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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생존의 속도

최용식 지음 | 리더스북
제1장 대한민국 경제, 정말 위기인가



한국 경제가 실제로 위기인지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비교, 즉 현재의 성적을 과거의 성적과 비교하거나 혹은 우리나라의 기준과 다른 나라의 기준을 비교하는 등의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사실 경제위기설이 나돌았던 때는 한결같이 경제가 진짜로 어려웠을 때가 아니라 경제가 비교적 호조를 보였을 때이거나 경기가 상승할 때였다. 정말 터무니없는 때에 경제위기설이 제기되곤 했던 것인데, 이것은 그 시점상 대단히 악의적인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다른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우리 경제는 비교적 양호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한국의 경제위기성을 대두시킨 의도가 의심스럽다.

물론 경제 위기라고 떠들었던 나름의 근거들이 있었고 아마도 그럴듯하게 들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근거들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한국의 경제현실과 잘 맞지 않거나 경제 원리에 위반되는 것들이란 점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부분적인 사실을 전체적인 것처럼 떠들고, 낙관적인 면은 외면하고 굳이 비관적인 면만을 부각시킴으로써 근거 없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잘못된 위기의식이 국민들로 하여금 꿈과 희망을 버리도록 만드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경제 위기인가, 위기 조장인가

대한민국 경제는 정말 위기인가? 정부는 "어렵기는 하지만 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대통령은 "위기 조장이 위기를 불러온다."라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하지만 언론과 야당은 "위기를 모르는 것이 위기다."라고 반격한다. 경제 상황에 대한 서로 상반된 진단을 하고 있는 것인데, 과연 어느 편의 주장이 옳을까? 물론 내 입장은 "지금은 경제 위기가 아니며 위기 조장이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라는 쪽이다. 그렇다고 현재 경기가 여전히 부진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서민들의 삶이 더 고달파졌다는 사실을 부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경제위기'라는 용어는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불어 원인을 먼저 파악해야 경제난의 진상을 정확하게 알 수 있고, 그래야 올바른 대책도 세울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경제위기'라는 용어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가, 그 이유부터 따져보자. 경제위기란 국가경제가 악순환에 빠져 파국으로 치달을 때나 쓸 수 있는 용어다. 즉 1930년대 미국의 경제대공황,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벌어졌던 초인플레이션, 1970년대 이래 계속되고 있는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경제의 파국적 상황 등에나 사용하는 것이 경제 위기라는 용어다. 만약 모든 경제난에 대해 경제 위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앞서 예로 든 것과 같은 파국적 상황에서 사용할 마땅한 '말'이 없어지고 만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무분별한 용어의 남발이 심각한 부작용을 남긴다는 사실이다. 비유하자면,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거짓으로 외쳤던 사태의 결과와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아무 때나 경제 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막상 실제로 경제 위기가 진행되고 있을 때에는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게 되고, 이에 따라 재앙을 키울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경제학자인 존 케인스는 "경기 흐름은 국민 심리의 총화"라고 말했다. 즉 국민들이 경제가 좋다고 느끼면 경기는 상승하고, 경제가 나쁘다고 느끼면 경기가 하강한다는 것이다. 또한 케인스는 "경기대책은 국민 심리를 조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 전체를 짓누르고 있는 심리적 위기감을 해소하지 못하면, 어떤 경기 대책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위기감을 해소하는 일이야말로 현재의 경제난을 풀 수 있는 첫걸음인 셈이다.



지독하게 방향이 잘못 잡힌 위기 논쟁: 현재와 같은 경제난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복잡한 이론이 필요하지 않다. 앞에서 이미 시사했듯이, 경제 위기감이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지면서 소비자는 지갑을 열지 않고,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게 된 것이 현재 경제난의 결정적인 원인이다. 이 점은 통계에 의해서도 쉽게 증명된다. 2004년 1분기의 GDI(국내총소득)는 4.6%가 증가했는데, 소비는 오히려 0.6%가 감소했다. 또한 상장기업의 순이익이 같은 해 1분기에 100%나 증가했는데, 설비투자는 오히려 0.3%가 감소했다. 이런 현상은 2004년 한 해 동안 거의 계속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유는 오로지 하나뿐이다. 바로 경제 위기가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지금과 같은 위기감을 걷어내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고용 없는 성장, 산업공동화, 경기 양극화, 빈부격차, 설비투자 부진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 국부 유출,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만 재미를 본다, 중국의 긴축 정책과 미국의 금리 인상 및 석유가 급등의 삼각파도가 우리 경제를 침몰시킬지도 모른다 등등 이런 사회적 의제들은 모두 경제학적 상식을 벗어났거나, 통계를 빙자해 거짓으로 조작된 것들이다. 위에서 열거한 문제들 중에서 대표적으로 수출과 관련된 의제 하나만 따져보자.



지금 국내 경기를 이끌어가고 있는 효자는 수출이다. 2005년 1월의 수출도 당초 우려와 달리 작년 같은 달에 비해 18.7%가 증가했다. 그런데 이처럼 3년 이상 호조를 보이고 있는 수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풍토가 최근에 조성되고 있다. "대기업만 수출이 잘된다"라거나 "주력 품목 몇 개만 잘 나간다."라거나 "세계 경제가 2004년 하반기부터 부진의 조짐이 있으므로 우리 경제는 큰 일이 났다." 하는 것들이 그 예다. 하지만 모두 의도적인 거짓말이거나 상식에서 벗어난 투정일 뿐이다.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언론이 비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시점이 매우 의심스럽다는 사실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 경제가 진짜로 어려울 때에는 잠잠하다가 경기가 빠르게 상승할 때에 앞에서 언급한 비관적인 사회적 의제들이 예외 없이 설정되곤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기가 빠르게 하강하던 1998년 상반기, 2000년 연말과 2001년 연초, 2003년 상반기 등의 시기에는 비교적 잠잠했다. 반면에 경기가 빠르게 상승하던 1998년 하반기, 2000년 중반, 2003년 하반기 등의 시기에는 우리 경제를 저주라도 하듯이 악을 써대곤 했다. 그래서 결국은 국내 경기가 추락하는 사태로 이어졌고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국민들은 왜 이런 역적질에 동조하는 것일까?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조중동의 피리소리에 춤추는 경제

단세포적 반응이 불러온 악순환 정책
: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조중동은 여전히 악의적인 보도를 줄기차게 내보냈다. 특히 국민들의 가장 예민한 관심사인 경제 분야에서는 악의적인 보도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참여정부는 바보처럼 조중동에 휘둘렸고 그 결과 커다란 피해를 불러일으켰다.



첫째, 조중동이 가계부채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등장시키자 참여정부는 가계대출을 대폭 줄였다. 그래서 소비를 위축시켰고, 경기는 냉각되기 시작했다.

둘째, 조중동이 신용불량자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등장시키자 참여정부는 신용카드 사용한도를 대폭 줄였다. 그래서 또 소비를 위축시켰고, 경기는 냉각되었으며, 실업자가 늘면서 신용불량자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셋째, 조중동이 부동산 투기를 사회적 의제로 등장시키자 참여정부는 부동산 억제 대책을 발표했다. 그래서 부동산 경기는 물론이고 건설 경기까지 죽이는 결과를 빚었다.

넷째, 수출이 감소할 것처럼 보도하자, 참여정부는 환율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국가부채를 급팽창시키고 엄청난 재정손실을 초래했다.



조중동이 이것이 문제라고 떠들 때마다 정부는 이에 단세포적으로 즉각 반응했고 결국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말았다. 내가 "악순환 정책이 아니라 선순환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라고 아무리 악을 써도 참여 정부는 이를 철저하게 외면할 뿐이다.



심리지수의 한계와 올바른 활용

경기의 진단과 예측에 있어서 소비자심리지수와 기업심리지수가 경기예측능력에 있어서 가장 뛰어나다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이제는 이런 심리지수의 중요성에 서서히 눈을 떠가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통계청이 "소비자 전망지수가 계속해서 기준선인 100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88.9에서 88.0으로 떨어졌다"고 발표하자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이다. 평가지수는 더욱 낮아서 10월에 65.1에 불과했다고 난리다. 이것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신호라고 떠드는 사람까지 나오고 있다.



소비자전망지수와 경기 흐름의 상관관계: 그러나 소비자전망지수나 평가지수가 떨어졌다고 해서 경기가 하강할 것으로 보는 것은 지극히 단세포적인 시각이다. 심리지수는 경기 흐름이 급변하거나 자주 변할 때에는 상당한 시차가 발생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경기가 상승에서 하강으로 돌아설 때, 혹은 호조에서 갑작스럽게 부진으로 돌아설 때, 또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설 때에는 심리지수들이 경기 전환에 대하여 상당한 시차를 보이곤 하기 때문에 이런 지수들은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지수들을 전체적으로 불신할 수는 없다. 경기 흐름을 읽는 데 있어서 이 지수보다 더 나은 경제지표를 아직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경기가 안정적으로 장기간 유지되거나 사회 분위기가 경기 흐름을 정확하게 반영할 때에는 이 지수가 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지표를 이용하여 경기 흐름을 읽거나 전망할 때에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은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제2장 대한민국 경제, 희망의 속도



대한민국 경제의 체질이 바뀌었다


설탕이 상비약으로 쓰이던 때가 있었다. 불과 3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는 끼니를 굶는 것이 일상적이었고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약이 귀한 시절이라서 아이들이 아프면 설탕물을 먹이곤 했다. 설탕물이 기력을 회복시키면 면역력이 되살아났고 병이 자연스럽게 낫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설탕이 온갖 만성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영양과잉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영양 상태에 따라 한때는 만병통치약으로 쓰이던 것이 독약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 체질에 따라 처방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경제는 영양실조 상태였다. 생산설비는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만성적인 투자부족에 시달렸다. 그래서 영양분만 충분히 제공하면 경제가 활발하게 움직였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정부가 지원하면 산업이 일어났고, 산업이 일어나면 경제가 발전했던 것이다. 또한 설비투자가 증가하면서 생산이 늘고 당연히 경기도 상승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경제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영양실조가 아니라 영양과잉 상태인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 설탕과 같은 처지로 바뀌었다. 정부 지원이 마냥 반길 일도 아니고, 설비투자의 증가가 무조건 좋은 일이 아닌 상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영양결핍이 아니라 영양과잉이 문제: 정부 지원이 오히려 독으로 바뀐 대표적 사례가 현재의 농업이다. WTO 출범과 함께 농산물시장이 전반적으로 개방되고, 특히 주산물인 쌀 시장까지 문을 열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자, 당시 문민 정부는 대대적으로 농어촌 지원에 나섰다. 그런데 그 결과는 처참했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면서 획기적으로 지원하여 탄생시켰던 영농조합들은 지금 거의 살아남지 못했다. 그 바람에 많은 농민들이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결과적으로 농촌은 더욱 황폐화되었다.



IMF환란도 영양과잉 상태에서 빚어진 일이다. 재정지출 과다와 설비투자 과잉이 부른 재앙이었던 것이다. 재정지출 과다는 초과수요를 일으켰고, 초과수요는 수입의 급증을 불러 국제수지적자를 눈덩이처럼 키웠으며 국제수지 적자의 급증은 외환보유고의 고갈을 불러왔다. 뿐만 아니라 재정지출 과다는 정부부문 비중을 키워 민간부문을 위축시켰고, 이것이 국제경쟁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편 설비투자 과잉은 공급과잉을 불렀고, 공급과잉은 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켰으며 이에 따라 기업의 영업수지도 급격히 약화되었다. 기업의 경영수지 약화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키웠고, 부실채권이 급증하면서 금융시스템 전체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혹독한 대가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경제전문가들은 아직도 옛날에 통용되던 처방에 매달려 있는 실정이다. 우리 경제의 장래를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제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므로 경제 정책에 있어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할 때가 되었다.



땀과 인내와 고통을 요구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 사람의 몸이 튼튼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등 힘을 만들어내는 영양분만 열심히 섭취하면 가능할까? 사람 몸이 아무리 활력을 갖췄더라도 병에 걸리면 모든 게 허사가 된다. 따라서 병에 걸리지 않을 면역력을 키우는 일도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비타민이나 필수 무기물의 섭취도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의 정책수단은 김영삼 정권의 정책수단과 마찬가지로 영양분만 섭취하는 데 그치고 있다.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국민들이 원하는 것만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체력을 키울 수 있는 신체단련, 이것을 위한 경제 정책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신체단련을 위한 운동은 땀과 인내와 고통을 요구한다. 그런데 땀과 인내와 고통을 요구하면 나라경제의 구성원인 국민과 기업은 싫어하게 마련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이 국민과 기업에게 땀과 인내와 고통을 요구하는 정책을 수립한 것을 나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오직 국민들이 기뻐하고 반길 정책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래서는 안 된다. 국민과 기업인에게 땀과 인내와 고통을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 경제가 진짜로 튼튼해질 수 있다.



마르지 않는 샘물이 경제를 살린다: 그렇다면 나라경제를 진짜로 튼튼하게 해줄 운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김대중 정권이 그 전형을 보여주었다.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을 과감하게 퇴출시켰고, 살아남은 기업들에게도 구조조정과 부채비율 축소를 요구했다. 또한 재벌 소유구조 개선을 위한 적정한 수준의 노력을 기울였다. 정부와 산하기관에는 더욱 가혹한 조치들이 취해졌고 많은 사업들이 축소되거나 민간으로 옮겨졌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타났다. 30대 재벌기업 중 16개가 해체되거나 사라질 정도로 많은 기업들이 무너졌고, 100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었다. 한마디로 말해, 김대중 정권은 인기 없는 경제 정책만 추진한 것이다. 그러니 국민들에게 김대중 정권이 어떻게 비춰졌겠는가. 당연히 실패한 정권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아픔이 있었기에 우리 경제가 말기 암환자보다 더 심각했던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나라경제가 지금은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업의 부채비율만 따지더라도 1997년 말 396%에서 2002년 말에는 135%로 축소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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