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의 기원
로저 로웬스타인 지음 | 동방미디어
새로운 기업문화의 태동1980년대 초반에 월스트리트에는 새로운 직업 - 고용된 기업 사냥꾼 혹은 기업인수 전문가 - 이 하나 등장했다. 이들은 다양한 산업에서 사냥감을 추적했고, 통상적으로 시장가격의 30퍼센트 내지 40퍼센트의 프리미엄을 지불했다. 자연스럽게 주식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런 기업인수는 경영자, 특히 CEO의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었다. CEO들은 매수합병의 덫을 피하려면 주가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인수는 뜻하지 않게 기업지배구조를 결정하는 한 수단으로 돌변했다. '주주가치'라는 새로운 용어가 업계로 퍼져나갔고, 이런 상투적 구호를 외쳐대는 CEO에게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기업인수라는 하나의 수단만으로는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없게 되자, 약탈자는 새로운 무기와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했다. 차입매수(LBO)가 그것인데, 이것은 부채를 조달해서 기업을 매수하는 방식이다. 약탈자가 인수대상 기업을 밝히지 않은 경우에도 차입매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단지 인수할 기업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만 하면 돈이 모였다. LBO가 추진력을 얻기 시작하자 기업 경영진도 절박해졌다. 주가를 끌어올려야만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어책은 약탈자의 전략을 모방해서 자금을 차입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주주가치라는 미명하에 웨스턴 유니언같은 회사들은 대규모 부채자금을 조달해서 주식을 사들이고 주가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회사를 저당 잡혀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경영자는 기업을 살린 구제자로 추앙받았고, 매수자의 인센티브도 아주 컸다. 물론 기업매수를 통해 기업의 효율성이 증대되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LBO 거래는 곧 앞뒤를 가리지 않고 무모해졌으며, 차입규모도 대폭 늘었다. 그럼에도 LBO는 미국주식회사에 적합한 특효약 혹은 만병통치약이라는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매수자가 프리미엄을 지급하고 주식을 산다는 것은 매수 기업이 본질적으로 효율적임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하버드의 마이클 젠슨 교수는 LBO를 통해 매수기업의 효율성이 크게 증대한다고 주장했다.
젠슨 및 다른 사람들의 LBO 찬사 속에서 약탈자는 암묵적으로 1세기 전의 산업자본가, 즉 카네기나 모건 등의 인물로 재현되었다. 기업인수 전문가들은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들로서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고, 나태한 기업관료 제도를 뿌리 뽑고 미국의 기업가정신을 회복시킨다고 옹호되었다.
하지만 1990년의 경기침체는 약탈자의 야망을 꺽어버렸다. 다수의 매수기업이 파산신청을 했다. 하나의 LBO가 실패하면,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고 혁신적인 기술이 사장되는 등 사회는 더욱 곤궁해졌다. 하지만 약탈자들은 그냥 다음 거래로 넘어가면 그만이다. LBO 추진자들은 아무 것도 잃을 게 없었으므로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 그들이 가진 것은 무임승차권이었다. 운이 좋아 성공하면 크게 벌었고, 실패하면 다시 시도했다. 이러한 논리는 스톡옵션을 가진 기업경영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LBO 열풍이 정점에 이르면서 스톡옵션 부여가 증가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990년경에는 LBO가 보편적인 해결방안이 아님이 분명해졌으므로 다시 기업경영자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들로 하여금 소유경영자처럼 행동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들을 소유주로 만드는 것이 해답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배구조에 관한 새로운 모델, 새로운 특효약, 새로운 기업문화가 탄생했는데, 그것은 스톡옵션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호황의 시작과 변화하는 기업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젠슨과 공동저자 케빈 머피는 자신들의 저술을 통해 급여방식을 개선하여 CEO에게 동기를 부여하고자 했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지급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지급하느냐 였다. CEO로 하여금 관료처럼 행동하지 않게 하려면, 이들이 회사주식을 상당량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다수의 CEO는 부자가 아니었으므로, 스톡옵션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젠슨은 CEO에게 최대 45퍼센트의 지분을 갖게 하고, 가능하면 그 정도의 주식을 소유하게 하라. 그러면 CEO로 하여금 관료의 경직된 모습이 아니라 워렌 버핏과 같은 경영귀재의 재능을 발휘케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젠슨은 '기본교훈'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버핏을 주주 지향적 경영자로 만든 것은 그의 주식소유 비율도 아니고 타고난 합리성도 아니다. 핵심 요인은 바로 '버핏은 자기 돈으로 주식을 샀다'는 것이다. 젠슨은, CEO가 주가를 부추겨 스톡옵션의 가치를 증식하기 위해 정보공시를 조작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우려하지 않았다.
하여튼 미국은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급여를 통해 뛰어난 성과를 올리도록 자극했고, '성과급'은 주주가치의 증대에 수반되는 보편적인 제도가 되었다. 루거스너가 IBM 회생의 임무를 지고 5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았을 때, 누구도 배 아파하지 않았고 투덜거리며 불평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갈채를 보냈다. 미국인들은 거스너와 같은 훌륭한 경영자의 모습을 보며 힘을 얻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반투자자 대열에 합류했다. 미국은 불황과 걸프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면서 경제도 좋아지고 기업 이익도 치솟았다.
이러한 낙관주의적 사고가 널리 퍼진 것은 시장에 대한 국민들의 새로운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워싱턴도 비슷한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사회의 부'는 주식이 투자자에게 얼마나 매력적인지가 아니라 기업이 판매하는 제품과 그에 의한 수익에서 창출된다. 정치인들도 이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주주의 주식을 일정 부분 은퇴자들에게 배분한다면, 일부는 부유해지고 다른 일부는 가난해지게 된다. 하지만 사회 전체의 부는 늘 일정하다.
CEO의 주가에 대한 관심은 한 가지 개혁조치에 의해 더욱 고조되었다. 1994년 증권거래위원회는, 기업이 위임장 권유 신고서를 제출할 때 연간 주가실적 도표를 첨부하도록 요구했다. 그것도 CEO의 급여를 공개하는 페이지에 붙이게 했는데, 이 도표는 주주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되겠지만, CEO에게 주는 메시지는 비장했다. CEO의 급여를 주가라는 한 가지 척도에 명확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연계시킨 것이다. CEO의 주가 초점은 한 가지 수치, 분기별 주당순이익에 모아졌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분기별 수치는 실제로 경영성과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업전략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수개월이 아니라 수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은 아주 소심해졌다. 복수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월가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신규 주권을 발행하여 독립기업인양 꾸몄다. 하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하나의 기업이다. '사라 리'의 자산공동화 결정은 시장의 선호를 따른 것이었다. 코카콜라 회사가 보틀링공장을 분리한 것이나 엔론과 같은 가스회사가 유사한 조치를 취했던 것도 이러한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게임의 규칙은 이익을 증가시키되,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익을 내지 않고 분기별로 이익실적이 점차적으로 올라가도록 조정하는 것이었다. 투자자들이 이러한 기업에 대해 높은 주가로 보답했으므로, CEO는 그러한 솜씨를 발휘하도록 요구받았다. 당연히 기업에서는 재무부문의 역할이 격상되었다. 은행은 점차 트레이더로 변했고, 일반 기업은 은행으로 변해갔다. 왜냐하면, 제조업자나 마케터 그리고 첨단기술 기업들도 일단의 재무전문가와 트레이더를 고용했기 때문이다. 재무부문의 역할이 격상함에 따라 최고재무책임자의 위상 또한 상승했다.
스톡옵션 광풍1990년대에는 탐욕을 미덕으로 여겼다. 증시 전문가들은 신과 같은 존재로 숭앙받았다. 스톡옵션이 기업지배구조를 결정하는 수단, 즉 기업이익을 증진시키는 도구로 인정받게 된 것도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적절하게 활용되었더라면, 스톡옵션은 당초의 기대를 충족했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스톡옵션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어 왔는지 보다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넬슨 펠츠의 사례부터 짚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펠츠는 트라이아크의 CEO로 취임하는 즉시 6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스톡옵션은 아주 간단하다. 당시 트라이아크의 주식은 18달러에 거래되었고, 펠츠는 향후 10년 동안 이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경영자에게 제공되는 스톡옵션을 대체로 이런 방식을 취했는데, 펠츠가 받은 스톡옵션의 규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펠츠가 집권한 첫 해에 트라이아크는 개선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주가도 지지부진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펠츠는 1994년 3월과 4월에 약 220만 주의 대규모 스톡옵션을 챙겼다. 트라이아크의 사업은 계속 악화되어, 주가는 반토막이 났고, 펠츠의 옵션도 수면 아래로 침잠했다. 그해 말 펠츠는 24만 주를, 1995년에도 15만 주를 추가로 획득했다. 예전보다 낮은 가격을 적용했음은 물론이다.
SBC 커뮤니케이션즈의 회장 겸 CEO인 에드워드 E. 휘태커 2세도 거의 매년 많은 스톡옵션을 받았다. 게다가 급여 및 상여금으로 매년 수백만 달러를 받았다. 또 장기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돈도 받았다. 휘태커는 몇 차례의 기업합병을 통해 지역 벨전화회사를 전국적인 통신회사로 키웠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난 후에도 성장전략은 이익을 창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사회는 온갖 구실을 찾아가며 그의 급여를 계속 올렸다. 이사들이 그러한 악습을 쫓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은 미국 이사회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휘태커는 회장 겸 CEO였다. 이사회는 코치와 마찬가지로 현장 경영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대체로 이사회 회장과 CEO를 별도로 둔다. 사실 미국에서 두 가지 임무를 통합한 것은 명백한 제도적 오류이다.
실제로 경영자들이 스톡옵션을 행사하면, 기업은 그에 상당하는 주식을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사들였다.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는 이러한 주식 재매입비용으로 수십억 달러를 썼다. 하지만 이런 비용은 손익계산서에 반영되지 않으므로 월스트리트가 주목하는 숫자에는 어떠한 영양도 미치지 않았다. 재무회계기준위원회(FASB)는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했다. 1933년 이 위원회는 몇 차례의 토론을 거쳐 스톡옵션 비용을 이익에서 공제하도록 하는 규칙을 권고했다. 그러자 미국의 주식회사들이 온통 들고 일어나서 이 규칙을 폐기하기 위해 로비하기 시작했다. 결국 규칙개정은 보류되었다. 회계처리상의 걸림돌이 사라지자 이사회는 자유롭게 스톡옵션을 제공했다.
주가가 등락을 거듭하는 회사의 CEO는 스톡옵션을 받아 단기간에 처분함으로써 큰 부를 축적했다. 행사기간 10년의 스톡옵션도 점차적으로 1년후에 처분해서 이익을 취하도록 허용했다. 이러한 조치는 성과와 스톡옵션과의 연결고리를 끊었다. 왜냐하면,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사업실적과 완전히 괴리되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숫자게임GE의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했던 비결은 이익의 성장이 아니라, 성장의 일관성이었다. GE가 사용했던 방법 가운데 하나는, GE캐피털이 불량대출에 대해 설정한 충당금(reserve)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실적이 좋은 분기에는 충당금을 적립해서 비오는 날에 대비하고, 실적이 나빠서 '수익이 필요한' 분기에는 충당금을 감소시켰다. 그리고 웰치는 GE가 특정 사업부문에서 큰 손실을 겪을 때마다 다른 부문에서 특별이익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조작은 불법도 아니었고,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를 가진 듯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작 행위를 통해, 본질적으로 등락을 거듭하기 마련인 사업을 순탄하게 성장하는 것처럼 표시했다. 더욱이 웰치도, 다른 CEO와 마찬가지로, 퇴직연금을 활용해서 결산이익을 크게 부풀렸다. 법 규정상 연금에 납입된 돈은 절대로 주주이익을 위해 활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퇴직연금을 통해 주식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는 있다.
1998년에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레빗은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에서 기업의 이익보고가 '숫자게임'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경고했다. 레빗은 합의된 이익 목표치를 충족시키고, 부드럽게 상승하는 이익곡선을 만들어내려는 경영자들의 집착을 비난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GE의 이익 관리를 경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웰치의 그런 능력을 숭배했다. 그러다보니 레빗이 염려했던 대로, 회계장부의 숫자조작은 산업계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퍼져갔다.
루슨트는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대기업의 하나로 간주되는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익 부풀리기 기법'을 동원했다. 루슨트는 여러 분기에 걸쳐 지불능력이 거의 없는 제3세계 고객에게서 상당량의 매출을 올렸고, 매출채권이 급증할 때에도 불량채권에 대한 대손상각충당금을 설정하지 않아 이익을 크게 부풀렸다. 기업이 윌스트리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 함에 따라 정보공개는 점점 투명성을 잃어갔다. 특히 파생금융상품 거래가 유행하면서 기업의 재무자료는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파생금융상품의 활용과 더불어 1990년대 후반 무렵, 대부분의 공개회사는 소위 자산유동화 회사(SPV)를 활용해서, 자산 및 채무를 공공연히 은닉했다. 예를 들면, K마트와 같은 소매업자는 신용카드매출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런 대출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K마트는 매출채권을 별도 법인인 SPV(자산유동화 목적을 위해 설립된 조합)에게 매각한다. 거래가 끝나면, K마트는 현금을 수중에 넣지만, 대차대조표상에 신용카드 매출채권이라는 자산을 가지지는 않는다. 일부 기업은 대차대조표상에서 일부 자산 항목을 제거하여 주가를 부양할 목적으로 SPV를 설립하기도 했다.
한편 1994년 시티코프는 부외거래 활동의 조사에 착수했는데, 부외거래 총액이 450억 달러에 달하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외금융 부문에서 가장 뛰어난 실무자는 37살의 엔론 CFO 앤드류 패스토우였다. 패스토우는 엔론의 대차대조표에서 부채를 줄여 신용평가 등급을 올렸고, 동시에 총자산 규모를 두 배로 증가시켰다. 쉽게 말하면, 엔론은 실질적으로 위험은 증대되었지만, 겉보기에는 보다 안정적인 회사로 포장되었다. 1999년 패스토우는 CFO 매거진의 우수상을 수상했다. 전년도에는 월드컴의 스캇 설리번이 그 상을 받았고, 2000년에는 타이코 인터내셔널의 마크 슈와츠가 수상했다. 세 사람 모두 기소되어, 윌스트리트가 영리한 재무전문가들에게 어떻게 농락당했는지 증언해야 했다.GE의 일관된 이익증가 패턴을 신중하게 모방해서 이익숫자를 멋지게 끌어올린 기업이 하나 있다. 타이코 인터내셔널의 CEO인 데니스 코즐로스키는 자신의 우상인 GE의 웰치보다 더욱 심하게 숫자를 다루기 시작했다. 1999년 5월 타이코는 레이켐이라는 전자제품 제조업체를 29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합의가 이루어지자마자 타이코는 레이켐에게 서둘러 부채 지급과 충당금의 설정, 그리고 기타 유사한 회계처리를 하도록 지시해서, 곧 자회사로 편입될 기업의 현금흐름과 수익성을 낮췄다. 다음해에 인위적으로 낮아진 수익성이 회복되면, 세상 사람들은 타이코가 또 다른 사업체를 마술처럼 회생시켰다고 감탄했다. 이러한 수법을 '스프링 로딩(spring loading)'이라 한다.
스프링 로딩은, 다른 형태의 이익관리 기법과 마찬가지로, 잠정적인 해결책으로서 한번만 이익을 부양할 수 있다. 타이코는 다음 분기에 새로운 주사약이 필요하고, 그러면 필사적으로 다른 인수대상 기업을 찾았다. 이런 과정에서 주주들이 희생당했음은 물론이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포춘 500대 기업의 CEO들은 나름대로 숫자게임을 즐기다가 고통스런 종말을 맞았다. 그들은 변호사나 회계사에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