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틀렸다
매그너스 린드비스트 지음 | 리베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틀렸다
매그너스 린드비스트 지음
리베르 / 2010년 11월 / 255쪽 / 12,800원
제1장 너무 느린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싫어하는 성향'자본주의'란 단어처럼 사람들의 의견을 양극으로 갈라놓고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나 개념은 아마 드물 것이다.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이를 고압적으로 옹호하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자본주의가 진짜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이라고 비난한다. 또 공격자들은 이미 자본주의를 철저히 꿰뚫어보았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이 마치 환상과 같다고 말한다. 우리가 쿠바나 북한 주민이 아닌 한 분명히 자본주의 하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가계를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나 노력에 걸맞은 보수를 받으며, 우리가 소비하고 싶은 상품이나 용역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대가를 지불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중에는 아직은 소극적인 자본주의자로 분류될 만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아직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덜 나쁜 경제 시스템이다"라는 대중적 견해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자본주의 자체가 원인이든, 단지 그 부산물의 폐해이든 간에, 자본주의의 결점들은 가끔씩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2008년 가을의 글로벌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의 죽음'이란 말을 사람들의 인기 언어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심지어 그 시기 이전에도 매스컴들은 자주 개발도상국 경제체제에서의 노동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우라든가 뇌물, 거짓말, 사기를 일삼는 CEO 등 자본주의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보도를 한 적이 많았다. 그런 문제들이 정말 자본주의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것인지, 어느 사회에나 다 전해 내려온 결함 때문인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문제들이 자본주의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본주의의 이미지는 이미 더럽혀졌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 앞길의 어디에선가는 더 나은 대안이 떠올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거의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졌고, 잘 사용되었던 경제 제도인데도 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다. 왜 그럴까?
자본주의에 대해 가장 자주 등장하는 불평불만의 원인들은 거대 기업들의 번창, 시민사회의 몰락, 노동권과 시민권의 상실, 독과점, 빈곤층이나 못 가진 자들에 대한 홀대 등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주의'인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주의'가 붙음으로써 사람들이 신봉해야만 되는 무슨 사상같이 되어버리고, 공산주의나 파시즘처럼 사람들이 거기에 동조하거나 하수인이 되어 섬겨야 하는 것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판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오늘날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실은 어제의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서 자본주의는 엄청나게 변화하였다. 그렇지만 그 변화들은 아주 느리고 점진적인 것이었다. 변화가 그렇게 느릴 경우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속성이 있다. 느리고 점진적인 변화들은 매일매일 우리에게 닥쳐오는 급작스럽고 선정적인 메시지의 홍수하고는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테러리스트의 공격, 주식 시장 붕괴, 기업계의 스캔들, 불운한 사람들이 겪는 부당한 대우에 대한 매스컴의 무자비한 중점 보도에 눈이 멀어버린 우리는 좀 더 깊은 곳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 수준의 사건들을 전혀 보지 못한다. 이러한 점진적 변화는 우리 대부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본주의를 전혀 새로운 것으로 변형시켰다.
자본주의 다시 정의하기1~2백 년 전으로 돌아가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런 종류의 자본주의 체제는 당시에는 거의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것이 특징이었다. 약탈자 귀족들, 취약한 법령 제도, 존재하지 않는 상업 규제, 거의 없다시피 한 노동자 권리, 부패하고 독점화된 시장이 특징이었다. 이것은 자본주의 반대론자들이 이 시스템을 공격하기 위해서 아직도 거론하고 있는 주장들이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에 걸쳐서, 자본주의는 완전히 환골탈태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 변화는 서서히 점진적으로 일어나서 대개의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지금 거의 일상적인 수준에서 그 변화의 효과를 마주하며 살고 있다. 이 변화는 개인화라고 불린다. 집단이 아닌 개인이 인류문명 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오늘날은 어떤 분야에서든 개인들이 자신 있게 자기 견해와 비전을 덧붙일 수 있다. 이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개인에게로 이러한 권력의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한 마디로 오늘날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 남의 발목에 고무줄을 묶은 다음 그 사람을 절벽에서 밀어뜨리고는 그것을 번지 점프라고 이름을 붙여 수고비를 받아낸다. 판타지 소설을 쓰고, 더 나은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더 맛있는 햄버거를 개발하는 등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의 자유를 창출한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회사를 창업하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창업 등을 통해 개인들이 재산을 만들고 권력을 갖게 되면서 자본주의는 점점 변화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백만장자라면 무조건 모리배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의 백만장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고 한다. 그들은 말라리아 박멸운동, 빈곤 퇴치 사업, 녹색 운동 등 야심찬 목표를 추구한다. 이제 자수성가한 다양한 형태의 부자들이 다양한 세상을 펼쳐나가는 개인주의 판(版) 자본주의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제2장 매트릭스를 통해서 보기
질서로부터 혼란을 향해옛날 우리에게 처음으로 통계 숫자에 대해 알려주셨던 수학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여러분이 어떤 것들을 모아서 하나의 그룹으로 분류하는 순간, 정보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세계를 국가들과 국경의 렌즈를 통해 바라봄으로써 너무 많은 정보를 잃었다.
내 친구 한 명은(일단 그 친구를 Y라고 부르자) 칠레에서 태어나 1990년대 초에 난민으로 스웨덴에 건너왔다. 그는 스웨덴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정당들이 민족주의적 감정에 영합하던 시기에 비스웨덴인으로서 스웨덴에 살았다. '난민'이란 신분은 많은 스웨덴 사람들 눈에는 쓸모없는 희생자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이 Y란 친구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 친구는 스칸디나비아 최고의 경영대학원에 진학해서 졸업을 한 다음 런던으로 건너가 IT업계에서 일했고, 요즘은 뭉칫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 친구는 잘나가는 경영대학원 출신 난민인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아주 확고한 사회주의자로, 칠레의 좌파혁명 때 보수주의의 몰락을 지켜보았고, 그 때문에 결국 온가족이 산티아고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런던에서 자본주의자의 삶을 살고 있는 사회주의자라니!
더욱이 내 친구 Y는 동성애자이다. 그리고 아주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민족주의의 렌즈로는 이 Y라는 인물을 어떤 카테고리로도 규정할 수 없다. 게다가 나는 그런 사람들이 온 세상에 퍼져 있는 것을 본다. 피상적으로 관찰할 때에는 일정 부류로 쉽게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도, 표면의 한꺼풀만 긁어내고 보면 실제로는 고도로 다양한 배경과 갖가지 요소가 혼재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국가나 사회가 정상상태라고 여기는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정상적이란 말은 거대한 포물선의 한복판 어디쯤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Y같은 어떤 이상한 사람들을 곡선의 가장자리에 두고, 안전하지만 재미없는 다중을 곡선의 중심부에 두게 된다. 성적 취향은 이것을 설명해주는 아주 뛰어난 자료이다. 우리는 이성애를 정상이라고 여겨왔고, 그 밖의 다른 성적 취향은 모두 상궤를 벗어난 일탈이라고 간주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이성애자'라는 범주 안에다 한 가지로 분류함으로써,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잃어버리게 된다. 여러분이 직접 인터넷의 아무 포르노 사이트에나 로그인해서 이성애의 범위 안에 얼마나 다양한 갖가지 변주가 포함되어 있는지 한번 조사해보라. 물론 순전히 과학적인 연구 목적이다. '이성애'라는 허술한 표현 안에도 수천 수백 개의 서로 다른 페티시, 성적 선호물,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대상들이 포함되어 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성적으로 일탈해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만약 당신도 당신을 흥분시키는 바로 그 성적 대상물에 의해 흥분하는 유일한 인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비단 포르노만이 아니다. 음악, 책, 연금 펀드, 신문 같은 것들도 그것이 물리적인 방식으로 배급될 때에는 범위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다. 스웨덴에서 자라난 청소년들은 보통 헤비메탈 팬 아니면 전자음악의 팬이 되는 경향이 있다. MP3 기술의 출현과 함께 음악이 값싸게, 심지어 공짜로 얼마든지 배급되면서부터 그 하위분류 그룹 사이의 구별은 허물어져 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자기 음악 플레이어 안에 전 세계의 모든 음악의 스펙트럼을 디페쉬 모드(1981년 결성된 영국의 전자음악 밴드)에서 아이언 메이든(1975년 결성된 영국의 대표적인 록 밴드)에 이르기까지 꽉꽉 채워 넣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 시장의 초대형 시장은 다수의 시장이 되었다. 그래서 국적이라든가 한때를 풍미했던 '정상적인 것' 따위보다는 다양성의 극한에 이르렀다는 말이 인류를 보다 더 정확하고 정직하게 묘사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매트릭스를 통해서 보기1999년에 나온 SF영화 <매트릭스> 속에서, 세계는 기계들에 의해서 창조된 하나의 가상현실이며 아주 극소수의 개인들만이 이 '매트릭스'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전 세계적 현상의 가장 완벽한 상징이다. 국가 · 국경 · 산업의 경계선들은 누군가가 어떤 시점에 특별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들은 도구이지 자연의 법칙이 아니다. 그래서 쓸모 있는 역할을 할 수 없게 될 때에는 그 도구는 무너지고 사라져버린다. 그것이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이 세계의 현상이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보지 않으면 안 되는 현상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하지만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국가라든가 어떤 특정한 산업분야라는 허술한 경계선의 환상을 뚫고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매우 적다.
우리들 대다수는 기꺼이 대세의 흐름을 따라 함께 가는 편을, 그리고 경계선으로 가득 찬 렌즈를 통해서 세계를 바라보는 편을 더 좋아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국가들이라는 개념에 대한 도전을 자기들에게 대한 위협으로 여기고, 그것 때문에 일전을 불사할 태세인 경우도 있다. 민족주의 정치는 이것의 대표적인 징조다. 민족주의 이념의 정당들은 흔히 "민족의 혈통을 오염으로부터 막고 깨끗하게 유지한다"는 등의 횡설수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는 미안하게도, 미래는 온통 그 '오염'판이 될 것이다. 혈통에 있어서나 사업에 있어서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바위 속에 들어 있는 원자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처럼, 매일매일 기본적으로 우리 삶이나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수천 수백만 개의 아주 작은 변화들을 눈으로 포착할 수가 없다. 나이 먹은 어른들은 이 세상이 자기가 자랄 때와 똑같으며,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좀 예외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세계가 몇 해 전의 모습으로 어떻게든지 복귀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어떤 면에서든 더 살기 좋은 사회일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진입하려고 하는, 그러나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아직 보이지도 않는 세계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크고, 더 좋고, 그동안의 형태와는 분명히 다른 세계일 것이다.
제3장 감각에 대한 충격
거짓말, 센세이션, 그리고 진짜 나쁜 소식에 중독되다섹스는 기분 좋은 것이다. 이 말에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행복에 대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성교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웰빙을 발견하고 유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감사드려야 할 일이다. 만약 우리가 섹스에서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느끼거나 그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우울증이 생긴다고 상상해보라. 그럴 경우에는 성적 접촉에 몸을 맡기는 사람이 지극히 드물 것이고 생산되는 후손들의 수도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라는게 비교적 안전한 추측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섹스를 그처럼 즐겁고 쾌락적인 것으로 느끼게 해주는 생물학적 매커니즘에 인류의 생존이 달려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보 안에서도 비슷한 관계가 존재한다. 여러분은 파이를 소수점 아래 600개까지 외울 수 있는가? 아니면 여섯 자리까지라도? 아마도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수없이 많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파이를 화제에 올리거나 그것을 기본적인 숫자 단위 이상 외운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재미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보다는 요요를 가지고 놀거나 다이어트 콜라 한 깡통을 마시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요요를 배운다는 것은 사교적으로 상당히 쓸모가 있다. 여러분이 묘기를 자랑할 때면 사람들이 넋을 잃고 쳐다볼 테니까. 그리고 카페인이 든 음료 한 잔을 마시는 것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만족감을 선사해준다. 겉보기에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불규칙한 숫자들을 외우는 일에다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대개의 사람들에게) 그런 특징적인 장점들이 전혀 없는 일거리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싶은 정보의 종류에는 요요를 하거나 다이어트 콜라를 마시는 것과 비슷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가십을 좋아한다. 우리는 센세이셔널한 소문을 좋아한다. 그리고 진짜 나쁜 소식을 좋아한다. 우리는 재미없는 진실보다는 섹시한 거짓말들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모든 종류의 정보를 전부 우리 손가락 끝에다 확보하고 있을 때에는 문젯거리가 된다. 여러 가지 다양한 검색 엔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나 용어들을 찾아 연구해보면 대개의 사람들이 유명 인사들에 관한 루머나 중상모략을 가장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주는 흥미있는 학술 연구가 하나 있다. 사람들에게 두 가지 서로 다른 그룹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한쪽 그룹의 사진들은 신비스러운 경치라든가 재미있는 얼굴들을 찍은 것들이었다. 다른 한쪽 그룹은 자명종 시계나 주차장 같은 재미없는 사진들이었다. 사람들이 먼저 그룹의 사진을 좋아한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신비스러운 경치나 재미있는 얼굴들을 보고 있을 때 뇌파 검사 결과 역시 뇌의 쾌감을 증진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인 오피오이드나 도파민을 훨씬 더 많이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 사람들을 자기들끼리 남겨두고 마음대로 사진들을 훑어보게 했더니 그중에서 다수가 이 도파민을 유도하는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더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있었다. 결국 핵심을 말하자면, 우리는 어떤 특정 종류의 정보에 아예 중독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아마도 프랑스의 작가 프랑소아 드 라 로슈코프가 언젠가 말했던 "자기한테 약이 되는 비판을 자기를 기만할 뿐인 칭찬보다 더 좋아할 만큼 지혜를 갖춘 사람은 아주 드물다"는 이야기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4장 트렌드 환각
'안다'고 절대로 말하지 말라빠른 시장이란 변덕스러운 시장이다. 변덕이란 어떤 시장이든 가끔씩 만나게 되는 급격한 동요인 것이다. 우리는 수십 년에 걸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변덕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변덕스러운 장세란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우리는 대개의 주가와 대다수의 가격들이 상당히 안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니 '변덕 운운'하는 말이 쓰일 때면, 그건 비정상적인 특징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특정 시기이거나, 특정 물품이거나, 특정한 정치 상황이거나 기타 등등 변덕은 요즘 세상의 표준이 되었다. 예전에는 앞뒤로, 위아래로, 급격하게 요동치는 분야가 오늘날처럼 많지 않았다. 이것이 안정성을 표준으로 여겼던 우리의 추측을 바꾸어놓고 있는데, 이는 다시 지식의 핵심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도록 강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