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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복수

메그나드 데사이 지음 | 아침이슬
마르크스의 복수

메그나드 데사이 지음/김종원 옮김

아침이슬/2003년 4월/608쪽/18,500원



두 개의 혁명과 하나의 파괴

강고했던 기성 체제가 하루아침에 타도되고, 기존에 통치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주인이 되는 것은 분명 혁명이라는 말의 정의(定意)이다. 혁명은 중간 계급이 이끌었고, 항상 인민 대중에게 이롭게 전개되지는 않았다. 프랑스 대혁명과 러시아 혁명이라는 이 두 혁명의 연결 고리는 칼 마르크스이다. 20세기(1914~89년)의 허다한 이념적 대소동, 우리 사회과학의 많은 부분, 그리고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국가와 사회, 정치와 경제의 관계에 대해 다양하게 펼쳐진 우리의 견해 등등, 이 모든 것이 마르크스주의자와 그 친구들이 - 그리고 심지어 그들의 적들이 - 마르크스를 독해한 방식에 의해 규정되어 왔다. 자본주의가 의기양양하게 득세하고 전지구적으로 확장되는 가운데, 이로 인해 명예를 회복할 자는 바로 칼 마르크스이다.

1917년 10월혁명으로 착수된 사회주의 실험의 파탄은, 무신론자인 그를 기쁘게 할 것이 틀림없다. 마르크스가 경제를 시장이 지배해야 하느냐 아니면 국가가 지배해야 하느냐 하는 선택에 직면한다면, 현대의 절대자유주의자(libertarians)는 현대의 사회주의자(사회민주주의자 등등)만큼이나 충격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결국 시장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예순다섯 생애의 절반 이상을 자본주의의 동력을 연구하는 데 바쳤지만, 그 목적은 최종적으로 자본주의를 끝장내고 공산주의로 대체할 세력을 발견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사회주의를 가져다줄 정부에 의해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가 대체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기원은 14세기와 16세기 사이에서 찾을 수 있지만, 자본주의의 거대한 생산 능력이 활짝 피어난 것은 18세기였다. 마르크스는 당시(1870년대) 매우 유명한(그리고 악명 높은) 인사였다. 특히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유럽 본토의 젊은 혁명가들은 그의 이론을 하나의 이데올로기 - 마르크스주의 - 로 만들었다. 나중에 마르크스가 “내가 아는 한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다.

21세기 초두에도 계속되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은 마르크스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내리는 복수이다. 마르크스로 다시 돌아가 자본주의의 강점과 그 역동성의 비밀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또한 자본주의의 한계가 어떻게 도래할 것인지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천문학자이지 점성술사가 아니다.



마르크스 Ⅱ: 이윤

마르크스의 흥미를 자아낸 기본 문제는 자본주의를 갑자기 강력하고 역동적인 세력이 되게 만든 비밀스런 요소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자 - 스미스, 맬서스, 리카도, 제임스 밀 - 의 글을 읽었을 때, 마르크스는 그들이 해답을 얻지 못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미스는 임금과 지대와 이윤이 3대 계급 - 노동자, 지주, 자본가 - 이 벌어들이는 3대 소득 범주라고 주장했다. 임금은 노동의 생계 비용에 의해 결정되었고, 지대는 순수한 잉여였다. 그러면 이윤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마르크스는 이것을 정치경제학에서 해결되지 않은 주요한 문제로 인식했다. 고전파 경치경제학에 노동 가격 이론은 있었지만 노동 임금 이론이나 노동 이윤 이론은 없었다. 지대를 제쳐두면, 생산물의 가격은 임금과 투입된 원료의 가격, 그리고 이윤으로 구성된다. 마르크스는 한 재화의 가격은 그 재화의 가치 - 즉, 그 재화에 포함된 노동량 - 에 의해 결정된다는, 고전파 정치 경제학에서 받아들여지는 간단한 가정에서 시작했다. 그 다음 마르크스는 가격이 해당 생산물에 포함된 노동 총량과 같다면 이것은 투입된 노동, 투입된 원료, 그리고 이윤, 이 셋 각각에 포함된 노동량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추론했다.

그 다음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에서 잘 알려진 장치를 사용하여 연구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제쳤다. 모든 상품은 두 종류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사용상의 가치(사용가치)와 교환상의 가치(교환가치)가 그것이다. 가격은 화폐로 표현된 교환가치였다. 그래서 노동가치론은 교환가치의 이론이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그 근본 문제, 즉 가격, 임금, 이윤의 단일한 이론을 제공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마침내 자본주의의 비밀을 추적하여 노동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정교한 방식을 알아냈지만, 자본을 도덕적으로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 정치경제학과 노동가치론을 사용하여 그렇게 했다.

그는 노동력의 개념을 혁신하였고 노동력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의 간극을 측정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이 잉여가치를 이윤과 연결시켰다. 그것은 ‘과학적’인 착취 이론이었다. 물론 마르크스가 1876년에 『자본론』첫째 권을 발표하자 유럽 대륙의 경제학자 사이에서 대대적인 논쟁이 일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마르크스의 이윤에 관한 이론은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마르크스는 1871년 파리 코뮌을 선동했다는 (잘못된) 명성을 얻었다. 마르크스는 이윤율의 실마리를 푸는 것이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길이며, 한편 이것은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본주의가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에 기반하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 마르크스라고들 했다. 이 ‘증명’은 마르크스주의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대의가 옳음을 훨씬 더 굳게 믿게 만들었다.

『자본론』 세 권에는 자본주의의 동학을 분석하는 세 가지 흐름이 있다. 순환적 성장, 균형 성장, 이윤율 하락, 이렇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동학 문제에 대해 세 가지, 그러나 일부 모순되는 대답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성장하지만, 공황과 경기순환을 통한 모순적인 방식으로 성장한다. 이윤율은 저하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저하를 중단시키는 역의 경향들이 있다. 『자본론』은 생산양식으로서 자본주의의 작동에 대한 비판적 연구이다. 1851년 이후 생애 대부분의 기간 동안 마르크스를 사로잡은 - 1876년까지는 집중적으로, 그리고 생애 마지막 16년 간에는 간헐적으로 - 것은 그 저작이다.

『자본론』과 『정치경제학 비판』보다는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과 역사적 유물론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글들이 집필되었다. 『자본론』에 관한 저술에서조차, 지난 백 년 동안 가치-가격 문제가 자본주의의 동학 문제보다 더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운동 법칙을 발견했다고 단언했고, 이것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왔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붕괴에 대해 분석적인 논증을 제시했다는 것은 일부 대가들에게조차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인 것처럼 취급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발견한 것처럼, 『자본론』을 읽어보면 자본주의가 경기순환을 통해 주기적이고 완만한 이윤을 저하 경향을 보이며 살아 나갈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자본주의는 성장하면서 전 지구상으로 퍼져나가고, 자본주의 공황도 세계적 규모가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은 오히려 마르크스가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나 추종자들이 평가했던 것보다 자본주의의 장기 생존에 관해 더 훌륭한 논거를 제공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전간 시기 : 정상 체제로 복귀, 1919~29년

사회주의 : 하나 혹은 다수?

전쟁은 사회주의 정당의 지위를 바꿔 놓았다. 물론 제2인터내셔널의 분열과 제3인터내셔널의 설립은 파벌 분립을 낳았지만, 그것은 문제를 명료하게 하기도 했다. 정치 상황은 반 왕정적이고 좀 더 민주주의적인 방향으로 극적인 변화를 보였다. 경제 체제는 같은 체제로 남아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20년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최악의 시기였다. 그리고 이 시기를 살았던 그 누구도 공황과 파국의 끔찍한 기억을 간직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본론』1권 32편의 종말론적인 관점이 미묘한 뉘앙스를 띠는 다른 곳의 결론보다 더 적실성 있는 것으로 비쳐졌다. 이렇게 해서 사회주의의 두 가지 관점이 등장했고, 둘은 정치 지형을 놓고 경합하였다. 한편에는 제2인터내셔널의 관점이 있었는데, 나는 이것을 자본주의 내의 사회주의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윤 체제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일 없이 행해졌다. 제출된 계획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조처는 일부 산업 - 종종 비틀거리는 산업 - 을 국유화하는 조처였다. 점점 더 확대되어 가는 국가 소유 및 국가 통제는 제2인터내셔널의 가장 급진적인 분자에게 자본주의를 은밀히 정복하는 방법이 되었다. 보통 사회주의 정당은 파업이 빈발하고 실업률과 인플레가 치솟는 등 체제가 잘 안 돌아갈 때에나 권력에 오른다. 이 시기, 즉 1919년에서 1939년까지가 특히 그러한 시기였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혁명적 기회가 찾아온다고 생각한 것은 낭만적 오류였다.

제3인터내셔널의 볼셰비키는 자본주의 밖의 사회주의를 원했다. 그들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서 예언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것은 『공산당 선언』이나 심지어는 「고타강령 비판」에서 말하는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이것은 국가자본주의였다. 볼셰비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들의 사회주의를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성숙 후에 오는 것이라기보다 자본주의와 나란히 고지를 향해 경주하는 것이었다. 레닌이 생각했듯이 교환을 매개로 해서든, 스탈린이 실행했듯이 인클로저 운동의 방향을 따른 몰수를 통해서든 말이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사용된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더 빨리 선진 경제를 건설하는 것, 그러나 자본가 없이 건설하는 것, 이것이 자본주의 밖의 사회주의였다. 제3인터내셔널은 권력을 장악하여 최초로 성공한 혁명 정당의 위엄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집행할 자원 또한 가지고 있는 일국 당이 이끌었다.

볼셰비키는 민주적 합의 정당이 아니라 위계적이며 위로부터 조직된 정당이었다. 그리하여 인터내셔널 또한 러시아 당에 의해 위계적으로 지도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볼셰비키 또한 국제주의의 교의에 깊이 경도되어 있었다. 사회주의는 선진국들이 이끄는 가운데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도래한 것이라는 사상이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1921년에 이르러서는 현실은 그와 반대임이 입증되었고, 혁명이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북부 이탈리아, 러시아에서 동시에 일어나긴 했지만 가장 덜 발달한 경제만이 혁명을 고수하였다. ‘일국 사회주의’만이 아니라 당시 나라마다 서로 다른 사회주의들도 존재했는데, 이는 자본주의 자체가 전간 시기에 탈 세계화(deglobalize)하였기 때문이다.

1919년에서 1939년까지의 20년은 (다소 자의적이지만) 세 국면으로 나눌 수 있다. 첫 국면(1919~25년)은 정상(正常)체제로 복귀하는 시기였다. 그것이 전전의 자유주의적이고 세계화된 질서를 가진 정상체제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다음 국면(1926~30년)은 이 탈 세계화된 자본주의 세계에 맞추어진 정상 체제가 지속된 시기였다. 세 번째 국면(1931~39년)은 대공황이 터지고, 그 후 또 하나의 세계대전이 발발해 맥락을 바꿔 놓을 때까지 무기력한 회복이 이어지던 파멸적인 시기였다. 자본주의는 거의 파산 상태였다. 그러나 히틀러 치하의 독일이 불을 당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자본주의는 반격에 나설 수 있었으며, 미국-영국의 지도로 ‘일국 자본주의’의 자유 무역적인 버전이 지배적인 모델로 재확립될 수 있었다.

정상체제로의 복귀(1919~25년)

양차 대전 사이의 20년 동안에, 정치가와 정책 입안자가 1914년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일정 시간이 필요했다. 전쟁 직후 유럽 대부분에서 인플레가 치솟았다. 이 기간 내내 독일은 좌익의 반란에 직면했고, 1924년 뮌헨에서는 나치당의 새로운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가 바이에른 주(州)를 독립국으로 만들기 위해 폭동을 시도했다. 미국이 주도한 국제적 개입으로 배상 채무 상환 일정은 재조정되었고, 독일의 전후 복구를 지원하기 위한 미국의 차관이 약속되었다. 1925년에 이르러서는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23~24년의 초인플레는 저축으로 살아갈 희망을 품었던 많은 중간 계급 가족을 파멸시켰다. 미국 경제는 1920년대를 번영의 10년으로 보낸 유일한 경제였다. 1925년 미국에서는 어떠한 장기간의 정상 체제 복귀 움직임도 궤도 변화도 없었다. 미국의 중앙은행은 잉글랜드 은행이 단기 이자율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19세기의 금본위제를 ‘관리’했을 때 가지고 있던 글로벌한 시야를 갖고 있지 못했다. 미국의 정책 초점은 국제적이기보다 일국적이었다. 서부 및 중부 유럽과 북미를 벗어나면, 새로 요동치는 곳들이 존재했다. 오직 러시아만이 자본주의적 발전에 저항했다.

정상 체제(1925~29년)

1920년대의 후반 5년 간은 전간 시기 중 정상 체제에 가장 근접했던 시기였다. 프랑스는 금본위제 재가입을 영국보다 성공적으로 해냈다. 프랑스 사회주의자 또한 제2인터내셔널 진영과 제3인터내셔널 진영으로 쪼개졌다. 그러나 어쨌든 프랑스 사회당은 독일 사민당만큼 세력이 크지 않았으며, 권력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한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러시아 또한 5년 동안은 정상 체제를 누렸다. 비록 경제 전략에 관한 의견 불일치가 커져 가고 있었지만 말이다.

낙후한 경제의 공업화를 위해 계획 경제를 수립하면서 스탈린은 전인미답의 길을 걸었다. 마르크스의 확대 재생산 표식은 제1차 5개년 계획의 도구가 되었다. 제1부문과 제2부문의 구분 - 기계재와 임금재 - 이 발진 기지로 사용되었다. 기계재 생산 - 기간 산업 - 에 우선 순위가 부여되었다. 1929년에 권력을 공고히 한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의 정통 공산주의 교회에서 레닌의 계승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마르크스에 대한 모든 해석, 그리고 마르크스나 레닌이나 러시아에 관해 쓰여진 모든 글은 스탈린의 견해와 엄격히 일치해야만 했다. 『자본론』은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었다. 레닌의 『제국주의』가 『공산당 선언』 다음가는 표준 교과서가 되었다. 가격-가치 전형 문제든 재생산 표식이든 또는 이윤율 하락의 예언에 반하는 사실들의 점검 문제든 이에 관한 모든 논쟁은 따분한 훈고주의(訓詁主義)라고 하여 배격되었다. 마르크스주의는 교리문답으로 변모했다.

제3인터내셔널은 제국주의와 식민지주의에 대해서는 대담하고 비타협적인 자세를 취했다. 제3세계라 불리게 되는 많은 나라에서 제3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를 거쳐 반식민지 투쟁에 충원된 지도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최후 형태라고 배웠다. 반제국주의자가 되는 것은 반자본주의자가 되는 것이었다. 자본주의는 지체된 또는 왜곡된 발전을 가져온 주범이었다(식민지에 관한 마르크스의 저술을 치졸하게 왜곡한 저작들에서는).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낡은 생산양식을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진보적인 세력이었다. 비록 이 파괴가 식민 권력에 의해 이루어지더라도 말이다. 마르크스는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다. 이 당혹스런 유산에 대해 제3인터내셔널은 그 공개를 금지하거나 교묘한 변명을 하며 넘겨 버렸다. 마르크스에게는 반자본주의자라는 배역뿐만 아니라 확고한 반제국주의라는 배역도 주어졌다. 경제 정책의 공과(功過)와는 무관하게 공산주의는 모든 반식민지운동에 대해 굽히지 않고 굳건히 지지를 보냈다. 자유무역은 퇴조하고, 공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아니면 농업 경영자들을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 어디서나 보호 관세가 실시되었다. 자유주의 질서는 크게 손상되었다.

미국의 번영은 계속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의 생활과 문화를 그 세세한 부분까지 전 세계에 퍼뜨렸다. 할리우드는 영화를 산업으로 보았고, 자본주의적인 이윤 논리를 영화에 적용 - 영화 제작과 배급과 상영 - 하였다. 유럽에서 문화는 엘리트적 개념이었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속물적이라는 딱지가 붙기 십상이었다. 할리우드가 수출한 것은 바로 대량 소비문화였다. 유럽은 문화적 보호주의라는 전술로 반격에 나서긴 했지만, 미국식 속물주의라고 멸시하거나 유럽 자신의 지형 위에서 헛되이 미국과 경쟁한 까닭에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에게 정상 체제 몇 년간은 지극히 정상적인 시기였다. 대량 소비주의의 첫 번째 분출이 이 시기에 미국에서 있었다. 한동안 미국은 최상의 자본주의 경제로서 그 선도 지위를 지켜 나갔다. 전간 시기 자본주의는 화창한 회춘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1929년 재난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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