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종말
마인하르트 미겔 지음 | 에코리브르
머리말모든 사람이 날씨와 계절의 변화에 관해 얘기한다. 하지만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불러오는 더 근본적인 기후 변화에 관해서 얘기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와 비슷한 말이 경제와 사회에도 적용된다. 모두 성장률과 근로자 수, 구조조정과 국회의원 선거에 대해 얘기하지만, 전 세계에서 민족이나 국민경제, 무역의 흐름이 근본적으로 변동하고 있다는 점을 얘기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이 같은 변동은 기후 변화처럼 언젠가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그렇게 되면 옛것은 새로운 것에 자리를 내어줄 것이고, 신뢰하던 것들은 낯선 것에 밀려날 것이다. 한 시대는 또 다른 시대가 등장함으로써 와해되고 만다. 지금이 바로 그처럼 역사가 전환되는 시점이다.
어림잡아 10년 안에 독일, 프랑스, 영국, 그리고 일본과 미국은 지금까지 누려왔던 특별한 위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들 서구 국가들은 모든 방면에서 심각하게 압박을 받고 있다. 서구국가들처럼 되고자 노력하는 국가들과 경쟁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은, 몇 세대에 걸쳐 내려온 헤게모니를 유지하느라 지치고 녹초가 되어버린 서구를 더욱 힘들게 한다. 지친 현상은 쉽사리 간과할 수 없다. 사회적인 연대의식도 무너지고, 사회적 결속이 가장 잘 이루어진 형태인 가족도 와해 지경에 이르렀다. 서구인의 삶의 양식에서 그와 같은 심각한 부작용들이 점점 눈에 띄게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시민들은 휴식과 오락만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흔히 미래가 전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렇지만 정치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을 결정적인 문제가 아닌 것처럼 은폐하려 노력한다.
서구의 국민은 세계의 바뀐 구조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더 이상 세계를 지배하지 않고 있으며, 지금부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눠 가져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마디로 이는 포기해야 한다는 듯이다. 서구의 국민이 접시를 가득 채우는 동안, 가진 것 없는 자들이 지금까지처럼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리라 믿는다면, 이는 현실과 지극히 동떨어진 생각이다. 이 말은 앞으로 서구가 궁핍에 허덕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곳의 국민은 여전히 높은 복지 수준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서구 국가들이 자신들의 수단과 가능성을 예전보다 더 절약하고, 지난 몇 십 년 동안 낭비와 과잉으로 넘쳐나게 했던 경제와 사회를 더 현명하게 만들어 나간다면 말이다. 이 세기에 잘 적응하려면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 지금보다 훨씬 강한 정신력과 윤리적인 힘을 쏟아야만 한다.
제1장 프롤로그17세기부터 유럽의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당시의 생산성 향상은 곧장 인구 증가로 이어졌다. 하지만 개인의 생활수준은 완만하게 상승할 뿐이었다. 경제 성장은 인구 증가를, 인구 증가는 또다시 경제 성장을 부추겼다.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경제적 강세에 힘입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대륙인 유럽은 1800년경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게 되었다. 전 세계의 많은 지역에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유럽화가 진행되었고, 그리하여 유럽식, 특히 영국·에스파냐·프랑스·러시아식 시각과 태도들이 전파되었다. 그리고 피지배 국가에서는 지배 국가에서 일어난 것과 비슷한 현상들이 일어났다. 즉 경제 성장과 삶의 조건 향상, 수명 증가, 인구 증가 등의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유럽인이 아닌 사람들도 한때 유럽인이 거쳐갔던 길을 따라가게 되었다.
19세기, 특히 20세기에 이르러 인구 구조는 양적으로만 늘어난 게 아니었다. 연령 구조에도 변화가 생겼던 것이다. 이 시기까지 개인은 점점 노령화되었다. 인류는 아직 젊었지만, 점차 노령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서서히 진행되더니 나중에는 급속도로, 그 다음부터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노령화되어갔다. 그리하여 인류는 애초에 대부분 젊은이로 구성되어 있던 길을 떠나 폭발적인 인구와 노령화의 시기로 넘어갔던 것이다. 우선 점점 많은 아이가 성년까지 살아남게 되었다. 그리고 조부모가 되는 층이 많아졌는데, 이는 굳이 할머니가 자주 등장하는 그림 형제의 동화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이와 같은 추세는 20세기 중후반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았고, 1950년부터 2000년까지 인간의 수명은 40퍼센트 늘어나 47세에서 65세가 되었다.
인류는 계속 증가할 것이고 평균적으로 노령화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발전은 앞으로 한동안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21세기 중반 이후부터 인구 증가의 경향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반전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5만 년 동안 줄곧 증가하기만 하던 인구는 잠시 정체 상태에 머물다가 약 2070년부터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인구의 감소는 지역과 무관하게 진행된다. 오늘날의 아이들이 -유럽이든 아메리카든 아시아든- 늙으면, 이들은 인류 최초로 인구의 감소 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물론 이때 일어날 감소는 인구가 상당히 늘어난 상태에서 진행된다. 인구 감소가 진행되기 전에 인류는 이미 30억 명이 더 늘어난 상태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30억이라는 수는 1960년의 세계 전체의 인구에 해당한다.
전반적으로 노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세계 인구의 양적인 구조가 바뀌고 있다. 현재의 추측으로는 2005년에서 2050년 사이에 인류는 29억 명이 더 늘어날 것이고, 이들 가운데 26억 명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아시아에서만 인구가 15억 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중국, 일본, 한국과 몽고 같은 동아시아는 인구 증가에 아주 조금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의 인구 역시 두 배로 늘어날 텐데, 그러니까 9억 명에서 19억 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전체수로 보면 미약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볼 때 인구 증가의 폭이 큰 곳은 중앙아프리카와 북아프리카인데, 각각 2억 명과 1억 3,300만 명 증가할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는 반대로 에이즈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남부는 인구가 정체 상태에 머물거나 오히려 줄어들 전망이다.
그렇다면 유럽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200년 전 이곳은 세계적인 인구 폭발의 시발점이 되었지만, 이제 그와 같은 경향에 쐐기를 박는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2050년대에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을 트렌드가 유럽에서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즉 인구 증가가 멈추고, 이는 앞으로 인구 감소로 이어진다. 유럽인의 수는 수년 전부터 거의 증가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이 계산에 따르면 유럽의 인구 -러시아도 포함- 는 2025년까지 약600만 명이 감소하고 2050년까지 약 6,000만 명이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인구 감소는 전체 유럽 인구의 8퍼센트 이상에 해당한다. 유일하게 북부 유럽만 총 700만 명 정도 인구가 증가할 것 같다. 이런 추세는 영국, 스웨덴과 노르웨이에 한해서 일어난다. 유럽의 인구 감소는 수년 동안 이어진 저출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연령 구조에도 반영되어 오늘날 유럽인의 4분의 1이 20세 이하인데 2050년이 되면 5분의 1 정도가 20세 이하일 것이다.
세계라는 무대에 화려하게 출현했던 유럽은 이제 퇴장할 때가 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과정에서 유럽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보편적인 답을 내놓는 일이다. 즉 인구가 줄고 노령화의 속도는 빠르며, 어느 정도 높은 복지 수준에 이르렀지만 사회적 결속력이 약해진 민족들은 어느 길을 갈 수 있고, 또 마땅히 가야만 할 것인가? 지금까지 인류는 이런 질문을 던질 이유가 없었다. 그야말로 유럽인이 최초로 이 문제와 대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에 대한 대답으로 21세기를 훌쩍 뛰어넘을 때까지의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 만일 새로운 역할이 합당하다고 하면, 유럽은 다시금 세계의 발전을 주도해 나가야 하는 임무를 떠맡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임무를 맡기 전에 유럽은 인구통계상의 변화로 경제적·사회적 결과에 압사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제2장 갈등전 세계의 복지 격차는 한동안 화강암처럼 단단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제 허물어질 것이다. 그것도 조금씩 부스러지는 게 아니라 큰 조각으로 쪼개진다. 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가 되려는 사람들은 잘사는 나라의 복지에 동참하고자 하고, 이를 방해하기란 쉽지 않다. 선진국이 되는데 아무리 오랜 세월이 걸릴지라도,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는 나라는 포기하지 않을 만큼의 결단력과 실천하는 힘도 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개발도상국을 자주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머릿속에 그 같은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 사람들도 진실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나는 가난하고 다른 사람들은 부자이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진실을. 이런 생각은 동기를 부여할 수 있지만, 또한 좌절과 증오심을 낳을 수도 있다. 결국 무엇이 우세할지 현재로서는 말할 수 없다. 그와 같은 일은 서서히 무르익는 법이니까.
부자 나라들도 가난한 민족들처럼, 오랫동안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되었던 유럽식-미국식 삶의 양식은 결코 보편화될 수 없다는 점을 파악하기에 이르렀다. 그와 같은 삶의 양식은 단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다. 만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오히려 고통스러운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꿈이 변해서 악몽이 되어버린다. 이런 경험은 지금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지구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지구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점점 서구식으로 살고자 하는 삶의 양식 때문에 어려움에 빠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유럽인, 북아메리카인이나 다른 몇몇 민족들처럼만 살고자 노력한다면, 머지않아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이는 21세기에 겪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선진국들이 자국의 복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야만 할 시기다.
왜 잘사는 국가들은 그렇듯 비용이 많이 드는 군함을 유지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계속해서 무기를 늘리는 것일까? 평화가 없는 세계에서 평화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이유만으로는 엄청난 군비를 설명하기에 역부족이다. 평화의 수호란 그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충분히 가능하니 말이다. 현재 선진국들은 빈부 격차가 위태로운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후진국들의 성공을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성공하면 자신들이 밀려나지 않을까 두려워서 이를 막고자 하기 때문이다. 논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들이 과거에 복지 국가를 건설할 때 갖추고 있었던 기술적·조직적 그리고 그 밖의 우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군사적 힘이라는 우산 밑에 도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우산이 얼마 동안 보호해줄 수 있겠는가? 과연 이렇게까지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좋은 결과가 나올까 하는 의구심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의 중심이 되는 곳은 늘 통치하고 지배하려는 성향이 생긴다. 그리하여 이들은 이웃을 다스리고, 가능하면 전 세계를 지배하고자 한다. 지배하지 못하는 권력은 드물다. 그런 권력은 인간의 현실이 아니라 종교적 계명일 것이다. 하지만 권력자가 지배를 하게 되면, 이후 모든 곳에서 압박을 받게 되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든 도전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동안 그는 도전자를 이길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힘이 다 빠져 다른 사람에게, 그러니까 성공을 지향하는 자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경제력과 군사력의 중심지였던 곳은 모두 무너지고 새로운 곳으로 대체되었다. 이는 미래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우두머리에 있는 자는 곧 추락할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점을 알아야만 한다. 가장 강한 우두머리는 미래의 패자가 될 게 확실하다.
모든 이의 행복을 위해 흔히 평화로운 공존을 맹세하고는 하지만, 이는 가장 고상하고도 비현실적인 인류의 꿈에 속한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부터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변함 없는 사실은, 대립적인 태도가 단연코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점이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그룹, 혹은 자기 민족의 행복을 위해 속마음을 감추고 있지만 말이다. 이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난다. 예술, 스포츠, 학문, 경제,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에서 대립의 양상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실제로 발발하는 전쟁의 횟수는 줄어들었다. 통계학자들에 따르면,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전쟁은 전반에 비해 더 늘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일어난 군사적 충돌의 대부분은 국가 간이 아니라 국내에서 일어났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현재 볼 수 있는 군사력의 불평등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전쟁의 대리인, 즉 피를 흘리지 않는 대리인에게 더 큰 의미가 부여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경제 전쟁 말이다.
역사에 익숙해진 유럽인은 세대가 거듭되어도 자신들을 따라올 자가 없으며, 더군다나 자신들을 따라잡을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 믿었다. 다른 국가들은 잘해야 자신들의 밑에서 일하는 조수 정도이며, 원자재나 운반해주리라 굳게 믿었다. 그런데 미사일처럼 빠르게 성장해버린 일본과 그 뒤를 이은 동남아시아의 4개국 -한국, 타이완, 싱가포르, 홍콩- 은 유럽인과 미국인에게 이미 한 수 가르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면 중국·인도·인도네시아와 다른 나라들 역시, 그러니까 지금은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몸을 굽히고 있는 나라들도 훗날 경제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들이 세계경제에 편승하면 지금과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식탁에서 서구인에게 주어졌던 넓은 자리는 좁아질 것이고, 집 주인 행세를 하는 데 익숙하던 서구는 더 이상 그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이 변했으며, 무엇이 변하게 될까?
많은 예언가는, 서구 사람들이 지금 거리로 내몰리는 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고 알려준다. 앞으로 '일자리의 대이동(job-exodus)'이 일어날 것이라는 뜻이다.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나라가 한 번 깨어나면 더 이상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유럽인은 2015년까지 120만 개 정도의 일자리, 그것도 자격을 요하는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고, 미국인은 2010년까지 160만 개의 일자리를 저임금 국가들에게 잃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전망 가운데 몇 가지는 매우 위협적이다. 일찍 산업화한 국가들의 노동력은 대부분 너무 비싸고, 요구 사항이 너무 많으며, 세계 시장에서 보조를 맞출 만큼 수준도 높지 않다. 하지만 아시아뿐 아니라 동유럽 국가들에는 교육을 잘 받았으며 저임금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이 풍부하다.
전 세계적인 경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세계경제에서 긍정적인 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세계경제는 오로지 자본가의 이익에만 봉사하며 그것도 잠시일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계경제는 노동자를 가난하게 만드는데, 선진국의 노동자뿐 아니라 비선진국의 노동자도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모든 것을 이념적 허풍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세계화로 인해 소수는 힘들 텐데, 특히 일찍 산업화한 국가에서 그럴 것이다. 무엇보다 고생할 사람은 자격이 없거나 전문적인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의 고통은 금세 사라진다고 한다. 대다수가 세계화의 초기부터 이익을 얻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 많은 분업을 통해 모두가 좀더 나은 복지에 이르는 것이 경제의 철칙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이는 최고로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그렇듯 세계화에 대한 평가가 다양할지라도 한 가지 점에서는 일치한다. 즉 세계화란 거대한 도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