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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개혁, 끝나지 않았다

다마키 타다시 지음 | 현대미디어
'5% 룰'에는 성적이 낮은 사원을 방출하는 한편 상위 5%의 우수 사원에게 좋은 대우를 한다는 의미도 있다. 상위 5%의 우수사원에게는 업적평가, 목표관리제도에 기초한 분기별 보수로 파격적인 대우를 한다. 경영 실적이 좋은 기업은 연봉을 웃도는 보너스를 지급하고 그밖에도 스톡옵션(주식 매수 청구권)을 부여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또한 유럽이나 미국의 일류 대학에서 1년이나 2년 동안 유학하고 MBA(경영학석사) 코스 등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처럼 인재에게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MBA 코스, 간부양성 코스, 재무집중 코스 등 야간 대학이 성행하고 있다. 집안 사정이나 개인 사정으로 해외유학이 불가능한 경우, 즉효성이 있는 교육을 목적으로 하거나 보다 넓은 인맥을 쌓고자 할 때 '국내 유학'을 선택한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했다. 다음날 발표된 각료인사는 젊은 관료의 발탁과 영화감독 기용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세일즈맨과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부모들의 관심을 끈 것은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네트워크 사업 부문 사장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기용된 진대제 씨(51세)에 대한 인사였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세계 1위가 된 것을 계기로 40대에 사장으로 취임했으며, 삼성전자 사내 등기이사 7명 가운데 1명이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30대에 삼성에 스카우트되었다.' 이것만으로 성공담이 되기에 충분한데 장관 취임 후에 삼성전자가 2002년에 지불한 연간 보수가 50억 원이나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시가 100억 원 상당의 스톡옵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으며(후에 자발적으로 권리를 포기) 자택은 서울 한강에 있는 시가가 10억 원 이상을 호가하는 최고급 아파트 '타워 팰리스'이다. 진 씨는 '5% 룰'의 승자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5% 룰'을 도입한 기업은 성적이 부진한 사원을 방출하는 한편, 우수한 인재를 확보에 열성적이다. 삼성은 우수 인재 확보를 경영상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내세웠다. 2002년에는 '우수 인재 확보'를 주제로 이건희 회장이 참석한 그룹 사장단 회의가 개최되었다. "세계에서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여 채용하라." 삼성은 모든 간부들에게 "사업뿐만 아니라, 인재를 얼마큼 발굴하고 교육시키는 지도 업적목표관리의 주요한 항목이 된다."고 통보하고 일본이나 미국을 포함한 해외 전문가 채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 유력 신문사의 경우, 1개월 동안 많게는 10명 이상의 경력기자를 채용한다. 모두 다른 신문사의 기자 출신이다. 한국의 신문기사에는 대개 기자의 이름과 함께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다. 신문사 간부는 다른 신문사의 기사를 읽고 우수한 기자가 눈에 띄면, 메일을 보낸 접촉하고 스카우트 제의를 한다. 이 신문사의 간부는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신선한 두뇌를 얼마나 많이 모으는가에 있다. 일반 기업이나 신문사도 마찬가지다. IMF위기 이후, 우리 회사에서도 평생직장은 없어졌다."며 잘라 말했다. 이 신문사는 5년 전만 해도 내부 출신이 아니면 출세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스카우트를 적극화한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스카우트로 입사한 이들이 간부의 상당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애써 인재를 스카우트했는데 순혈주의가 남아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강제적으로라도 스카우트한 사람의 비율만큼 그들을 간부로 승진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다른 사람을 스카우트할 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라고 신문사 간부는 말했다.



가장 인기 있는 제도는 단연 해외 기업 장기파견근무다. 삼성그룹 회장 후계자로 주목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2002년에 GE의 사내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러한 제휴처 기업 파견은 희망자가 많다. 대기업 인사부는 해외기업 사내연수 진행 방법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최근 관심의 표적은 소니와 히다치제작소 등의 사내간부 양성 연수다. 특히, 일부 일본계 기업이 추진 중인 '젊은 엘리트 발탁 연수'에 대한 정보수집에 힘을 쏟고 있는 점은 한국 기업다운 면모라고 생각한다. 회사원이 돼서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점은 힘들지만 일본의 연회부장에 해당하는 '술 상무'라는 단어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2002년 10월, 이틀 연속 일본인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 대학 명예교수와 다나카 고이치 씨의 수상을 놓고 한국에서는 '일본은 아직 건재하다'고 높이 평가하며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한국의 산업계에서는 박사 학위가 없고 학회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다나카 씨의 수상에 큰 관심을 보였다. '무조건 박사를 ○○명을 채용하라'며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현대자동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은 경제위기를 계기로 대규모 합리화, 인원감축을 추진하는 한편, 지식 경영을 부르짖으며 석사, 박사 쟁탈전을 연출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박사 편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공부를 잘 한다고 해서 회사 업무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박사가 늘어난 반면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낮아졌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삼성전자는 박사 학위가 있는 2∼30대의 젊은 연구원들이 퇴사하여 벤처기업을 창업한 예가 속출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인재육성의 방법을 잘 고려해야 한다'고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재전략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그룹의 한 경영자는 '경제위기 이후 합리화로 업적은 좋아졌지만 잃은 것도 많다. 젊은 기술자들이 삼성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점에 대한 반성'이라고 설명했다.DRAM으로 세계를 압도하다휴대전화 '이건희 폰'의 대히트'IMF위기'가 개혁의 기회선택과 집중의 전략2002년은 세계 IT업계가 판매 부진으로 고전을 면치 못한 해였다. 그럼에도 이처럼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된 IT기업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삼성의 실적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세계 주요 IT기업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삼성전자의 순이익을 달러로 환산하면 대략 54억 달러이다. 삼성전자가 실적을 발표하기 바로 전날에는 세계 최대 반도체 메이커인 미국의 인텔이 2002년 결산 내용을 발표했다. 세계 IT기업을 대표하는 고수익 기업으로 일컫는 인텔의 순이익은 31억 달러로 삼성의 실적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일본경제신문이 세계 주요 하이테크 기업의 2002년 결산(순이익)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실적은 수위인 마이크로소프트의 78억 달러에 이은 2위를 기록했다. 특히 삼성의 주요 4개 사업 부문은 모두 흑자를 기록했으며 영업이익은 7조 2,500억 원이었다.필자는 2001년 9월, 한국에 부임할 당시부터 한국이 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보급 원인은 여러 가지였지만, 가장 큰 특징은 연소자부터 폭발적으로 보급된 점이다. 숙제를 인터넷에서 찾아, 인터넷으로 회답하도록 지도했다. 이 때문에 학생이 있는 집에서는 모두 PC를 설치했고, 이것이 전체적인 보급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보급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 차례차례 IT를 이용한 새로운 서비스가 펼쳐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예를 들면, 서울 지하철은 2002년 6월부터 차량 내부의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지하철 내에서 TV방송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각 차량마다 15인치 액정 TV 8대를 설치하여 뉴스나 스포츠 방송을 방영한다. 지하철 TV방송의 컨텐츠는 MBC 방송국이나 경제 전문채널에서 제공받아 화상을 디지털 처리하여 무선으로 지하철 차량에 보낸다. 각 가정에서 수신하는 방송보다 몇 분 정도의 시간차는 있지만, 대중 교통시설을 상대로는 세계 최초라고 한다. 아직은 투자액이 계속 늘어나게 하고, 광고수입 등 수익모델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데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지만, 열차 내 TV라고 하는 새로운 매체의 장래성에 대해서는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 휴대전화에 신용카드 기능을 접목시킨 서비스도 시작했다. 예를 들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휴대전화를 자동 개찰기에 갖다 대기만 하면 결제가 이뤄진다. 전자투표도 실용 단계에 접어들었다. 2002년 봄,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전국 규모의 당내 선거를 실시했는데, 모두 12만 명이 컴퓨터 화면에 나온 후보자의 사진에 손을 갖다 대는 것으로 투표를 마쳤다. 개표에 걸린 시간은 몇 분에 불과했다. 미국과 유럽의 통신회사들이 경영악화로 서비스 개시를 늦추고 있는 '3세대 이동통신'도 SK텔레콤과 KTF가 2002년 초에 NTT토코모의 'FOMA'에 비해 6배나 빠른 전송속도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앞에 열거했듯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IT관련 실용 서비스'의 예는 한국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아이디어나 기술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해 보느냐 마느냐'이다. 신재욱 KTF상무는 "한국에서는 본사와 SK텔레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어서 새로운 서비스에 도전하지 않으면 경쟁에 승리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한국에는 온라인 게임 프로선수가 100명 이상 있다. 월드컵경기 때, 그토록 열광적인 응원을 펼쳤던 '붉은 악마' 역시 인터넷을 통해서 탄생했다. IT를 즐겁게 사용하는 것도 일상화된 일이다. 한국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현재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IMF에 유동성조정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 기업, 금융기관, 노동자 등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하면, 조기에 정상궤도로 복귀할 것을 확신하고 있다." 1997년 11월 21일 밤, 서울 교외의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긴급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임창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00여 명의 기자, 카메라맨, 관계자들 앞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김대중 대통령 당선교육열로 삐걱거리는 사회개혁은 끝나지 않았다한국 기업의 고민개혁은 끝나지 않았다한국경제가 사실상 파탄상태에 이르러 'IMF 개혁'이라고 불리는 공전의 정상화 작업을 착수하는 순간이었다. 21세기를 향해서 새 지도자를 뽑는 바로 그 시기에 한국은 '6 25 사변이래 최대 위기'에 빠졌다. 한국을 위기에 빠트린 직접적인 원인은 동남아시아를 휩쓴 통화위기였다. 12월 3일, 급거 서울을 당일치기로 방문한 IMF의 캉드쉬 총재는 임 부총리와 회동한 후, 200억 달러 규모의 긴급대출에 합의했다. IMF 외에도 세계은행과 일본이 100억 달러, 미국 50억 달러, 아시아개발은행 40억 달러 등 총 550억 달러의 긴급대출도 결정되었다. 이 합의는 'IMF개혁'이라고 불리는 고통을 동반하는 구조개혁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시 재정경제부의 담당자는 'IMF가 모든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해서 국가 도산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통감했다며 그 때 일을 회상했다. 모든 사항의 합의는 겨우 캉드쉬 총재가 방한하기로 한 전날 밤에 이루어졌다. '이제 겨우 마쳤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국 담당자에게 IMF대표가 "한 장 더, 이면계약 조항을 답시다."라며 영문으로 된 문서를 내밀었다. '금융개혁 법안을 연내에 처리하고 금융기관의 구조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금융기관의 폐쇄, 합병, 매각 등에 관한 제도를 정비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전조정작업 없이 금융개혁을 단행하라는 내용이었다. 재정경제부 담당자는 깜짝 놀랐지만,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었다. 캉드쉬 총재는 부총리와 공식 계약에 임했다. 이렇게 해서 'IMF체제'가 시작되었지만 그 원인은 단순히 기관투자가들의 매도공세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관투자가의 원화매도는 마지막 일격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경제는 1997년 초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확대지상주의에 의존했던 경제는 어느 새,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파열 직전에 이르렀다.3월 19일, 한보에 이어 자산규모 26위인 삼미그룹의 주력 2개 회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여 도산했다. 다음 달에는 소주회사로 일본에서도 잘 알려진 진로그룹이 도산했다. 1954년에 소주회사로 설립된 진로는 재벌 순위 19위였다. 더욱이 재벌 순위 12위인 한라와 34위인 대농 그리고 쌍방울, 쌍용 같은 재벌들의 경영악화가 계속 표면화되었고,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재벌기업들의 '연쇄 도산'이 시작됐다. 7월 말에는 한국 제2의 자동차 메이커이며, 재계 8위인 기아자동차의 경영위기가 표면화되었다. 기아자동차의 경영위기는 한국경제 전체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금융기관에 큰 타격을 받았다. 금융기관은 연초부터 계속되는 재벌들의 도산 때문에 거액의 부실 채권 처리 부담을 안게 되었다. 이미 금융기관은 기업들의 도산에 대비해서 적극적으로 채권을 회수했는데, 이것이 재벌의 경영을 압박하는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기아자동차 문제가 금융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는 8월에 들어서 긴급경제대책을 계속 내놓았다고 하지만 8월 25일, 정부가 제일은행에 대한 특별대출을 발표해 금융시스템 안정화를 도모하려는 바로 그날, 또 다시 대농 그룹이 도산해 뒷북을 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기아자동차문제'는 1997년 여름, 한국 경제 운영에서 가장 큰 과제였다. 기아자동차가 도산할 경우, 금융시스템에 미칠 타격은 엄청났다. 게다가 자동차회사가 도산할 경우, 고용에 대한 파급효과도 커서 기아자동차의 정상화는 한국경제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절대조건이었다.한국의 대기업의 대부분은 오너 경영의 재벌계 기업이거나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 현재는 완전민영화)과 같은 국영기업이었다. 이와 달리 기아자동차는 순수 민간기업으로 한국 내에서는 '국민기업'이란 인식이 강했다. 이런 국민의식을 보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를 내세운 한나라당과 국민회의 모두 '기아자동차 구제'를 강력히 주장하기 시작했다. 9월 22일, 기아자동차를 포함한 기아그룹의 4개 회사는 법원에 화의신청을 했다. 정부로서는 기아의 '화의신청'이 뜻밖의 상황이었다. '투명성 있는 재건'을 목표로 하고 있던 한국 정부로서는 갑작스런 화의신청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10월 23일,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기아자동차 주식을 산업은행이 취득하여 일단 공기업으로 만들어 기업을 정상화시킨 후, 민간기업에 매각하는 2단계의 정상화 계획을 발표했다. 다음 날인 24일에 기아자동차는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20일에는 김선홍 회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11월 5일에는 노동부장관이었던 진념 씨가 회장에 취임하여 경영진의 책임문제는 일단락 되었다. 하지만 원래 민간기업을 국영기업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었고, 정상화한 후의 매각은 차기 정권에 맡기기로 해서 당초의 '투명성 있는 처리'와 거리가 먼 결과였다. 결국, 난항 끝에 현대자동차가 매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자동차산업의 재편'이란 듣기에는 그럴싸하지만 파산한 기업을 재벌이 매수하게 하는 종래의 방식을 답습하는 처리에 불과했다.한국은 IMF위기라는 통화경제위기를 계기로 대담한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1997년 말, 33개였던 은행 가운데 15개 은행, 30개 재벌 가운데 16개 재벌이 정리되는 사상 유래 없는 규모의 개혁이었다. '글로벌 스탠더드', '시장원리'를 핵심으로 경영시스템 또한 쇄신되었는데 동시에 대출관행과 인사, 고용제도도 크게 바뀌었다. 일본과 비슷한 평생직장, 연공서열 시스템은 무너지고 맹렬한 사내경쟁을 통해 인원 삭감과 경영 간부의 세대교체를 단번에 추진했다."우리 회사에서도 '5% 룰'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한 대기업 사장과 대화를 나눴을 때의 일이다. 인사제도에 대해 묻자 서류함에서 큰 파일을 꺼내 보이며 설명했다. "이 자료를 보면 사원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사장이 보여준 것은 '○○ 부서 예정 주간 보고서'라고 적힌 파일이었다. 파일을 열자 세로로 사원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고 가로에는 하루씩 구별된 표가 있었다. 또한 비고란에는 '한 주의 목표'도 있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부장, 임원을 거쳐 전 사원의 주간 보고서가 사장에게 전달된다. 주간 보고서는 단순히 사원의 일정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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