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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몰락

고든 G. 창 지음 | 뜨인돌
1. 만찬파티



오늘은 중화인민공화국의 50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난 며칠 후이다. "혁명은 이제 만찬파티가 되었다." 메기 팔리가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렇다. 혁명은 이제 만찬파티가 되었다. 마오쩌뚱을 사실상의 패배에서 완전한 승리로 이끌었던 그 열정은 이제 가고 없다. 공산당이 탄생한 여기, 이 도시에 혁명적인 것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1989년 봄, 공산당 인민일보의 부 편집장으로 일하는 왕뤄쉐이는 베이징 거리에서 학생들 및 근로자들과 함께 행진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1940년대 후반 시위에 참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이런 것이었다.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원한다." 나는 생각했다. "오, 맙소사! 그렇게도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 우리는 한 바퀴를 돌았네. 그리고 다시 똑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네!" 칼 마르크스 자신도 말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그리고 역사가 반복될 때 사람들은 마오의 시신을 천안문에서 옮길 것이고,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길을 갈 것이다.

2. 휘발유의 호수



"한 남자가 땅바닥에 앉아 몸에 휘발유를 뿌린 후 스스로 불을 질렀다."라고 CNN의 레베카 맥키논은 보도했다. "네 여자가 함께 걸어 왔는데 그들의 몸도 불타고 있었고, 모두가 파륜궁의 명상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파륜궁의 신도들은 광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던지고 있었다. 파륜궁의 세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고 불만에 찬 중국인들, 특히 최근에 실업자가 된 사람들은 '저항의 상징'으로 파륜궁에 가입했다.

종말의 첫 번째 징후는 불복종이다. 사람들이 과감하게 체제에 대항할 때,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마지막 장은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는 많은 집단들이 중국 정부의 막강한 힘에 도전한다. 독실한 종교인들, 민주주의 옹호자들, 그리고 자신들의 참된 조국을 찾으려는 자들이 체제에 맞서고 있다. 하나의 세기가 다음 세기로 바뀌는 상황에서 중국은 이 많은 집단들과 싸우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중국 정부가 직면한 진짜 도전, 즉 수십 년 동안의 경제정책 실패로 야기된 혼란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큰 불만은 경제적인 문제이다. 현재 중국에는 7천만 내지 1억 3천만의 인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방황한다.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방황하는 실업자들과 사실상의 실업자들을 합하면 그 수는 거의 2억에 달할 것이다. 중국 정부가 자신들이 상상하는 적들과 싸우는 동안 전국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노동자들의 사회적 불만을 걸러낼 사회제도는 사실상 전무하다. 그리고 십수 년 동안 거리두기 정책을 펼치고 있는 공산당은 이제 인민에게서 멀어져 갔다. 공산당의 이념이 활력을 잃으면서 당의 목소리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다. 중국은 거대한 휘발유의 호수가 되었고, 그 누군가가 성냥을 그어 던지기만 하면 된다.

3. 산업적인 놀이동산



마오쩌뚱의 중국이 개발한 국영기업은 고용의 창출자였을 뿐 아니라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정부조직이기도 하다. 근로자들은 평생고용과 주택, 의료, 교육, 직장에 대한 쏠쏠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받는 대가로 낮은 임금을 감수했다. 국영기업은 일종의 기업 마을로 기능했다. 1차 5개년 계획이 시행된 후 마오가 죽을 때까지의 23년 동안 중국은 비교우위이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와 같은 기본적인 원칙을 무시한 결과 중국에는 수십만 개의 산업적인 놀이동산이 생겨나게 되었다.

국영기업의 관리들은 당의 간부들이 중요한 기업들을 도산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당이 국영기업의 경제적인 산출이나 고용창출을 필요로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산당의 속성상 이들 기업이 생존해야 자신들도 생존한다. 국영기업은 공산당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공공 재산'인 것이다. 이제 국영기업들은 국내 대출의 거의 70%를 먹어치우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국영기업들도 여느 현대적인 사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거대 국영기업들은 은행의 대출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어쩔 수 없을 때만 대출금을 갚곤 한다. "우리가 지원하지 않으면 그들은 무너질 것이고, 그러면 우리도 무너질 것입니다." 국영 은행가의 말이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중국은 "국영기업의 개혁과 발전에서 풍요로운 과실"을 거두었다. 그런 밝은 소식들에 근거해 주룽지 총리는 3년이 되기도 전에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선언했다. 착각은 꼭대기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중앙정부의 자체적인 통계인 1998년의 60억 달러 수익은 정부보조금 180억 달러를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국영기업들은 실제로 12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한 것이다. 1999년과 2000년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 기간 동안에 국영기업들은 17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탕감 받았다. 그 다음으로 완전한 조작이 있있다. 2000년 12월에 발표된 감사 결과는 국영기업들의 99%가 금융부채를 잘못 기재한 것으로 확인했다.

국영기업의 개혁은 빠르게 진행되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국영기업들이 수익성을 강조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 중앙의 고위 간부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공산당은 이 간단한 해결책을 시행하려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첫 번째 이유로 공산당의 보수적인 간부들은 소련과 위성국가들의 급속한 붕괴를 보고 나서 빠른 개혁이 내재하고 있는 위험에 겁을 집어먹게 되었다. 둘째, 1994년 이후 강력한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공산당은 가장 무난한 해결책을 채택하는 길을 걷고 있다.

더욱 중요한 이유로 장쩌민은 중요한 국영기업들의 관리와 개혁에 공산당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며,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장쩌민은 당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어떤 개혁에도 저항하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기 어렵다. 다른 모든 것이 실패하면 공산주의자는 신기술에 의존한다. 그래서 베이징은 첨단기술이 제시하는 희망에 흥분하면서 국영기업들의 기술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들어가고자 하는 세상에서 사업은 수익 창출과 주주가치에 의해 평가되며, 기술은 수프의 한 가지 재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병든 국영기업들이 강화하려는 인터넷 경쟁력에서 장쩌민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그의 정책이 그런 가치의 파괴에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국영기업들은 여전히 멸종의 위기에 직면해 있고, 중국은 올바른 공식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아니, 왜 국영기업들에게 구원이 필요한 것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4. 인터넷과 공산당의 미래



베이징의 중앙정부는 풀기 어려운 딜레마, 마오식의 표현을 빌면 '모순'에 빠져 있다. 그것은 성장과 인터넷인가, 아니면 정치적인 통제인가? 혹은 둘 모두 가능한가? 그런데 중국을 떠받치는 개념은 당의 독점과 고립이다. 공산당의 권력은 그것에 기반한다. 중국은 인터넷을 권장하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통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 공산당은 다양한 방식을 사용해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달성하려 한다.

그들은 인터넷 자체를 순찰하는 외에도 억압적인 규제에 의존하고 있다. 2000년 1월, 공산당의 국가기밀보호국은 포괄적인 인터넷 규제를 발표했다. 특히 이 규제들은 정부의 사전승인을 받은 후에 '정보'를 공개하고 '국가기밀'의 유출을 막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은 너무나도 광범위한 것이며, 실제로 시행되면 인터넷을 사실상 닫고 말 것이다. 이 부서의 장관은 극단적인 민족주의자 우지촨이다. 우장관은 1950년대의 생각을 갖고 21세기의 산업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외국의 인터넷 투자가들은 우의 발표를 듣고 나서 놀라움, 분노, 그리고 당혹감에 치를 떨었다.

결국 이런 갈등은 장쩌민의 주도로 중국이 WTO에 가입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하지만 중국에서 사업이란, 특히 첨단기술과 연관되어 있을 때는 관행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게다가 합의한 방식의 투자는 열 가운데 일곱은 실패한다. 오늘날 중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지나칠 정도로 민족주의적이다. 인터넷도 뿌리박힌 고정관념을 순식간에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 고립에 기반한 체제는 열린 구조에서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5. 절대로 망하지 않는 기업



세상은 인터넷 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중국은 아직도 마오가 개발한 소련식의 낡은 계획경제에 매달리고 있다. 병든 기업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려는 시도는 사업, 경제,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다. 한 예로 시틱 중공업은 계속해서 가라앉고 있는데 국가는 이 기업에 국고보조와 국영은행들의 대출금을 마구 퍼주고 있다. 시틱의 경우 파산만이 유일한 해결책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법에는 채권자들이 국영기업을 파산시킬 때 반드시 해당 부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게다가 파산이란 개념은 공산당의 사회주의 이념과 잘 맞지 않는다. '공산주의의 원대한 미래 계획과 불멸성의 이미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당의 시도까지 보태지면 왜 중국에서 파산이 잘 일어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다. 중앙정부는 채권자들이 파산법에 따르는 구조조정에 훼방을 놓았다.

자유로운 시장의 철학이 적용되어야 하는 분야에서도 정부의 관료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경쟁을 제한하려 한다. 베이징은 권투시합의 불안한 심판과 같다. 이들은 코피가 조금만 보여도 즉시 뛰어들어 기업들의 경쟁을 중단시키려 한다. 이들은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다국적 기업들과 같이 중국 기업들도 규모가 커야 하며, 이것을 위하여 국내 경쟁이 없어야 한다고 가정한다. 베이징은 이처럼 현실을 거꾸로 보고 있다. 규모는 성공의 보상이며, 둘 모두 경쟁의 자식임을 알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크리스 팁스를 비롯한 많은 외국인들은 중국 경제의 현대화를 도울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팁스의 상관은 중국에서 중앙정부의 간섭으로 그의 재능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를 상실당하자 그를 한국의 서울로 보내 더 좋은 일에 능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딘야르의 아버지인 루스탐 랄카카는 유엔개발프로그램에서 일했고, 중국 최초로 민간 인큐베이터인 '다캉'을 설립했다. 그것은 신생기업들에 필요한 자금, 노하우, 경영, 그밖에 여러 가지를 제공해 창업을 돕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명문 공과대학인 자오퉁이 다캉에 학생과 교수들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자오퉁대학은 정부의 간섭을 애걸하고 있다. 랄카카 부자는 이제 불가피성의 뜻을 알고 있다. 중국의 온갖 규제들 속에 국가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찬교수의 제의를 받아들여야만 다캉이 존재할 것임을 알고 있다. 장쩌민의 아들인 장이엔헝은 '상하이 뉴마진 벤처자본'이라는 인큐베이터를 출범시켰다. 이러한 신경제의 회사들은 부분적으로 국가 소유가 될 것이고 어쩌면 국가의 통제도 받게 될 것이다.

1988년 정부는 대학 연구소들의 성과를 산업화하려는 시도로 베이징의 중관춘과 중국 전역에 개발지역을 설치했다. 하지만 엉성한 모방은 성공을 약속하지 못했고, 중관춘은 '드라이버' 가게들로 변질되었다. 이곳에서 사용되는 신기술의 99%는 외국 기술이었다. 베이징은 새로이 더 큰 단지를 설립했지만 그 새 단지는 '중국에서 가장 큰 증권 사기'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이난 민유엔은 선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회사로 대부분의 자산을 갉아먹은 후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수익보고를 95%나 조작했다. 다음 해 정부는 이 회사를 베이징의 과학기술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게다가 이 사건에는 등소평의 가족 두 사람이 연루되어 있다. 과학원은 타협안으로서 중관춘을 모범적인 과학 및 기술공원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는 거의 환상적인 수준으로 선전을 시작했다. "우리는 중관춘을 세계적인 과학단지의 하나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곳은 10년 후 자본과 인재 모두 세계적인 중심지로 발돋움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좋아 보인다. 중관춘의 일부 기업들은 아주 좋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은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가? 그러나 외국인 투자가들이 중국의 첨단기술 회사들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복잡한 문제가 있다. 중관춘에 있는 기업들은 소위 말하는 '소유권 증후군'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중관춘이 인재들과 자본을 끌어 모을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중국이 지적 재산의 불법복제를 중단하고 투자가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개발한다고 가정해도 여전히 또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즉, 권위주의 사회에서 혁신은 과연 가능한가? 지금도 중관춘에는 가짜 신분증을 살 수 있고 해적판 소프트웨어를 복제할 수 있다. 중관춘은 또 일종의 조세피난처가 되어, 있지도 않은 회사들에게 우대적인 세금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중국의 산업정책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변한 것은 별로 없다. 지금 탄생하는 대부분의 첨단기술회사들은 정부의 간섭 때문에 조만간 실패로 끝날 것이다.

중국의 첨단기술단지들은 마오의 집단농장과 국영기업들을 연상시킨다. 관료들은 그런 식의 개발방식을 좋아하고 있다. 중국의 인큐베이터들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자금은 공짜이며, 이들은 전에 국영기업들이 그랬듯 자본의 비용을 인식하지 못한다. 중국은 공산당의 생존을 위해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를 통제하려 한다. 베이징은 2000년 1월과 9월에 규정을 만들어 민간 소유의 포털 기업들이 문을 닫게 하거나 정부 주도의 사이트들을 통제하려 했다. 이런 식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6. 가라앉는 은행들



베이징의 장엄한 중국은행부터 둔황의 허름한 신용금고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은행 시스템은 수억 명의 예금자들의 돈으로 두둑하다. 중국인들의 저축률은 거의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매년 40%에 달한다. 1999년 말 현재 저축액은 7,200억 달러에 달한다. 이 엄청난 저축을 갖고도 중국의 은행들은 국영기업과 중앙정부의 총애를 받는 기관들 외에는 돈을 빌려줄 곳이 없다. 또 이와 같은 대출금들은 대개 악성 부채들이다. 국가 소유 상업은행들의 진짜 상황은 어떤 것일까?

외국인들이 추산하는 1999년 말의 악성 부채는 무려 70%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정부의 대출금 분류 시스템은 너무나도 낙관적이다. 이들은 악성 부채와 회수불능의 대출금도 정상적인 대출금으로 분류한다. 중국의 농촌 금융 시스템을 지탱하는 4만 2천 개의 신용금고들도 죽어가고 있다. 이들의 지급불능 상태는 중앙정부도 인정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는 완전히 국가 소유인 상업은행 넷이 있을 뿐이며, 이 넷이 지배력을 행사한다. 그러면 4대 은행들은 지급가능 상태인가? 물론 그렇다. 이들은 살아있을 뿐 아니라 날로 번창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와 같은 체제에서 어떤 상황이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무부는 1998년 325억 달러의 자금을 국영은행들에게 지원했다. 다음 해에 베이징은 4대 은행 각각에 자산관리 공사인 AMC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부채를 자본금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AMC는 미국의 RTC 제도를 본 딴 것이다. 은행들이 구조조정을 할 때는 결연한 행동만이 효과를 발휘한다. 단계적이거나 부분적인 구조조정은 나쁜 관행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모든 일이 느리고 조심스럽게 진행된다. 더욱이 AMC들은 중국과 같은 정치적인 경제에서 성공할 가망이 없다. 국영기업의 후원자인 관리들은 빚에 찌든 자신들의 사업제국을 AMC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성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영기업들에서 볼 때 AMC는 또 하나의 우대정책일 뿐이다. 또한 스스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으로서 AMC들은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개혁의 촉매제라는 원래의 목적을 잊고 있다. 후에 AMC들은 국영은행들만이 아닌 국영기업들도 돕도록 변질되고 확대되었다. AMC들이 성공하지 못하면 중국은 결국 금융 시스템의 전면적인 재편을 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바뀐 시스템은 인민은행이 통제하지 못할 것이며, 그것을 통제하는 것은 외국의 은행가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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