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특구
남덕우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경제특구
남덕우 외 지음
삼성경제연구소/2003년 2월/374쪽/13,000원
동북아 중심 국가로 가는 길
21세기 세계의 변화 방향은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 나라는 1997년 말 외환위기에 직면하였고 그로 인해 IMF가 주도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경험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외환위기와 IMF 체제는 우리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세계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국제적 규범에 따라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는 외환위기라는 경험을 통해서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
21세기 변화추세 중 또 다른 하나는 세계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서양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5년부터 아시아 지역 내의 무역 총액이 아시아와 서양(서구와 북미) 사이의 무역 총액을 능가하였다. 그리고 1960년경 세계 GNP의 4%에 불과했던 동아시아 경제는 지금 25%에 육박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로 볼 때 동아시아 경제 규모가 유럽이나 북미를 능가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본다.
그 동안 동아시아 경제에서 중심적 역할을 해 온 것은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 한자 문화권의 국가들이고, 그 중에서도 지리적으로 동북아에 속하는 일본, 한국, 중국이 그 중핵을 이루어 왔다. 그런데 앞으로는 중국이 동북아 및 아시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중국은 1978년 이래 개혁 개방을 꾸준히 추진한 결과 현재 중국의 GDP 규모는 세계 7위를 점하고 있으며, 지금의 성장 추세를 지속하면 앞으로 10~15년 후에는 미국의 GDP 규모를 능가하게 될 것이다.
우리 나라의 기업 환경은 주요 경쟁 상대국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열악한 수준이다. 2002년 IMD(국제경영개발원)에서 발표한 국가경쟁력 종합 순위를 보면 우리 나라는 49개국 중 27위로 대만(24위), 말레이시아(26위), 싱가포르(5위), 홍콩(9위)보다 낮다. 또한 기업하기 좋은 아시아 국가라는 비교 평가에서 우리 나라는 12개국 중 9위를 차지하였고, 경제 자유도에서는 123개국 중 43위, 국가위험도는 185개국 중 47위를 차지하였다.
우리 나라는 외국의 직접투자가 적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싱가포르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GDP의 85.8%에 달하고 중국의 경우 27.6%에 이르고 있는데 반해 우리의 경우 6.1%에 불과하다. 우리 나라는 일찍부터 기업의 외국인 지배를 두려워하여, 직접투자 대신에 차관을 선호했기 때문인데, 이는 일종의 민족주의의 발로라 할 수 있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의 잠재력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앞으로 경제대국 중국의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면 중국, 한국과 일본은 석유 공급을 중동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된다. 다행히 시베리아에는 풍부한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고, 그것을 파이프라인으로 중국, 한국, 일본에 공급하는 구상이 동북아 지역 협력의 현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리고 남북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 중국횡단철도가 연결되는 날이 오면, 인천이 해운, 항공, 육상운송이 연계되는 이상적 물류 중심지가 될 것이다.
우리의 경쟁 상대인 싱가포르, 중국, 대만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물류 중심지 개발 전략을 추진해 오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야 물류 중심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멈칫거린다면 우리는 기회를 잃고 말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정부가 동북아 물류 중심지 실현을 위해 경제특구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정부는 국가 생존 차원에서 경제특구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정책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 많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왜 경제특구가 필요한가?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부즈-앨런 & 해밀턴이 우리 나라에 대해 지적한 것이 있다. 한국의 제조업 기반은 광대한 배후 시장과 저임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에 밀리고, 첨단 기술은 일본에 치이는 넛 크래커(nut-cracker)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경제 블록화가 가속화되면서 현재 우리 나라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향후 5~10년 안에 우리가 동북아 중심 국가로서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우리의 지정학적 여건이 오히려 경제 성장의 장애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향후 가까운 시일 내에 중국은 더 이상 저급 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 국가의 실현은 앞으로 한국 경제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라 하겠다.
무역협회가 2002년 8월 UN 국제무역통계자료를 활용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0년 현재 중국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품목은 전체 5,033개 품목 중에서 731개로 한국의 81개에 비하여 9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중국은 1996년 487개에 불과했으나 매년 20% 가까운 성장을 이어 왔으며, 품목도 과거의 저부가가치 상품 중심에서 변압기, 모니터, 전화응답기, 1차 전지 등 기술력이 뒷받침되는 제품으로 옮겨가고 있다.
중국 인구는 2000년 12억 7천 명에서 2050년 16억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안정적인 경제 성장으로 내수 시장은 계속 확대될 것이며, 외부에는 전세계적으로 약 6,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화교 네트워크와 이들이 소유한 화교 자본이 존재하고 있다. 더욱이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은 경제 개방과 산업 고도화에 결정적 전환점이 되고 있다. WTO 가입을 계기로 중국의 시장 개방 확대와 산업구조 고도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중국 경제의 경쟁력이 제고되고 체질이 더욱 강화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세계 13대 경제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외국인들이 비즈니스하기에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하나라고 여긴다. 이는 그만큼 우리 나라의 기업 환경이 열악하다는 의미이다. 우리 나라의 외자유치 규모를 보면 2001년 말 현재 약 120억 달러 수준인데 중국은 692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즉, 우리의 외자 유치 규모가 중국의 약 17%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국경 없는 경제 전쟁에서 열악한 기업 여건으로 인해 우리 나라가 세계 기업들의 가치 창출 거점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 각국은 국경 없는 전쟁이 격화되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 기업 유치에 적합한 특별지역 등 경제특구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중국은 1990년부터 푸동에 국가급 경제특구를 만들어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도시 국가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 국토를 경제특구식으로 조성하여 아시아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기업 여건은 상대적으로 열악하여 경쟁 대상국인 중국, 싱가포르 등과 현재로서는 도저히 경쟁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과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만 하는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국가적 생존 차원에서 경제특구라는 새로운 정책 수단 내지는 제도를 시급히 만들어 상대 국가들과 경쟁할 수 있는 성장 동력을 구축해야만 한다.
정부는 2002년부터 경제특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중국의 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향후 5~10년 내에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 국가로서의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 우리 나라는 변방 국가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앞서 언급했듯이 동북아 지역이 세계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고, 이러한 추세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국가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절박한 생존 전략 차원에서 대두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001년 하반기에 기업, 협회, 연구기관 등이 경제특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2002년 초부터 정부 차원에서 경제특구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2002년 8월 경제자유구역법(구 경제특구법)을 입법예고하기에 이르렀고, 의견 수렴 등을 거쳐 10월 1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하였다. 이후 11월 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최종적으로 법제화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정부가 마련한 경제자유구역법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외국기업 유치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경제자유구역 지정 요건을 법에 명시하고 있으며, 둘째, 경제자유구역 지정 절차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셋째, 외국인 투자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넷째, 경제자유구역을 관리․운영하는 조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경제자유구역법은 시행령 준비 등으로 2003년 7월이나 되어야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중국 푸동이나 싱가포르 등과 경쟁하여 정부가 기대하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 국가가 되기 위한 유효한 정책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우선 경제자유구역법이 입법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 정치권, 노동계 등의 갈등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이 시급하다.
그리고 경제자유구역법의 목적이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보완해야 할 점이다. 경제자유구역법은 우리 나라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넛 크래커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국가적 생존 차원에서 마련된 수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안 목적이 지역 균형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지고 있어 우리 스스로 명분에 집착하여 발목이 잡히는 경우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또한 국내 기업에게는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고 오로지 외국 기업에게만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최근 우리 나라에 산업 공동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외국 기업만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당위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외국 유수 기업들을 국내에 유치하는 대신 국내의 우량 기업들이 외국 기업과의 차별 때문에 중국의 푸동이나 싱가포르 등으로 대량 이전할 수도 있는데, 과연 그렇다면 그것이 우리 나라를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경제특구 관리 운영 조직에서도 전담 조직을 갖추고 있지 못한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외국의 경우 기업 유치를 위한 마케팅 능력을 가지고 입주 기업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담 조직이 있어 기업 유치 및 관리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부러워만 말고 우리 스스로에게 적용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장보고를 통해 본 경제특구의 역사적 교훈과 가능성
이미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설치한 자유무역지대나 중국에서 그 효용성이 입증된 경제특구 등은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우리에게도 필요한 조건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이 시대의 우리에게 가능한 한 적합하고, 전략적으로도 실수가 적으며, 비교적 효율성이 높은 모델을 설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다양한 상황들을 살펴본 다음 유사한 예를 찾고, 그러한 예가 지녔던 한계와 가치 등을 재점검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기원을 전후한 시대, 한반도의 남부 지역에 존재한 삼한의 소국들은 대부분 위치나 역할 등으로 보아 해양 폴리스의 성격을 지녔으며, 당나라에 설치되었던 파사방(페르시아인들의 집단 거주지), 신라방 등은 일본 열도 지역과의 교역과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는 못 미치지만 고려시대의 무역항 벽란도, 조선시대에 설치한 몇 군데의 왜관 역시 제한적으로나마 현재의 자유무역지대 혹은 경제특구와 유사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말한 몇 개 사례 가운데 가장 적극적이고 조직적이며, 실제로 동아시아 전반에 영향을 끼쳤고, 현대의 경제특구 개념에 근접하는 것은 장보고에 의해서 구축되고 실현되었던 시스템이다. 장보고는 역동적인 국제 환경, 무역의 활성화라는 시대적인 상황과 해적 퇴치라는 명분을 안고 828년에 귀국하여 흥덕왕으로부터 청해진대사라는 전무후무한 독특한 직책으로 해양에 관련된 전권을 부여받아 군사 1만 명과 함께 고향인 청해진에 본거지를 두었다.
청해진은 장보고의 고향이기도 했지만, 그 시대에 가장 중요한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른바 물류 교통의 로터리, 해양 교통의 십자로, 바다만이 물류의 길이었던 시대와 지역 속에서 일종의 허브 항구였다. 청해(淸海)란 글자에는 해적을 소탕하여 바다의 안녕을 회복시키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바닷길을 새로 만든다는 숨은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항성격인 중핵으로 삼아 주변의 각 거점 지역에 여러 핵들을 배치하였다. 행성핵들은 중국 연해 지역의 신라방을 비롯한 신라촌들, 본국 신라 내부의 해남․강진 등의 배후 도시들, 제주도 등과 같은 항로 거점 지역, 일본 열도 내에는 큐슈의 다자이후(大宰府) 지역 내에 있는 신라인 집단 거주지이다. 그리고 위성들은 간접적인 연계를 맺은 파사방 및 당상인들의 활동 지역, 일본 열도의 우사 지역 등 일부 지역이다.
즉, 중핵인 항성(청해진)을 가운데 두고 주변핵들이 행성처럼 돌고 있고, 다시 변방의 소핵들이 위성처럼 포진해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 핵들이 각각 독립적인 거점으로 분산돼 있으면 제 기능을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없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네트워크화해야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장보고는 이 다양한 핵들을 효율적으로 연결시키고 활용하기 위하여 일종의 장(field)을 활용했다. 단순한 판, 고정된 판이 아니라 모든 것들과 연결된 망(net)이고, 자체에 에너지와 운동성을 지녔으므로 핵들의 움직임은 물론 그 자체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장이다.장보고는 해양 교통로의 메커니즘이 환류(環流) 시스템이라는 특징을 깨달았고 이를 활용하였다. 그는 각각의 핵이 가진 위치와 기능 등에서 장점과 한계를 파악한 후에 주변의 다른 핵들과 연계해서 그 특징을 서로 교환하고 협력하게 하였다. 단, 청해진이라는 경제력과 군사력, 정치력 등을 겸비한 중핵을 통해서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장보고는 또한 이러한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인적 자원을 유기적인 시스템 속에 편재시켰다. 각 도시들에 조직적으로 역할을 분담시키면서 군사력을 동원하여 곳곳에 거주하고 있는, 신라 정부와 국적이 다른 민간 상인 조직을 연결시켰다. 그리고 본거지를 군항이며, 자유무역항으로 만든 청해진에 두어 재당 신라인과 본국 신라인, 재일 신라인들, 즉 범신라인들을 동시에 관리하고, 필요와 장소에 따라 역할 분담을 조정할 수 있었다.
청해진은 지정학적, 지경학적인 조건을 보더라도 해양 질서가 강하게 작용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국제 교역의 중심에 놓일 만한 자연 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정치적인 지원 아래 경제특구나 자유무역지대 등의 특수한 공간을 설치할 만한 곳이었다. 현대의 자유무역지대는 한 나라가 국제 무역과 상업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일정 조건 아래 외국 화물에 대하여 개방해 준 지역을 말한다. 그리고 관세 및 제세공과금이 면제되며 일정한 지역 내에서는 상품의 반입, 반출, 가공처리, 저장 등이 자유로운 특정구역을 일컫는다.
청해진은 이에는 못 미칠지라도 상당한 자유 활동을 보장받았던 곳으로 보인다. 적어도 단순하게 경유지나 통과지의 역할을 하는 환적항은 아니었으며, 물류 중심지의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당나라와 서역, 신라, 일본의 화물들은 물론 사람들도 청해진에 기항해서 상설 시장에서 서로 간에 교환 매매가 이루어지고, 다시 팔려 나가기도 하였을 것이다. 일종의 현지 중계 무역이 이루어진 것이다.
청해진은 국제 교역을 국내 산업과 연결시킬 수 있는 수륙 교통의 요지로서 주변에 생산과 소비, 운송을 담당한 강진․해남 등 배후 도시가 풍부한 해양 폴리스였다. 원자재들이 이런 주변 지역 혹은 신라의 수도권에서 가동되어 이곳을 통해서 수출되었다. 일종의 생산․교역 복합형 특구와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첨단 지식을 수용하고 기술 개발을 이용하여 물자를 생산한 다음에 이를 다른 나라에 판매하는 방식도 채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