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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경제 보고서

필립 코틀러 지음 | 홍익
아시아 경제 보고서

필립 코틀러, 허마원 카타자야 지음/황의방 옮김

홍익출판사/2000년 10월/340쪽/12,000원



1) ASEAN의 붕괴

1997년 5~6월: 태국의 바트화가 투기꾼들의 심한 공격을 받음. 타일랜드 은행이 적극적으로 개입.1997년 7울 2일: 타일랜드 은행이 바트화의 변동 환율제 채택을 선언하자 바트화가 달러당 28.80바트로 평가 절하됨(아시아 위기 촉발).

1997년 7월 11일: 필리핀이 페소(peso)화의 환율 변동 허용.

1997년 7월 17일: 싱가포르 달러가 1995년 2월이래 가장 낮은 수준인 달러당 1.46으로 절하됨1997년 7월 24일: 말레이시아 링깃(ringgit)화가 38개월만의 최저 수준인 달러당 2.65로 절하됨. 마하티르 총리가 ‘사악한 투기꾼들’을 공격함.

1997년 8월 13일: 인도네시아 환율 변동폭 폐지. 루피아화 달러당 2,470으로 폭락.

2) 아시아의 폭발

1997년 7월: 홍콩 통화당국(HKMA)이 홍콩 달러(HK dollar)에 대한 투기꾼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미화(US $) 10억 달러를 쏟아부음.1997년 8월 15일: HKMA가 이자율을 8%까지 대폭 인상하자 항셍(Hang Seng) 주가지수 2.4% 폭락.1997년 9월: ASEAN 통화가치 더욱 폭락.

1997년 10월 17일: ASEAN의 사태로 대만 달러가 5% 하락하여 달러당 29.89가 됨1997년 10월 20~24일: 항셍 주가지수 이 기간에 23% 이상 하락.

1997년 10월 27일: 월 스트리트의 주가 554포인트 폭락.

1997년 10월 31일: 인도네시아가 IMF와 미화 230억 달러 규모의 구조계획에 합의. 중앙은행이 16개 은행을 폐쇄 조치.1997년 11월 6일: 한국의 원화가 정부개입에도 불구하고 급락. 재정시스템의 건강이 의문시됨.1997년 11월 9일: 추안 리크 파이(Chuan Leek Pai)를 총리로 임명함으로써 태국의 정치마비가 일락 됨.1997년 11월 17일~21일: 한국정부가 원화 환율 방어를 중단하고 IMF와 미화 570억 달러 규모의 구조 계획안에 합의함.1997년 11월 24일: 일본 야마이치 증권 파산 선언.

1997년 12월 18일: 김대중이 한국 대통령에 당선.



3) 전세계적 여진

1998년 1월 5일: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이 IMF와의 제2차 협약에 서명.

1998년 1월 12일: 홍콩의 페레그린(Peregrine) 투자회사 파산.

1998년 1월 16일~19일: 대부분의 아시아 증권시장과 통화가 이 기간 동안에 강한 반등세를 보임.1998년 1월 22일: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달러당 15,000루피아로 폭락.

1998년 2월 10일: 수하르토 대통령이 루피아화의 대(對) 달러 환율을 고정시킬 통화위원회 시스템 (CBS)에 대해 언급하자 IMF는 이 구상에 반대함.1998년 3월 10일: 인도네시아에서 굶주림에 항의하는 학생 데모 시작.

1998년 3월 20일: 수하르토가 CBS 구상을 보류하고 IMF와 새로운 협상 시작.

1998년 5월 12일~14일: 인도네시아 보안군이 4명의 학생을 사살한 후 자카르타에 소요사태 발생.1998년 5월 19일: 러시아,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의 주가 폭락.

1998년 5얼 21일: 수하르토 사임. 부통령 하비비(B. J. Habibie)가 정권 승계.1998년 5월 29일: 홍콩 1/4 분기에 경제 규모가 2% 축소되었다고 발표.

1998년 6월 8일: 일본의 엔화가 달러당 140엔 이하로 폭락.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 우려 대두.1998년 8월~10월: 러시아의 위기가 라틴아메리카로 번지면서 전세계 경제가 붕괴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 대두.1998년 10월~11월: 투자가들 자신감 회복.





제1부 배경

아시아 위기의 이해

1997년 6월, 태국의 증권시장은 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7월 2일 태국정부는 그 동안 끊임없이 지속되었던 투기꾼들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환율 변동을 허용하였다. 이로써 바트화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바로 이날 아시아 위기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위기는 태국 정부가 바트화를 평가절하 하면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 폭발의 악영향이 태국에 인접한 국가들로 퍼져나갔다. 곧이어 ASEAN 국가들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한국, 홍콩, 베트남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로 위기가 번져나가면서 이제 아시아의 위기는 전세계 다른 국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타이타닉’호와 마찬가지로 아시아도 하나의 기적이라고 여겨졌었다. 국내외 투자자들이 아시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풍부한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희망을 갖고 이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걸쳐 이룩된 아시아 각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끌어들였고, 자신감이 아시아 전역에 팽배했다. 외국의 각 기업들은 거의 아무런 사전조사 없이, 또는 수박 겉 핥기 식의 조사만으로 이 지역에 투자하기 위해 달려갔다.

위기가 닥치기 전 몇몇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매년 엄청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예컨대 태국은 근 1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 나라는 인플레도 심하지 않았고 외환 시세도 안정되어 있었으며 언뜻 보기에 외환 보유고도 넉넉했고 절대적 빈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은 다른 나라들이 본받아야 할 역할 모델로 자주 태국을 거론했다. 또한 세계시장에서 일본의 성공을 모방하여 성공한 케이스로 꼽혔던 한국도 OECD에 가입하였고, 중국도 인상적인 경제 성장이라는 찬사를 보냈을 정도였다.

이 같은 인상적인 몇몇 아시아 국가들의 성취가 세계의 투자자들을 이 지역으로 불러들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 지역은 또한 풍부한 자연자원과 충분하리 만큼 값싼 노동력을 갖고 있었다. 세계인이 주목한 결과 아시아로의 투자가 극적으로 증가하여 적정 수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아시아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지역의 미래에 대해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아시아는 점차 현실 인식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밖에 화교의 네트워크가 계속해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네트워크는 신용을 중시했으며, 신용을 중시한다는 것은 금융의 조심성을 경시한다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예를 들면 홍콩의 페레그린 투자회사는 인도네시아의 스테디세이프사에 제반서류 절차도 완결되기 전에 2.6억 달러를 빌려주기도 했던 것이다.



제2부 국가 개조

지속 가능한 경제를 향해

신생국인데다 냉전의 여파로 전쟁까지 치른 한국은 운 좋게도 1960년대에 대만과 더불어 전략적,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맹주인 미국은 한국과 대만이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모델이 되어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미국은 자본과 기술적 원조를 제공하는 등 한국과 대만의 산업개발 과정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한국과 대만의 성공은 대체로 권위주의적인 동아시아의 많은 정부들을 자극해서 국가 주도의 발전 전략을 채택하게끔 했다. 이 발전 전략은 농업경제를 공업경제로 전환하는 단계에서 기업이나 재벌을 만들고자 하는 산업계의 개척자들에게 충분한 재정적 지원과 국내시장에서 보호조치를 제공하는 정책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런 단계를 거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서히 공업화된 국가로 탈바꿈했다. 1980년대 후반에 동아시아 4개국(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이 신흥공업국으로 등장했으며, 중국이 그 뒤를 따랐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도 뒤따랐다.

아시아의 경제발전 과정은 불행하게도 민주화나 인권존중 같은 정치적 발전과는 병행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시아 지도자들은 ‘아시아적 가치관’이라는 개념을 내세우면서 아시아가 경제와 정치를 발전시키는 나름대로의 방식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이 아시아적 가치관이 성공 전략의 하나로 순순히 받아들여졌고, 경제적. 정치적 왜곡 현상이 빈발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체제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아시아의 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하자, 아시아적 가치관과 아시아의 경제적 미래에 대한 신뢰가 급작스럽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제 신뢰감의 회복을 위해서 아시아 각국은 투명성과 공정성의 증진, 다시 말해서 경제적, 정치적 왜곡현상을 제거하는 것을 가장 시급한 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시아의 재건 과정은 태국이 경제개혁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IMF와 합의하면서 시작되었다. 위기가 시작된 지 1년 만에 태국은 회복되어 가는 경제의 가장 좋은 예로 꼽히게 되었다. 태국은 이제 시대에 맞는 관행을 확립함으로써 경제를 호전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나라의 공업부문 사업환경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재건 과정을 거친 두 번째 나라는 한국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이 나라는 1997년에 막 OECD 회원국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나라가 위기의 희생물이 되었을 때, 한국인들은 처음에는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결국 현실을 받아들인 한국인들은 냉철하게 현실에 임했다. 한국 국민들은 재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또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있었으므로 비교적 단기간에 경제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있었다.위기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은 인도네시아 역시 재건 과정을 시행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그룹들이 개혁을 받아들일 의지가 없었다. 개혁을 위해서는 결의에 찬 지도자가 있어야 했지만 수하르토는 그런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해 나가지 못했다. 새 대통령 와히드는 국제적인 지지를 얻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것은 인도네시아 경제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시키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경제 지표들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건에는 한국이나 태국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시아 경제의 재편성

아시아가 위기에 빠지자, 그 동안 아시아의 성장을 통해 이익을 취해 오던 많은 국제 투자자들이 일제히 손을 빼고 보다 안전한 미국이나 유럽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이제 위기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고, 몇몇 피해 국가들의 경제 지표가 조심스런 낙관을 허용할 수준에 이르자, 아시아 시장으로 다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유럽과 아메리카 양 대륙은 이미 ‘성숙된’ 시장이고 각기 3억이라는 비교적 작은 인구를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아시아는 급성장하는 시장일 뿐만 아니라 무려 25억의 인구를 가졌다. 이는 엄청나게 큰 잠재시장이며 게다가 아시아의 각종 통화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아주 헐값으로 투자할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

위기의 재도래 가능성을 피하고 국제 투자의 주 대상 지역으로서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아시아는 이제 과거와 과감히 결별하고 ‘거품경제’로부터 ‘지속 가능한 경제’로 자신을 재편성해야 한다. 이러한 재편성은 적절한 전술과 가치관을 기본으로 하는, 일관성 있는 전략을 실천해야만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내부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제도를 조정하여 실체화시킬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인들은 부유해지면 부유해질수록 정당성을 가진 정부, 경쟁력 있는 정부, 투명성과 공정성을 고루 갖춘 정부를 바라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32년간 권좌를 누려 온 수하르토가 강제로 사임하게 된 것은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본보기이다. 그에 비해서 싱가포르는 때때로 독재로 분류되는 나라이긴 하지만, 정부가 투명성과 공정성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민주화 요구가 잠재워지고 있다. 대만과 홍콩도 정권이 정당성을 보유하고 있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 기업전략의 열쇠는 포지셔닝(positioning)이다. 새로운 아시아는 자기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크고 다양하며, 떠오르는 지속성 있는 시장’으로 포지셔닝 해야 한다.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며, 세계 인구의 60%를 점하고 있다. 아시아는 또한 매우 다양한 나라와 산업 및 경제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 G-7의 멤버일 정도로 고도로 발전한 나라인데 비해, 캄보디아는 이제 겨우 개발의 길로 접어든 나라이다. 아시아의 경제적 잠재력은 무한에 가깝다. 아시아의 규모와 잠재성은 분명히 이 지역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으로 만들 수 있다.

아시아가 새롭게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술적 차별화를 부각시켜야 한다. 새로운 아시아의 전술적 차별화 내용은 세 가지로 나뉘어진다. 첫째, ‘가장 인구가 많고 다양한 경제’이다. 이는 세계 다른 지역과 명백히 차별화되는 독특한 내용이다. 둘째, ‘지역국가적 경제’이고 셋째, ‘아시아 주식회사’이다. 이것은 아시아의 역동적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지리적 경계와 정치적 차이를 극복하고 세계 시장에 진출할 것인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화를 통해 아시아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가치 기획’을 담아야 한다. 아시아의 ‘가치 기획’은 ‘적은 돈으로 큰 가치’를 주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시아 제품을 사면 고객은 자신이 지불한 돈에 비해 많은 가치를 얻는다는 것이 아시아의 브랜드 이미지가 되어야 한다. 이처럼 ‘적은 돈으로 큰 가치’를 얻는다는 최고의 효율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공급 체인 관리와 자산 관리 그리고 혁신적인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

아시아 문화와 비전의 재정립

위기(危機)는 위험과 기회라는 두 요소가 결합된 단어이다. 1997년 아시아 위기는 여러 나라에서 경제 활동의 급격한 쇠퇴와 빈민층의 수를 증가시켰지만 한편으로 그간 불가피한 현실로 여겨졌던 여러 관행들을 성장하는 경제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새로운 관행으로 대체할 기회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한 예로 일본의 급진적인 구조 조정을 들 수 있다. 게이레츠(系列)의 자국 산업 지배 축소, 외국인의 일본 회사 소유 제한 철폐, 평생고용제도의 개선 등 이러한 과감한 개혁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급진적 개혁을 통해 위기에서 회복되고 나면 아시아의 장기적 경제 전망은 세계 최고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시아의 위기는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어쩌면 그것은 변장하고 나타난 축복일 수도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자기 혁신을 통해 다가오는 시대에 대비해야 하고 자신의 사명과 비전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아시아의 재편성을 확실히 성공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공동체 기구를 재디자인해야 한다. 현재, 여러 개의 별도 지역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하나의 통합된 기구로 연결시켜야 한다. 이 연결 작업은 EU를 모델로 하여 ‘아시아 연합(Asia Union)'과 같은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제3부 기업의 활성화

지속 가능한 성공

아시아 경제 위기의 시기나 강도는 예상을 초월한 것이었고 대다수의 기업들은 불시에 위기를 맞았다. 아시아 기업들은 닥쳐온 위기에 대해 여러 방식으로 대응했다. 앤더슨 컨설팅사에 의하면 많은 아시아 기업들이 위기가 시작되었을 당시에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한다. 즉 비용을 절감하고 신규 투자를 연기했으며 투자 종목을 재구성하고 부채를 재조정했다. 물론 단기간의 생존 노력으로는 이러한 방어적 대응이 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앤더슨 컨설팅사는 보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위기 탈출용 대응방식을 아시아 기업들에게 조언했다.

아시아의 금융 위기가 시작될 당시 아시아 각국의 기업들은 시장 경쟁력과 재무상태를 감안하여 거품기업, 적극기업, 보수기업, 자립기업의 네 가지 형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거품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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