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몰락
고든 G. 창 지음 | 뜨인돌
중국의 경제 기적은 민간기업과 외국인들을 능숙하게 다룸으로써 가능했다. 그들은 규칙을 정하고 경기를 주도했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이제 끝났다. WTO 가입으로 더 이상 관료들의 말을 듣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베이징은 자유시장의 도입을 지연시켰고, 국내 기업들은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 준비가 덜 되어 있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의 더 많은 통제를 고집하면서 경제의 재집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오쩌둥은 "백화제방"이란 고사성어를 인용하면서 "백가지 주장을 허용하라."고 이야기했다. 수많은 관리들이 WTO의 규정들을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다양한 부처들이 저마다 다른 규정을 만들면서 외국인들과 싸워 이기기 위한 수많은 방식들을 고안해 낼 것이다. 중국의 관리들은 자신들의 해석에 의해, 또한 베이징의 다양한 부처, 전국의 다양한 성과 도시들은 중앙의 지도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며,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지역의 간부들에게 WTO의 규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수천 년 동안이나 계속된 역사와 문화를 바꾸는 데 협정서 한 장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한 남자가 땅바닥에 앉아 몸에 휘발유를 뿌린 후 스스로 불을 질렀다."라고 CNN의 레베카 맥키논은 보도했다. "네 여자가 함께 걸어 왔는데 그들의 몸도 불타고 있었고, 모두가 파륜궁의 명상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파륜궁의 신도들은 광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던지고 있었다. 파륜궁의 세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고 불만에 찬 중국인들, 특히 최근에 실업자가 된 사람들은 '저항의 상징'으로 파륜궁에 가입했다.
종말의 첫 번째 징후는 불복종이다. 사람들이 과감하게 체제에 대항할 때,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마지막 장은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는 많은 집단들이 중국 정부의 막강한 힘에 도전한다. 독실한 종교인들, 민주주의 옹호자들, 그리고 자신들의 참된 조국을 찾으려는 자들이 체제에 맞서고 있다. 하나의 세기가 다음 세기로 바뀌는 상황에서 중국은 이 많은 집단들과 싸우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중국 정부가 직면한 진짜 도전, 즉 수십 년 동안의 경제정책 실패로 야기된 혼란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큰 불만은 경제적인 문제이다. 현재 중국에는 7천만 내지 1억 3천만의 인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방황한다.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방황하는 실업자들과 사실상의 실업자들을 합하면 그 수는 거의 2억에 달할 것이다. 중국 정부가 자신들이 상상하는 적들과 싸우는 동안 전국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노동자들의 사회적 불만을 걸러낼 사회제도는 사실상 전무하다. 그리고 십수 년 동안 거리두기 정책을 펼치고 있는 공산당은 이제 인민에게서 멀어져 갔다. 공산당의 이념이 활력을 잃으면서 당의 목소리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다. 중국은 거대한 휘발유의 호수가 되었고, 그 누군가가 성냥을 그어 던지기만 하면 된다.마오쩌뚱의 중국이 개발한 국영기업은 고용의 창출자였을 뿐 아니라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정부조직이기도 하다. 근로자들은 평생고용과 주택, 의료, 교육, 직장에 대한 쏠쏠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받는 대가로 낮은 임금을 감수했다. 국영기업은 일종의 기업 마을로 기능했다. 1차 5개년 계획이 시행된 후 마오가 죽을 때까지의 23년 동안 중국은 비교우위이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와 같은 기본적인 원칙을 무시한 결과 중국에는 수십만 개의 산업적인 놀이동산이 생겨나게 되었다.
국영기업의 관리들은 당의 간부들이 중요한 기업들을 도산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당이 국영기업의 경제적인 산출이나 고용창출을 필요로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산당의 속성상 이들 기업이 생존해야 자신들도 생존한다. 국영기업은 공산당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공공 재산'인 것이다. 이제 국영기업들은 국내 대출의 거의 70%를 먹어치우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국영기업들도 여느 현대적인 사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거대 국영기업들은 은행의 대출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어쩔 수 없을 때만 대출금을 갚곤 한다. "우리가 지원하지 않으면 그들은 무너질 것이고, 그러면 우리도 무너질 것입니다." 국영 은행가의 말이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중국은 "국영기업의 개혁과 발전에서 풍요로운 과실"을 거두었다. 그런 밝은 소식들에 근거해 주룽지 총리는 3년이 되기도 전에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선언했다. 착각은 꼭대기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중앙정부의 자체적인 통계인 1998년의 60억 달러 수익은 정부보조금 180억 달러를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국영기업들은 실제로 12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한 것이다. 1999년과 2000년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 기간 동안에 국영기업들은 17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탕감 받았다. 그 다음으로 완전한 조작이 있있다. 2000년 12월에 발표된 감사 결과는 국영기업들의 99%가 금융부채를 잘못 기재한 것으로 확인했다.
국영기업의 개혁은 빠르게 진행되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국영기업들이 수익성을 강조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 중앙의 고위 간부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공산당은 이 간단한 해결책을 시행하려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첫 번째 이유로 공산당의 보수적인 간부들은 소련과 위성국가들의 급속한 붕괴를 보고 나서 빠른 개혁이 내재하고 있는 위험에 겁을 집어먹게 되었다. 둘째, 1994년 이후 강력한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공산당은 가장 무난한 해결책을 채택하는 길을 걷고 있다.
더욱 중요한 이유로 장쩌민은 중요한 국영기업들의 관리와 개혁에 공산당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며,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장쩌민은 당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어떤 개혁에도 저항하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기 어렵다. 다른 모든 것이 실패하면 공산주의자는 신기술에 의존한다. 그래서 베이징은 첨단기술이 제시하는 희망에 흥분하면서 국영기업들의 기술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들어가고자 하는 세상에서 사업은 수익 창출과 주주가치에 의해 평가되며, 기술은 수프의 한 가지 재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병든 국영기업들이 강화하려는 인터넷 경쟁력에서 장쩌민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그의 정책이 그런 가치의 파괴에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국영기업들은 여전히 멸종의 위기에 직면해 있고, 중국은 올바른 공식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아니, 왜 국영기업들에게 구원이 필요한 것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9. 동사가 없는 문장공산당은 그들 자신의 비전을 갖고 있다. "짐은 곧 국가"라는 말은 바로 공산당이 보는 역사적 사명과 운명이다. 그 결과 고인이 된 정치인인 천윤은 이야기했다. "부패와 싸우지 않으면 중국은 망할 것이나 부패와 싸우면 공산당이 망할 것이다." 공산당에게 '모든 것의 시대'는 거의 끝났다. 중국은 이념과 미래, 둘 중 하나만을 가질 수 있다.
이제 공산당은 거의 최대한으로 시스템을 개혁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WTO에 가입함으로써 경계선을 넘게 되었다. 그리고 상황은 곧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게 된다. "당연히 우리 당은 경제발전과 개혁에 헌신하고 있다." 장쩌민의 후계자로 부상한 후진타오는 말했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위해 이념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후진타오의 그 말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의미할 뿐이다. 즉 인민공화국은 언젠가 시간이 다하게 될 것이다.10. 동방에서 출현할 국가중국의 공안 당국은 1998년과 1999년에 각각 6만 건과 10만 건 가량의 시위가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2000년 8월에는 2만 명 가량의 장시성 농민들이 부당한 세금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을 뿐 아니라 지역 관리들의 공금 유용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현재 중국의 농촌에서는 불만과 적개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강력한 지도자만 있으면 언제든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니, 조만간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중국의 모든 집단들 가운데 농민들이 세계화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빚더미에 올라 있는 중국의 가난한 농민들은 미국의 거대 곡물기업들과 경쟁할 수 없다. 경제적인 궁핍에서 비롯된 절박감이 부패에 대한 분노와 결합하면 시위와 저항은 전국에서 일어날 것이며, 인민해방군과 중국 경찰은 미래의 한꺼번에 일어나는 인민들에게는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이미 예견되었듯 국영기업들 역시 수천이 아닌 수만 단위로 무너질 것이고, 돈이 바닥나고 WTO 규정의 제한을 받는 중국 정부는 그들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3. 산업적인 놀이동산오늘은 중화인민공화국의 50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난 며칠 후이다. "혁명은 이제 만찬파티가 되었다." 메기 팔리가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렇다. 혁명은 이제 만찬파티가 되었다. 마오쩌뚱을 사실상의 패배에서 완전한 승리로 이끌었던 그 열정은 이제 가고 없다. 공산당이 탄생한 여기, 이 도시에 혁명적인 것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1989년 봄, 공산당 인민일보의 부 편집장으로 일하는 왕뤄쉐이는 베이징 거리에서 학생들 및 근로자들과 함께 행진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1940년대 후반 시위에 참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이런 것이었다.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원한다." 나는 생각했다. "오, 맙소사! 그렇게도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 우리는 한 바퀴를 돌았네. 그리고 다시 똑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네!" 칼 마르크스 자신도 말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그리고 역사가 반복될 때 사람들은 마오의 시신을 천안문에서 옮길 것이고,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길을 갈 것이다.2. 휘발유의 호수1. 만찬파티끝이 보이지 않는 아스팔트와 시멘트 도로들이 중국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전국적인 경제를 만들고 있으며, 그 결과는 산업과 사회에 있어 강자가 약자를 몰아내며, 효율적인 생산자들은 제품가격을 낮추고 있다. 각 성 간의 경쟁으로 인해 중국은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 가격이 떨어지면서 경제는 침체된다.
베이징의 장밋빛 통계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덮고 있고, 정부의 빈약한 정책들은 경기회복이나 디플레이션 제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공산당은 나이키의 유명한 광고를 그대로 따랐다. "Just do it." 당의 간부들은 그냥 해 버렸을 뿐 아니라 너무 지나치게 했다. 중국 정부의 과도한 투자는 이제 경기 침체를 초래하고 있다. 베이징은 먼저 근로자들의 안전망을 도입했어야만 했다. 나름의 안전망이 있다면 근로자들의 지출은 높아질 것이고 디플레이션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치열한 가격전쟁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WTO 가입 이후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낮아지고 무역이 확대되면 가격하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베이징은 대규모 재정지출을 통해 디플레이션을 잠재우고 싶어한다. 또 다른 수단, 즉 공급 축소와 수요 확대도 동시에 꾀하고 있다. 게다가 십수 가지 다른 조치들을 통해 시장의 가격 경쟁을 막으려 한다. 관료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디플레이션과 싸우고 있다. 또한 수요도 높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국 인구를 구성하는 농민들과 도시 근로자들은 돈을 쓸 여유가 없다. 중국은 이제 더 이상 보여 줄 것이 없다. 상황이 위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천년이 시작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중국 경제는 갑자기 생명력을 얻기 시작했다. 성장률은 높아졌고 디플레이션은 떨어졌다. 외국의 경제학자는 2000년 중반에 얘기했다. "이제는 중국의 시간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우주에서 일어난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파륜궁의 지도자 리훙즈가 신통력을 발휘한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분명히 하늘에서 기적이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실제로 가격이 높아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엇이 높아지고 있다는 말인가?" 중국에서 가장 번창하는 도시 중 하나인 상하이에서 모든 것의 가격이 떨어지고 있음을 베테랑 신문기자는 알고 있다. 중국의 산출통계는 믿을 것이 못 된다. 1999년의 국내총생산 수치는 연말이 되기도 전에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중국과 같은 광대한 나라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모양을 고려해 통계전문가들은 2천년의 GDP를 2001년에 발표했다. 늘 그렇듯이 이런 뻔뻔스런 조작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이다. 경제성장 가운데 상당 부분은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GDP에 포함되지 말아야 한다.
누구도 중앙정부가 떠 안아야 할 부채의 규모를 알 수 없다. 하지만 1999년의 공식적인 통계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만들기 위해 중국은행들의 회수불능 부채를 정부의 직접부채에 포함시켜 보자. 그렇게 하면 중국의 총 누적 부채는 GDP의 64.7%가 된다. 이것은 국제적인 안정 한계 60%를 초과한다. 만일 다른 모든 사항들을 추가로 고려한다면 중국의 재정 상태는 실로 위험스럽고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경기회복도 시급한 과제이다. 주식시장의 부양이라는 희한한 정책이 실패하면서 베이징은 이번에는 당근과 채찍을 같이 사용했다. 1999년 11월부터 저축이자에 20%의 세금을 매겼다. 동시에 '휴가 경제학'이라 불리는 것으로 인민들에게 더 많은 여가를 주었다. 그러자 두 달 후에는 기록적인 숫자로 여행과 지출을 했고 베이징은 기뻐했다. 하지만 이것도 세계 최고의 저축가인 중국인들에게는 먹혀들지 않고 있다. 또 하나의 미봉책으로 베이징은 수출이 성장함에 따라 수출에 막대한 지원을 한다. 그러나 정부의 보조금은 결국 국가의 지출로 이어지며, WTO 가입은 일부 차별적인 수출관행을 종식시키게 될 것이다.
중국 정부는 쉬운 개혁들은 이제 모두 사용해 보았고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다. 국영기업들의 모습은 흉칙하다. 이들은 엄청난 자원을 집어삼키고 있고, 은행들은 지급불능의 상태에서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 중앙의 계획가들은 현재의 체제를 구하려는 노력 속에서 효율적인 민간기업들과 외국인 투자가들을 질식시키고 있다. 중국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경쟁과 개방이다. 부패도 해결해야만 한다.
장쩌민 주석의 중앙정부는 항상 현실감각이 부족했다. 중국은 1999년 인민공화국 창건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준비에 무려 40억 달러를 지출했다. 달에 인간을 보내기 위한 계획은 천문학적인 액수를 잡아먹을 것이다. 외국 전문가들은 중국의 모든 것이 잘 돌아간다고 얘기하지만 정작 본토의 분석가들은 위기의 가능성을 예고한다. "밀물이 빠져나가야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미국의 투자가인 워런 버핏은 말한다. 이제는 밀물이 빠져나가고 있으며, 조만간 우리는 누가 수영복도 없이 물 속에 있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4. 인터넷과 공산당의 미래중국의 주식시장은 뿌리까지 썩고 있으며, 이 사업에서 가장 전통적인 수법은 싸게 주식을 산 후 근거도 없는 낙관적인 전망으로 주가를 올리고, 그런 후 시장이 정점에 달할 때 팔아버리는 것이다.
정저우 바이원은 상장된 기업들 가운데서 처음으로 도산한 기업이 되었는데, 이후 괴상한 연극이 펼쳐지면서 시와 성과 정부는 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기를 썼고, 정저우 바이원의 주가는 파산신청 후 오히려 높아졌다. 관리들이 이 회사에 관한 정보를 검열해 유리한 소식만 전했기 때문에 주가는 한 달 동안 31%나 급등했다. 정저우 바이원은 2000년 말에 마련된 복잡한 조정안에 의해 구제를 받았다. 조정안에서 이 회사의 최대 채권자는 보유 채권의 75%에 해당하는 1억 8천만 달러를 상각해야만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