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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정전 지음 | 한길사
신자유주의들은 대개 시장과 민주주의의 조화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렇게 말하는 학자들도 많다. 반면 그에 고개를 가로젓는 학자들도 무척 많다. 사실 병행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무척 엉성하다. 시장을 주도하는 원리와 민주주의를 주도하는 원리가 엄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냥 다른 것도 아니고 근원적으로 다르다.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은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킬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정치적 자유를 신장시킴으로써 민주주의 실현에 기여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렇다면 시장은 자유의 신장을 통해서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가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다. 민주주의에는 평등도 중요하다. 시장은 평등을 지향하는 제도는 분명히 아니다. 좀더 엄밀히 말하면 절차적 평등을 민주적이라고 한다면 시장은 결과적으로 뿐만 아니라 '과정상으로도' 비민주적이다. 과정상으로 비민주적이라 함은 시장이 비민주적 의사수렴 방법임을 시사한다. 절차적 평등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특정인의 이름이 의사수렴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익명성,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만 동등한 자격을 가질 뿐만 아니라 결정의 대상이 되는 사안들도 등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중립성, 그리고 의사수렴 결과가 모든 참여자의 의사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민감성이 갖추어진 것을 말한다. 이것을 기준으로 봤을 때 시장이 과연 공정한 의사수렴 방법인가? 1998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센 교수는 이미 그보다 앞선 20여 년 전에 시장이 절차적 평등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비민주적 의사수렴 방법임을 증명하였다.



물론 시장이 민주주의 발달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시장은 개인의 자유 신장뿐만 아니라 민주적으로 해결하기 곤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어느 사회나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특히 배당의 문제는 국민 모두의 이해가 직결된 근원적인 문제다.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즉 모든 국민이 전적으로 승복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대부분의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사회는 큰 혼란에 빠져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배당의 문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정치적 과정을 통하는 방법과 시장을 통하는 방법이 있다. 말 그대로 정치적 과정은 1인 1표의 원칙하에 과반수의 원칙을 적용한다. 그러나 당장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자. 개인의 이익을 좇아 끊임없이 파당을 만들고 이합집산하는 정치에서는 어떤 방안도 확고한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어셔 교수는 소득분배의 문제 해결만큼은 정치적 영역 밖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그러나 각 영역별로 지배적인 정의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어떤 한 정의관이나 사상에 입각해서 시장이라는 제도가 정의로운지 아닌지를 한 마디로 잘라 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시장이라는 제도가 과연 공정한 또는 정의로운가를 너무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우리가 심각하게 문제삼아야 할 것은 어떤 한 영역이 계속 팽창해서 다른 영역을 침해하고, 그 결과 이 영역에서 통하는 정의의 원칙이 다른 영역을 지배하는 정의의 원칙과 첨예하게 충돌하고 나아가 이들을 압도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정치 영역의 비대화로 인한 월경이 문제이듯 경제 영역이 이상 비대화하여 성과주의 또는 시장원리가 정치영역을 지배하고, 사회화 영역까지 좀먹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시장원리의 확산이 인간의 상품화를 낳고 도덕심을 고갈시키고 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드는 측면을 살펴보았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 영역, 특히 경제 영역의 지나친 월경과 월권은 단순히 정의로우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성의 위기, 또는 사회적 통합의 위기를 초래하는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어떤 특정 영역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는 경향이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이 결과 어느 한 영역에 적합한 사고방식이나 규범이 그 정당한 한계를 벗어나 다른 영역을 침범함으로써 가치관의 혼란 및 체제 정당성의 손상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보통은 이런 한계를 벗어난 월경 현상을 대수롭게 보지 않지만, 바로 이런 현상에서 베버는 근대화의 위기를 보았고, 하버마스는 베버의 이러한 통찰력에 동감하면서 특정 영역의 이상 비대화로 인한 현대 사회의 위기에 주목한 것이다.시장은 대표적인 소득분배 제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민소득의 대부분은 시장을 통해서 분배된다. 물론 불평등이 심하긴 하지만 열심히 일하면 한몫 챙겨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한 줄기 가냘픈 희망이 서민들의 불만과 서러움을 달래 준다. 중요한 것은 시장이 소득분배의 문제와 일자리 분배의 문제를 맡아줌으로써 정치권이 이런 문제와 결부된 진흙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시장은 정치권을 혼란으로부터 방어하고 그럼으로써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 기여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셔 교수는 보편적인 시장의 존재가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요건임을 강하게 역설하면서도 동시에 자본주의 시장과 민주주의 사이에는 근원적인 모순이 존재한다는 점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각 체제를 이끌어 가는 원리가 모순이기 때문에 시장은 참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도의 기본요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시장이 이타심과 도덕심 함양의 원천인 가정을 해체함으로써 사회적 자본 형성의 근간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어떤 진보적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본주의 경제는 사람을 만들어간다. 이것이 만드는 사람은 민주주의 정서와 능력을 이상적으로 갖춘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한 예로 투표율이 낮아지는 근본적인 원인을 보자. 시장은 사람들에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그런데 투표하는 행위는 비합리적인 행위가 된다. 내 한 표가 내가 원하는 후보의 당락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현실은 유권자를 투표장 밖으로 몰아 낸다. 시장에서 습득한 합리성은 시민들을 이렇게 '합리적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시장은 가운데가 텅 빈 사회를 만든다. 시장은 사회적 자본을 갉아먹는다. 따라서 가족과 국가 사이를 이어주는 시민단체의 영역을 만들어 내는데 필수적인 사회적 자본이 고갈됨으로써 자연적 또는 자발적 지역 공동체의 해체 현상이 일어난다. 주위를 들러보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필요로 하는 사회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은 시장이 발달할수록 더 없어져 하고 우리 사회는 정부와 개인 사이가 텅 비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근원적인 것을 시장이 우리 인간의 정신이나 자질에 미치는 영향이다. 앞서 예로 든 투표행위는 합리적 계산의 대상이 아니라 공적인 행위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이기적 성향과 공익을 의식하는 도덕적 성향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시장은 이런 인간의 심성 중에서도 이기적 성향을 발달시키는 반면 도덕적 성향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공과 사의 분별에 대해 시장이 사람들의 성향에 미치는 영향에 추가하여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영향이 결코 우연하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라는 점이다. 즉 시장은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상을 주는 반면 공익을 증진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벌을 주는 구조적인 경향이 있다.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랫동안 시장경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의 빈부격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하다는 것과 온갖 재분배 노력에도 좀처럼 완화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빈부격차가 어느 정도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 펜 교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원지요 종주국이었던 영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실험을 해 보았다. 즉 소득을 하진 모든 영국 사람들의 키를 그의 소득에 비례하게 조정해 놓고 행진을 시켜 보는 것이다. 예컨대, 평균소득을 버는 사람은 영국의 평균 키를 가지게 될 것이고 평균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은 더 많이 버는 정도에 비례해서 영국의 평균 키보다 더 큰 키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키를 조정한 다음 키가 작은 사람부터 행진하도록 하되 한 시간에 모든 사람의 행진이 끝나도록 각자의 행진속도를 조정한다.



과연 행진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처음에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사람들의 행진으로부터 시작해서 10분쯤 지나면 키가 1미터 안팎의 작은 난쟁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난쟁이들의 행렬은 약 40분간 계속된다. 한 시간짜리 행진에서 끊임없는 난쟁이의 행렬만 40분 동안 본다는 것은 몹시 지루한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다. 그래서 펜 교수는 이 행진을 난쟁이의 행진으로 불렀다. 행진이 끝나기 12분 전쯤 되서야 비로소 평균 키를 가진 보통 사람들이 나타나고 행진이 끝나기 6분 전쯤에는 6척 장신들의 행렬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이고 2, 3분 후부터는 관람자들은 더 이상 행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게 된다. 고층빌딩보다 더 키가 큰 사람들을 비롯해서 머리가 구름 위로 뚫고 올라가는 거인국 사람들의 행렬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난쟁이의 행렬은 영국에만 적용되는 현상이 아니라 제대로 산다는 자본주의 나라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이 엄청난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을 어떻게 정의화할 것인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대부분의 소득이 시장에서 결정되며, 그 결과 난쟁이의 행진과 같은 현상이 점차 심화된다면,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제도를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가 정의론의 핵심이 되지 않을 수 없다.오늘날의 사회는 엄연히 자본주의 논리,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시장의 원리를 싫어하고 시장의 현상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애써 옹호하는 보수적 경제학자들은 이런 세인의 강한 거부감과 혐오감을 매우 의아스럽게 생각하기도 하고 몹시 속상해하기도 한다. 결국 신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해 낸 이유는 사람들이 무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대의견에 봉착할 때 이에 대한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은 이를 무식의 소치로 돌리는 것이다. 사실 반대의견을 역지사지의 자세로 꼼꼼히 씹어보는 성숙함은 우리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사실 시장이라는 현상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다. 따라서 시장에 대한 거부감이나 혐오감이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 뿌리도 깊다는 점을 곱씹어 보면 시장현상 또는 시장원리에 대한 이러한 감정을 단순히 무식이나 편견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오래 전부터 보통 사람들이 장바닥에서 느끼고 체험한 시장원리가 이러한 감정의 진원지라고 한다면 그 시장원리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바로 거래를 통한 상호이익 증진의 원리, 경쟁의 원리, 그리고 경제적 인센티브의 원리이다.



자유로운 거래가 거래당사자들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는 것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익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생활의 지혜이기도 하다. 다만 이것이 모두의 이익을 증진한다고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점도 익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늘 실감하고 있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자유로운 거래는 거래 행위 당사자들에게만 이익을 주지 제3자에게는 엉뚱한 피해를 주는 일이 허다하다. 요컨대 자유로운 시장거래는 매우 한정된 범위에서만 사회적 이익을 증진시킬 뿐이다. 오히려 자유로운 시장거래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지 못하는 일상 생활의 무수한 사례들이 사람들의 뇌리에 쌓이면서 시장원리에 대한 불신도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경쟁의 원리를 살펴보자. 사실 모든 경쟁이 말 그대로 선의의 경쟁이라면 누가 그것을 탓하랴. 보통 사람들도 경쟁이 지나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부정이나 불공정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너무나도 잘 안다. 오늘날 우리는 과다 경쟁, 불공정한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을 신물나게 볼 수 있다.그렇다면 선의의 경쟁만 있으면 해결되는가? 그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사회에 경쟁의 원리가 철저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 이것만큼 크게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있을까? 그들 말대로 요즘 세상은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어도 좀체 허락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이다. 어느 사회나 그 사회가 돌아가는 평균속도가 있다. 자본주의는 그 속도에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빨라서 이 속도를 무시하는 개인들은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런 큰 흐름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더라도 각 개인으로서는 이미 어쩔 도리가 없다. 따라서 각 개인이 무력감을 느끼면서 시장을 탁하고 세상을 탓하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인센티브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애국심, 애향심, 자비심 등.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과 경쟁심으로 사람들을 움직인다. 돈과 경쟁심은 중요하긴 해도 자본주의는 그것이 더 과장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무엇이든지 돈으로 해결하려 드는 태도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치사한 방법이다.



사람들이 시장에 혐오를 느끼는 이유에는 이러한 시장원리의 부작용뿐만 아니라 또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돈벌이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자본주의 시대뿐만 아니라 고대부터 사람들이 시장을 혐오해온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런 수천 년 역사의 영리행위에 대한 혐오감은 오늘날에도 기업의 비리와 비도덕성을 보면서 강력하게 각인되어 살아 있다. 자본주의로 들어오면서 상품이 순전히 돈벌이를 위해 생산됨으로써 불거져 나오는 문제는 마르크스가 경고한 것이기도 하다. 즉 자신과 가족이 먹을 생선어묵(사용가치)은 쥐와 파리가 들끓는 공장에서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묵이 순전히 팔기 위한 상품(교환가치)일 경우 생산자는 그것을 개의치 않게 된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사회가 바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인 것이다.



이러한 경제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되면서 시장 혐오증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리프킨 교수의 말대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사실상 모든 인간의 활동이 돈으로 거래되는 세상이요, 어느 날 아침에 깨어나 보니 나라고 하는 인간의 모든 국면이 돈으로 얽혀 있고 생활 자체가 결국 돈으로 주고 산 경험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이렇듯 현대 자본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삶의 다양한 국면을 상업적인 경제망 안으로 강제 편입시켰다는 것이다. 우리 일상생활의 구석구석은 상품화되었고 철학자들은 '현대의 악'은 소유와 권력에 대한 인간들의 광기 어린 욕망에서 발현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욕망에 자신들의 영혼을 저당잡히면서까지 자유인에 대한 환상을 좇고 있다.이와 같이 상품화의 물살이 워낙 거세고 시장의 비중이 커지다보니 시장에 대한 일반인의 정서는 이제 거부감 정도가 아니라 경계심과 위기감까지 느끼는 차원으로 번지고 있다. 여기에 추가된 것이 시장의 월권 행위이다. 상품화의 큰 흐름이 도도히 진행되는 가운데 시장의 영향력 또한 꾸준히 확산되어 그 결과 시장원리가 어떤 정당한 범위를 넘어서 월권을 하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오늘날 시장에 대한 우려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시장의 힘과 시장원리가 정당한 범위를 벗어나면 인간의 자존심 및 존엄성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시장 내의 원리와 시장 밖의 원리가 정면 충돌하는 것이다. 인간은 무한히 고귀하다고 말하지만 시장은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남과 비교될 수 없는 독자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 남과 노골적으로 비교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시장은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돈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사소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으며 인간마저도 천박하게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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