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군대, 세상을 정복하다
글렌 레이놀즈 지음 | 베이스캠프
다윗의 군대, 세상을 정복하다
글렌 레이놀즈 지음
베이스캠프 / 2008년 4월 / 336쪽 / 14,000원
개인이 힘을 갖게 되다
산업혁명 이래 조직과 통신, 기계의 발달은 소규모보다 대규모로 일을 처리할 때 훨씬 더 효율적이 되도록 했다. 노동 분업은 대규모 조직을 소규모 조직이나 독자적인 개인들의 집합보다 더 효율적이게 만들었다. 커다란 기계 덕분에 큰 일을 척척 해치웠지만 기계 자체가 크기 때문에 오로지 큰 일만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는 대규모 조직은 19세기와 20세기의 주된 화두였다. 대규모 사업은 미국이 제너럴모터스와 IBM 같은 거대 기업을 축으로 돌아가던 20세기 중반 절정에 달했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같은 경제학자들은 대기업의 성공 요인은 그 덩치 덕분이며, 그러한 대규모 조직과 거대 기업만의 정보처리 능력은 중소기업이 경쟁상대조차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대(大)가 곧 선(善)이었고, 이들 대기업 경영층의 '기술구조'가 낳은 권력은 이윤 따위의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론은 그랬다.
하지만 드러난 상황은 정반대였다. 갤브레이스의 저서 『새로운 산업국가(The New Industrial State)』가 등장한 1966년에도 변화의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한 해 전인 1965년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 35주년 기념호에서 고든 무어는 향후 컴퓨터 성능이 2년마다 계속해서 두 배로 증가하리라는 '무어의 법칙'을 처음 세상에 발표했다. 거대 기업들은 이러한 속도를 따라잡을 만큼 민첩하지 못했다. 컴퓨터 제조는 한때 대규모 조직이 누렸던 이점의 상당수를 무력화시킬 정도로 비용도 저렴해지고 다양해졌다. 또한 정보처리와 관련된 활동이라는 면에서 컴퓨터혁명은 최소효율규모를 대폭 줄여왔다. 랩탑 컴퓨터와 값싼 비디오카메라, 공짜 아이무비 혹은 윈도우즈 무비메이커 소프트웨어, 덧붙여 인터넷 연결까지, 이들 덕분에 갤브레이스 시대만 하더라도 3대 공중파 TV 방송국은 되어야 꿈이라도 꿀 수 있었던 일들을, 그것도 극히 적은 비용만으로 일개 개인이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갤브레이스 시대의 경제관념은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다소 멀어졌다. 말하자면 소수의 인력으로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해 줄 대기업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사실 대기업과 그 고리타분한 관료제도와 기술구조가 양산하는 비효율성이나 장애물이 없다면 훨씬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물론 갤브레이스 시대에도 이러한 비효율성은 존재했다. 《딜버트(Dilbert)》(샐러리맨의 일상을 풍자한 스콧 애덤스의 신문 연재만화)가 나오기 전부터도 사람들은 직장 처세술과 관료제도의 어리석음을 농담거리로 삼아왔다. 하지만 그 옛날에는 일을 하기 위해 대규모 조직이 필요했던 터라 그런 문제를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할 것이다. 과거에는 골리앗의 힘이 그 결점을 상쇄했지만, 이제는 그 쓸모없는 덩치 없이 다윗들끼리 잘 헤쳐 나갈 수 있다. 이런 마당에 왜 골리앗을 고집하겠는가? 기술이 보다 작고 빠르고 저렴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다방면에서 다윗의 군대가 굼뜬 골리앗의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것으로 대기업이나 관료제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후자의 경우는 그래서 더욱 애석하긴 하지만 극적인 역사의 반전은 가내 공업이나 소기업, 벤처, 그리고 제 손에 쥔 도구를 마음껏 휘둘러보려는 개인 위주로 물살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 이제 목적을 위한 비인간적이고 강제된 수단은 개인의 기호에 맞춘 풀뿌리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이제 작은 것이 큰 것이다
얼마 전 블로거 제프 자비스가 이베이(eBay)의 판매상이 월마트의 직원 수를 앞지르려 한다는 어느 언론 보도를 지적했다.
이베이가 미국 최대의 고용업체로 급부상 중이다. 물론 이베이 자체는 누구도 고용하고 있지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영업과 창업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72만 4000명이 완전고용 혹 은 시간제고용의 일환으로 이를 이용한다. 그 외 150만 명이 추가 수입원으로서 이베이를 이 용 중이다. 월마트는 110만 명의 직원을 보유한 미국 최대의 고용업체다. 물론 이베이의 자영 업자들에게는 월마트가 제공하는 시시한 혜택이나 유니폼은 없지만, 이들은 모두 자기가 우두 머리다. 산업이 점차 규모를 더해 가면서 작은 것이 점점 더 많은 경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 이건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한 꼴이지만, 그래도 전적으로 그렇지만은 않다. 더불어 핵심을 건드리는 면도 없잖아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이나 상사, 혹은 사무실을 좋아하지 않는다. 《딜버트》 만화 어디를 봐도 그렇다. 게다가 2000년 들어 경기침체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창업으로 나섰다.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면 만드는 수밖에!" 어떤 이에게는 이처럼 필연적이었다. 또 어떤 이에게는 어쨌든 하고 싶었던 일을 추진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실제로 실직을 당한 상당수가 현재는 자영업자로 변모했다. 《뉴욕타임스》는 어느 경제학자의 말을 인용해 이런 현상을 "본의 아닌 창업"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본의에 의해서든 아니든 향후 이런 현상은 더 많이 눈에 띌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런데 규모에 관한 자비스의 초창기 관찰에는 흥미로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이베이는 석 달 연속으로 매월 1000달러 이상을 판매하고 고객평가가 좋은 '판매왕(Power Seller)'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조건의 의료보험을 제공한다. 세계 최고의 대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수 정규업체보다는 나은 편이다. 그리고 자동차업계 근로자와는 달리 이베이의 판매왕들은 상사의 뜻을 거스른다고 해고될 걱정이 없다. 아마존닷컴도 계열사인 Z숍 쇼핑몰(개인이나 소규모 업체는 이 웹사이트를 통해 물건을 판매한다)이나 아마존닷컴 웹사이트와 링크 연결을 해주는 이에게 거래 소개비를 지불하는 아마존 제휴 프로그램(Amazon Associates program)과 같이 독립적인 소매업자를 위한 온라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 현상은 큰 것과 작은 것의 대립구도가 아니다. 핵심은 둘이 서로 협력한다는 점이다. 이베이가 거대하기 때문에 상대는 작을 수 있다. 이베이의 구매력 덕분에 각각의 소매업자들은 자체적으로 들기에는 무리가 있는 보험을 단체보험으로 가입해 그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로써 이베이의 입장에서도 수많은 소규모 소매업자를 하나의 거대한 시장에 모으는 역할을 하는 개개인이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팔아 생계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일이 훨씬 수월해짐은 물론이다. 마찬가지로 저가의 다양한 물품을 공급하고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월마트, 샘스, 오피스데포, 스테이플즈, 코스트코와 같은 대규모 사업체도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 덩치가 크다는 것은 상대가 작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둘 사이의 이러한 협력은 전망이 아주 밝다. 상당수 사람들이 자영업이라는 개념을 좋아하며, 이것은 기술발달로 그 과정이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지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문제는 《딜버트》의 뾰족머리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것은 싫어도 《딜버트》의 의료보험은 원한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 이베이와 아마존 같은 사이트는 뾰족머리 상사는 물론이고 실제 일을 하는 근로자와 실소비자 사이의 모든 조직계층을 대체하거나 "생략해버린다." 마찬가지로 개라지밴드닷컴(GarageBand.com)과 같은 음악 사이트들은 음악가와 청취자 사이에 자리한 음반회사와 프로듀서, 음반기획사 및 제작인력을 생략해버린다. 하지만 과거 음반회사와 관리자가 수행하던 역할을 대신함으로써 중간에 새로이 끼어들기도 한다. 보험회사와 담판을 짓거나 고객이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들과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신뢰할 만한 평판을 제공하는 식의 기존 음반회사들이 하던 일을 대신해 주면서 그 틈새를 메운다. 그러나 방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경제와 고용에 대한 의미도 매우 다르다.
21세기의 대기업이나 정치의 성공 비결은 과거 몇 세기처럼 어떻게 하면 다수를 남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게 만들지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된 현상을 어떤 식으로 이용할 것인가를 파악해 내는 데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베이와 개라지밴드의 사례는 시작에 불과하다. 장차 더 많은 자영업자들이 이런 식으로 돈벌이에 나설 것이다.
무리가 아니라 공동체다불행하게도 기술은 선한 사람뿐 아니라 악당의 역량도 배가시킨다. 테러리스트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신형 폭발물, 컴퓨터, 그리고 통신장비의 발달은 개인이나 소규모 단체가 끼칠 수 있는 피해를 확대시킨다. 반면에 기술은 우리 같은 일반 시민들이 이러한 위협에 맞서 더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이 등식의 양변을 다루는 일은 21세기의 커다란 도전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시민들이 테러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테러 공격의 경우 가장 먼저 대응하는 사람들은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대응은 결정적일 수 있다. 게다가 응급처치 훈련을 받았거나, 화학무기 공격이나 생물학무기 공격의 징후를 파악하는 훈련을 받았거나, 그 밖의 다양한 재난 복구기술을 훈련받은 사람도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트럭에 폭탄을 실은 자살폭탄 테러나 총기난사와 같이 비교적 '흔한' 사건의 경우에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도움의 손길이 당도할 때까지 피 말리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능하면 카메라나 비디오카메라를 휴대하도록 하여 공격이 일어난 이후 중요한 단서가 될 만한 정보 수집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 사람들이 카메라도 찍어댈 정신이 있을까? 아마도. 어쨌든 재난 비디오를 찍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 않은가(카메라의 파인더에는 사람을 진정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정보를 지닌 준비된 시민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신발 폭파범' 리처드 레이드를 저지한 바로 그 사람들이 모하메드 하다예트를 저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9·11 당시 제93편 항공기의 국회의사당 충돌을 막아냈고, 마침내 워싱턴 D.C.의 저격범 무하마드와 말보를 체포했다. 준비된 시민은 이미 도처에 있다. 적절한 정보만 있으면 시민들은 충분히 테러범에게 대항할 수 있다. 9·11의 경우에서도 봤듯이 보통은 정부당국보다 더욱 신속하고 효과적이다. 블로거 짐 헨리의 지적처럼 핵심은 "무리가 아니라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첩보기관과 법 집행기관, 그리고 하부 관료조직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관료집단은 물론 첩보기관과 사법기관에게는 더더욱 정보가 곧 권력이다. 그리고 권력은 나눠 갖고 싶지 않은 것이다. 시민 한 사람이 국가의 몫을 대신한다면 국가의 공식 대표라는 자들의 위상에 금이 가지 않겠는가? 전반적으로 정부당국은 시민을 공동체가 아니라 무리로 보는 경향이 짙다. 그들은 일반 대중을 양떼로, 자신들을 양치기로 본다. 그들은 사람들을 주도면밀하게 감독하지 않으면 폭동이라도 일으키거나 겁에 질려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다. 사회학자 캐슬린 티어니는 재난에 관한 일반적인 묘사와는 반대로 9·11 테러공격 당시 뉴욕 시민들은 "제대로 효과적으로 대처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흔히 어수선해 보인다. 상황을 지시하는 제복 차림의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즉각적인 대처와 그들이 현지 사정에 밝다는 사실은 제복 차림의 사람들로 구성된 인상적인 듯 보이는 작전보다 이를 더 효과적으로 만든다.
다가올 몇 년 동안 관료기관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빠르고 산발적인 위협을 우리가 수없이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93편 항공기에서부터 모하메드 하다예트의 검거, 그리고 워싱턴 D.C. 저격수들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미국에서 테러공격에 대해 거둔 모든 민주주의의 승리는 법 집행기관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쟁취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새로운 관료기관을 창설하기보다는 발 빠르고 산발적인 대응을 촉진시킬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응은 무리로서가 아닌 공동체로서의 시민과 관련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양치기들의 직업적 만족도를 떨어뜨린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데이비드 브린이 지적하듯이 지난 세기 동안은 이런 일을 '공식적인' 조직의 손에 넘겨주는 것이 주된 경향이었다. 하지만 기술이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능력을 부여하게 되면서 추세는 바뀌고 있다. 이제 우리의 접근방식을 바꿀 때다.
미디어에서 위디어로저널리즘과 관련한 변화의 핵심은 켄 레인의 입에서 나온, 이제는 유명해진 다음의 진술에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것은 인터넷이다. 우린 당신네들의 똥구멍까지 뒤집어볼 수 있다." 예전에는 저널리스트들과 다방면의 권위자들이 얼토당토않은 분석을 내놓으면서, 혹은 사실도 아닌 '사실'을 들먹이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토요일 저녁 신문의 웹사이트에 게시된 일요일 아침 신문 칼럼이 몇 시간 만에 낱낱이 해부되는 실정이다. 저널리스트들에게 두통거리는 이것이 아니다. 실제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즉, 빅미디어의 권리가 종말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국제합동통신 칼럼니스트인 짐 베넷의 지적처럼, 작금의 저널리즘 상황은 종교개혁 당시 교회에서 일어난 일과 흡사하다. 기술혁명 덕분(그 당시에는 금속활자, 요즘은 인터넷과 라디오토크쇼)에 한때는 소수의 전문가들의 손에 집중되었던 권력이 다수의 아마추어들의 손으로 재분배되었다. 돈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재미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패하고 있다. 당신과 경쟁하며 즐기는 자들을 조심하라!
그럼에도 웹로그가 전통 언론매체의 종말을 예고하지는 않을 듯하다. 마틴 루터가 교황의 종말을 부른 것이 아니듯 말이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무소불위의 교황의 권위에는 종말을 고했다. 그리고 블로그 현상은 최근 몇 년 동안 빅미디어가 휘두른 엄청난 권력의 종말의 서막을 예고한다. 한때는 전문가들을 경외하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제는 누구나 그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전문직 종사자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그리고 이 과정에서 특정한 대형 사건을 둘러싸고 블로거들이 자체적으로 조직을 이룰 때 역동성이 나타나곤 한다. 인도양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도 그랬고, 미국에서 허리케인이나 테러공격이 발생했을 때도 그랬다.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을 통해 모이는 '플래시 크라우드(flash crowd)'처럼 블로거들은 특정한 주제를 둘러싸고 이합집산한다. 이러한 '플래시 미디어'의 보도는 막강한 효력을 지닌다.
웹로그나 플래시 미디어가 조만간 주류 언론을 대체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이들이 점점 더 능숙하게 주류 언론의 보도기사를 보완하고 도전한다는 증거는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훌륭한 일이다. 블로그 혁명의 최종 결과물은 블로거 짐 트리처가 말한 '위디어(we-dia)'의 탄생이다. 지금까지의 뉴스와 보도는 '그들'이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한다. 향후 10년 동안 우리는 전통적인 빅미디어의 대안으로서의 미디어가 증가하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빅미디어가 현재의 대립적인 입장을 철회하고 이러한 다윗들과 손을 잡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