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종말
제프리 D. 삭스 지음 | 21세기북스
빈곤은 어디에 있는가말라위의 수도 리옹그웨에서 약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 은탄디르에 도착했을 때는 여전히 오전이었다. 오전인데도 날씨는 찌는 듯 무더웠다. 우리는 진창길을 걸어가며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물동이와 땔감나무를 비롯해 무거운 짐을 잔뜩 지고 지나가는 것을 자주 보았다. 남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내륙국에 속한 이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황량한 땅뙈기에서 옥수수 농사를 지으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엘리뇨 현상 때문인지 그해는 비가 적게 내려 다른 해보다 특히 더 어려웠다. 지붕과 밭에 작은 집수장치를 마련해 빗물을 조금이나마 저장할 수 있었다면 사태가 이처럼 끔찍하지는 않았을 텐데 마을에 일할 능력이 있는 젊은 남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수년 동안 말라위를 휩쓴 AIDS의 참화로 20~40세 사이의 남자가 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이들도, AIDS로 죽은 이웃의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마을에 없었다. 우리가 은탄디르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고아가 된 손자와 손녀들을 책임지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건강이 어떤지 물었다. 한 할머니는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를 가리키며, 아이가 지난주에 말라리아에 걸렸다고 말했다. 안내원의 설명에 의하면 해마다 100만 명~300만 명의 아프리카 어린이가 말라리아로 사망한다고 했다. 마을 근처에는 진료소도, 안전한 식수원도, 모기장도 없었고, 밭에는 작물도 자라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점은 아무런 원조도 없다는 것이었다.
말라위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빈곤의 또 다른 현장이 존재한다. 바로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 가운데 하나인 방글라데시다. 그나마 이곳에서는 빈곤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다. 몇 년 전 방글라데시의 다카를 방문했을 때 나는 수천 명의 젊은 여성들이 줄을 지어 일터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이들은 다카에서 갑자기 성장한 의류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로 매일 아침 긴 열을 지어 두 시간이나 걸어 일하러 간다. 오전 7시나 7시 30분쯤 일터에 도착한 이들은 12시간 동안 휴식 시간도 거의 없이 일을 한다. 그러나 말라위 사람들에 비해서 이들은 현대 경제에 올라설 발판을 마련한 셈이고, 극단적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다리의 첫 계단에 올라섰다.
이 여성들은 시골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만성적인 배고픔과 곤궁에 노출된 절대적인 빈곤 계층이었다. 이 여성들이 마을에 그대로 머물렀다면, 아버지가 정해 주는 짝과 강제로 결혼하여 17~18세에 아이를 가져야 했을 것이다. 도시로 가는 여정이 힘들긴 하지만 그 여성들은 얼마 안 되는 자신들의 소득을 관리할 수 있었고, 자신들만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 누구와 데이트하고 결혼할지와, 아이를 갖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으며, 저축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생활조건을 개선할 수 있었다. 특히 학교에 입학하여 글자를 깨우치거나 직업적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에는 여성들에게 소액금융을 제공하는 비정부조직도 있었다. 농촌진흥위원회(BRAC)라는 이 조직은 그래민 은행과의 협력으로, 길거리에서 소규모 상업 활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소액대출을 해주고 있었다. 이제까지 신용이 없었기 때문에 은행과 거래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이 여성들은 부채 상환에 공동 책임을 짐으로써 장사에 필요한 운전자금을 대출 받을 수 있었다. 더욱이 이들은 자녀를 한 두 명밖에 낳지 않았다. 이처럼 감소된 출산율은 다시 방글라데시의 소득 증대를 촉진할 것이다. 가난한 가계는 자녀가 적을수록 건강과 영양, 교육환경을 갖추어 줄 수 있고, 향상된 환경은 대물림 된다.
방글라데시가 이처럼 발전의 사다리에 첫발을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이며, BRAC와 그래민 은행 같은 비정부 조직의 창의성 덕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방글라데시에 관심을 갖고 개발 원조를 제공한 다양한 기부국들의 투자에 의한 결과이기도 하다. 하나의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저소득국이 발전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없도록 함정을 놓지 말아야 한다. 함정들이란 불충분한 개발원조, 보호무역주의, 안정을 해치는 국제 금융 행태 등이다. 이미 빈곤의 종말을 위한 대담한 공약들이 존재한다. 2002년에 191개의 모든 유엔 회원국이 유엔밀레니엄선언에 서명함으로써 동의한 8개조 목표인 밀레니엄발전목표(MDG)가 그것이다. 이 8개조 목표는 1990년을 기준년도로 하여 2015년에 빈곤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제적 번영의 확산오늘날에 부자와 빈자 사이의 거대한 간극이 존재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이 분할이 출현한 1800년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1800년 이후의 지난 2세기를 위대한 경제사가인 사이먼 쿠츠네츠는 '현대적 경제성장의 시기'라고 명명했다. 그 이전에는 수천 년 동안 세계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고, 인구도 아주 조금씩 증가했을 뿐이다. 그러나 1800년 이후 세계 인구는 단 2세기 만에 6배 이상 증가하여 61억 명이라는 놀라운 수치에 도달했고, 세계의 1인당 평균 소득은 약 9배 증가했다. 부국들이 이룬 경제성장은 더욱더 놀라웠다. 이 기간에 미국의 1인당 소득은 거의 25배 증가했고, 서유럽의 경우는 15배 증가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에 존재하는 '부국과 빈국의 간극'은 현대적 경제성장의 시기에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세계의 지역별 격차가 증폭된 계기는 1750년경 영국에서 일어났다. 개량된 윤작을 통한 영농 기술이 체계적으로 개선되면서 영국은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를 동원했는데 그것이 바로 증기엔진이었다. 증기엔진은 화석연료라는 1차 에너지를 방대하게 동원했고, 이 덕분에 재화와 서비스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모든 측면에서 경제적 이륙을 자극했다. 화석연료 에너지가 화학비료를 생산하는 데 사용됨으로써 식량 생산이 급증했고, 철ㆍ수송 장비ㆍ화학ㆍ제약ㆍ직물ㆍ의류 등의 근대적 제조부문에 방대한 양의 화석 에너지가 투입됨으로써 그 부문들의 생산력도 급증했다. 석탄이 산업을 자극한 것처럼, 산업은 정치적 힘도 자극했다. 19세기 초 영국의 산업적 도약은 거대한 군사적ㆍ재정적 우위를 낳았다.
그렇다면 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났을까? 우선 영국에서는 봉건시대의 고정된 사회질서가 상당히 약화되거나 사라져 개방적이었다. 반면 다른 유럽의 다수지역에서는 농노제가 일반적으로 남아 있었고,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카스트제도와 같은 훨씬 더 엄격한 사회적 위계가 일반적이었다. 또한 영국은 의회와 공개토론의 전통과 같은 정치적 자유가 강력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새로운 사상을 흡수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었다. 유럽은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과학이 결정적인 진보를 이루었는데, 영국은 정치적 개방성 덕분에 사변적인 과학적 사유가 번성했다. 그 중 아이작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1687년 출간)는 물리적 현상이 수학적 법칙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법칙을 발견하기 위한 계산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과학혁명에 뒤이어 일어날 산업혁명의 무대를 마련해 놓았다.
영국은 여러 가지 중요한 지리적 이점도 갖고 있었다. 섬 경제로 인해 유럽의 모든 곳과 저렴한 비용으로 해양무역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강수량이 풍부했고, 토양이 비옥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리적 이점은 북아메리카와 가까이 있다는 점이었다. 북아메리카에서의 새로운 정착을 통해 식량 생산을 위한 방대한 영토와 산업을 위한 면화 같은 원재료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북아메리카는 영국의 농촌에서 몰락한 사람들의 탈출을 촉진하는 안전밸브 역할을 담당했다. 요컨대 영국의 이점은 사회적ㆍ정치적ㆍ지리적 요인들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현대적 경제성장이 영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일단 산업혁명이 진행되자 영국에서와 똑같은 현대적 기술과 사회 조직의 결합이 세계의 다른 곳들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 이행은 엄청나게 소란스러운 과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거대한 사회적 투쟁이 일어났다. 영국은 공업화를 주도한 결과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게 되었고, 이 군사적 우위는 제국주의로 전환되었다. 일반적으로 19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공업화는 유럽제국을 아시아ㆍ아프리카ㆍ아메리카 전역으로 방대하게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그런 지배가 종교ㆍ인종ㆍ유전ㆍ문화ㆍ제도 등, 여러 면에서 우월성을 반영한다는 이론을 확산시켰으며, 그것은 식민지 지배를 통해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형태, 더 나아가 노예화까지도 정당화했다.
유럽의 제국들은 아프리카 전역과 아시아의 많은 부분을 통제했고, 라틴 아메리카의 교역 조직과 이를 위한 재원 조달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것이 지구화의 첫 시작이었다. 또한 전쟁이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방편이 되어버렸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시작된 분열은 결과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보다 훨씬 더 극적이었다. 이는 유럽이 주도하는 지구화를 끝장냈다. 그 전쟁은 어마어마한 수의 사망자를 냈고 20세기가 끝나도록 여러 가지 결정적인 사건을 몰고 왔다. 러시아에서는 차르 체제가 불안정해졌으며, 여파로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다. 인적ㆍ재정적 부담으로 인한 혼란은 레닌이 대중의 지지가 미약한 가운데서도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잔혹행위와 경제적 낭비라는 70년간의 긴 우회로를 걸어야 했다.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세계 경제 시스템의 재건을 위해 많은 일이 이루어졌다. 즉 각국의 경제적 생산과 국제무역의 바탕이 되는 도로ㆍ교량ㆍ발전소, 그리고 통화체제, 국제무역 규칙 등이 제1세계ㆍ제2세계ㆍ제3세계에서 각각 진행되었다. 제1세계, 즉 1945년 당시에 이미 공업화되어 있던 나라들 -유럽ㆍ미국ㆍ일본- 은 미국의 정치적 지도 아래서 새로운 국제무역 시스템을 재건했다. 제2세계는 사회주의 세계로서,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 속에서 레닌과 스탈린이 최초로 만들어낸 세계였다. 이 세계는 절정기에 약 30개 나라와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을 포함했는데,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1991년 소련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제1세계와 경제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제3세계는 그 수가 급증한 탈식민지 나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제3세계라는 용어를 단순히 가난한 나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일찍이 제3세계는 자본주의적 제1세계는 물론, 사회주의적 제2세계에도 가담하길 거부하는, 신생독립국 집단을 가리키는 명확한 속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제2세계는 물론 제3세계 역시 모두 자신들의 경제에 빗장을 지름으로써 양자 모두 막대한 부채 아래서 붕괴했다는 점이다. 국내 사업체들을 경쟁에서 보호하는 이 사회들의 폐쇄성은 거대한 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이 나라들이 어렵게 얻은 주권을 지키려 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는 기회도 상실했다.
왜 일부 나라는 번영에 실패하는가최빈국들의 핵심적 문제는 빈곤 그 자체가 함정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가난한 농촌 마을에는 트럭·포장도로ㆍ발전소ㆍ관개용 운하가 없다. 이들에게는 인적 자본도 아주 낮으며, 자연자본도 고갈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저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은 모든 소득 이상을 단지 생존하는 데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저축도 할 수가 없다. 이것은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나무를 베어내고, 광물자원 에너지와 금속퇴적물을 마구 캐내고 어류자원을 남획함으로써 자연 자본을 고갈시킨다. 또한 나무를 베어낸 벌목자의 수입이 공식 국민계정에는 소득으로 계산된다. 주목할 점은 똑같이 빈곤에 처한 나라들 사이에서도 일부의 빈국은 함정에 빠져 있고,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부문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자연지리 - 미국은 자연자원이 풍부한 방대한 대륙을 물려받았다. 반면, 세계의 많은 빈국들은 바다와 접해 있지 않고, 높은 산맥들로 둘러싸여 있다. 볼리비아ㆍ에티오피아ㆍ키르키즈스탄 또는 티벳에 빈곤이 끈질기게 존재하는 것을 문화로는 설명할 수 없다. 즉, 문화가 아니라 막대한 수송비용과 경제적 고립에 직면한 내륙지역의 산악형 지리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종류의 지리적 어려움도 작용한다. 건조기후나 장기적 가뭄으로 인한 대부분의 열대지역은 말라리아, 뎅기열 같은 치명적 질병에 취약하다. 특히 사하라이남 아프리카는 경제발전을 지체시킨 최대 요인인 말라리아의 진원지에 딱 알맞은 강수량과 온도, 모기 등을 지니고 있다.
재정적 함정 - 빈국의 정부는 경제 성장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에 지출할 재원이 없다. 국민이 빈곤하여 과세를 실행하지 못하거나, 정부가 무능력하고 부패하여 세수를 거두어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정부가 무거운 채무를 지고 있어, 세수를 거두어들이더라도 투자를 위한 재원이 아니라 채무이행에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한 나라가 경제발전의 길로 새로 출발할 수 있도록 돕는 유일한 방법은 부채탕감이다.
통치구조의 실패 -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발전 지향적인 정부가 필요하다. 정부는 민간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전 국민이 쓸 수 있는 필수 인프라와 사회적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민간투자를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는 뇌물이나 부수적 보상의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 또한 개인의 재산이 위협받지 않도록 사법제도를 유지해야 하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국가 영토를 지켜내야 한다. 정부가 이런 과제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실패할 경우 경제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
문화적 장벽 - 여성에게 경제적 또는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 심지어 교육도 받지 못하게 한다면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권리와 교육을 부정하는 것은 낮은 출산율로의 인구학적 이행이 지연 또는 봉쇄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가계는 여전히 예닐곱 명의 아이를 계속해서 낳을 것이 틀림없다. 심지어 배우자와 사별할 경우에는 개선의 전망조차 갖지 못한 채 날이 갈수록 완전히 빈곤해진다.
혁신의 결여 - 빈국의 발명가는 현지의 경제적 필요를 충족시킬 과학적 발명을 했다 할지라도, 이를 현지 시장에서 판매하여 연구개발에 투자한 비용을 회수할 수 없다. 현지 구매력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문제는 발명에 대한 재산권이 아니라 시장의 크기다. 부국에서는 혁신이 시장의 크기를 키우고, 커진 시장은 다시 혁신을 위한 요인을 증대시킨다. 더욱이 이런 투자는 단순히 시장에 맡겨지지 않는다. 특히 R과 D의 초기 단계에 정부가 대규모로 투자한다(정부의 재원이 두 단계 모두 투여되지만, 개발을 뜻하는 D보다는 연구를 뜻하는 R에 더 많이 들어간다).
빈국들이 일단 발전의 사다리에 발을 올려놓으면 올라가는 각 단계의 계단에서는 자본축적, 전문화, 선진적인 기술, 더 낮은 출산율 등 긍정적인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최빈국들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이 나라들이 사다리에 발을 올려놓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부국들이 최빈국들을 부유하게 만들 정도의 투자까지 할 필요는 없다. 단지 빈국들이 사다리에 발을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투자만 하면 된다. 또한 정책 결정자와 분석가들은 각각 역할을 담당하는 지리적ㆍ정치적ㆍ문화적 조건들에 더욱 민감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이후에는 자기 동력에 의한 경제성장의 거대한 메커니즘이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볼리비아의 초 인플레이션1983년 5월, 볼리비아 정부로부터 경제자문 요청을 받았을 때, 볼리비아 정부는 거대한 예산 적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