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중일 삼국지
우수근 지음 | 두리미디어
1부 한·중·일 마주보기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돌다리를 건너는 법일본, 중국, 미국 등지에서 유학하거나 생활하면서, 중국인, 일본인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았었는데, 그들과 일하면서 한·중·일 3국의 일반적 성향이 서로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중국과 일본 양국의 차이를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우리 속담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일반적인 중국인이라면, 십중팔구 돌다리를 두드려 보는 둥 마는 둥, 그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다른 이들을 흉보며, 가래침 한번 '회-액!' 거나하게 내뱉으며 거침없이 건너가려 할 것인데, 이는 다른 이들을 무시하며 깔보는 듯한 그들만의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에 비해 일본인들은 돌다리를 만져 보고 두드려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문가를 불러 의견을 듣고 검토, 분석한 다음에도, 다른 누가 먼저 건너가야지만 비로소 그 뒤를 쪼르르 따르려 할 것이다. 이는 곧 중국인들이 일본인들에 대해 '호탕하지 못하다', '쫀쫀하다'라고 표현하는 것과 일본인들이 중국인들에 대해 '막무가내다', '거칠다', '조잡하다'고 인식하는 것을 수긍하게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양국의 이러한 특성을 접할 때면, 대륙과 섬이라는 지정학적 영향이 양국 국민성에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아무튼 이러한 각국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이해와 상생의 출발이 된다. 타인(타국)의 언행에 대해 이해를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와 다른 남의 특성을 나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려 한 결과인데, 이것은 곧 자신(자국)의 세계를 '자기'라는 폐쇄된 우물 안으로 좁게 국한시키고, 타인과의 공존도 저해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고방식이다. 즉 타인(타국)을 품으려면 먼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생각하는 한국한국과 일본에는 중국을 소개하는 많은 책이나 자료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 한·일 양국의 서적을 읽노라면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 관련 책들의 저변에 흐르는 일반적인 논조가 한국 서적과 일본 서적에서 사뭇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보충 설명하면 한·일 양국 모두 주로 중국의 경제적 측면을 부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하지만 한국 서적들은 "13억을 헤집어라!"는 식으로 13억의 전면을 강조하고 있다. 즉 13억 중국 시장에서 미소 지으려면, 더 늦기 전에 중국행에 나서라는 식으로 독려하는데, 다분히 선정적이며 무책임한 느낌마저 없지 않다. 반면, 일본은 "13억을 조심하라!"는 식으로 13억의 이면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시각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매우 다르다. 즉 한국은 적극 나서야 할 기회로서, 일본은 신중하고 경계해야 할 위협의 대상으로서 중국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가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위기(危機)'라는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 기회와 위협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고루 균형 잡힌 시각에서 접근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가 생각하는 한·중·일내가 접한 대부분의 중산층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생각하는 3국에 대한 인지도와 친밀도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각국 정부 및 정치 부문을 통한 인지도 : 일본 > 중국 > 한국 각국 경제와 문화 및 비정부 활동을 통한 인지도 : 일본 > 한국 > 중국
보충 설명하면, 일본 정부의 막대한 'Yen 차관'이나 무상 원조 등의 '경제 협력', 그리고 이들과 동반 진출한 일본 기업들의 활동은, 인도네시아와 같이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국가들에서조차 일본에 대한 인지도를 상당 부분 끌어올리게 했고, 여기에다가 각종 비영리 기구 및 시민 단체들의 인도주의 손길은, 일본인 특유의 꼼꼼함과 친절함 덕에 소외되고 버림받은 동남아 지역의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어, 동남아 지역에서 일본의 인지도는 친밀감으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국과 중국은 어떤가? 먼저 중국은 현재 경제적으로 급부상 중이라고는 하지만, 중국 정부의 대외 차관이나 무상 원조 등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중국 국내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도 아직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중국의 외교 전략이 돋보인다. 중국은 이와 같은 중국의 국내 사정을 잘 인지하고 있을 동남아 국가들이 감격하도록 '콩 한쪽도 나눠 먹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부족하거늘 이를 쪼개어 나누어 준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하는 식이다.
그러면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 기업들의 선전으로, 인지도는 낮지 않고, 전체적인 국가 이미지 또한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에 대한 관심은 이들 나라에 비해 떨어진다. 아니, 유감스럽게도 아세안(ASEAN) 지역 지인들의 최근 목소리를 모아 보면,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부자 국가'이지만 인색하다는 종전의 큰 이미지 외에 이렇다 할 다른 사항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 관련, 특히 우리 정부는 '많이' 반성해야 한다. 이는 결코 규모나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월드컵 4강'과 '경제 규모 11위'를 우리만의 헛된 자화자찬이 아닌, 주변 각국도 마음속 깊이 공감하며 반겨 주는 따뜻한 대한민국, 한국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부 한·중·일의 정치 삼국지한·중·일과 리더십중국 헌법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국가의 최고 권력 기관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인대의 대표들이라 해도 그들의 인민 대중에 대한 태도는 대체적으로 매우 수수하고 질박하여, 그들로부터 느껴지는 권위(외국에서는 당당하지만 국내에서는 온화해지는 중국 정치인들의 모습)는,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에게서 풍기는 권위(국내에서의 떵떵거리던 모습이 외국에서 번데기마냥 쪼글쪼글 왜소해지는 모습)와 사뭇 다르다.
한편 일본의 국회도 국가 권력의 최고 기관임과 동시에 유일한 입법 기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의 국회의원들의 태도도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겸허하고 조심스럽다. 예로 대정부 질문이나 국정감사에 임하는 일본 의원들의 모습 -준비한 자료와 질문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며, 출석한 응답자들의 응답을 차분하게 경청하는 양보의 모습- 에서는 스스로 낮추며, 역지사지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한·중·일의 리더십과 관련하여 덧붙이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다름 아닌, 기존 질서에 대한 '인정'이나 '선험자'에 대한 존경이라는 부분이 그것이다. 흔히 한국의 정계에서는 자신을 세우거나 한 자리 하기 위해, 선후배나 동료, 심지어는 현재 그 직위에 있는 사람까지도 마구 폄하하며 부정하는, 아주 잔인하고 유치하며 치졸한 전통 아닌 전통이 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정계에서는 '선배'들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자신들을 세워 나가는데, 이 점은 한국의 정치인들이 조속히 배워야 할 문화라고 생각된다.
미·중·일 vs. 닫힌 사회 한국우리의 닫힌 사회성은, 우리 사회의 경직성 심화와 더불어 주변국이 우리를 조소하고 이용하도록 스스로 만들어 왔다. 그 단적인 예가 우리 사회의 천편일률적인 일본에 대한 인식이다. 물론 과거사를 둘러싼 일본 정계 일부의 구악에 대해서는 비분강개함이 당연하며, 그것이 합당한 대처 방법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일관에 있어 대통령부터 국민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가 항상 동일한 목소리에 일사분란한 행동으로 똘똘 뭉쳐야만 하는지, 또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일본의 위정자들이, 북한이나 중국을 두려워하듯, 우리의 비분강개를 버거워하였는지 묻고 싶다. 오히려 그들이 자기들의 정리 정략에 맞춰, 우리를 자극하고 유도하며 쾌재를 부르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우리는 좀 더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베르그손에 의하면 닫힌 사회의 결합 원리는 정지된 관습이나 위압, 명령 등에 의해 개인을 사회에 복종시키려는 불변의 비인격적인 닫힌 도덕으로서, 이러한 사회에서는 가족이나 도시, 국가도 타인을 선별 또는 배척하며 거부와 투쟁을 전개한다고 한다. 이에 비해 열린 사회의 결합 원리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생명의 근원에 감촉되는 환희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고 향상하려는 인류애적 도덕, 즉 열린 도덕이다. 따라서 열린 도덕은 가족이나 사회, 국가의 닫힌 도덕을 초월하는, 사랑으로 맺어진 인류 사회에 대응하게 된다고 한다.
필자는 강산이 한 번은 변하고도 남았을 그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외국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상대적 닫힘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면서, 밟힐수록 강해지며 푸르러지는 우리의 열린 사회 지향성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에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 문제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미명하에 우리 사회의 열림 지향성을 저해하는 일부 닫힘성 인자들이다. 하지만 감히 단언한다. 우리 국민들의 슬기와 지혜는, 겪어본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더 훌륭하다. 이러한 우리에게 있어 황우석 교수 사태 등은 우리의 열린 사회화를 더욱 촉진하는 촉매제가 되리라 확신한다.
한국과 중국, 독도와 역사 교과서 왜곡을 일본 개혁의 기회로!과거사나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 정계 일부의 행태는 실로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그들에 대한 우리의 대처는 과연 현명하다고 할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는 차제에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와 독도 문제를, 오히려 일본 변혁의 계기로 적극 활용하자고 제안하고자 한다. 즉, 일본인들 스스로 자국의 전근대적 정치 행태에 일대 변혁을 초래하도록 유도, 지원해 나가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먼저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일본 전문가가 있지만, 현행 독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 자세는, 아직 체계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한편 일본 국민들의 지성과 이성은 결코 우리보다 낮지 않지만, 일본인들은 현재 독도에 대해 아직 무지하거나 혹은 지엽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왜냐하면 관련 자료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독도에 관한 한·일 양측의 기존 자료들과 새롭게 발견되는 자료들을, 일본인들이 직접 접하고 사고하는 가운데 그들 스스로 독도 문제에 좀 다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즉 이들 일본인들에게 독도를 포함한 양국 현안에 최대한 잘 다가갈 수 있도록, 한·일 양국의 자료와 주장을 있는 그대로 제공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사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 구체적 방법으로는 한국 정부의 지원에 의한 관련 자료의 일본어판 발행과 일본 국내외 일본인들에게 그 발행본을 배부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다음,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한번 생각해보자. 이 또한 우리가 전략을 잘 짜기만 하면, 일본 개혁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설 것인가? 일단 우리의 타깃을 두 부류로 나눠 보자. 첫 번째 부류로는 일본의 행동하는 양식들, 즉 역사 바로 세우기에 노력하는 일본 사회의 단체와 역량 있는 개인들이 최우선 대상 -일본의 교육 현장을 지키는 일선 교사들, 일본 사회의 양식을 지키는 다양한 시민 단체와 개인 활동가, 일본의 학부모- 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된, 즉 소중한 자신들의 2세에게 왜곡된 역사를 주입시키는 것을 수수방관할 리 없다. 따라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일본인들과의 유대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는 가운데, 이들이 스스로 일본 정부의 한심함을 질책하며 계도하도록 협력해 나가자는 것이다.
두 번째 부류로는 일본의 일반 사람들을 꼽을 수 있는데, 우리는 이들에게 '무리하지 않게' 다가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인들의 감정과 그들만의 일반 정서에 호소해 들어가는 재치 있는 접근 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된다. 즉 타인에 대한 피해를 꺼리며 주위에 대한 배려와 공존을 사회의 근간 덕목으로 삼아 온 일본임에 착안하여, 일본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미덕에 비춰 본 오늘날 일본 정부의 행태를 생각해 보도록 부드럽게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양국의 현안은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 양국의 건전한 다수 세력들과 상시적으로 폭넓게 교류, 협력해 나가는 가운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아울러 우리 땅 독도에 대한 우리의 단호한 수호 결의와 사수 의지는 필요하며 당연한 것이지만, 미국의 어떤 국제법 학자의 지적처럼 마치 '무비판적 세뇌 교육'으로도 비춰질 수 있는 지금과 같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구호 제창과 함께 "와!"하고 나라 전체가 들고 일어서는 듯한 모습은 이제 재고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이여! '까치 국가'가 되자!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국제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중국인 및 일본인 일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일본인은 자국과 향후 관계 강화가 필요한 국가로 중국(43.3퍼센트), 아시아(21.3퍼센트), 미국(19.4퍼센트) 등을 꼽고 있는데, 한국은 1.9퍼센트로 인도(10.2퍼센트)와 러시아(2.8퍼센트)에도 뒤지고 있었다. 또 중국인들은 미국(31퍼센트), 러시아(24퍼센트), 아시아(23퍼센트) 등의 순으로 꼽고 있는데, 여기서도 한국은 인도(9퍼센트)와 일본(4퍼센트)에도 뒤지는 3퍼센트에 불과했다. 한편 한국 영화의 해외 수출은 급증하여 2006년 상반기의 수출 계약이 이미 작년 한 해의 실적을 초과했고 수출시장도 다변화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한류(韓流)'는 한국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데 적지 않게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위의 두 가지 상반된 사실이야말로, 우리에게 '까치 국가'로서 나아가야 할 '까치 외교'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까치 외교란 어떤 것일까? 까치 외교를 보기 전에 먼저, 그 구상의 전제이자 1단계 모습인 '조류(鳥類) 외교'를 살펴보도록 하자. 한반도는 왼쪽 날개에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대륙 세력을, 오른쪽 날개에는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해양 세력을 가졌는데, 새는 양쪽 날개의 힘과 크기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뤄야만 잘 비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새의 몸체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 한반도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도 조류 외교를 지향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20세기 중반의 한반도 상황과 현재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단적인 예로 그동안 경시했던 왼쪽 날개의 한축인 중국이 급속도로 부상하여, 현재는 그동안 함께한 오른쪽 날개보다 이 왼쪽 날개를 더 중시하자는 소리마저 커지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지만, 아직 중국에 대한 총제적인 판단은 시기상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은 명백하다. 양쪽 날개에 균형 감각을 고루 잘 살리는 외교 전략, 미국이니 중국이니 하는 어느 한축보다는, 모두를 잘 어르는 가운데 비상할 수 있는 신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하겠는데, 까치 외교는 이 조류 외교와 거의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2단계 완성형 전술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의 '까치'는 우리 민족이 지닌 이미지(나타나기만 하면 반갑고 그로 인해 왠지 좋은 일을 예감하며 가슴 설레게 하는 길조의 이미지) 그대로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이미지를 외국이나 외국인들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