받게 된다. 자신들의 경로가 어디에서 끝이 날지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들은 삶의 경로를 걸어갈 뿐, 그것이 어디서 끝나는지는 알 수 없다. 스페인의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가 말하듯이 이들이 걷고 있는 경로는 그 경로를 걸음으로써 만들어진다. 문화창조자들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과 마주치게 되고, 비판을 받게 된다. 이는 삶을 바라보는 자세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의 전통주의자들보다는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현대주의자들의 가치관보다는 심오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비판을 받게 되는 두 번째 원인으로 문화창조자들은 지배적인 문화의 사회규범에 도전을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머지않아 이들은 지배적인 문화의 몇 가지 좋지 않은 것들과 충돌하게 된다.
네 번째 단계 : 가치를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전환시켜라
문화창조자들은 어떻게 가치를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전환시키는가? 이와 관련해서 유일한 방법, 정책 노선, 도그마, 성공 규칙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최고로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하는 문제나 유권자들에게 신뢰를 주려 하는 문제와도 다르다.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다. 외부 관찰자들은 문화창조자들 앞에 놓여 있는 경제를, 절대적으로 공허한 공간과 마주하고 있는 수천 마일의 벼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경계의 끝에 있는 혁신자들은 견고하고 새로운 터전을 만들고, 알려진 세계를 넘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혁신의 핵심요소는 혁신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다.
네 번째 단계에 이르면 대부분의 문화창조자들은 큰 그림을 찾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상호연결과 관계를 추적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의 버팀목이자 삶의 시스템인 지구를 개발하려는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