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의 종말
마티아스 호르크스 지음 | 21세기북스
테크놀로지의 종말
마티아스 호르크스 지음
21세기북스 / 2009년 8월 / 311쪽 / 15,000원
PART 1 상상 속에 갇힌 테크놀로지
체펠린, 하늘의 제왕정보화 시대는 '스토리텔링'의 시대다. 그리고 스토리의 시제는 언제나 미래형이다. 더 나은 사회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꿈은 누구나 똑같이 누릴 수 있다는 테크놀로지 신앙을 낳았다. 20세기 초에 달성한 체펠린의 성공은 일반 대중들도 누리게 될 진보의 봉화였다. 체펠린이 대도시 상공에 등장하면 사람들은 마치 신을 영접하듯 성대한 예식을 열어 착륙을 맞이했다. 1928년부터 날기 시작한 체펠린들은 당시 항공술 역사상 가장 놀라운 성공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독일 제국이 1937년까지 생산한 130대의 체펠린은 100만 마일을 넘게 날았고 144회나 대서양을 횡단했다. 하지만 1937년 5월 6일, 힌덴부르크 호가 뉴저지 주 레이크허스트에 추락하자 과학 기술의 진보라는 빛나는 에피소드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단 한 번의 사고로 그토록 위엄에 찬 과학기술이 한 번에 쓰러져버린 것이다. 당시 다른 교통수단의 사고 위험과 비교하면 체펠린은 비교적 안전한 여행 수단이었다. 당시 기차 사고 소식은 끊이지 않았고, 1912년에 타이타닉이 바다에 제물로 바친 인명은 1504명이었다. 이에 비해 레이크허스트 사고 사망자는 35명이었다.
체펠린의 몰락은 한편으로는 기술 때문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경제와 특히 문화 때문이었다. 체펠린은 선박의 귀족 객실을 그대로 하늘로 옮긴 초호화 고급 비행선이었다. 스물다섯 개의 객실은 마호가니로 장식되었고 욕실이 달려있었으며, 비행선 아래층의 넓은 라운지에는 그랜드 피아노까지 놓여 있었다. 이 비행선의 티켓 값은 1500제국마르크로 대형 여객선 1등석 금액과 맞먹었다. 그러나 체펠린에는 40명 이상이 탈 수 없었으며 유지비는 40명이 내는 요금보다 훨씬 높았다. 반면 비행기는 훨씬 더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고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빨랐다. 두 비행체의 기술 경쟁은 '테크놀로지 진화' 과정의 대표적인 예이다. 자연계에서 공기, 물, 먹이가 중요한 자원이라면 테크놀로지 세계에서는 자본, 지식, 인프라 형성, 인류의 관심, 그리고 무엇보다 문화적 조건과 욕구가 중요한 자원이다. 체펠린이 주로 '레저 계층'을 위한 관광에 머물렀다면 비행기는 현대 산업화의 핵심을 육성했다. 비행기의 진화는 생물 종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종의 다양화 속에서 선택된 승리였다. 초기의 비행기는 거의 추락했고 조종사는 목숨을 잃었으며 투자자는 파산했다. 그러나 계속된 종의 개발과 무자비한 선택 과정의 결과, 경제적이며 안전한 오늘날의 비행기가 탄생할 수 있었다.
전속력으로 날아라! 스카이카테크놀로지의 진화 법칙을 이해하려면 기술에만 집중하기보다 다른 요소들도 더불어 이해해야 한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일명 스카이카는 한때 온갖 교통 문제를 말끔히 없앨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수많은 SF 영화에서는 미래형 스카이카가 전속력으로 날아다닌다. 브루스 윌리스는 <제5원소>에서 비행택시를 타고 3차원 뉴욕의 혼잡 시간대를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왔다. 하지만 스카이카의 기술진보는 오늘날까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여러 해 전 일본의 엔지니어링 시스템 회사에서 회전날개가 달린 배낭을 약 5,000만원에 출시했지만 지금까지 관심을 보인 소비자는 백만장자 갑부들뿐이다. 스카이카의 대중화에 대한 제동은 '인간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뇌는 2차원에 맞춰졌다.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의 넓은 평원과 낮은 언덕이 펼쳐진 사바나 지역에 살았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사냥감, 가족들이 사는 동굴, 혹은 적대 부족을 기준으로 자기 위치를 파악했다. 이러한 2차원적 인지는 공중이나 심해에서의 활동에 불합리하다. 더구나 뇌는 방향을 설정하는 기능과 더불어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함께 진화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간은 고소공포증이나 심해공포증을 느끼는 것이다. 불안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습성을 낳았다. 따라서 미래의 혁신 테크놀로지로 제시되고 있는 차세대 소형비행기가 범용화될지는 확신하기 힘들다. 사실 미국에서는 조종사 자격증을 가진 경영자, 농부 등이 주말이면 소형 비행기를 타고 별장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비행기 앞좌석에는 고도의 기술을 훈련받은 전문가가 앉는다.
운전이 필요 없는 전자동 자동차나는 운전이 필요 없는 '전자동 자동차' 역시 성공하리라 보지 않는다. 인공지능 컴퓨터를 장착하는 방식과 도로에 자석 궤도를 설정하는 방식의 자동차들이 이미 개발되었다. 이들 자동차는 구간 관리, 간격 유지, 속도 조절 등의 안정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카이카와 마찬가지로 기술이 아니라 자동차 운전의 '정신적 형이상학' 때문에 그 실패를 단언한다. 자동차는 '신체적 힘을 능가하는 강력한 힘'을 직접 체험케 하는 수단이자 물건이다. 우리는 운전을 통해 힘과 지배력을 느낀다. 특히 남성들에게는 상하지위 체계의 상징으로 적용된다. 또한 자동차는 사회적 관계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탈출 수단이며 감성적 기분을 누릴 수 있는 개인의 공간이다. 인간과 자동차는 기술 진화에서 깊은 공생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운전대를 자동차에게 넘기는 일은 '인간 대 자동차'의 협동 체제를 위협하는 일이다. 게다가 엄청나게 다양한 법적 문제도 산적해 있다.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기술 이용에는 우리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고대의 힘이 작용한다. 그리고 때때로 기술의 진보는 진보가 아니라 상실이다.
기억을 불러오는 종이의 향기20년 전부터 디지털 업체들은 종이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산물인지를 합창하듯 선언했다. 그리고 인쇄와 제지업체들도 딱 그만큼 모여서 반론을 폈다. "사무실에 더 많은 컴퓨터를 설치하라! 그럴수록 더 많이 출력하리라!" 어째서 일상에는 아직도 종이가 수백만 톤씩 끼여 있을까? 찬찬히 따져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종이는 우선 자료 보관에 탁월하다. 종이는 긁히지 않으며 건전지도 필요 없고 다운도 안 된다. 그러다 쓸모없어지면 그냥 버리면 끝이다. 앞으로 10년 후 모두가 개인용 '소프트 스크린'을 들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종이 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한 매체가 다른 매체를 완전히 흡수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또한 책은 인간의 뇌와 만나는 매체이다. 촉각, 청각, 시각 등의 다양한 감각 체계와 연결된 문화 상품이다. 또한 책은 생각을 대변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책의 물리적 차원은 버릴 수 없는 필수요소다.
이메일을 출력하는 현상이 사무실마다 발생하는 현상도 우리는 인류학과 관련된 문장 하나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인류는 뭔가 부스럭거려야만 진지하게 반응한다." 인간의 뇌는 수백만 년에 걸쳐 손으로 만지고 쥐는 행위를 통해 발전해왔다. 우리는 '뭐든지 손에 쥐고' 싶어 하는 존재인 까닭에 이메일을 출력한다. 디지털 시대에서 종이란 선택의 표시다. 선택할 만한 중요한 것은 종이에 출력한다.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는 디지털 저승으로 사라진다. 종이 소비의 계속적인 증가에서 우리는 기술 진화 역사의 중요한 요소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유전자와 문화 구성 요소에 깊이 박힌 신체적 수고이다. 테크놀로지는 태곳적부터 지금까지의 신체적 수고와 땀 흘린 모든 과정의 결과다. 다소 동물적인 신체적 수고는 우리가 테크놀로지를 대하는 영원한 태도일 것이다.
테크놀로지 세계가 몰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
원숭이 함정이라는 것이 있다. 야자열매에 좁은 구멍을 파고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먹이를 넣어두는 것이다. 이를 발견한 원숭이는 먹이에 눈이 멀어 열매 속으로 손을 집어넣지만 손을 다시 꺼낼 수는 없다. 욕심에 눈이 멀어 먹이를 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숭이들은 먹지도 못할 열매를 손에 달고 돌아다닌다. 테크놀로지가 제시하는 미래도 이와 다르지 않다. 먹이를 움켜쥔 원숭이처럼 우리는 미래 유토피아에 쉽게 눈이 멀고 매혹되어 그러한 이상주의 세계관을 진실처럼 움켜쥔다. 하지만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임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소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두려움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 매체들은 언제나 10년 후에는 확실히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이라고 예측한다. 사람들이 이런 선전을 믿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를 반영해놓았기 때문이다. 바로 '구원에 대한 판타지'다. 그래서 소망과 두려움이 동시에 극에 달하고 파급력을 갖추면 여기에서 '테크놀로지 비전'이 나온다. 어쩌면 언젠가는 날씬해지는 약, 머리가 좋아지는 약, 자동 학습기, 가사 일을 모두 해주는 로봇 등이 모두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틀림없이 미래에도 우리는 사무실에 나가고 집안을 청소하고 힘들여 새로운 것을 배우며 가족이나 병약한 사람을 돌보게 될 것이다.
PART 2 인간과 기계, 그 공생의 역사
진화는 결핍에서 온다인간은 영향력을 넓히고 또 이를 먼저 성취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기술을 발전시켰다. 대양을 가로지르는 전화 통화, 몸을 움직이지 않고 텔레비전 작동시키기, 목표지점에 정확히 폭탄 투하하기 등이 모두 이런 영향력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그런데 기술의 발명과 이용이 지역마다 서로 다른 까닭은 설명하기가 힘들다. 현대문명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부족들은 수백에 이른다. 최근까지 우리는 이들 지역에서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이유를 유전자의 차이로 생각했다. 그런데 원시문명 속에 살아가는 부족들은 자원의 양에 맞는 종족 수를 유지함으로써 주변 환경에 적응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대륙의 질병에 맞는 항체를 형성했고 격리된 지역 덕분에 전염병에 휩쓸리지도 않았다. 이들은 폭풍과 식량부족에서 살아남는 법, 의식을 통해 내부 갈등이나 계층 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법도 배웠다. 한편 오늘날 기술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종족간의 위협이나 자연재난 등에 끊임없이 노출되었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기구들을 발명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생명체와 그들의 주변 환경이 서로 불일치할 때 발생한다. 요세프 라이히홀프는 『인간화의 비밀』에서 "진화는 결핍에서 온다"고 했다. 기술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무기다. 그리고 여기에 문화가 합쳐지면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발생한다.
진보를 위한 조건기술진보는 인간의 노동력을 인공적인 생산력으로 대체할 때 발생한다. 고대에 크게 번영을 누렸던 이집트 · 그리스 · 로마 등은 수많은 사람들을 공짜로 부려먹는 노예제로 인해 발전을 지속하지 못했다. 그 시절 노동이란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을 의미했다. 그리고 기술자는 낮은 신분에 속했다. 노동은 덧없는 행위였고, 노동이 천시되는 곳에서 기술 또한 발전할 수 없었다. 훗날 르네상스는 노동력의 부족에 대한 사회문화적 적응을 위한 것이었다. 14세기에 페스트로 인해 유럽의 인구가 3분의 1로 줄자 갑자기 기술이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사이에 화두로 떠올랐다. 그들은 예술가와 기술자들을 우대함으로써 문예를 진흥하고 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번영을 내세우고 당시 위태로웠던 해상왕국의 입지를 지켜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훗날 산업혁명을 이끈 혁신의 가속화 역시 국유화와 봉건제의 붕괴로 말미암아 18세기 말에는 공짜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동양과 서양의 테크놀로지 진화환경을 통해서도 진보를 위한 조건을 알 수 있다. 중국은 12세기에 이미 세계의 기술을 선도했다. 화약과 종이, 인쇄술, 도자기, 우산, 현수교, 수공업생산시스템까지 수많은 발명이 있었다. 또한 풍부한 철로 인해 선박제조기술이 발전했다. 명나라 시절 대표적인 함선의 길이는 약 100미터에 달했고 승무원만 1000명이 넘었으며 대포도 수십 개를 실었다. 유럽과 신세계 사이의 대서양을 오가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갈레선'과 비교할 때 이 정도 함선이면 세계 정복은 식은 죽 먹기였다. 실제로 명나라의 해군 제독이자 환관이었던 정화(鄭和)는 이미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에 함대를 이끌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왔다. 하지만 이후 중국의 선박 제조는 중단되었고 해외 탐험도 멈추어버렸다. 당시 중국은 상대가 없을 만큼 매우 강력한 존재였고 외부에서 자원을 들여올 필요도 없었다. 정치는 황제의 절대 권력을 중심에 둔 논공행상 방식의 관료제였다. 또한 철학은 유교와 도교의 영속성의 철학이었다. 중국의 관료제는 통치력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기술 발전을 금지시켰고, 활자판 전승은 변화와 비평이 아니라 오로지 영원한 진리의 (복사)확산을 도왔다.
중세 유럽의 테크놀로지 진화 환경은 중국과 달랐다. 유럽은 좁은 땅덩이 내에서 다양한 민족, 왕국, 도시 국가들이 부대끼며 수도 없이 많은 갈등을 겪었다. 이렇게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무기와 기술을 경쟁적으로 발전시켰다. 자연에서 여러 종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진화하는 공진화(供進化)와 같은 이치였다. 산양이 달리는 속도를 늘리면 그에 맞춰 사자도 뛰어오르는 능력을 높인다. 거북이의 속살을 노리는 천적이 강해질수록 거북이 등은 더욱 단단해진다. 유럽에서는 방어 무기와 공격 무기가 경쟁적으로 공진화했다. 총이 등장하자 철갑옷이 늘어났고 두터운 성벽은 대포에 의해 뚫렸다. 기사단은 사라졌고 화승총과 포병부대가 군대를 이끌었다. 유럽 전쟁사는 기술과 과학 발전의 '터보엔진'이었다. 그 후 '무기전쟁'은 '아이디어와 지식의 전쟁'으로 바뀌었다. 이와 같이 혁신이란 자연에서도 인류 문명에서도 언제나 변화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변화는 복합성을 기초로 한다.
테크놀로지의 진화, 형태 변이약 5억 년 전 캄브리아기에 유례없는 '종의 다양성 폭발'이 있었다. 유기물과 미네랄이 풍부해졌고 지구는 온갖 생물들이 우글거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많던 변종들이 왜 그토록 빨리 멸종하고 말았을까? 진화론을 주장하는 학계에서는 단세포에서 인류에 이르기까지 한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처럼 순수한 혈통이라고 믿어왔다. 한편 닐스 엘드리지와 같은 연구자들은 이런 '진화의 연속성'에 반기를 들고 '깨진 균형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들이 설명하는 진화는 다양성 폭발과 대대적인 멸종이 반복되며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그리고 폭발과 멸종 사이의 세월 동안에는 정지한 듯 거의 아무 변이도 생기지 않는다. 이렇게 균형을 유지하다가 기후 변화 등의 위기에 처하게 되면 어느 한 종이 절대 지배자로 등장하면서 균형은 깨진다. 그리고 곧이어 생물들은 순식간에 엄청나게 다양한 온갖 형태로 변이한다. 테크놀로지 진화에서도 이 이론은 부분적으로 맞는 듯하다. 오랫동안 과학 기술의 변이 비율은 제로 상태의 수준으로 계속해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뉴턴의 만유인력과 같은 이론은 더 이상 제시되지 않고 자전거는 60년 째 진화를 멈추고 있다. 그러나 또 어떤 상품들은 마치 열대 산호해안의 생물처럼 다채롭게 폭발했다. 변이와 멸종 비율이 100퍼센트에 근접한 휴대폰을 생각해보라.
휴대폰은 딱정벌레처럼 엄청난 다양성을 띠며 변화되어왔다. 디지털 카메라, PDA, MP3, 내비게이션 등 다른 여러 기기들의 기능을 흡수했다. 그러나 이렇게 기능을 마구잡이로 늘린 제품들 간의 경쟁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생존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휴대폰은 새로운 기종을 개발하는 비용이 이미 5000만 달러에 달한다. 아이폰의 개발비는 1억 5000만 달러였다고 한다. 이렇게 막대한 개발비용을 투자한 신제품의 출시 간격이 점점 좁아지는 상황이니 이는 파멸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휴대폰이 캄브리아기에서 벗어나 다시 균형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진화론 법칙을 충실히 따른다면 한 종이 전문화된 특징을 추구하는 독립된 여러 종으로 분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노년층을 겨냥한 큰 번호판의 단순한 휴대폰은 이미 르네상스를 맞았다. 또 다른 변이 방향은 조립식이다. 기본 기기에다 각자의 구미에 맞게 특정 하드웨어와 결합하는 것이다. 오늘날 '모듀(Modu)'가 이런 발전을 실현했는데 신용카드 크기의 기본 몸체에 내비게이션, 사진 촬영, 통화 등 특별한 기능의 '팔'을 조립할 수 있다. 또 하나 변이는 다른 기기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MIT에서 '비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개발에 착수한 '만능기기' 휴대폰은 필요에 따라 완벽하게 변신한다. 사진기처럼 잡으면 빛을 감지하는 화면과 셔터가 표면 센서에서 출현한다. 전화기처럼 들면 사진기는 사라지고 전화기로 변신한다. 노키아의 최신작인 '모프(Morph)'는 이 방향에 있다. 모프는 뒤틀고 돌려서 기능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 휴대폰이다. 하지만 분산이론과 조립이론에는 편의기능을 계속 늘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비누'는 앞으로 100년은 더 생산성 향상을 위해 타협을 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