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폰의 실패에서 배운다
박정훈 지음 | 바다출판사
닛폰의 실패에서 배운다
박정훈 지음
바다출판사/2002년 5월/298쪽/12,000원
1장 일본은 실패했다
개미형 경제의 몰락
엔화 가치를 폭락시키고 일본의 대외 신인도를 추락시킨 이른바 일본의 ‘금융 패전’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명법이 있지만 일본인의 본심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개미와 베짱이론’이 아닐까 한다. 가나가와 대학교 깃카와 모토타다 교수나 조치 대학교 와타나베 쇼이치 교수 등에 따르면 개미는 일본이고, 베짱이는 미국이다. 하지만 개미가 선(善)이고, 베짱이가 악(惡)이어야 마땅한 이솝우화식 세계관과는 정반대의 결말이 난다.
개미는 50여 년간 피땀 흘리며 일해서 마침내 물건 만들기(제조업)에 관한 한 세계 일등이 됐고, 세계 최대의 채권국가 자리에도 올랐다. 쌍둥이 적자(재정․무역적자)로 고생하는 베짱이를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했다. 미국 국채를 앞장서 사주었고, ‘플라자합의(1985년)’다 ‘구조조정 협의(1989년)’다 해서 숱하게 도와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베짱이는 돌연 새로운 게임의 룰을 들고 나와 애써 축적한 국부를 빼내가기 시작했다. 시장 원리며 투명성과 정보 공개며, 베짱이가 “보편적 질서”라고 주장하는 것도 개미가 보기엔 ‘월 스트리트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글로벌 질서를 지탱하는 IMF, 신용등급회사, BIS(국제결제은행)의 이른바 ‘3종의 신기(神器)’도 따지고 보면 미국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개미의 세계관에 따르면 부란 최종적으로 물건을 만들어 파는 데서 창출된다. 금융이란 물건의 거래와 이동에 수반되는 종속적 존재에 불과하다. 실물경제만 튼튼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신념 아래 “좀더 좋은 제품을, 좀더 싸게”만 부르짖어왔다. 그러나 아시아 통화위기로 격발된 금융전쟁은 개미의 신념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려 놓았다. 금융 불안은 실물경제에 연쇄적인 타격을 미치면서 일본 경제 전반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 세계 최대의 채무국(미국)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일본의 전통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곪았다고 해도 “일본 은행의 신용등급이 어떻게 브라질, 멕시코와 같을 수 있냐.”고 깃카와 교수는 흥분한다. 경악과 절규의 시간이 흐르자 이윽고 개미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21세기는 금융이 실물경제의 우위에 있는 시대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다. 국가 경제의 실력을 가늠하는 패러다임 자체가 변했고, 결국 베짱이가 승리한다는 것으로 일본판의 ‘신(新) 이솝우화’는 끝을 맺는다.
1998년 봄 일본 금융 시스템의 교란과 대외 신인도 추락으로 상징되는 일본 경제의 위기는 이처럼 ‘개미형 경제’의 몰락으로 비유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제조업 만능주의’로 상징되는 일본식 모델의 한계를 여지없이 노출시키고 있다. 근면성과 높은 저축률, 물건 만들기 기술만으로는 21세기 경제 패권을 거머쥘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경제사의 실증인 셈이다.
엔화의 폭락으로 결말난 1998년 ‘엔․달러 전쟁’의 개전 초만 해도 일본은 자신감을 가졌던 듯하다. 일본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고 최대의 외환보유국이다. 무역에서 연간 10조 엔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흑자 규모는 갈수록 불어나기만 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이 보유한 3,000억 달러의 미국 국채는 상황에 따라 ‘최후의 카드’로 던질 수도 있다.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1996년 미국 방문 때 “미국 국채를 팔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있다.”고 한 마디 했다가 미 국채 가격이 폭락했던 에피소드도 있다. 일본으로서는 어느 모로 보나 질 수 없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일본의 철저한 패배였다.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자 무역적자국인 미국에 시종 주도권을 빼앗겼고, 엔은 달러에 마구 유린당했다. 일본계 은행의 신용도는 남미 수준으로 추락했으며, 국가 신용도마저 강등당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독자적인 엔화 방어력을 거의 상실한 채 미국의 협조를 구걸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도요타 자동차와 소니로 대표되는 일본의 제조업은 확실히 세계 최강이고, 연간 2,000억 엔의 기술 수출(로열티) 수입이 말해 주듯 기술력 역시 막강하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특허 출원국이고, 세계에서 활동하는 산업용 로봇의 60%가 일본제이다. 그러나 제조업에 집착하는 일본식 패러다임은 이제 시장에서 통용되질 않는다.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제조업의 분발로 지탱되는 무역흑자나 대외 자산 규모 같은 표면적 실적이 아니다.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일본 경제의 구조적 약점을 집요하게 추궁하고 있다. 부실화된 금융 구조, 그로 인한 장기 불황 구조가 엔의 몰락을 파생시킨 본질적 원인이다.
과거 일본 경제라는 항공기는 제조업 엔진의 추진력에 의지해 쾌속 항진을 거듭해 왔다. 금융이란 엔진은 상대적으로 약했지만 세계 경제의 폐쇄적 체제 아래서는 큰 문제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초 버블 붕괴는 금융의 엔진을 결정적으로 고장나게 만들었다. 800조 엔의 자산 가격이 일거에 소멸됐다는 버블 붕괴로 인해 일본의 금융기관들은 100조 엔 가까운 부실채권을 떠안게 됐다. 때마침 불어닥친 금융 개방과 자본 이동 자유화 바람은 일본 금융에 결정적 타격을 안겨주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서구계 자본의 공세에 일본 금융은 연전연패의 퇴각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금융전쟁의 심각성을 깨닫는 것도 더디기만 했다. 보호에 익숙해져 있는 일본 금융은 개혁의 어설픈 시늉만 냈고, 대장성도 규제의 기득권을 놓으려 하질 않았다. 그러나 미국이 쥐고 있는 신용평가기관과 BIS 기준이라는 칼자루는 일본 금융의 본질적 약점을 용서하지 않았다.
금융 부실화의 영향은 곧이어 실물 경제로 파급됐다. 금융기관들이 자금 회수에 나섰고, 그로 인한 시중자금 경색은 중소기업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졌다. 실업자가 양산되고, 장래에 불안을 느낀 소비자들은 씀씀이를 일제히 줄였다. 금융의 부실 구조에서 파생된 빈곤의 악순환 구조는 일본 경제를 장기 불황에 몰아넣었다. 교토 대학교 사에키 게이시 교수는 “세계 경제전쟁의 전장이 이동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좋은 제품을 값싸게 파는 것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제조업 전쟁이었다. 하지만 21세기형 경제전쟁에선 주 무대가 금융과 정보기술이 제조업을 지배하는 ‘버추얼 경제’인 것이다.
일본 경제의 불행은 일본식 모델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쳤던 탓일지도 모른다. 신화와도 같은 고속성장의 성공담은 일본의 변신을 더디게 만드는 장애 요인이었다.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비해 일본의 개혁 속도는 너무 느렸고, 특히 관료와 정치권은 변화하길 거부했다. 일본의 자신감은 1980년대 후반 절정에 달해 있었다. “일본식이 최고”라고 했고, “이젠 서구가 우리를 배울 때”라며 한껏 자부심을 내비쳤다. 1990년대 들어 버블 붕괴로 ‘성장의 환상’이 깨진 뒤에야 50년간 피로가 누적된 일본식 시스템의 반성과 개혁이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의 개혁 노력은 시장의 평가를 받지 못했다. 지금도 일본의 특수성에 대한 시장의 불신과 적대감은 여전하다. 미국 등에선 ‘일본 이질론자’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그 이유를 평론가 사카이야 다이이치 씨는 “많은 분야에서 개혁 논의가 슬로건에 그쳤다.”고 압축해서 설명해 준다.
일본 금융기관의 신용도가 급락하고 금융 불안이 고조된 1997년 하반기 시장이 일본 금융에 ‘제재’를 가하면서 내세운 이유는 경영 정보를 불투명하게 감추는 일본식 관행이었다. 때마침 파산한 야마이치증권이 3,000억 엔 가까운 손실을 장부에 기재조차 안 하고 몇 년간 숨겨온 사실이 드러났다. 대장성이 묵인했다는 의혹마저 일었다. 서구의 기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본의 특수성에 시장은 고개를 돌렸다.
규제완화를 위해 숱한 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경제활동의 35~40%는 아직 정부의 규제를 받고 있다. 상장기업의 99%가 매년 같은 날 주총을 여는 담합 관행을 깨자는 제안이 재계에서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90% 가까운 회사가 아직도 동시에 주총을 열고 있다. 잇단 관료 접대 사건은 “일본은 관․업 유착의 나라”라는 시장의 확신을 굳혀주고 있다. 400명이 목숨을 잃은 ‘에이즈 약해 사건(1996년)’은 관료가 별로 변하지 않았음을 재확인해 준 충격적 사건이었다. 덕분에 금융기관 부실채권이 20여조 엔 뿐이라고 대장성이 아무리 우겨도 시장은 믿질 않는다.
오랜 논의 끝에 일본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 설정의 컨센서스는 이뤄진 듯 하다. 그것은 ‘탈 일본․초 미국식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쯤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일본식의 나쁜 요소를 버리되 미국식을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그 실행 속도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혁명보다 점진적인 개선을 선호하는 일본 특유의 방법론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광속 경제’의 시대에서 시장이 그리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2장 재팬 패러독스
왜 도쿄에 국제 금융시장이 형성되질 못하는가
‘세계 7대 불가사의’ 일본인의 형편없는 영어 실력을 스즈키 아키노리 아키타 현립 대학교 학장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필적할 수수께끼에 비유한다. 일본인의 토익 평균점은 말레이시아의 65% 수준(1996년). 1998년 토플 성적은 세계 221개국 중 북한과 같은 205위를 기록했다. 10명 중 4명이 대학에 진학한다는 경제․교육 대국의 성적표치고는 창피할 정도다.
일본의 ‘영어 음치 망국론’은 1998년 봄 최고조에 달했다. 금융이 위기에 몰리고 엔화가 폭락하던 시기였다. ‘금융 패전’을 둘러싼 수많은 분석과 복잡한 처방이 쏟아지는 가운데 재계 리더인 우시오 리조 경제동우회 대표간사는 간단한 설명법으로 누구도 말하기 꺼려하던 핵심을 찔렀다. “일본의 금융 불안은 정치인과 관료가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일본인은 영어에 자신이 없는 탓에 국제 회의만 나가면 몸을 사린다. 엔화의 폭락도 정부 당국자가 국제 사회에 일본의 실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탓이다.” 우시오 대표간사의 지적은 엔 약세 저지 작전과 금융 재상의 국제 협상을 담당하는 정․관계 라인이 하나같이 ‘영어 음치’인 점을 겨냥하고 있다.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그랬고, G7 회의에 나가 집중 포화를 받곤 하던 오부치 게이조 외상이며, 마쓰나가 히카루 대장상도 영어에 관한 한 벙어리에 가까웠다. 관료들은 반박했으나 일본 내 여론은 우시오 대표간사의 편을 들어주었다. 영어 실력을 지적한 그의 설명법은 세계 2위 경제력인 일본의 신용도가 남미 수준까지 추락한 이유의 상당 부분을 설명해 준다고 일본 언론은 해설했다.
1998년 7월, 독일 본에서 열린 G8(선진 7개국+러시아) 외무장관회담에서는 코소보 문제의 긴급 성명을 채택한 뒤 각국 외무장관이 일렬로 늘어섰다. 현안을 타결 지은 홀가분함 때문인지 각국 장관들은 웃어가며 옆 사람과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거기에 유일한 예외가 오부치 일본 외상이었다. 입을 다문 채 우두커니 서 있는 그의 모습은 ‘G7 선진국 클럽’ 안에서 소외되고 있는 일본의 실상을 말해 주고 있었다. “G7 서밋에서 정작 중요한 부분은 정상들이 통역 없이 주고받는 잡담과 개인적 친분을 다지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총리들은 말을 걸어오는 상대방을 피하기 바쁘다.” 경제기획청 장관을 지낸 데라사와 요시오 참의원은 『영어 음치가 나라를 망친다』는 충격적 제목의 책에서 이렇게 고발했다. 그에 따르면 역대 일본 총리와 외상 중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것이다.
미국 생활이 22년에 달하는 데라사와 의원은 일본 정치권의 대표적 국제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평생 영어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책에서 고백한다. 국제 회의에서 토론 내용을 알아듣지 못해 눈앞이 노래졌던 경험들을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영어 실력에서 일본 쇠락론의 실마리를 풀어나간 이 책은 정치인 저서치고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인의 영어 실력은 종종 외국인의 걱정거리로도 등장한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1999년 도쿄에서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21세기 인터넷 시대에 우려되는 일본의 최대 결정으로 영어 문제를 들었다.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 역시 “일본은 리더급 인사의 국제적 커넥션(인맥)이 없다는 점이 걱정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립 명문 게이오 대학교 경제학부는 몇 년 전부터 세미나 수업에서 영어 원서 교재 사용을 중단했다.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학생들의 하소연 때문이었다. 이 대학 도세 노부유키 교수는 “학생의 영어 어휘력, 독해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 원서의 영문 해석에 급급하다 보면 경제학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일본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를 찾다가는 밥을 굶기 십상이다. “마쿠도나루도”라고 ‘화제(和劑) 발음’을 하기 전엔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인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노구치 다카시 도쿄 대학교 교수는 도쿄에 국제 금융시장이 형성되지 못하는 이유로 “빈약하기 그지없는 영어 인프라”를 꼽는다. 맥도날드가 통용되지 않는 풍토에선 외국 금융기관도, 외국 자금도 몰려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영어 후진국이 된 원인은 역시 잘못된 교육 탓이다. 입시 목적의 암기 위주 영어 교육은 대부분의 대학 졸업자를 영어 벙어리로 만들고 있다. 중학교부터 영어 수업을 시작하는 것은 너무 늦다는 결론도 내려졌다. 이성에 눈뜰 시기인 중학생 시절은 어학에 필요한 집중력과 뇌 기능이 떨어지는 최악의 타이밍이란 분석도 나왔다. 반성 끝에 영어 교육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재계 단체인 경제동우회는 공공건설에 수십 조 엔을 쏟아 붓기보다 영어라는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할 것을 제안했다. 5,000명의 미국인 영어 교사를 초빙해 각급 학교에 배치하자는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기업들도 사원의 영어 실력 기르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마쓰시타전기는 올 봄부터 주임 승격(평균 28세)의 조건으로 토익 성적을 요구하기로 했다. 반도체 메이커 후지쓰는 사내 영어 붐을 일으키기 위해 회장 이하 전 직원 3만 명이 동시에 토익 시험에 응시, 화제를 모았다. 프랑스 르노 계열로 넘어간 닛산자동차는 사내 공용어를 영어로 정했다. 임원회의나 르노측 관계자가 참석하는 회의는 모두 영어로 진행된다. 입사시험 때 토익 점수를 반영하는 일본 기업 비율이 60%까지 올라갔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영어 교육 개시 시기를 조만간 초등학교 3학년으로 앞당긴다는 일정이 잡혀져 있다. 문부성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설학원에 초등하교 어린이의 주말 영어 교육을 위탁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했다. 우선 100개 시범지역에서 4~6학년 5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뒤 점차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사설 학원은 문부성이 오랫동안 적대시해온 학교 교육의 적이었다. 문부성이 자존심을 굽히고 ‘적’에게 손을 벌릴 정도로 일본의 영어 위기감은 고조돼 있다. 그런 가운데 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21세기 구상 간담회’는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정할 것은 제안, 화제를 모았다.
3장 실패의 본질
관료대국 일본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딱하다는 듯이 지적했지만 1990년대 들어 일본에선 경제 운용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관료주의와 시장주의 간에 치열한 투쟁이 벌어져왔다. “패전 후 일본 경제를 부흥시킨 주역이 우리”라며 과거 공적을 내세우는 관료조직에 대해 민간 부문은 경제적 자유와 규제완화를 외치며 공격을 가해왔다. 일본의 불행은 두 세력 간 투쟁 속에서 국가 지도자가 대체로 관료 쪽의 편을 들어주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재정 기반 확충을 이유로 1997년 4월 단행된 소비세 인상 조치가 대표적 예이다. 당시 민간 경제 분석가나 재계에선 겨우 살아나는 경기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며 세금 인상에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는 “경기는 이미 상승세를 굳힌 만큼 문제 없다.”는 대장성 등의 관료 말만 믿고 세율 인상을 단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