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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구하기

조나단 B. 와이트 지음 | 생각의나무
애덤 스미스 구하기

조나단 B. 와이트 지음/안진환 옮김

생각의 나무/2003년 8월/387쪽/13,000원



1부 부(Wealth)

애덤 스미스의 등장

그는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초저녁에 나를 찾아왔다. 나는 창문을 닫으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바로 그때 낡아빠진 차 한 대가 집 앞에 멈춰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차에서 내려서는 급하게 우리 집 현관 계단을 올라오더니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노크 소리로 인해 평온하던 내 삶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번스 박사님 맞으세요?” 그는 말을 더듬거렸다. “제가 번스입니다만….” 나는 철망으로 된 덧문을 그대로 닫아둔 채 대답했다. 그는 갈색 눈으로 나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생각보다 젊으시군요. 저는 도움이 필요해요. 오래된 경제학자를 잘 아는 누군가가…. 혹시 애덤 스미스라는 사람을 들어 본 적 있나요?”

순간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그 애덤 스미스 말입니까?” 나는 되물었다. “예, 아마 그럴 겁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철망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빗물을 털어낸 후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호기심과 조바심이 섞인 심정으로 그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인 줄리아가 소개했다는 말만 없었어도 그는 내 집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헛기침을 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3~4주 전, 한밤중에 자다가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꿈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런데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목소리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바로 잡아라’라고 말하고 있어요. 번스 박사님. 저는 트럭 정비공이에요. 허구한 날 디젤 엔진이나 만지작거리는 제가 어떻게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제 이름은 헤럴드 팀스입니다.”

“흥미롭군요.” 나는 손을 잡아 그를 일으켜 세웠다. “시중에는 팀스 씨가 앓고 있는 병을 치료해 줄 약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그런 종류의 약을 처방할 수 있는 의사가 아니랍니다.” 그러자 그는 무척 당황해 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손을 흔들어준 뒤 천천히 문을 닫았다. 하지만 찜찜한 기분에 다시 문을 열어 보았더니 그 사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는 대관절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내가 물었다. “바로 그 사람이에요. 그가 내 머릿속을 온통 지배하고 있다구요. 그는 온 세상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순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는 미친 남자를 뒤로 한 채 문을 닫고 말았다.

위험한 영적 대화

2주 후, 줄리아 브룩스와 나는 교회에서 만났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줄리아의 눈동자에 미안한 듯한 기색이 비쳤다. “그 불쌍한 사람, 이제 거의 미쳐가고 있어요. 그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 지 거의 두 달이 되어 간대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영적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예요. 그에겐 당신이 필요해요.”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당신은 해럴드에게 들리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배경 지식을 가진 사람이에요. 이 문제만 해결되면 해럴드는 다시 자기 인생을 찾을 거예요. 리치, 도와줄 거죠?”

그렇게 해서,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줄리아의 집 거실에서 나는 해럴드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요.”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자 해럴드의 입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굵고 쉰 듯한 목소리에 또렷한 영국식 발음이었다. “나는 애덤 스미스라고 하네. 내게 맡기게.” 그는 다소 위엄 있게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자유세계가 지금 극도의 위기에 처해있다는 걸세. 우리의 상거래 체계가 심각한 공격을 받고 있는데, 사람들은 마치 꿀단지 속의 개미처럼 자기 것을 챙기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아무도 중요한 문제에는 관심을 기울이질 않아. 바로 기본 원리 말일세. 기본 원리가 견고하지 않은 문명사회는 무너지고 표류할 수밖에 없다네. 나는 특히 경제학자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군.”

“말도 안 돼!” 나는 중얼거렸다. “경제학자들은 애덤 스미스를 우상처럼 여깁니다. 경제학자들은 자유시장에 불을 지폈고,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시아, 아프리카, 그 밖의 여러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 심지어 현재는 러시아에서조차 민영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는 육중한 몸을 일으키면서 말을 꺼냈다. “나는 전반적으로 자유시장 체제로 전환되고 있는 지금의 움직임에 만족하네. 그러나 내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시장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핵심 요소를 자네들이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내가 물었다. “아니, 경제학자들이 사회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는 바가 대체 뭡니까?”

그는 강조하듯이 손가락을 들어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사람들끼리의 상호작용이 사회를 구성하는 중추적인 힘이 되고, 모종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도덕적 행동의 기초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얘기야. 시장은 절대 사람들과 동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어. 사람들과 공존하며, 바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지. 시장의 힘이 비인간적이라고 해서 사람들까지 비인간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거야!”

당신, 진짜 애덤 스미스 맞습니까?

해럴드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스미스’의 굵직한 목소리를 다시 내기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려고만 안달이지. 부가 삶의 최종 목적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건 잊은 채 말이야. 부의 증대는 분명 바람직한 일이지만 좀더 중요한, 추구해야 할 다른 무언가가 있단 말일세.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뭔가가.”

“자네라면 삶의 성공을 무엇으로 측정하겠나? 성공을 어떻게 판단하나?” 그가 물었다. “행복을 얻는 것 아닐까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맞는 말이야. 그럼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스미스는 내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말을 이어나갔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바로 마음의 평화라네. 평온한 존재감! 그거야말로 행복의 근원이지.”

스미스는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대답해보게. 자네, 행복한가?”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왜 경제학에 느닷없이 철학적인 심오한 문제를 끌어들입니까?” 그는 잠시 주춤하더니 대답했다. “사람들은 생활필수품을 살 수 있는 능력, 온갖 편의와 쾌락을 누릴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빈부를 판단하지. 하지만 그건 결코 행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없어.”

나는 순간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내가 과거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그들을 현실에 적응시키는 일이었다. 경제시장과 비즈니스 세계는 냉혹하다. 아무리 거대한 기업이라도 털끝만큼의 손해를 용납하지 않으며, 세계 각국은 GDP 증가를 위해서 환경 파괴를 서슴지 않는다. 내가 아는 애덤 스미스는, 그와 같이 물질적 이익과 부를 성취하기 위한 경쟁이 존재하는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고 가르쳤던 사람이다.

“애덤 스미스가 시장 경제가 아닌 도덕성에 더 관심을 가져야된다고 말하고 있는 걸 지금 나보고 믿으란 말입니까? 당신, 진짜 애덤 스미스 맞습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이제는 줄리아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나는 학교 연구실로 돌아와서는 도서실에서 애덤 스미스가 지은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을 펼쳤다. 그런데 시대에 뒤떨어진 도덕철학 논문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저자의 살아 있는 통찰력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한 구절이 내 머릿속을 흔들기 시작했다.

행복이란 평온함 가운데 존재한다. 건강하고, 남에게 갚아야 할 빚도 없으며, 명석한 의식을 소유한 자가 지닌 행복에 그 무엇을 더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 사람에게 부의 증대란 오히려 불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오두막이 아니라 호화로운 저택에 살면 속도 편안하고 잠도 달게 잘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오히려 그와 반대인 경우가 너무도 분명하고, 빈번하게 발생한다.

개인의 이익 추구는 이기적인 게 아니다

나는 해럴드에게 다시 전화를 하여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로 하였다. 식사를 하는 내내 해럴드가 아닌 스미스는 계속하여 말을 하였다. “어느 사회에서나 좀더 많은 이익을 거둬들이기 위해서 유용한 노동력을 동원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 하지만 임금과 집세는 번영과 함께 올라가고, 수익은 가난과 함께 올라가니,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빠른 속도로 경제가 붕괴되고 있는 나라들에서 오히려 사업 수익은 최고로 올라가지.”

“뭔가 거꾸로 된 것 같은데요. 가난할수록 사업 수익이 오른다구요?” 내가 반문했다. “이유는 간단하네. 가난한 나라에서는 자유무역을 방해하는 독점과 길드가 성행하게 되니까 그런 거라구.” 스미스는 마치 국가기밀이라도 누설하는 양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도 거의 만나지 않아. 심지어 사교모임도 없고. 그런데도 그들은 대중을 기만하기 위한 음모를 용케도 꾸며내지. 담합해서 가격을 올리는 계략 말이야!”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잘 생각해 보게. 그렇게 터무니없는 독점을 통해서 얻은 수익이 빈곤 타파나 산업 부흥을 위해 쓰일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 사회계층 가운데 노동자들만큼 경기 침체에 큰 타격을 받는 계층도 없다네. 그들은 가족들 입에 간신히 풀칠할 정도밖에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살아가지. 그러나 고용주들은 어떻게든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려는 음모를 꾸민다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가난하고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절대 번영을 누리거나 행복할 수 없어.”

나는 손을 들어올려 스미스의 말을 막았다. 대부분의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경제학 원칙과 관련된 중요한 문구는 거의 다 외우고 있었다. “사업가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라고 애덤 스미스가 분명히 말했어요. 그리고 공공의 이익은 자본가들이 증진시키려고 애쓸 때보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끌릴 때 좀더 효과적으로 증진될 수 있다고 했죠.”

스미스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매우 훌륭한 인용구지. 하지만 『국부론』만을 따로 떼어내서 읽으면 안 된다네. 왜 사람들은 후속판인 『국부론』의 한 문구만을 인용하면서, 그것의 기초가 되는 사상은 완전히 무시하는 거지? 『도덕감정론』에 그 기본사상이 명확히 설명되어 있는데 말이야.” 스미스는 컵을 내려놓으며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인간 사회는 이를테면 거대하고 육중한 하나의 기계라네. 그리고 도덕은 그 기계의 바퀴가 굴러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윤활유라고 할 수 있지. ‘이기심은 훌륭한 것이다’라고 결코 할 수 없다네. 하지만 자기애(自己愛)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절제만 된다면 바람직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지.”

“그게 대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자본주의에서는 어차피 둘 다 마찬가지 아닌가요?” 내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말했다. “그렇지 않아. 오히려 반대라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안정감을 얻기 위해, 그러면서도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분별력 있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 그게 바로 자기애야. 반면 이기심이란, 자신의 욕구가 타인의 합법적인 권리와 상충될 때는 자기 본위대로, 자기 욕구에만 집착하여 행동하는 것을 말하지.”

부와 행복

해럴드와 나는 같이 여행을 하면서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스미스는 나에게 물었다. “자네도 학생들에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가르치겠지?” “그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히 무더운 여름날, 처음 마시는 얼음물 한 잔이 가장 갈증해소 효과와 만족감이 크죠. 그리고는 조금씩 만족감이 줄어들죠. 그러다가 마침내는 오히려 불쾌감을 느끼게 되지요. 그게 바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잖습니까.”

“그게 바로 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네. 우리가 오늘 얼마를 썼지?” 나는 대답해 주었다. “스포츠 바에서 20달러, 그리고 오페라 극장에서는 티켓 값이랑 주차요금, 음료수 값 등을 모두 합치면 200달러가 든 셈이죠.” 그러자 스미스는 말했다. “오페라 극장에서 든 비용이 스포츠 바에서 든 것의 열 배지? 그런데 과연 우리가 얻은 만족감 역시 열 배였나? 그렇지 않다면, 부에도 역시 효용 체감의 법칙이 존재하는 셈이지.”

스미스는 말을 이어 갔다. “부를 마다 할 사람은 없지. 하지만 분별이나 정의의 법을 깨뜨리고, 마음의 평온까지 망가뜨리는 무모한 열정을 가지고 추구할 가치가 있는 목표는 아니라는 얘기네. 부만이 유일한 목표가 되면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만 존재할 테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최대’를 소유하지 않는 한 ‘가진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구!”

“부의 증가가 인간을 커다란 만족감으로 몰아넣는 건 극히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야. 곧 거기에 적응해서 익숙해져 버리니까. 행복은 이전 수준, 이것을 나는 자연스런 수준이라고 말하고 싶네. 그러니까 지금 수준보다 한 단계 이전 수준에 의존하고, 거기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지. 하지만 부와 권세는 오히려 한 단계 다음 수준을 항상 요구하게 되지. 그래서 만족이 존재하지 않지!”

나는 스미스에게 항변했다. “어떤 절대적인 차원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의 행복을 비교할 수는 없는 겁니다. 게다가 이론보다는 실제 행동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법이죠. 가난한 이들이 부를 얻게 되면, 스포츠 바 같은 데는 가지 않고 당연히 경기장의 특별관람석 표나 오페라 입장권을 살 겁니다. 볼링은 집어치우고 골프를 치러 다니겠지요. 그러한 선택이 바로 누구나 부자들의 소유물을 지향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스미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바로 그게 내가 말하는 인간의 ‘자기기만’이라는 걸세. 부를 동경하고, 심지어 숭배하기까지 하는 그런 성향. 그런 성향이야말로 인간의 도덕성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가장 보편적인 원인이야. 세상의 모든 노동과 힘겨운 수고들은 과연 어떤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걸까? 사람들이 탐욕과 야망을 품는 이유는 뭘까? 물질적 부를 거머쥐는 데 힘을 쏟도록 만드는 건 마음의 평안도, 만족감도 아닌 바로 허영심이야. 부자가 자신의 부와 풍요를 자랑스러워하는 건 세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그게 왜 인간의 자기기만이라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러자 스미스는 대답했다. “인간 삶의 진정한 행복을 구성하는 게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관한 한 가난한 이들도 절대 열등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지. 인간 행복의 주요 부분은 바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인식이라네. 그런데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런 인식까지 증폭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지.”



2부 쇄신(Transformation)

이윤 추구

우리는 여행 목적지인 사우스다코타를 향하여 북쪽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광활한 미주리 강을 따라가다 우리는 쉴 만한 장소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침 겸 점심으로 가져온 땅콩버터 샌드위치와 당근 빵, 신선한 과일을 먹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스미스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당신을 이해하지 못한 데는 당신 책임도 있어요. 부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국부론』에서 왜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습니까? 왜 자신의 이익을 주요 지침으로 세웠죠? 현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이기심으로밖에는 해석하지 않는데 말이에요.”

스미스는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면서 말을 했다. “나는 『도덕감정론』에서 인간 행동의 동기를 설명하려고 애를 썼네. 그리고 당시에는 내가 부나 자신의 이익을 가장 내세운다고 오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현대의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내 잘못인가?” 그러더니 스미스는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내가 완전히 잊혀진다면 이익을 얻는 사람이 누굴까? 내가 사라지면 기뻐할 사람이 누굴까? 아마도 거대 기업이나 거대 정부, 거대 교회와 같이 권력이나 부를 강탈한 단체들이겠지. 가격을 조작하거나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월드켐 같은 기업일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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