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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실체

브라이언 크루버 지음 | 영진닷컴
데스 스타에 도착하다



꿈이 아니었다. 엔론(Enron)에 첫 출근하는 날, 대기실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세계 최대 회사”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일하게 될 사업부는 생긴 지 몇 년 안 된 부서였고 신용위험(Credit Risk)을 상품처럼 사고파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휴스턴에 위치한 엔론 본사는 데스 스타(Death Star)라고 불린다. 엔론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데스 스타도 점점 거대해졌다. 직원 수가 늘어나 중앙 건물만으로는 공간이 부족하자 주변 건물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기존의 건물 모양을 그대로 본떠 엔론 남쪽 건물을 짓고 있다. 엔론은 세계를 거머쥘 태세를 갖추었고 나는 이제 그 혁명에서 한몫을 담당하게 될 예정이었다. 로비를 지나면서 “세계 최대 회사”라고 적힌 현수막을 올려보았다. 실제로 엔론은 세계 최대 회사였고, 데스 스타에서 일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멋진 일이었다.

위험을 상품화한 e-비즈니스



엔론의 시초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대 휴스턴에 기반을 둔 2개의 회사가 멕시코 만을 중심으로 해안 지역에 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6년 두 회사가 합병하면서 ‘휴스턴 천연가스’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8년에 휴스턴 천연가스는 인터노스라는 천연가스 회사와 제휴했고 그 후 두 회사는 새로운 파이프라인 건설과 기업 인수를 통해 자신의 파이프라인 네트워크를 계속 확장시켰다. 결국 두 회사는 1985년에 합병하여 미국 대륙의 모든 해안과 경계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 체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새 회사의 CEO가 된 켄 레이는 현대적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해 회사 이름을 ‘엔론(Enron)’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1995년 엔론은 ‘세계적인 에너지 선도 기업’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엔론은 단순한 에너지 회사가 아니었다. 1990년대 상반기에 엔론은 수자원, 금속, 석탄, 종이, 브로드밴드 서비스, 날씨 등 상품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팔기 위해 시장을 개척했다.

이런 확장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엔론은 세계 에너지 시장을 주도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2001년 내가 입사했던 그 주에는 ‘세계 최대 회사’라는 비전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새로운 CEO가 된 제프 스킬링은 1990년대에 에너지 회사를 뛰어넘은 엔론의 비전을 제시한 장본인이다. 엔론의 2000년도 연레 보고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북미와 유럽, 그리고 일본에서 가스 및 전력 도매 시장이 앞으로 몇 년 뒤에는 6,600억 달러 규모에서 1조 7,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하리라 봅니다. 미국과 유럽의 에너 지 소매 시장은 머지않아 7,6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며, 브로드밴드 서비스 시장도 세계로 확대될 것입니다. 이 모든 점을 종합할 때 위와 같은 시장은 엔론에게 3조 9,000 억 달러의 매출을 안겨 줄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겨우 맛만 본 상태입니다.”

엔론은 월스트리트가 주목하고 투자자들이 눈독을 들이는 회사가 됐으며, 엔론의 잠재 성장력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전혀 없었다. 엔론은 재활용 신문용지에서 광고, 화물운송, 그리고 병 맥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럼 엔론은 어떻게 이처럼 규모를 키웠을까? 엔론은 고객들에게 ‘서비스’나 ‘솔루션’을 파는 방법을 택했다. 엔론의 주요 사업은 물론 가스와 전력이다. 그러나 혁신적인 아이디어 또한 엔론을 세계무대에 올려놓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가장 혁신적인 아이디어 상품이 바로 날씨 파생상품이다.

예를 들어 눈 치우는 삽을 파는 가게 주인은 11월만 되면 일기예보를 놓치지 않고 들으며 눈이 내리기를 기다린다. 눈이 내려야 삽을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업의 미래가 항상 불확실한 사업가는 언제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 엔론에 위험관리 솔루션을 요청하면, 엔론은 보험료를 받고 날씨 파생상품이라 불리는 금융상품을 판다. 그러다가 눈이 전혀 내리지 않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면 엔론은 보험료 수준에 따라 정해진 보상금액을 지불하는 것이다. 눈 치우는 삽 가게 맞은 편의 카지노 주인 또한 엔론에서 날씨 파생상품을 산다. 그러나 삽 가게 주인과는 반대로 눈이 많이 오는 겨울이 닥쳤을 때 방문객이 줄어든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엔론이 1997년 처음으로 날씨 파생상품을 거래하기 시작한 후로 날씨 파생상품은 계속해서 그 시장을 넓혀가면서 성장하고 있었다. 또한 가스 및 전력 분야에서는 안정된 시장을 바탕으로 상품 거래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를 신용 위험과 이자율 위험, 환율 위험, 강철 가격, 석탄 가격, 플라스틱, 펄프, 재활용 신문지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고 있었다.

100만 달러짜리 공장



엔론에서 일한 지 몇 주가 지난 어느 4월 아침, 건물 전체가 떠들썩했다. 그날 아침 엔론은 2001년 회계년도의 1분기 수익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자신만만한 실적 발표가 이메일을 통해 검색한 뉴스기사에 실려 있었다. 주당 순이익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 분기별 총수익 500억 달러(281% 증가), 순수익 4억 달러(20% 증가), 에너지 거래량 69조(65% 증가), 에너지 소매거래 수익 59억 달러(59% 증가), 브로드밴드 서비스 7배 증가. 이처럼 놀라운 실적을 올리고도 부족했던지 엔론은 2001년도의 수익 목표를 주당 1.75달러에서 1.80달러로 올려 잡았다.

엔론을 분석하는 비커스와 다른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은 수익 보고가 있는 시기에는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엔론은 에너지 분야를 뛰어넘어 세계 금융 산업에 뛰어든 거대한 회사이기 때문에 분석하기가 쉽지 않았다. 엔론의 경우 전화회의가 동부 표준시로 오전 10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비커스는 그날 장이 마감되기 전에 엔론 주석 사항을 발표해야 했다. 주석 사항에는 전화회의에서 다룬 주요 내용과 예상되는 엔론의 예상주가, 주식 투자등급이 포함되어 있다. 비커스의 회사는 항상 엔론을 ‘적극 매수’에 올려놓았다.

어느 날 비커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회사 때문에 죽고 싶은 심정이야.” 지친 목소리로 비커스가 말했다. “네 회사가 분기별 재무제표를 제출했는데 화장실 휴지로 쓰면 딱 맞겠더군. 여기에는 합자회사와 관계사 거래에 대한 개똥 같은 말밖에 없단 말이야.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봐.” “난 몰라. 정 답답하면 우리 회사 CEO에게 전화해서 물어 봐.”

비커스와 전화를 끊고는 나는 책상 위에 놓인 파일 안에서 2000년도 엔론 연례 보고서를 찾아보았다. 좋은 소식들 저 뒤편, 48쪽에 ‘관계사 거래’에 관한 16번 주석 사항이 있었다. 주석 사항에는 엔론과 엔론의 회계감사법인인 아더앤더슨 사가 재무와 관련해서 발표해야 하는 모든 내용이 담겨 있었다.

1999년과 2000년 엔론은 합자회사(관계사)와 거래를 시작했다. 그 합자회사의 무한 책임 사원 경영진은 엔론의 중역이다. 관계사의 유한 책임 사원은 엔론과 관련이 없다. 경영진은 관계없는 제삼자와 협상하는 경우와 비교해 관계사 거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단락에서는 거래를 요약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억 단위와 10억 단위의 거래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 단락에서도 일련의 거래를 관계사라고 지칭하고 있었다. 과연 ‘엔론의 중역이 누구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엔론의 회계감사법인인 아더앤더슨 사와 월스트리트가 해결해야 할 문제지 내 일은 아니었다.

엔론이라는 100만 달러짜리 공장은 1990년대와 새 천년에 이르기까지 풀 가동됐다. 우수한 경영대학원에서 갓 MBA를 따고 나온 인재들과 맥킨지나 아더앤더슨 사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했던 경력 사원들, 민간기업으로 눈을 돌린 군부의 천재들 등 이 모든 사람들이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엔론에 들어왔다.

그런데 2001년 6월, CEO인 스킬링과 회장 켄 레이가 전 직원들에게 두 차례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틀 연속으로 전송된 두 개의 메일은 원가절감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것과 엔론의 기울고 있는 계열사를 개편한다는 내용이었다. 엔론 주가는 8개월 전 최고 80달러를 기록한 이후 40달러 선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엔론에 걱정할 만한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해 여름에 엔론의 문제로 더 이상 신경 쓸 여가가 나에게는 없었다. 나는 결혼과 신혼여행을 앞두고 매우 분주했기 때문이다.

종말의 시작



2001년 8월, 데스 스타는 여전히 부산하게 움직이며 돌아가고 있었다. 나 혼자만 멋진 여름을 보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일주일 전 위험평가 관리부에서 일하고 있는 미들턴과 나눈 이야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미들턴은 엔론 사람들이 거래 가치를 터무니없이 부풀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가 인사고과와 보너스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엔론은 수익성이 높은 회사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수익이 증가할 리는 없다. 미들턴의 생각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면 실제 거래 가치와 손실액 때문에 엔론은 벌써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만약 그의 말대로 보너스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로 인해 어떤 손실이 발생했을까? 나는 약간의 우려와 의심스러운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프 스킬링이 사임했다. CEO는 이유 없이 사임하지 않는다. 정년이 되거나 더 좋은 회사로 가지 않는 한, 그리고 이사회에서 사임을 종용하지 않는 한 사임하지 않는다. 특히 스킬링처럼 마흔 여덟밖에 되지 않았고 CEO가 된 지 6개월밖에 안 된 사람은 사임할 이유가 없었다. 비커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왜, 왜, 뭐 때문에?” “비커스 진정해, 개인적인 이유래.” 나는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편지함에 이메일이 도착했다. 켄 레이가 전 직원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제프 스킬링의 사임이 개인적인 이유이고, 이사회에서 자신에게 이사회 의장직과 더불어 회장 및 CEO 자리를 맡아달라고 제안하여 이 제안을 수락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한시 바삐 하락한 주가를 끌어올리는 일에 주력하겠으며, 지금보다 더 실적이 우수했던 때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스킬링의 폭탄선언으로 날아올랐던 먼지가 켄 레이의 부임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주가는 35달러 선에서 안정됐고 거래량도 일반 수준으로 되돌아 왔다. 켄 레이는 투자관련 전문회사를 돌며 유세 중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진정할 수 있었다. 실제로 주가는 오르기 시작했으며, 우리는 평온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9월 어느 날 아침 나는 파생상품에 관한 상급 교육과정을 수강하고 있었다. 그때 비행기가 무역센터에 충돌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사내방송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엔론은 전혀 위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신이 없었다.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모든 일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그 주 내내 분위기가 침울했다. 9월 17일 주식 시장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다행히 엔론 주식은 25달러 정도에서 안정되었으며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레이의 모래성



3분기 전화회의는 스킬링이 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오전 9시 전화회의는 아주 낙관적인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엔론이 이번 기회에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 정보 공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널러 퍼져 있었다. 사내 뉴스에는 엔론의 수많은 수치들이 떠올라와 있었으며 결과는 모두 낙관적이었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 찬 미소를 지었고 켄 레이의 낭랑한 목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

“총 순이익은 3억 9,300만 달러로 이익이 26% 상승했다는 것은 우리의 핵심 사업인 도소매 에너지 사업과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사업 실적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켄 레이는 2001년도 3분기 실적을 2000년도 3분기 실적과 비교했고, 26%는 과히 괄목할 만한 기록적인 수치였다. 그때 돌덩이 한 무더기가 떨어졌다. “그런데 2001년도 3분기의 비반복적 손실 부분이 총 10억 1,000만 달러입니다.” 켄 레이가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회사의 핵심 에너지 사업과 잠재 수익률에 악영향을 끼쳤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손실을 회계장부에 반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순간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결국 순이익 3억 달러는 사라지고 6억 달러의 손실만 남았다.

그날 하루 종일 뉴스와 애널리스트 인터뷰가 쏟아져 나왔고 화난 비커스의 전화가 빗발쳤다. 주가는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33달러 84센트로 마감했고 거래량은 800만 주였다. 투자가와 주식중개인, 직원들, 애널리스트 등 모든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있었다. 엔론을 주시하던 사람들은 ‘기록적인 수익률’과 ‘10억 달러 손실 부담금’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소식을 듣고 갈팡질팡했다. 엔론은 투명 경영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엔론이 발표한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10월 17일, 나는 회사에 제일 먼저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니 「월스트리트 저널」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나는 「월스트리트 저널」을 집어 들었다. “엔론. 3분기 투자손실 및 자산 평가절하 발표로 세상을 놀라게 하다.”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목요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엔론은 합자회사 때문에 주주자본이 12억 달러로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주주자본 감소 소식을 왜 보도 자료에 올리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엔론 대변인 마크 팔머는 그것은 공개할 ‘자료’가 아니라 ‘단지 대차대조표’에 올릴 내용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시 신뢰성의 문제가 대두됐다. 엔론 주식의 주가는 이제 29달러로 하락했다.

나는 한 주간 엔론 주가를 기록한 차트를 꺼냈다. 엔론 주가는 월요일 35달러로 시작했다가 금요일 26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5일 만에 25% 이상 하락했다. 나는 비커스에게 전화를 했다. “그래 언제쯤 바닥을 칠 거 같아?” 나는 엔론 주가의 하한선을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비커스는 대답을 했다. “이미 며칠 전에 내가 정한 하한선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나도 모르겠어. 어찌됐든 엔론이 파산할 리는 없잖아!”

전형적인 합자회사 거래에는 특수 목적을 지닌 기관이나 조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특수 목적 조직의 핵심 역할은 엔론에게 현금을 제공하고 엔론의 부채가 대차대조표에 나타나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다. 부채가 많으면 투자자들이 떠나고 엔론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며 거래 업무에 장애가 생긴다. 따라서 특수 목적 조직은 바로 이런 일을 미연에 막아주는 것이다. 엔론이 받은 돈은 엔론의 부채가 아니라 특수 목적 조직의 부채로 기록된다. 결국 엔론은 수익만 거둔 셈이 된다.

그러나 2001년 10월, 엔론은 이런 회계 놀음의 중력에 이끌려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합자회사 문제가 없었다 해도 레이의 모래성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엔론 주가가 급격히 치솟았을 때는 이런 거래 구조를 충분히 관리할 수 있었겠지만, 주가가 반 이상 하락한 2001년에는 엔론 주식을 기반으로 유지됐던 거래가 문제를 낳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금융전략은 엔론 기업의 핵심이었고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 안에 숨겨진 블랙박스 같았다.

엔론은 이미 가슴에 칼을 맞은 상태였는데 10월 29일에는 가슴에 꽂힌 그 칼을 비틀면서 더 깊숙이 박아 넣는 사건이 터졌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엔론의 장기채권 등급을 강등한 것이다. 엔론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의 여파로 금융비용이 상승했으며 채권 소유자의 채권상환 요구가 쇄도했다. 엔론 내부에서는 사업 운영 자금 유치에 열을 올렸다. 엔론은 미친 듯이 10억에서 20억 정도의 신용대출을 모색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여전히 모든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거래 업무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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