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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에모트 지음 | 더난출판
바로 국제적인 위기, 혹은 일련의 위기들이 일어나 유럽이 뭉치지 않으면 생존과 번영을 보장할 수 없을 때이다. 이들에게 남은 유일한 문제는 러시아의 위협에 관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유럽인들은 진정한 유럽적 방위력을 갖추기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다른 재정적 압력들과 단일 통화 자체의 압력을 받고 있는 유럽의 나라들은 그렇게 할 여유가 없다. 유럽은 발전과 통합을 통해 경제적으로 분명히 번창하겠지만, 미국과의 일시적인 견해 차이 속에서 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러시아와 느슨하고 비공식적인 연대까지도 추구할 것이다.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의 동참 속에서 다양한 나라들의 관심을 반영하려는 혼합적 성격은, 유럽연합이 안고 있는 가장 아이러니한 특성이고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유럽의 생존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이기도 하다.인류의 역사에서 평화와 안정이 오래도록 지속된 적은 거의 없었다. 수많은 전쟁이 큰 나라들, 작은 나라들, 식민 제국들과 그들의 억압받는 민중들, 개별 국가들의 지역들이나 부족들 사이에서 사상과 토지, 자원과 사람, 정체성과 개성들을 놓고 벌어졌다. 하버드 대학교의 헌팅턴 교수가 1993년에 냉전 이후의 세상이 물리적이건 그 밖의 어떤 식이건 7, 8개 주요 문명 그룹들 간의 충돌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20세기에 비록 도전을 받았어도 자본주의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다. 자본주의의 성공에 기여하는 요인들은 - 신뢰, 위험 안기, 금융적인 뻔뻔함 등 - 실패도 초래하는데, 이것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 정치적 문제도 때때로 불황을 야기한다. 2001년 9월에 일어난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테러 공격으로 초래될 수도 있다. 실패에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들이 있다. 인간의 행동도 실패에 일조한다. 그러나 경제활동은 결국 인간의 심리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위험을 안으려는 신뢰나, 위험을 피하려는 조심성에 관련되어 있다. 자본주의는 호황에서 불황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다가도, 다시 호황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최대 약점은 경기 주기가 때로 위기로 확대되는 불안정성에 있다는 것이다.자유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정치 및 시민적 권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와 같은 믿음은 이미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의 헌법에 구현되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불평등이 삶의 투쟁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특성이라는 점이다. 경쟁과 불평등은 같은 동전의 다른 측면이다.자본주의의 본질적인 속성은 부자 나라들과 가난한 나라들의 격차가 줄어들 수 있게 만든다. 이론적으로 그것들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사실 가난한 사람들의 빠른 성장은 부자 나라들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살 수 있고, 부자 나라는 한층 더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들 간의 불평등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유럽은 - 여기서 말하는 '유럽'은 EU의 15개 회원국이다 - 단일 국가로 통일되거나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그 어떤 단위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러시아와 동유럽을 제쳐두고, 현재 유럽연합을 구성하는 서유럽의 부자 나라들만 생각해 보자. 유럽연합은 1957년에 창설된 이후 그 성격은 물론 존재 방식 또한 다양하게 나타났다. 유럽연합은 부분적으로 초국가적인 단위이고, 부분적으로는 정부 간 협력기구의 성격을 갖는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개방적이고, 부분적으로는 보수적이며, 부분적으로는 민족주의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또 부분적으로는 경제적인 연합체이고, 부분적으로는 정치적인 연합체임을 표시한다. 일부 국가들은 - 특히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 더 큰 정치적 단위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 특히 영국과 덴마크, 그리고 스웨덴은 -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유럽연합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독일과 프랑스 같은 큰 나라들은 중간 정도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1951년의 석탄 및 철강 공동체, 1957년의 유럽경제공동체, 1987년의 유럽공동체, 그리고 1993년에 시작된 현재의 유럽연합 등과 함께 기본적으로 전쟁의 방지가 목적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유럽연합의 성격이 기본적으로 소극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교역과 인적 교류의 자연적 패턴은 두 차례의 전쟁과 50년 동안의 경제적인 민족주의로 심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따라서 유럽의 '경제공동체' 내지 '공동시장'은 비록 또 다른 정치적 분열인 철의 장막이 유럽대륙을 반으로 나누고 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교역과 투자의 흐름을 개방해 자연적 흐름을 되살리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이 달성한 주요 업적들 가운데 많은 것들은 개방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현재 각국의 협력을 어렵게 만드는 의심들은 사라지게 되고, 더 넓은 정치적 통합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낙관적인 전망이다. 공동농업정책의 개혁이나 철폐에 대한 희망은, 현재 그것으로 덕을 보는 사람들의 보수주의와 그것 대신에 일련의 새로운 규칙, 보조금, 그리고 쿼터를 도입해 유기농업과 환경보호를 꾀하려는 환경론자들의 열망 때문에 도전 받게 될 것이다.



유럽연합의 회원국들은 가장 중요한 미래의 문제들을 앞서 내다보고 준비하며 실행한다. 단일 통화의 채택은 그와 같은 합의의 하나였다. 유럽의 단일 통화는 1971년에 처음 제시되어 1992년에 마스트리트 조약으로 구체화되었고, 1999년에 정식으로 출범한 후 2002년에 본격적으로 지폐와 동전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똑같이 중요한 또 하나의 사건은 유럽연합의 규모를 확대해 중부와 동부 유럽의 국가들도 포함시킨 것이었다. 이것은 1989∼91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공산주의가 함께 사라지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서유럽의 몇몇 지도자들에 의해 제안되었다.



유럽연합의 경계선은 조만간에 멀리 동쪽까지 확대되어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시까지 넓어질 것이다. 영역 확대의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유럽연합이 방향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기세는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성격, 행동, 그리고 정책들은 동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 특히 강대국인 러시아와 - 맺게 되는 새로운 관계, 그리고 남동쪽의 가장 중요한 나라인 터키와 맺게 되는 관계가 규정할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서유럽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이제는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소련이 무너진 다음 해인 1992년에 공산주의를 버리고 새롭게 등장한 러시아는, 무역과 해외의 직접투자로 자극 받는 자본주의만이 강한 나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미국과의 관계는 러시아가 핵 강국인 동안에는 여전히 필요하고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에서, 러시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독일 및 유럽연합과의 만남이다.반체제 세력은 오래 전부터 서구에 대한 저항을 세력 확산의 기회로 사용하며, 서구의 현대적인 문명은 더 순수하고 진실하고 소중하고 전통적인 것을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반발은 종종 종교적인 색채를 띤다. 현대 서구사회의 대표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가 세속성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지배하는 법들은 세속적이고 국가 역시 그러하다. 이처럼 세속적인 특성은 자신들의 종교가 인간이 만든 법보다 우월한 신의 법을 따른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위협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믿음은 스스로 신의 법을 해석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힘을 주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강력한 의미를 갖는다. 절대주의와 순수성에 대한 극단적 호소가 그런 가치들에 대한 서구의 위협과 적절하게 결합되어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곤 했다.



잃어버린 자존심과 독립성을 되찾으려는 아랍 국가들의 욕망은 뿌리깊은 것이다. 중국처럼 아랍 국가들도 과거에는 유럽보다 더 발전되어 있었다. 1973년에, 이스라엘이 국가를 세운 이후 세 번째로 아랍과 전쟁을 한 후에, 아람의 산유국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도로 유럽, 일본, 그리고 북미에 대한 석유 공급을 제한해 서구를 상대로 자신들의 힘을 과시했다. 이른바 '제1차 석유파동'으로 명명된 이 시기는 사실 범 아랍권의 협력관계가 처음으로 가시화된 시기였다. 수많은 정치 및 종교적 지도자들이 서구에 대항하는 '지하드'(이 아랍어는 노력, 투쟁, 그리고 전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를 선언했으며 보다 '회교적인' 법률과 정책을 채택했다. 비단 아랍 국가들뿐만이 아니었다. 아프가니스탄 등도 마찬가지였다.



알 카에다 조직은 대중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메시아적 목표를 추구한다. 알 카에다의 근거지인 중앙아시아는, 북쪽의 코카서스부터 남쪽과 동쪽의 파키스탄에 이르기까지, 군벌들은 폭력과 - 마약 및 보석에서 비롯되는 - 돈을 주무르고 성직자들은 종교적인 복음주의를 주무른다. 이들은 그와 같은 힘을 이용해 지배력을 유지한다. 그들이 자행하는 테러는 국가들 간의 더 넓은 갈등과 다른 곳의 더 큰 불안을 야기해, 지구촌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냉전이 남긴 군사적 능력과 함께, 현대적인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영향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것은 크건 작건 무기거래가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세계화나 - 가령 유럽연합 같은 - 초국가적 정부기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민족주의를 낡은 개념으로 치부하고 민족국가를 낡은 형태의 정부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현재 민족주의의 기본적인 감성적 측면이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그것은 존 로버츠가 『21세기 (Twentieth Century)』라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과 같다. "민족주의는 가장 극적인 신화 만들기가 사람들을 움직여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세기의 정치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했다."1920년대의 미국은 희망의 시기였다. 1990년대처럼 당시 미국은 이른바 '신경제'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가 폭락이 일어났다. 정책의 정통성을 지배하는 두 단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바로 '청산'과 '안정'이다. 많은 나라들에서 - 특히 미국에서 - 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과도한 시설, 부채, 기업, 은행, 그리고 행태를 청산하는 것이 - 다시 말해, 청소하는 것이 - 필요하다고 굳게 믿었다. 또 하나의 관련된 단어는 안정이었다. 안정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이 마지막 실수는, 케인즈의 주장과 나중에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지출 계획' 때문에 기억되고 있다. 여러 다양한 요인들 중에서 어느 것이 1930년대의 대공황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냥 일상적이었을 경기 불황이 정부의 잘못으로 20세기의, 어쩌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경제적 재앙으로 변했다는 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경제 역사가 가르쳐주는 한 가지 교훈은, 특히 지난 세기에 있었던 다양한 환율 체제의 연속적인 실험에서 - 금본위제, 변동환율, 1945년 후에 달러 중심의 고정환율, 관리적인 변동환율, 그밖에 등등 -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환율 관리의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1930년대의 미국에서는 국내 정책에 관한 정치적 압력이 높아져, 경제적 관리가 환율의 안정을 보장할 수 없었다. 어느 면에서 이것은 거대 국가와 경제의 특권이다. 이들의 경제에서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환율을 중요한 요인으로 다룰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현재 유로 지역이 다른 통화들을 다룰 때도 적용되지만, 그들의 내부적인 관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공황은 21세기를 위해 일부 고무적인 측면도 보여주었다.



지난 100년 동안에 큰 나라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미국이 경험한 대공황에 비유될 만한 고통을 당한 경우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1980년대, 1990년대, 그리고 아쉽게도 그 후에도 일본에서 일어났다. 1920년대에 미국이 그랬듯이, 일본도 1980년대에 신경제가 도래했다고 환희에 차 있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무너졌다. 니케이 지수는 1990∼98년에 64퍼센트나 폭락했고, 부동산 가격도 비슷한 폭락을 경험했다. 일본은 미국처럼 대공황을 경험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높은 생활수준과 비교적 낮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일본의 위기는 이미 배운 교훈들 때문에 더 큰 위기로 발전되지 않았다. 1930년대의 교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현실을 부정하고 잘못된 회계를 방관하면서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일어난 1990년의 붕괴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상황이 아니라, 서서히 구멍이 뚫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1년에 일본에서 사용된 언어 가운데 일부는 1930년대 초에 미국에서 사용된 언어를 닮기 시작했다. 2001년에 개혁을 부르짖으며 총리로 취임한 고이즈미는 고통, 청소, 청산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1930년대에 널리 인식되었고 1990년대에 일본에서 다시 보았듯이,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은 정부가 완화적이고 안정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가운데서 많은 것들은 규제적인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세금과 더 많은 규제는 사람들의 경제적인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는 그것을 조금씩 진행하려는 체제이다. 불평등에 대한 걱정은 늘 우리 곁에 있는 것 같다.불평등은 늘 있을 것이고, 경쟁도 늘 있을 것이다. 불평등에 대한 여러 가지 대응들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즉, 특정한 상황이나 특정한 수용점 너머에서는 격차가 너무 커져 파괴적이고 비전통적인 반응을 초래할 수 있다. 하나는 사회와 국가 '안의' 불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나 국가들 '간의' 불평등이다. 대부분 나라들 간의 불평등은 20세기를 거치면서 많이 줄어들었다. 다시 말해, 소득의 분배가 상당히 정교하고 고르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20세기에 나라들 '안의' 격차는 거의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불평등을 야기하는 요인들과 그것에 대한 정치 내지 사회적 대응들은 두 범주들 사이에서 서로 달랐다. 즉, 국가들 '안의' 불평등은 국가들 '간의' 불평등보다 정책, 정치, 그리고 행태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측면에서 훨씬 더 중요하다. 그것은 불평등의 정도를 규제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바꾸게 한다. 하지만 이것이 국제적인 측면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불평등의 가장 까다로운 문제는 계급들 간이 넓은 구분에 관한 것에서, 일반 대중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하급 계층' 간의 격차에 관한 문제로 그 성격이 변했다. 어떤 측면에서는 불평등을 더 다루기 힘든 문제로 만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가난 해결책은 공적인 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돈은 다수의 유권자들이 제공한다. 민주주의가 다수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다수가 소수를 돕겠다고 동의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가장 큰 사회 및 정치적 질문들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인지의 여부일 것이다. 향후 민주적인 사회들에 정말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운이 좋은 다수와 하급 계층 사이의 분열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불안정성이 나타날 때, 하급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날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장기적으로 공공 교육의 확대와 경제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려는 노력에 달려 있다.불평등은 엄청난 기회의 상실을 뜻한다. 가난한 나라들이 더 발전하고, 더 부자가 된다면, 우리 모두 함께 부자가 될 수 있다. 비슷한 상황은 1940년대와 1950년대에도 있었다. 그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나라였고, 유럽은 전쟁 때문에 망가져 있었다. 미국인들은 '마셜 플랜'을 통해 유럽에 투자를 함으로써, 경제적으로 더 번창할 수 있었다. 불평등의 원인인 가난을 걱정해야 하는 이유들은 있다. 가난한 나라들은 정치 및 사회적 제도들이 취약하여, 혼란이나 내전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그것들은 종종 이웃 국가들을 끌어들여 더 큰 분쟁으로 확대되곤 한다. 둘째, 그것은 질병과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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