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폴 크루그먼 지음 | 부키
재화와 자본 및 기술의 국제적 이동이 확대되면서 경제 게임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실이다. 국가는 더 이상 자국의 운명을 통제할 힘이 없으며, 각국 정부는 국제 시장의 처분에 따라 처지가 좌우된다는 것은 이미 하나의 통념이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발전을 찬양한다. 부국과 빈국을 막론하고 모두 혜택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 저널리스트와 노조 지도자와 민주·공화 양당의 정치인, 심지어 기업가들조차도 개탄을 금치 못한다.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 때문에 불안정성과 실업과 임금하락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두 입장 모두 오류가 있다. 국가 자율성의 사망이란 보고는 엄청나게 과장된 것이라는 점은 알지 못하고, 모두들 글로벌 마켓의 전능함을 당연한 사실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의 진군에 따른 매력은 분명 이해할 만한 것이다. 지난 반 세기 동안 세계 무역량은 생산량보다 더욱 급속하게 성장하였으며, 국제 자본은 오늘날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신흥 공업국의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는 수출은 선진국의 비숙련 노동자들에 대해 압력을 가하는 만큼 제3세계의 수천만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전 세계적 경제 통합이 증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실질적 증가세보다는 '글로벌 이코노미'란 수사법이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윌리엄 그레이더, 팻 뷰캐넌, 로스 페로 같은 사람들의 열변이 널리 확산된 결과, 많은 논객들은 자국의 경제적·사회적 병폐가 사실은 주로 국내적인 - 대체로 정치적인 - 요인 때문임이 분명할 때조차도 일단은 무조건 글로벌 마켓 때문이라고 비난해 놓고 보는 실정이다.
글로벌 마켓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경향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그 한 가지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현학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세계화에 관해 목에 힘주며 말하는 것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이나 사우스 캘리포니아 주의 힐튼 헤드에서 열리는 르네상스위켄드 같은 행사에서 주목을 받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그와 아울러 좀더 뿌리깊은 원인이 있다 - 좌파와 우파 사이에 기묘한 암묵적 합의가 있는데, 실제로는 순전히 국내적인 이유에서 행동하면서도 마치 외부의 세계화 세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인 척 하기로 하자는 것이다.
많은 좌파 인사들이 세계 시장을 혐오한다. 왜냐하면 세계 시장은 그들이 시장 자체에 대해 혐오하는 측면, 즉 담당자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보이지 않는 손이 대부분의 국내 시장, 그러니까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삶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그런 현실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측면에서 좀더 관리되는 사회로 복귀했으면 하는 이들은 아득히 먼 곳에 사는, 이름이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의 경제적 영향력에 대한 대중들의 불안감이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이데올로기적 실마리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편 많은 우파 인사들은 기업 활동에 여하한 사회적 책무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데 세계화의 수사법을 활용한다. 예컨대 그것은 '경쟁력'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미국의 기업 활동에 비용이 발생할수록 상품 가격이 높아져 세계 시장에서 밀려나게 된다고 경고하는 환경 규제 반대론자들의 전형적인 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 및 사회 정책을 제약하는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해외 요인은 하나도 없다. 우리에게는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들에 대해 현재 우리가 행하고 있는 수준보다 훨씬 더 잘 돌볼 만한 자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미국의 정책이 점점 더 한심한 방향으로 돌아간다면, 이는 정치적 선택에 따른 것이지 이름 모를 외부 세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글로벌 마켓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한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통화 정책에 대한 일반 대중의 생각은 두 분파에 의해 주도되는 추세에 있다. 한 분파의 구호는 '성장'이고, 다른 한 분파의 구호는 '가격 안정'이다. 그 중 어느 한 분파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발언할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고, 그러다 보니 언론인들과 정치인들의 경우 이와 같은 범주에 들어맞지 않는 경제 전문가들을 대하고 당황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다른 모든 목표를 희생시키든가(가격 안정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까), 아니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은 집어치우고 오직 성장만을 노리든가(그럼으로써 1960년대의 성장률을 만회할 수 있을 테니까) 할 수밖에 없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굳이 양자택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손쉬운 성장이라는 바보 같은 약속이나 가격 안정의 효능에 대한 맹목적인 신화 두 가지 모두를 거부할 수 있고, 또 거부해야만 한다.
오늘날 선진국들에서는 인플레이션이 한 자리 수 초반 대에서 안정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에 따른 비용을 추산하기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이 아주 높은 경우는 분명해서 사람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현금을 보유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같은 상황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더욱이 인플레이션의 비용은 실제 비율에 비하여 비선형적으로 움직인다. 즉 3%의 인플레이션이 끼치는 해악은 9%의 인플레이션이 끼치는 해악의 1/3 수준이 아닌 것이다.
가격 안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별로 크지 않다고 해도 그런 목표를 추구하는 게 왜 안 되는가? 왜냐하면 그런 목표를 추구하는 데 비싼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10% 수준에서 4% 수준으로 하락한 1980년대의 저 굉장했던 디플레이션은 오로지 장기간에 걸친 높은 실업률과 과잉 생산 능력 덕분이었다 - 미국의 실업률은 198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979년 수준으로 하락하였으며, 이때까지 산출물의 누적 손실은 1조 달러를 넘었다. 인플레이션을 제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데에는 그에 상응하는 '희생 비율'이 따를 것이라고 예상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 나머지 3% 포인트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미국 경제에서 쥐어 짜내려면 5,000억 달러 상당의 생산 손실을 추가적인 대가로 치러야 하였을 것이다. 실로 그것은 보잘 것 없고 파악하기 어려운 장기적 이들을 위한 단기간의 엄청난 고통이었다. 더욱이 이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인플레이션을 제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데에는 생산의 일시적인 희생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높은 실업률이 따를 수도 있다는 몇 가지 증거가 있다.
가격의 절대적 안정은 비용을 적게 들여 크나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단한 축복이라는 생각은 증거가 아니라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의 증거는 다른 측면을 강력하게 지적한다. 즉 가격 안정의 혜택이란 파악하기 어려운 반면, 가격 안정에 드는 비용은 막대하고, 제로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장기적으로도 좋은 일이 아닐지 모른다는 것이다.
구호로부터 자유로운 정책은 다음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첫째, 최종 목표로는 제로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적당히 낮은 수준, 가령 3% 내지 4%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잡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시장이 강요하는 실질 임금 삭감의 대부분을 조절하는 데 충분한 수준인 반면에, 인플레이션 자체의 비용은 그리 많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화 정책의 효과는 오래 지체된 후에서야 나타나는 만큼 좀더 조작 가능한 어떤 중간 목표가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경제학은 우리가 원하는 것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 그것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성장이란 좋은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인플레이션의 사망을 선언한다고 해서 저절로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의 현실만 보아도 가격 안정의 목표가 흔들리고 있다고 공언하고, 그 같은 자신들의 말에 곧이곧대로 충실한 주요 중앙은행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 캐나다와 프랑스의 중앙은행이 명백한 사례이다. 중앙은행의 성실성 덕분에 두 나라에서는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희생되고 있다.
유럽이야말로 한층 심각한 위험에 봉착할 것이다. 유럽은 - 미국보다 고용 사정이 훨씬 더 나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 가격 안정의 수사법이 별다른 이견 없이 통용되고 있어 실제 정책에 미칠 영향력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통화동맹(EMU)이 통과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 새로운 유럽중앙은행은 다른 무엇보다 가격 안정을 지고의 사명으로 존중하는 헌장 하에서 운영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기관이 스스로 분데스방크의 적자임을 입증해야 한다고 느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분데스방크는 단지 입으로만 따르는 척하던 정책을 유럽중앙은행은 실제로 실천하고자 힘쓸 것이라는 말이다. 그 결과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유럽의 실업 문제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지난 7월 말레이시아의 이웃 태국은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한 지 몇 달 만에 바트 화를 평가 절하했고, 이에 놀란 투자자들은 말레이시아 링기트 화(그리고 필리핀 페소 화와 인도네시아 루피아 화 등등)도 팔아치우고 떠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마하티르는 분노를 터뜨렸는데, 그의 분노는 이미 하나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마하티르에게는 완결된 음모론이 있었다. 즉 미국 정부가 (민주주의와 시민권 같은) 서구적 가치를 아시아에 강요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전천후 투기꾼 조지 소로스를 부추겨 아시아의 경제를 해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논평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한 소로스가 위기를 일으킨 주된 장본인이 아니기 때문에(오히려 그는 이번 위기를 예측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재미를 거의 못 본 듯 하다), 그리고 1990년대 초만 해도 말레이시아 정부가 통제하는 중앙은행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야심만만하고 무모한 통화 투기꾼들 중의 하나로서 거의 60억 달러를 잃은 다음에야 비로소 그 사업에서 손을 떼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유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통화 위기는 곧잘 정부관리들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한 나라의 경제는 어느 날은 신바람 나게 잘 나가서, 채권은 AAA 등급이고 외환 보유고는 수십 억 달러씩 남아돌기도 한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외환 보유고는 바닥나고 아무도 채권을 사지 않아, 불황을 유발시킨 수준에 맞추어 금리를 올려 주어야만 나라 안에 돈을 붙잡아 둘 수가 있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사태가 그토록 빨리 악화될 수 있단 말인가?
왜 그러한지를 알기 위해 통화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정부가 가령 금과 같은 어떤 품목의 가격을 안정시키고자 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만일 재고가 충분한 상태에서 시작했다면, 정부는 최소한 한동안은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 즉 가격이 목표 수준을 넘으려고 할 때마다 비축분의 일부를 내다팔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비축분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선경지명이 있는 투기꾼들이 재고가 소지될 그날 - 어쩌면 몇 년 후가 될 수도 있다 - 을 예측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은 이로써 기회가 오고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일단 비축분이 소진되면, 정부는 더 이상 가격을 안정시킬 수 없다. 가격은 곧장 급등할 것이다. 그러면 투기꾼들은 재고가 바닥나기 전에 그 품목을 일부 사들이기만 하면 된다. 되팔면 엄청난 자본 이득이 남는 것이다.
하지만 금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이러한 투기적 구매는 비축분의 소진을 가속화시켜, 결산일을 더욱 앞당길 것이다. 따라서 현명한 투기꾼이라면 동료들보다 한 발 더 앞서고자 하여, 좀더 일찍 구매에 나설 것이다 - 그러면 그로 인해 재고가 더욱 빨리 감소하여 조기 구매를 더욱 촉발할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정부 비축분은 오랫동안 서서히 줄어들다가 결정적인 지점 이하로 떨어지는 순간 갑자기 - 그렇지만 예측할 수 있게 - 대혼란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화 위기가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돌연한 일은 아니다. 표준적인 경제학 모델에서 진짜 원흉은 다름 아닌 정부 정책들의 불일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마하티르의 불평은 순전히 넌센스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일면 타당한 넌센스이다. 진실은 투기꾼들이 표준 모델에서 상정하고 있는 만큼 완전히 결백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투기를 노린 정교한 행동으로 인해 통화가 교란될 수 있다. 그러면 그러한 행동은 현실적으로 얼마만한 실효성을 발휘하는가? 그렇다, 조지 소로스는 1992년에 영국에서 농간을 부렸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심지어 소로스조차도 단 한 번 그리 하였을 뿐이다. 사실 그것은 놀랄 만한 대성공이었다. 당시 그는 10억 달러 이상을 번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파운드 화의 평가 절하에는 다른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었던 것이 또한 사실이며, 소로스가 정말로 위기를 야기했는지 아니면 위기를 예측할 만큼 현명했을 뿐인지는 불분명하다. 어쩌면 소로스 때문에 위기가 2-3주 일찍 당겨진 것인지도 모른다.
90년대의 또 다른 통화 위기들 - 은 금융계의 사악한 큰손들이 개입하지 않았음에도 일어났다.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었으며, 소로스가 1992년에 발견했던 것과 같은 기회는 거의 없었다. 통화 위기가 일어나는 것은 그 나라의 통화가 아직 공격은 받지 않고 있다고 해도 분명히 취약성이 있기 때문이다 - 아주 작은 약점이면 충분한데, 왜냐하면 이런 사태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일종의 머피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투기적 공격을 막을 도리는 전혀 없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자국 통화의 인출 사태를 대단히 효과적으로 방지할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 - 이를 '관대한 태만' 전략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는 단순히 투기꾼들에게 고정된 목표를 주지 않는 것이다. 투기꾼들은 미 달러 화를 대상으로 베팅을 하여 손쉽게 이득을 챙길 수는 없다. 왜냐하면 미국 정부는 어떤 특정 환율을 방어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이는 어떤 분명한 다운사이드 리스크도 이미 가격에 반영되어 있으며, 1년 중 어느 때라도 달러 화는 내려갈 가능성만큼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다른 하나 - 이를 '무조건 신뢰' 전력이라고 하자 -는 특정 환율에 대한 언질이 신뢰할 만하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길더 화를 공격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데, 왜냐하면 네덜란드는 독일 마르크 화에 고정시킨 길더 화를 유지할 능력과 의도, 둘 다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자국에서 돈을 가지고 나가려는 자들을 자제시킬 정교한 규제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투자자들이 돈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애초부터 돈을 들고 들어오는 일도 꺼릴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의 지도자들은 막대한 돈이 유입되고 있을 때에는 그 상당 부분이 수상쩍은 부동산 투기에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넘쳐나던 불합리성이 십중팔구 합리적인 조심성으로 바뀔 무렵에야 비로소 비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자신은 미국의 음모의 희생자라는 마하티르의 주장은 솔직히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난국에 대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탓해야 한다.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이 나보고 말하라고 한 것이 바로 그 점이다.삶을 영위하느라고 우주선 지구 호에 얼마나 많은 폐를 끼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다. 두어 달 전에 진보문제연구소라고 하는 기구에서 경제학자 다섯 명을 선정하여, 온실 가스의 방출을 제한하기 위한 진지한 방안을 촉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