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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오브 오일

마이클 이코노미데스 지음 | 산해
2. Red, White and Blue - 석유 제국, 그 정복과 확장의 역사살아있는 전설, 록펠러3. PRIMARY COLORS : 석유 지배의 3 요소(돈, 사람, 그리고 테크놀로지)돈, 테크놀로지, 사람(전문가). 이것은 석유산업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 즉 3원색과 같은 것이다. 석유사업은 태동기부터 비범한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모험가, 자본가, 식민주의자, 제국주의자, 그리고 평범한 포춘 헌터들까지 몰려들어 '홈런' 한 방을 때리려고 했다.돈테크놀로지1855년 열여섯 살의 존 록펠러는 경리 보조원으로 직업 세계에 첫발을 디뎠다. 그리고 1858년 4월 록펠러는 상업학교 동기생 모리스 클라크와 함께 농산물거래 합작회사를 차렸다. 두 사람은 각자 2,000달러를 출자했고 '클라크 앤드 록펠러'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1863년 '클라크 앤드 록펠러' 사는 석유 정제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얼마 후 록펠러는 이리 호와 곧 완공될 철도에 접근하기 쉬운 수송로 교차점인 엑셀저워크스에 첫 정유소를 건설했다. 록펠러는 원료용 석유 시장의 축소와 공급 과잉, 정유소의 빈번한 화재, 철도 수송의 개선과 시장의 확대, 그리고 주요 정유소와의 경쟁이라는 까다로운 환경에서도 번창했다. 그는 곧 정유소를 세 곳으로 늘렸고 사업장을 계속해서 통합해 나갔다.



그러나 록펠러의 정유소들은 다른 정유소보다 동부 연안의 소비자들과 멀리 떨어진 클리블랜드에 있었기 때문에 불리한 입장에 놓이기 시작했다. 가장 효율적인 입지 지역은 피츠버그였다. 록펠러는 운송에 따르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같은 지역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운송업체들을 이리저리 이용했다. 철도회사에 운임을 할인해 주지 않으면 석유를 뉴욕까지 수송하는 경로 중, 버팔로까지는 호수를 이용하여 바지선으로 나르겠다고 위협하여 철도운임의 75퍼센트 할인협상을 맺음으로써, 다음 40년 동안 결정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도 하였다.



1870년 '록펠러, 앤드루 앤드 플래글러' 합작회사는 존 록펠러를 회장으로 하는 공동출자회사 스탠더드 오일로 바뀌었다. 스탠더드 오일은 이미 미국 석유정제의 10퍼센트를 지배했다. 1872년, 당시 클리블랜드 정유업자들 대부분은 '공급과잉' 때문에 돈을 벌지 못하고 있었다. 록펠러는 40일 동안 26개 경쟁사 중 22개 사를 삼켰다. 이른바 클리블랜드 대학살이었다. 록펠러는 피츠버그도 노렸다. 1874년 록펠러는 피츠버그 정제시설의 절반과 필라델피아 최대 정유소를 손에 넣었고, 다음 2년 동안 피츠버그의 남아 있는 정유소들 21곳 중 20곳을 흡수하거나 문을 닫게 했다.



1877년 말까지 록펠러는 필라델피아, 타이터스빌, 볼티모어에 남아있는 정유소들을 모두 삼켰고, 뉴욕의 저항하는 정유업자들도 쓰러뜨렸다. 결국 록펠러는 엄청난 제국을 건설했고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는 철도회사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송유관 부설과 석유 생산 사업들을 시작했고, 외국 시장까지 점령하기 시작했다. 클리블랜드 대학살 이후 5년이 지난 시점에 이르자 존 록펠러는 38세의 나이로 미국 정유의 90퍼센트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쇄도하는 반독점 소송을 계기로 1911년 스텐더드 오일은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받고 해체된다.석유 업계와 산유국은 아주 많은 돈을 번다. 과거 15년 동안 격심한 가격파동을 겪었지만 석유 회사들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이라는 지위에 있고, 산유국들은 만약 석유가 없었더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막대한 현금을 원활하게 흐르게 하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그 투자 규모는 활성지수라 부르는 것으로 측정할 수 있다. 이것은 새로 발견되는 석유에 접근하여 하루 1배럴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기까지 들어가는 총 투자액을 달러로 나타낸 것이다. 이라크는 하루 1배럴을 새로이 생산하는 데 7,500달러의 개발비용이 들며, 사우디아라비아의 활성지수는 3,500달러이다.



1999년의 세계 평균 활성지수는 배럴당 2,000달러였다. 멕시코 만 대륙붕의 개발비용이 배럴당 1,000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멕시코 만 심해의 활성지수는 배럴당 9,000달러이지만, 기술 발전에 힘입어 앞으로 5년 내에 30~50퍼센트 정도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게 되면 투자의 균형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국가에서 심해 쪽으로 기울 것이다.석유 산업의 테크놀로지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기술이 중요하며, 그 활용과 통합이 석유 산업의 성공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석유 산업의 기술은 각기 다른 필요를 가진 여러 가지 분야에 다양하게 적용된다.



그렇다면 이토록 기술 의존도가 큰 석유 산업이 왜 연구개발비는 가장 적게 쓰는 것일까? 의약 부문은 매출액의 11퍼센트를 연구개발비로 쓴다. 전기전자 산업은 매출액의 5퍼센트, 화학 산업은 매출액의 4.1퍼센트를 쓴다. 반면 석유 산업의 연구개발비는 놀랍게도 매출액 대비 0.5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미국의 석유 산업은 세계 다른 지역의 새로운 유전들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버텨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유전지역이 발견되면서 성숙 유전에 필요한 기술개발은 비용 측면에서 시장을 지배할 만한 경쟁력이 없어졌다. 불행하게도 기술개발이 기존 유전에서 생산을 늘리는 데에 크게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숙 유전이 아무리 매력적이더라도 새로운 매장지에 접근하는 기술이 성숙 유전을 개발하는 어떤 기술보다 우선시된다. 멕시코 만 심해에서 회수(채굴) 가능한 석유 매장량은 460억 배럴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미발견 매장지들은 미국 석유 생산량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석유 산업의 연구개발비가 매출액에 비해 적게 투자되는 것이다.20세기 후반에 들어 세계가 테크놀로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기술을 가치와 동일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술은 쉽게 입수할 수 있고 사들일 수도 있지만,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기술적 진보를 뛰어넘어 혁신을 일으키는 능력, 즉 '기술 모멘텀'이다. 이것은 단순히 기술을 보유한 사람이 아니라 독특한 자질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기술 모멘텀이 나라마다 불균형을 보이는 것은 교육격차 때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카자흐스탄 정부의 핵심 요직은 서구의 유명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카자흐스탄인으로 넘친다. 그리고 국영 석유 회사들의 선임 기술자들은 모두 미국의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학력만으로는 무언가가 부족하다.



수익이라는 뚜렷한 경제적 목표보다는 정치적 유착에만 신경을 쓰는 국영 석유 회사들은 기업가 지망생과 기술 혁신가들에게는 무덤일 뿐이다. 이와 반대로 민간 거대 메이저 기업에서 교육받고 훈련받은 사람들은 크게 다르다. 이런 점에서 슐럼버거 만큼 성공한 회사는 없다. 이 회사는 매년 수백 명의 사원을 뽑아 이들을 철저히 '기술 모멘텀'을 갖춘 국제적인 인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석유의 빛깔은 초록색이다. 세상의 돈들이 온갖 빛깔을 띠고 있더라도, 석유의 가치를 정해 온 것은 초록색 미국 지폐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상상에서부터 벼락부자가 된 텍사스 석유업자들, 걸프 국가들의 허장성세한 소비에 이르기까지 석유는 늘 돈을 그리고 미국의 달러를 연상시켰다.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1973년 10월의 중동전쟁에 뒤따른 금수조치라는 행운이 겹치면서부터 돈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1970년∼73년까지 2달러에서 3달러로 완만히 올라가던 유가가 1973년 10월, 배럴당 5.40달러로 급등했다. 11월에는 나이지리아산 원유가 배럴당 16달러로 팔리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소문은 12월 중순 이란산 원유가 경매에서 배럴당 17달러 이상으로 팔리면서 사실로 확인되었다.



다음 10년에 걸쳐 일어났던 것 같은 부의 대이동은 이전에는 결코 없었다. 몇 가지 정치적 사건과 산유국 사이의 내부 갈등으로 유가는 배럴당 40달러 이상으로 폭등했다.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1980년대에 배럴당 100달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고, 전 세계 석유 소비국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넘쳐흐르는 돈을 주체하지 못한 산유국들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들까지도 게걸스럽게 소비했다. 카라카스의 중산층 가족이 플로리다에서 주말을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할 수 있었던 기회들이 서서히 무산되었다. 1983년 드디어 오일 머니가 바닥났을 때 라고스, 자카르타, 카라카스 주변의 판자촌들은 사회적·경제적 불안 상태를 겪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라비아 반도만큼 오일 머니의 충격을 심하게 받은 곳도 없었다. 부족들의 영지로 이루어졌던 이 땅은 광대한 사막에 인위적인 국경선을 그어 놓은 국가들로 바뀌었다. 이 나라들의 1인당 국민소득은 유럽 수준에 다다랐고, 미국의 절반을 넘는다. 그러나 단순한 산술로 계산한 1인당 국민소득은 아무 의미가 없다. 국가의 자산과 부족 지도자들의 개인적 부가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스탠더드 오일이 해체된 뒤 몇 개의 다국적 기업이 생겨났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로열더치, 대영제국의 셸, 이란과 이라크의 앵글로페르시안(BP), 프랑스령 아프리카의 토털피나처럼 식민지에 뿌리를 둔 회사도 몇몇 있었다. 이들 다국적 기업은 석유 비즈니스의 대부분을 지배했고, 기술적 우위로 독점을 유지했다.



1960년대는 석유산업에서 비교적 조용했던 10년이었다. 하지만 세계 석유 소비량이 급속하게 증가했고,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국가들이 엄청난 가치를 지닌 석유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들 신생국가들은 국영 석유회사들을 설립하였고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중동의 몇몇 나라들이 거대 다국적 기업의 사업장과 소유재산을 국유화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결국 OPEC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팔레비 이후의 이란, 리비아, 이라크처럼 서구에 적대적인 나라들이 석유를 무기화할 것이 우려되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들 분쟁국가가 서로 공동보조를 취할 가능성도 없었지만, 다국적 석유회사들이 다른 곳에서 에너지 자원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에는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이상으로 치솟자, 고유가 덕분에 이미 한계에 다다른 많은 유전들이 다시 주목을 끌었고, 개발이 어려워 방치되었던 지역도 막대한 탐사비용과 개발비용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움직임에 힘입어 탐사와 개발투자가 다양화되었고, 해상 개발이 급진전되어 모든 대륙에 걸친 수십 개 나라들이 상업성 있는 생산 체제에 들어갔다.



198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는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대충 맞추어졌다. 그러나 유가는 낮을 때는 배럴당 10달러에서 높을 때는 배럴당 30달러까지 크게 요동쳤다. 미국 동부의 겨울철 온도가 예년보다 2도 오를 것 같다거나, 심각한 경제위기의 여파로 아시아 석유 소비량이 1퍼센트 정도 감소한다거나, 이라크가 석유 수출에 대한 규제를 약간 풀 것이라는 발표가 나면, 또는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하겠다는 위협만 해도 유가는 갑자기 5달러씩 폭락하거나 폭등했다.



주요 생산 수출국들의 정체성은 지난 20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리비아처럼 비교적 인구가 적은 거대 산유국과 알제리, 인도네시아, 이란, 이라크, 멕시코,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처럼 인구가 많은 산유국이 여전히 석유경제를 지배하고 있다.탄화수소 생산이 주된 목적인 석유산업에서 대기로 배출되는 매연이나 기름 유출 문제 같은 것은 늘 우려의 대상이었고 비용과 홍보에 관련된 문제를 일으켰다. 엑손 발데스 호 기름 유출 같은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이것은 분명 석유산업이 가진 환경적 취약성과 잠재적 위험을 드러낸다.



하지만 석유 생산 과정에서 환경과 그 잠재적 문제들은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석유업계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더 이상 석유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리에 대한 논의가 아니다. 그것은 이 산업의 존폐 여부를 놓고 펼치는 전면 공격이다.1992년과 1997년 두 차례 열린 지구정상회담 동안 온실효과와 지구 온난화에 관한 다양한 출판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책을 많이 쓴 사람들은 이 논의를 주도했던 열성적인 환경운동가나 거시경제학자들이었다. 일반인들의 생각은 이들이 제시하는 과학적 '합의'에 따라 왔다갔다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의 주류 정치인들이 합류해 그 주장을 열정적으로 옹호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교토 협약 때까지 책과 발표의 홍수 사태가 이어지더니 1998년 중반 이후에는 대중매체에서 실제적으로 아무것도 표면화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일까? 지구 온난화에 대한 주장들의 대부분은 대재앙 모델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합의를 뒤집는 일련의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10년당 섭씨 + 0.18도씩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어 2100년까지 섭씨 2도가 상승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런데 기상풍선의 자료는 10년당 -0.02도에서 -0.07도까지의 범위에서 지구의 냉각 추세를 나타낸다. 인공위성이 수집한 자료도 -0.04도의 냉각 추세를 보여 준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구가 일부 기간 동안 따뜻해진 적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연구결과와 일치하지도 않는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사이비 과학적인 논의이다. 지난 빙하기 끝 무렵에는 온도가 갑자기 섭씨 16도나 상승했다고 한다. 분명 이것은 선사시대 인류가 자동차를 몰고 다녔기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180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에너지 경제의 변화를 살펴보면, 목재(탄소 함유량이 매우 높음)에서 석탄, 석유, 천연가스, 그리고 수소(탄소 전혀 없음)로 점차 탄소 함유량이 낮은 연료를 이용하는 쪽으로 변화해 온 것이 주목된다.



유가, 에너지 공급, 연료전지, 지구 온난화, 경제개발 등에 관한 의견 대립의 와중에서 천연가스는 공통분모가 된다. 천연가스는 다음 수십 년 동안 경제활동을 지탱하면서 환경집단들의 모든 합당한 소망들을 채워 줄 것이다. 천연가스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천연가스는 값싸고 풍부하다. 석유로 환산한다면 배럴당 15달러 이하이다. 둘째, 천연가스 연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석유나 석탄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영향력이 큰 시장인 미국이 천연가스 경제로 향하고 있음은 분명한 추세이다. 발전 부문에서 석유의 비중은 벌써 5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 또한 G-7 국가들도 가스 사용을 크게 늘리고 있는 추세이다.세계의 미래는 또한 에너지의 미래이기도 하다. 에너지는 제왕의 위치에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석유의 빛깔은 제왕의 빛깔인 자주색이라고 해도 좋다. 한편, 에너지 소비량을 줄인다는 방안은 결국에는 인류를 자멸로 이끌게 될 것이다. 에너지 사용은 미래에도 확대되어야 한다. 자원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가능한 대안과 첨단 에너지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세계는 에너지원을 확보해서 저비용으로 만드는 기술들을 개발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값싸고 풍부한 에너지야말로 인류 복지의 관건이다.앞으로 수십 년 동안, 비용을 쏟아 붓지 않으면 석유 생산은 세계의 필요량에 맞추어 늘어나지 못할 것이다. 현재 세계 석유 수요량은 하루 7,500만 배럴이며 지난 10년간 매년 2퍼센트씩 증가해 왔다. 이렇게 가정했을 때, 10년 뒤에는 하루 석유 소비량이 9,000만 배럴에 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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