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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들

가와시마 요코 지음 | 중앙books
세상에 없는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들

가와시마 요코 지음

중앙books / 2008년 08월 / 268쪽 / 13,000원

트렌드를 만들어 간다



자기다움의 표출


1886년 포목점으로 출발했던 이세탄 백화점의 슬로건은 '매일이 새로운 패션의 이세탄'이다. 이세탄 백화점의 패션이란 의식주를 총망라한 신선한 감성을 뜻한다. 이세탄은 고객들이 이러한 감성을 매장 곳곳에서 느낄 수 있기를 원했다. 이세탄 백화점이 바라본 패션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패션=공기와 감성'을 의미한다. 창업초기부터 내려온 이세탄 백화점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시대를 초월하여 이세탄 백화점만의 자기다움을 형성하고 있다.



이세탄 백화점은 메이지도오리와 신주쿠도오리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길모퉁이에 우뚝 선 채 너무 튀는 것도 아니요, 주위 건물에 파묻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곳에서는 분명 이세탄 백화점다운 무언가가 존재한다. 이세탄 백화점 신주쿠 본점은 1933년 9월에 오픈했다. 수직방향의 능선을 강조한 석조건물은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깊은 백화점으로서 그 품격이 느껴진다. 현란한 간판이나 휘황찬란한 장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세탄 백화점은 화려하다기보다 수수한 느낌이 드는 백화점이라 할 수 있다.



옛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취지 아래 대규모 상업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도쿄.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전통적인 외관을 지키려 애쓰는 미쓰코시 백화점과 다카시마야의 모습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백화점으로서의 정통성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전통을 지키면서 시대 분위기에 맞는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 나아갈 것인가? 백화점이 당면하고 있는 이러한 과제는 이제 양날의 검과 같아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니혼바시에 위치한 미쓰코시 백화점과 다카시마야는 2004년에 리모델링을 추진했다. 두 곳 모두 '오랜 전통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하면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백화점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라는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다움'의 표출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오랫동안 변함없이 찾아주었던 고객을 유지하면서 새로움을 창출해내고 그 결과를 가시적인 성과로 이끌어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달리 이세탄 백화점은 건물의 수수한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시즌에 따라 바뀌는 이미지 포스터가 떠오른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아리따운 여성복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미지 포스터는 백화점의 얼굴이다. 그만큼 모든 백화점은 자기다움을 표출하기 위해 이미지 포스터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다. 도쿄 번화가에 넘쳐나는 수많은 이미지 포스터. 그중에서도 나는 이세탄 백화점의 이미지 포스터를 걸으면서 바라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굳이 '걸으면서'라고 표현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다. 마치 카탈로그의 한 장면처럼 신상품을 입은 모델을 통해 유행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여성의 자기다움을 표출하려는 이세탄 백화점만의 독특한 개성과 자세가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그 시즌의 여성은 어떤 모습을 추구하고 있는지, 거창하게 말하자면 시대와 여성의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가만히 서서 보는 것보다는 걸으면서 보는 편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대 분위기를 여성의 패션을 통해 전해 온 이세탄 백화점의 이미지 포스터에는 분명 이세탄 백화점만의 독창성이 숨어 있다. 품격 있는 외관과 여성을 위한 패션 제안, 내가 생각하는 이세탄 백화점의 이미지는 이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세탄 백화점은 오래된 백화점의 낡고 구태의연한 이미지를 품격 있는 고급스러움으로 끌어올리고, 유행에 따라 변화하는 패션을 끊임없이 제안할 수 있는 파워를 갖추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이세탄 백화점의 자기다운 모습일 것이다.



매장이 아니라 거리를 만들자

1985년 백화점으로서는 처음으로 당시 많은 인기를 모으던 DC(Designer & Character) 브랜드로만 구성된 신데렐라 시티를 백화점 2층에 오픈했다. 새롭게 생긴 신데렐라 시티는 좁은 통로 양쪽에 자그마한 부티크가 쭉 늘어서 있어 마치 하라주쿠의 패션 거리를 걷는 듯한 즐거움이 넘치는 곳이었다. 매장 중앙에는 의류 상품뿐만 아니라 핸드백과 구두, 액세서리 등을 늘어놓은 자주편집형 매장(백화점이 독자적으로 여러 브랜드를 골라 만든 매장)을 마련하여 의류 상품만이 아니라 패션잡화를 적극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당시 고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신데렐라 시티는 구두와 핸드백 등 의복 관련 잡화는 백화점 1층에 위치한다는 상식을 깨뜨리는 새로운 도전이었으며 상품을 그저 한 곳에 모아둔 것이 아니라 당시 고객들의 욕구와 시대 유행을 잘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코너 한 모퉁이에 편안한 분위기의 카페를 마련한 것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의류 상품뿐만 아니라 패션 잡화와 카페가 함께 있음으로써 매장에 활기가 넘치고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즉 백화점 안의 조용한 찻집처럼 편하지만 시대에 뒤쳐진 분위기가 아니라 패스트푸드 체인점처럼 활기가 넘치고 밝고 젊은 이미지를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영업본부 MD 통괄부 여성복 제1영업 부장인 유타니 신지는 "새로운 시도에 과감히 도전했다. 바닥에 맨홀을 그려 넣어 플로어를 거리처럼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백화점 안에 거리를 만든다는 새로운 발상에 도전했던 당시 상황을 "야채가게나 정육점이 있어도 좋았을 텐데"라며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이처럼 신데렐라 시티는 마치 장난감 상자를 엎어놓은 듯한, 곳곳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이러한 새로운 시도의 이면에는 젊은 층에 대한 상품구색 재편이라는 이세탄 백화점의 과제가 존재했다. 서서히 백화점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젊은 여성들을 다시 불러모으기 위해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이세탄 백화점은 '영(Young)'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시켰던 종래의 고객층을 보다 젊은 감성의 깔끔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고객층, 즉 '퓨어 영(Pure Young)'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16~22세를 그 중심 타깃으로 정하고 그녀들의 일상생활을 반영한 새로운 매장을 만든 것이었다. 이들 퓨어 영 고객층은 바나나 세대(1965~1970년 출생)라 불리며, 고등학생 시절부터 《올리브》 등의 패션잡지에 나온 스타일을 따라하고 시부야와 하라주쿠에서 DC브랜드를 자주 애용했던 세대다. 그리고 이들은 '백화점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상품을 찾을 수 없다. 백화점보다 길거리 부티크를 둘러보는 편이 훨씬 즐겁다'는 성향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성향의 젊은 여성을 사로잡기 위해 만든 신데렐라 시티는 결과적으로 '하라주쿠에 있는 부티크에서는 엄마와 함께 쇼핑할 수 없지만, 이세탄 백화점이라면 엄마도 안심할 거야'라고 생각한 모녀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매장을 만든다는 발상에서 거리를 만든다는 발상의 전환이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효과를 이뤄낸 것이다. 여성복 제1영업부장인 유타니 신지는 "항상 새로운 매장을 창조해 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이세탄 백화점의 DNA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세탄 백화점 관계자들은 취재하는 동안 이 말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가이호쿠(解放區), 패션 디자이너를 육성하다



백화점의 얼굴


1990년대 초반 당시 백화점들은 너도나도 명품 브랜드를 들어오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특히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가 인기를 모으는 가운데 1층 플로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커다란 명품 부티크를 입점시키기 시작했다. 당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 브랜드 매장이 있으니까 백화점에 간다'는 사고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긴자에 있는 명품 브랜드 본점은 건물 자체가 너무 으리으리한 나머지 왠지 들어가기 어려운 데 반해, 백화점 1층 플로어는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당시 소비자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명품 브랜드를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백화점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백화점은 점차 1980년대에 그토록 강조했던 자기다움을 잃어갔다. 백화점의 동질화가 서서히 진행되었던 것이다. 1층 플로어에 명품 브랜드 부티크가 마치 백화점의 얼굴처럼 의젓하게 자리잡게 되었고, 여성복 플로어는 어느 백화점을 가든 비슷비슷한 브랜드뿐이었다. 마치 패션빌딩처럼 여러 부티크를 모아둔 매장 구성이 어느 틈엔가 백화점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1992년에는 백화점 매출액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전년도 매출액을 밑돌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 부흥기부터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쳐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던 백화점 매출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것은 백화점 업계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쳐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소비자들도 불경기가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라 장기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에 따라 백화점의 동질화는 백화점업계가 해결해야 할 중장기적인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미래를 위해 백화점들이 자기다움을 발견해야 하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에게 선사해야 할 즐거움과 새로움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세탄 백화점은 다른 백화점과 사뭇 다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3년 당시 패션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아페세를 1층에 입점시켰다. 아페세는 아니에스 베에 있던 디자이너가 새롭게 론칭한, 베이직한 스타일의 소재와 실루엣을 중시하는 브랜드였다. 콘셉트 또한 거품경제 시대에 한창 유행하던 화려한 의류상품과 전혀 다른 미니멀한 이미지였다. 당시 아페세를 입점시키길 원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머천다이저인 후지마키 유키오였다. 그는 "정체기에 빠져 있었던 1층 플로어에 신선함을 불어넣고 싶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대대적인 반대에 부딪혀 좌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명도가 낮은 브랜드를 1층 플로어, 즉 백화점의 특등석에 해당하는 곳에 입점시킨다는 것은 무명브랜드를 부화시키는, 다시 말해 새롭게 탄생시키는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대해 회사에서 반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후지마키 유키오의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열의를 갖고 주위 사람들을 열심히 설득한 결과였다.



이러한 후지마키 유키오의 활약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세탄 백화점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비록 지명도는 낮을지라도 시대를 앞서는 브랜드를 이세탄 백화점에서는 부화시켜 나간다. 이는 이세탄 백화점이 디자이너를 판별하는 감정사임과 동시에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힘을 축적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했다. 그러나 나는 아파세 입점에 또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당시 이세탄 백화점은 하나코 세대를 포함한 수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미래의 주고객층이 될 제2차 베이비붐 세대를 사로잡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2차 베이비붐 세대의 여성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신선함과 젊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이세탄 백화점은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 장치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즉 후지마키 유키오가 기획한 아페세 입점은 새로운 디자이너와 고객을 탄생시키는 인큐베이터였던 것이다.



55% 공격론

많은 기업들이 과감하게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곤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은 종래의 연장선상에 서서 현상을 유지하는 편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전례가 없으니까, 상사의 승낙을 받기가 어려우니까 등의 이유로 과감한 제안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돼 버리는 경우를 나는 수없이 목격했다. 그래서인지 과감하게 도전한 결과물을 보고 있으면 기업이 전하려 하는 강렬한 메시지가 저절로 느껴진다. 그렇다고 새로운 도전이 모두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행 이전의 단계에서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고, 시작 초기 단계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지만 일시적인 인기로 인해 앞으로 유지해나갈 역량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에서 철수되는 매장도 많다.



당시 거품경제가 붕괴되고 23개월이나 전년대비 매출액을 밑도는 상황에서 새로운 것과 과감히 도전하는 백화점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세탄 백화점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도전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1994년 2월에 1층 플로어의 프로모션 스페이스였던 스테이지에 가이호쿠(解放區)를 새롭게 선보인 것이다. 이세탄 백화점에는 사내에서만 통용되는 재미있는 공용어가 있다. 55% 공격론이 그것인데, 니하시 치히로가 그 의미에 대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다. "새로운 것을 제안할 때 50%의 가능성이 있다면 상사에게 상담하고, 55%의 가능성이 있다면 스스로 판단한 후 용기를 갖고 실행에 옮긴다. 단, 나머지 45%는 스스로 노력하며 채워나가 100%로 만들어야 한다." 보수적인 백화점 업계를 감안해 볼 때 55%라는 숫자는 뛰어넘기 힘든, 높은 장애물은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제안하고, 방어적인 자세보다는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며 자신이 기획한 안건은 스스로 성공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의미이다.



55% 공격론에는 자유와 책임, 창의와 노력, 도전과 지속 등 기업이 활력을 잃지 않고 성장해 나가기 위해 사원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세가 응축되어 있다. 가이호쿠는 신인 패션 디자이너의 상품을 모아 하나의 매장인 것처럼 꾸민 실험적인 시도였다. 대형 백화점이 신인 디자이너들의 상품을 한 곳에 모아 매장을 만든다는 것은 1980년대 중방 세부 백화점의 시부야 지점이 시도했던 레드존 이후 처음이었다.



BPQC,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자



백화점, 라이프스타일 제안의 최적의 장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것은 간단할 것 같지만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다양한 상품과 매장들이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을 내세우며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있는지, 또는 어떤 상황을 가정하여 개발한 것인지 그 목적을 알 수 없는 매장과 상품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매장 측의 기획의도를 들여다보면 그렇군, 하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매장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반 소비자에게 매장 측의 의도가 전해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고객이 자신의 시각을 통해 또는 그 매장에 있음으로써 명확히 그 의도를 느낄 수 없다면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은 본래의 의미를 잃게 된다.



그렇다면 라이프스타일이 명확하게 느껴지는 상점과 매장, 그렇지 못한 상점과 매장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존재할까? 나는 상점과 매장이 실생활에 필요한 상품을 제안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이 직접 사용할 장소를 구체적으로 재현하듯 상점 내부를 꾸몄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자동차와 가전제품 분야 등이 대형 제조업체 관계자들과 함께 상품을 개발하다 보면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겉을 포장하기 위한 다자인에 그치고 마는, 다시 말해 상품이 먼저고 나중에서야 라이프스타일이니 생활제안이니 하는 겉만 번지르르한 말을 갖다 붙이는 경우를 수없이 많이 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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