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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에모트 지음 | 더난출판
1. 미국 : 다자주의와 대결하는 일방주의윈스턴 처칠은 미국의 지도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재치 있는 표현을 사용했다. "미국인들은 늘 올바른 결정을 한다. 다른 모든 대안들이 통하지 않게 되면 말이다." 그것은 미국에 대한 유럽의 지속적인 선입견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세계는 왠지 어설프고, 서툴고, 속물적이며, 세계 무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선입견 말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0년대 초에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말한 후에 유럽에서 자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2002년 1월에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연두 교서는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조롱거리가 되었는데, 이 연설에서 그는 북한과 이란, 그리고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얘기했다. 중국의 관리들은 일종의 표준적인 표현을 사용해 미국의 거만함과 간섭주의, 그리고 '패권주의'를 비난한다. 반세기에 걸친 미국의 지도력과 국제 문제에 대한 개입에 있어 가장 극명하게 부각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즉, 이 기간에 미국이 폭격했거나 어떤 식으로든 공격한 나라들의 수와 인구가 다른 모든 나라들이 행한 수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방식미국의 세계 지배는 처음부터 제국주의 방식이 아니었다. 이러한 비제국주의 방식은 엄청난 군사적 우월성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의 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행사되고 전달된다. 직접적인 군사 행동, 군사 행동의 위협, 경제적인 압력, 외교적인 압력, 혹은 더 부드러운 방식의 사상적·문화적·이념적 영향력 등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제국이 없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있었다. 자국 내에서는 지켜졌던 원칙과 가치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무시되었다. 미국은 때로 독재자들을 옹호했고 민주주의를 뒤집어엎거나 인권침해가 자행되는 상황에 눈을 감았다.
미국은 1945년 이후, 거의 모든 국가들과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호혜적인 정책은 강압적인 정책보다 제국을 유지하는 데 훨씬 적은 비용이 든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보스턴 대학교의 국제관계학 교수로서 『미국 제국(American Empire)』의 저자이기도 한 엔드루 바세비치 같은 사람들은 '소극적 초강대국' 개념이 잘못된 신화라고 얘기한다. 미국 자체도 일종의 제국으로서 계약, 구매, 혹은 강압에 의해 획득한 영토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21세기를 위해 물어야 할 질문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미국은 현재의 지배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둘째, 미국의 지배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가?
1914∼18년의 '세계대전'은 도발국들의 힘이 다하고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 편에 선 후에야 비로소 끝이 났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상황을 끝낸 것은 1941년 말에 시작된 미국의 참전과 히틀러의 소련 침공 때문이었다. 미국은 1945년 이후 힘이 약해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지도력을 넘겨받았다. 미국의 정책 목표는 냉전이 시작되던 1947년부터 소련이 무너지던 1991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을 야기한 요인들이 - 경제적인 불안정, 각 국이 서로 고립되는 것, 전체주의 사상의 확산 등 - 재현하지 않게 막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미국이 지배력을 확보하고 소련을 제압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목표들이 부작용을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세상을 하나의 프리즘으로 - 이 경우에는 공산주의 억제의 프리즘 - 보는 바람에 특정한 사건들이 원래의 의도나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이다.
아직 냉정한 판단을 하기에 이를 수도 있는 사안 중 하나는, 미국이 19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의 점령에 대항해 싸운 회교 민병대를 비밀리에 지원한 것이다. 이것은 소련이 중앙아시아에서 지리멸렬한 소모전에 발목이 잡혀, 결국 1989∼91년의 몰락으로 이어지도록 만든 필요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었을까? 아니면 그것은 199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이 혼란에 빠져들어 극단적인 탈레반 정권을 탄생시킴으로써, 빈 라덴과 그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에 은신처를 제공토록 만든 것에 불과했을까?
미국은 냉전의 종식과 함께 외교 정책의 방향과 응집력을 잃고 다소 방황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은 몇몇 다른 분쟁지역처럼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9·11 테러가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초강대국 미국의 역할과 태도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미국의 지배력을 사용할 분명한 목표,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프리즘이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처음에 '테러와의 전쟁'으로 규정되다가 곧 부적절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보다 이것은 지구촌의 안정, 특히 미국의 안정에 대한 위협과의 전쟁이었다. 알 카에다의 테러 공격은 공동의 위협이었다. 이슬람 과격파들에 의한 테러에서 한 가지 두드러진 특성은 그것에 대항하는 국제연대의 규모가 냉전기간에 나타났던 서구 각국의 연대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의 함수관계사실 미국은 이미 1980년대에 경제 지배력을 잃고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1970년대의 석유파동이 월남전 참전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효과와 결합되어 경제 성장을 더디게 했는데, 이것은 미국이 전 세계의 패권을 놓고 소련과 다투는 동안에 일어났다. 이 시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군비경쟁의 수준을 한층 더 높여 새로 미사일을 배치하고 '스타워즈'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인 사학자 폴 케네디는 경제적인 곤경과 군사적인 야심의 이와 같은 결합을 보면서, 1988년에 발표된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이라는 책에서 그와 같은 '제국주의적 확장' 때문에 많은 강대국들이 쓰러졌으며 미국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20세기 초에 일인당 GDP에서 영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가 되었지만, 영국으로부터 지도자 역할을 넘겨받은 것은 50년이 지난 후였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크기나 부가 아니라 그것을 국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역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즉, 미국의 '제국주의적' 역할은 - 지구촌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유무역과 자본주의를 통해 전 세계의 경제발전을 도모하려는 역할은 - 장기적으로 미국의 경제적인 지배력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국가 간 GDP 격차가 크게 좁혀진 것은 서로에게 유익한 일이었고, 무역과 민주주의를 확산시킨 미국의 노력에서 상당 부분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 세계가 여전히 무역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열려 있는 한, 미국 자신은 여전히 경제적인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 자체의 성장과 개발은 가난한 나라들도 지속적인 성장을 할 때 큰 도움을 받을 것이다.
다원주의와 일원주의의 충돌미국인들은 당연히 세계에서 자신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이라는 사실에 만족해한다. 그들은 미국이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좋아한다. 1945년 이후에 설립을 도운 여러 국제적 기구들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점은, 그와 같은 기구들 IMF, 세계은행, 유엔, 그리고 WTO 등이 다른 나라들을 무시하는 미국의 능력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며 미국의 동맹국은 냉전 이후에 오히려 늘어났다.
전문가들이 다원주의나 일원주의의 이점에 대해미국이 혼자서 가야 하는지 동맹국들과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할 때, 그들은 종종 군사적인 측면에 시각을 한정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군사적 측면만이 전부는 아니다. 어쨌거나 다원주의는 단순하게 어떤 계획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통제를 벗어날 수도 있는 집합적 의사결정 과정에 동의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과정은 초강대국으로서 용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미국은 세계 각국의 다원적인 노력을 돕고 종종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막판에 가서 발을 빼곤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힘든 상황의 도래도 예측해 볼 수 있다. 다원주의의 미국에 대한 핵심적 약점은 - 다른 나라들이 원한다면 단결해서 대항할 수 있는 상황은 - 확대될 것이다.
국제협약은 기본적으로 국가 간의 약속이며, 따라서 다른 서명국들이 약속을 실제로 이행한다는 신뢰는 협약 유지의 중요한 요소이다. 맹주 국가인 미국이 기본적으로 자신들은 협약을 지키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들만 준수할 것을 바란다면, 결국에는 어떤 나라도 협약을 지키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 점은 국제연합이 1990년대에 이라크와 북한에서 무기사찰을 할 때 보여준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다원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일원주의 행동이 될 것이다.
9·11 테러 후에 미국은 외교 정책을 시행하는 단 하나의 분명한 프리즘, 즉 자신들의 힘을 사용할 분명한 목표를 갖게 되었다. 미국은 국제적인 역할을 수행할 능력을 유지할 것이며 경제적으로 여전히 활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일원주의를 추구하는 최근의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고, 미국의 지도력은 상당 기간 계속되겠지만 파할 수 없는 갈등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예측할 수 없는 도전이 수많은 불안정한 나라들로부터 터져 나온다. 세계 최대의 인구를 보유한 중국이 한 세기 동안의 잠에서 깨어나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유럽과 일본 같은 다른 열강들도 맹주국가 미국에게 적지 않은 도전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적어도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상은 미국의 지도력이 없다면 한층 더 어렵고 무질서한 모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는 여전히 또 하나의 질문을 안고 있다. 즉, 그렇다면 미국이 만드는 세상은 얼마나 질서정연할 것인가?
2. 중국: 역사의 자존심과 극과 극의 가능성9월 11일의 테러가 있기 전까지는 부시 행정부의 많은 고위 관리들 역시 중국을 장기적으로 가장 다루기 힘든 도전 상대로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의 이런 화해 분위기는 아직 축하하기에 이르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의 가장 우려할 만한 잠재적 도전국이며, 2001년 가을에 일어난 어떤 일도 그 본질을 바꾸지는 못했다. 중국은 1945년 이후 탄생한 공산주의 열강 중에서 남은 마지막 국가이다. 일본도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여전히 의존적인 국가였음에도 아시아와 전 세계의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결국에는 중국도 같은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무시할 수 없는 중국의 위협우리는 중국의 위협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한동안 미국의 경쟁국이 되기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아시아 지역에서 불안의 원천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아시아의 불안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 중국의 정치 체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념적인 지도력을 상실했고, 보다 시장 중심적인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발전하지 못했다. 경제적인 실패나 혼란은 공산당의 붕괴나 해체를 초래할 수 있다. 중국의 공산당은 동맹국들도 없이 소외된 상태이며 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에 적개심마저 갖고 있다. 내부의 투쟁이나 외부의 상황으로 몰릴 때, 그런 적개심을 표출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 특히 대만에 대해 군사적인 행동을 시도할 수도 있다.
중국도 유럽 못지 않은 비극들을 경험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다. 오늘날 중국은 이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한 나라들에게 너무 기뻐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티베트는 물론 서부의 신장성 일부에서도 중국은 세계의 남은 제국들 가운데 하나로 군림하고 있다. 중국은 일인당 소득이 미국의 4분의 1만 되어도 인구가 4.5배 이상 많기 때문에 절대적인 GDP 수준에서 미국에 접근하게 된다. 실제로 2002년이나 2030년경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은 다시 열강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2000년과 2001년 사이 중국 지도자들이 WTO에 가입하려 애쓴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중국의 WTO 가입은 이제 향후 몇 년 동안 경제의 새 분야들을 세계와의 경쟁에 노출시키고, 국제적으로 합의된 행동 규칙들에 정면으로 부딪치게 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들은 경제 성장과 현대화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믿는 것 같다.
지금까지 압제와 임의적인 정의, 그리고 관료의 부패에 대한 분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생활수준의 개선을 느끼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 효과적인 통치와 치안유지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1989년에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몇 천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일으키자, 중국 지도부가 위협을 느끼고 군대를 동원해 수백 명의 학생들을 학살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의 시위는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맞물리면서 경제가 나빠진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경제적 불확실성이야말로 중국의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다. 중국에 안정적인 법치는 없으며, 계약들의 힘은 주로 정부와 정권의 힘이 계속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인도네시아처럼 중국도 계약들이 무효화되고 온갖 분야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경제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혼란의 와중에서 누군가 새로운 차원의 독재를 시도하며, 중국의 유교적인 전통에 기초해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정치체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추측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지 알아내는 일이다. 대만은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다가, 1948∼49년 후에는 국민당의 망명 정부가 들어섰다. 이제 홍콩과(1997년) 마카오를(1999년) 돌려 받은 입장에서, 다음 차례는 대만이라고 본토인들은 말한다.
3. 일본 : 안개 속을 걸어가는 사무라이일부에서는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의 맹주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면서 이 나라는 계속해서 실망과 좌절을 맛보았다. 경제성장률은 급락했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1990년대에 일본의 잠재력과 중요성을 과대평가한 것과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그것을 과소평가한 것 모두, 일반적인 분석들이 종종 힘과 지도력과 특히 지정학적 중요성의 잘못된 지표들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본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엔화 가치가 상승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1995∼2001년에 달러의 강세 때문에 여러 면에서 지배적인 위치가 한층 더 강해졌다. 정확한 분석을 위한 첫 번째 걸음은 일본이 세계의 지배적인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1980년대의 일반적인 통념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유는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변수가 일본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일본의 저항현재의 경제적인 규모로 볼 때, 일본은 큰 변화를 야기할 수단과 전략적 중요성 모두를 갖고 있다. 일본은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면 동아시아 지역과 전 세계 모두에서 큰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먼저 경제를 분석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1985년이 지나자 외적인 경제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엄청난 무역 적자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달러의 가치는 급락했다. 불과 2년 만에 엔화에 대한 가치가 반이나 떨어졌다. 1987년 10월에 미국의 주식시장이 무너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부자 나라들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달러의 추가적인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일본은 자국의 이자율을 한층 더 낮추었다. 이렇게 해서 1987∼90년의 거품경제가 시작되었다. 엄청난 돈이 풀려나갔다. 엔화의 가치는 높아졌지만, 이것은 다시 주식과 부동산의 가격 상승으로 강화되었다. 필연적인 악순환이 등장했다.
거품은 정치인, 기업, 그리고 일반적인 투자가들을 비롯해 그것 때문에 부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득이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경제는 인플레이션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었고, 재무부와 자민당의 정책가들도 그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일본 은행은 파티를 일찍 끝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거품이 꺼진 것은 일본 은행이 마침내 이자율을 높여 돈의 가치를 올렸을 때였다. 기업들은 돈이 공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돈을 빌려 투자하는 호기를 부려왔었다. 가계들도 갑자기 가치가 높아진 부동산과 주식을 믿고 많은 돈을 빌렸었다. 은행들은 그런 파티에 밑천을 대주다 엄청난 규모의 악성부채를 떠 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