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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UCC 트렌드

정재윤 & 장진영 지음 | 새빛인베스트먼트
1. UCC는 한국어다



2007년 벽두부터 한국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는 UCC(User Created Contents). 그러나 UCC는 외국에서는 쓰이지 않는 콩글리쉬이다. 구글에서 UCC란 단어를 검색하면 영어권에서는 이와 관련된 정보를 찾을 수가 없다. 이런 검색결과가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들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UCC는 한국에서 비롯된 독창적 단어라고 자위할 수도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우리의 UCC처럼 쓰이는 단어는 CGM(Consumer Generated Media)이다. 풀어보면 UCC는 사용자제작 콘텐츠, CGM은 소비자생성 미디어라 할 수 있다. 요리에 비유하면 전자는 Contents라는 음식, 후자는 Media라는 그릇인 셈이다. 또한 CGM은 Consumer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UCC는 User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여기에는 상업적 접근에 대한 네티즌의 견제심리가 깔려 있다. 상업적 부담에서 벗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Contents를 생산하는 순수한 사용자임을 강조하는 데 UCC는 유용한 개념이다.



UCC와 가장 근접한 말로 영어권에는 UGC(User Generated Contents)란 단어가 있다. 사용빈도는 미미하지만 Contents 중심 접근이라는 점에서 이웃사촌쯤 된다. 똑같은 개념이 아니라 이웃사촌이라고 한 이유는 한국에서는 'UCC=동영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 사진, 음성 등은 UGC라 명함을 내밀기 힘들다. 한국에서 UCC 사이트 하면 대부분 판도라 TV, 아프리카 등 동영상과 관련된 곳들을 꼽는데, 이는 당연히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가 워낙 좋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만 쓰이고 있지만 UCC는 세계가 주목하는 IT 인프라 선진국의 토양 위에서 활짝 개화하고 있는 개념이다. 이제는 외국에서도 UCC를 "한국에서 CGM과 비슷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며 주로 동영상을 지칭함"의 의미로 소개하는 추세이다. 세계적인 대세는 CGM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UCC가 대세인 셈이다. 이처럼 특수성은 보편성에서 비롯되지만 보편성보다 우선한다.



사물에 올바른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부터 지혜가 싹튼다고 했다. 그래서 개념정의는 매우 중요하다. UCC의 사전적 정의는 "일반 사용자가 순수 창작한 인터넷상의 비상업적인 글, 그림, 음악, 동영상 등"이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세계에서 가장 큰 UCC 사이트는? 십중팔구 미국의 유튜브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또 다른 질문 하나. 세계에서 불법복제 동영상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이것도 유튜브가 정답이다. 유튜브는 말이 좋아 UCC 사이트지 세계 최대의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셈이다. 순수 창작한 것보다 복제 콘텐츠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한국의 UCC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15%도 안 되는 콘텐츠만이 사용자에 의해 창작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UCC의 개념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 사회의 미디어 시스템은 Major와 Mass의 이층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소수의 메이저는 생산자, 다수인 매스는 소비자이다. 양자 간에는 서로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하며, 서로의 역할이 결코 역전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런데 최근 이 이층구조 사이에 새로운 계층이 편입되기 시작했다. 바로 UCC 생산자 층이다. 이들은 생산자 및 소비자 역할을 겸하는 좀 독특한 계층이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메이저-매스의 이층구조를 벗어나 메이저-UCC 생산자-매스의 삼층구조로 변모하고 있다.



인터넷은 자기표현의 자유도를 제고했고 UCC는 이에 덧붙여 자기표현의 즐거움까지 부여한다. 그중 아이디어와 표현력이 뛰어난 일부 UCC 생산자들은 메이저 이상의 인기를 끌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강풀닷컴을 통해 인기 만화가의 반열에 오른 강도영 씨의 경우 〈아파트〉, 〈바보〉, 〈타이밍〉, 〈순정만화〉 등 작품 4편이 영화화될 정도이다. 우리는 이제 그를 UCC 생산자라기보다는 차라리 메이저라 칭해야 한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를 메이저로 옹립시킨 주역이 바로 사용자들이란 점이다.

한편 UCC 생산자는 콘텐츠의 소비자 역할을 겸하고 있다. 그래서 기존 콘텐츠의 소비(재활용)를 통한 새로운 콘텐츠의 생산기회도 증가하고 있다. 기존 콘텐츠의 변형 또는 조합을 통해 좀 더 빠르고 손쉽게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UCC를 순수창작 관점에서 보지 말고 그 의미를 좀 더 확장해야 하며, UCC 생산자 층을 순수창작, 변형창작, 단순조합의 3개 층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만평을 보고 독자들이 만화의 그림은 그대로 둔 채 말풍선 대사만 변형시켜 세태풍자놀이를 벌이는 것이 바로 UCC 창작활동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2. 나는 창조한다, 고로 모방한다



〈개그콘서트〉의 초울트라슈퍼캡짱 인기코너 골목대장 마빡이. 언뜻 봐선 스토리 없이 연신 이마만 두들겨 대다 끝난다. 국민오락 치고는 참 머리 아프다. 하지만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이제 마빡이를 모르면 간첩이다. 마빡이는 도대체 왜 떴을까? 인기의 최대요인은 소재의 단순성에 있다. 개그 속에 숨겨진 의미심장한 기호를 해독할 필요 없이 시청하면서 즐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또 다른 성공 포인트는 바로 '매스미디어와 개인미디어의 효율적 연동'에 있다.



방송은 방송만으로 끝나지 않고 시청자들이 직접 제작한 UCC를 개그 소재로 적극 활용했다. KBS 홈페이지 마빡이 코너에 올라온 UCC 동영상 중 재미있는 것은 방송을 통해 소개하고 그중 하나를 골라 마빡이가 그 동작을 따라 한다. UCC 생산자 입장에서는 방송을 탈 기회이므로 충분히 동기부여가 되어 적극 참여하게 되고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UCC가 급속히 복제되어 마빡이의 인기는 더욱 높아간다. 매스미디어는 UCC를 자극하고 UCC는 다시 매스미디어를 보완하며 생태계적 순환을 반복한다. 마빡이 코너 자체는 분명 독창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로부터 파생되는 UCC 동영상은 마빡이 코너의 모방에서 파생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다. 이처럼 창조와 모방은 본시 분리된 게 아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창조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듦"이라고 나와 있다. 반대말은 모방이란다. 과연 그럴까? 구약성서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나니"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모방과 창조는 피를 나눈 일촌관계임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인 셈이다. 어쩌면 UCC는 창조혁명이 아니라 그 어머니인 모방혁명에서 출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따라서 UCC 생산자는 이 창조란 단어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콘텐츠 생산에 있어 주류에 속하는 대학교수나 인기가수의 표절시비도 비일비재한 이 땅에서, 모든 UCC 생산자들이 순수창작에 집착해야 할 의무나 책임 같은 것은 없다. UCC는 즐기고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방은 또 다른 모방을 낳는다. 하지만 모방은 그 자체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모방의 과정에서 변이가 유발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돌연변이라 칭할 만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생겨나기도 한다. "아이디어는 낡은 것의 조합"이라는 제임스 영의 말에 수긍한다면 창조는 모방의 새로운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UCC에 대해 긍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UCC 생산자의 지혜가 하찮은 아이디어라도 그것을 꿰고 또 꿰면 문수보살의 지혜에 이를 수 있다. 발상법의 하나인 브레인스토밍의 원칙 중에 '질보다 양'이 있다. 처음부터 질을 생각하며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면 오히려 심적으로 부담스럽다. 차라리 자유분방함 속에서 하찮은 아이디어라도 많이 쏟아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무임승차를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창조)로 발전하기도 한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UCC 분위기가 들끓다 보니 여기저기서 동영상 UCC 업체들에 대한 견제가 들어오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선거 UCC의 제작을 금지하고, 시민단체들도 UCC의 남용을 우려하며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있다. 치명적인 것은 UCC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저작권 문제에 언론이 칼을 들이대기 시작한 것이다. UCC 콘텐츠의 상당수는 메이저에 의해 생산된 동영상들이다. 언론이 저작권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UCC의 흥망성쇠가 자신의 사활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싼 제작비를 들여 애써 제작한 콘텐츠를 사용자들이 무단으로 편집, 배포하고 있으니 열불이 안 날 리가 없다. 그렇다고 이들을 고소한다면 수백만 명을 범법자로 만들 것이고 자칫하면 안티세력을 양산해 방송, 신문 안 보기 운동으로 확산될 수도 있으므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메이저와 UCC 생산자의 알력을 억제할 대안은 없는가? 대안 중 하나로 국내 UCC 관련 업체에서는 공중파 3사에 인용권이란 개념을 제안했다. 이는 일정 분량(5분 이내)의 동영상을 편집해 UCC를 생산할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하는 대신 UCC 서비스 운영자로 하여금 사용자를 대신해 저작권 사용료를 지불하게 하는 구조를 말한다. 현 시점에서는 아직 제안단계이기 때문에 수용될지는 알 수 없다.

한편 메이저에 의해 생산되지 않은 콘텐츠의 저작권 문제는 UCC 생산자가 결자해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예를 들어 개인이 블로그에 올린 UCC를 다른 사람이 자기의 창작물인 양 올리는 뻔뻔한 경우가 있다. 서적 리뷰 이벤트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리뷰를 도용해 다른 곳에다 올린다면 심정이 어떻겠는가? 이런 경우 사용자가 일일이 눈에 불을 켜고 저작권 침해를 색출해야 하는 노력도 만만치가 않다. 따라서 필자는 대안으로 전 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이것은 UCC 생산자가 일정 조건부로 다른 사용자들이 콘텐츠를 자유롭게 변형, 유통, 소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한 예로 홈페이지 하단에 "Some right reserved"라는 표현이 부착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Some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는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암묵적으로 동의된 사실은 이용자가 저작자의 요구만 따라준다면 특별히 개인적인 접촉을 하지 않더라도 적법하게 남의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가 UCC 저작권 문제를 일수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다만 사용자들에게 내재된 복제본능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처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작은 것으로부터 해결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3. UCC가 재미에 푹 빠진 날



언제부터인가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개업기념 도우미 쇼를 자주 보게 된다. 신나는 음악에 발 맞춰가면서 낭랑한 목소리로 집객을 유도하는 도우미 언니들은 분명 이목을 끌어당기는 존재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아무리 떠들어도 아저씨들뿐 아니라 총각들도 무덤덤한 표정으로 "넌 그래라, 난 나대로 간다"라며 길을 걷는다. 이렇게 된 이유는 내성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감각이 무뎌진다면 더 강한 자극을 투여할 수밖에 없다. 도우미 언니들이 펼치는 길거리 퍼포먼스가 이전보다 더 육감적, 자극적으로 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 분야에서 예쁜 것, 자극적인 것, 재미있는 것들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UCC가 재미를 지향하는 게 현실이라면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관심의 문제이다. 관심이 재미를 견인하고 재미는 다시 UCC를 견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관심유도의 매개체 중 하나는 바로 댓글이나 트랙백이다. 생면부지의 사람들로부터 "잘 봤습니다.", "퍼갈께요" 등의 격려를 받는다면, UCC 생산자는 이에 자극받아 보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UCC를 양산하게 된다. 역으로 정성들여 제작한 콘텐츠가 타인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한다면 의기소침한 UCC 생산자는 더 이상 콘텐츠 생산에 의욕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재미가 없으면 관심도 없고, 관심도 없으면 UCC도 없다."



어느 특강 전날 교육담당자가 필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휴대폰에는 "재미있고 유익한 강의 부탁드립니다"라고 찍혀 있었다. 말의 순서에 주목해보자. 교육 목적의 우선순위가 바뀐 건가? 이제는 누구나 지나친 진지함이 청중들에게 오히려 고통일 뿐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UCC가 바른 길로 가려면 콘텐츠가 재미에만 쏠리지 않고 좀 더 다른 장르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재미와 다른 장르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인터넷은 기업에겐 전쟁터지만 사용자에겐 놀이터다. 사용자들은 검색엔진을 통해 정보를 찾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정보를 낚는다. 왜 그럴까?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고 갑갑하니 반대급부로 재밋거리에 탐닉하는 경향도 갈수록 증가하는 게 아닐까? 일도, 직장도, 상품도, 친구도, 미팅도 일단 재미있는 게 우선이다. 안 그래도 인생살이 피곤한데 온라인에서까지 심각할 이유는 하등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UCC에서 재미를 빼면 시체"다. 현재 인기를 누리는 UCC를 보면 정보, 교육, 쇼핑 등의 내용을 다루는 것은 거의 없다. 대부분 길고 따분하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이 포털이나 독립계 UCC 사이트에서 하루에도 수백 건씩 업로드되는 UCC를 일일이 다 관람하긴 힘들다. 그럴 만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인기 있는 동영상들을 편식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메인 화면에 소개된 동영상은 더 많은 사람이 보게 되고 더 많이 스크랩된다. 눈덩이 효과라는 것이 있다. 처음에는 미약하게 시작된 것이 점차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확대되어 가는 현상을 말한다. 재미있는 UCC일수록 이런 현상이 강하다. 사용자들의 왕성한 복제욕구 덕택이다. UCC 자체는 평등할는지 몰라도 인기는 평등하지 않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갈수록 심화된다.

2004년 후안 만이라는 호주 청년이 시드니 길가에서 "무료로 안아드립니다(Free Hug)"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행인들과 포옹을 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본 그의 친구 사이먼 무어가 3분 39초짜리 동영상에 자신이 작곡한 곡을 붙여 유튜브에 공개했다. 이를 계기로 삽시간에 프리헉스운동이 세계적인 화젯거리로 떠올랐고,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이를 소개하면서 눈덩이 효과에 가속도가 붙었다. 동영상은 수백만 페이지뷰를 기록했고 약 1만 개의 격려 댓글이 올라왔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 이 동영상에 감동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길거리에 나와 피켓을 들고 프리헉스 운동에 동참했다. 사실 프리헉스 운동 같은 콘텐츠는 생산자 입장에서 보면 돈도 별로 안 들고 정교한 연출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누구라도 세상 변화의 중심에 서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은 얘기한다. UCC가 어디 동영상뿐이냐고. 물론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글, 그림, 사진, 음성도 중요한 UCC 수단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동영상이 UCC의 매우 중요한 일부이며 그게 추세다. 인터넷의 대부 격인 싸이월드나 네이버 지식iN에는 미안한 얘기지만, 대세는 동영상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한국인과 동영상 UCC는 속궁합이 기가 막히게 딱딱 맞는다. 초고속 인터넷이 사방에 깔려 있으니 동영상 보는 데도 문제가 없고 대개 동영상 UCC들은 짧기 때문에 빨리빨리 국민성에도 부합한다. 콘텐츠의 소비 및 유통 인프라가 갖춰진 셈이다. 또한 한국의 얼리어댑터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여 각종 디지털 장비의 구매에 거리낌이 없다. 콘텐츠의 생산 인프라도 충분한 것이다.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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