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스토리
존 바텔 지음 | 랜덤하우스중앙
세상을 바꾸는 힘, 검색2001년 가을 인터넷 업계는 누가 보기에도 쇠락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세웠던 회사를 포함해 한때 잘나갔던 신생기업 수백여 곳이 파산했다. 나 역시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내가 경영하던 인터넷기업의 실패는 뼈에 사무칠 정도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나와 '구글'의 만남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인터넷사업을 다시 부활시킬 가능성이 있을지 궁리하던 가운데 우연히 '구글 자이트가이스트 Google Zeitgeist'의 제 1판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구글 자이트가이스트는 특정 시기 동안 인기를 얻거나 잃은 검색어들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똑똑한 홍보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구글 자이트가이스트는 인기 검색어를 찾아내 집계함으로써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나 흥미로워하는 것, 반대로 예전에는 인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대중적인 관심을 잃고 있는 것들을 요약해서 한눈에 보여준다.
목록들을 살펴보며 순간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자이트가이스트는 내게 구글이 우리 문화를 진단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 문화의 신경체계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는 걸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거대한 힘을 가진 살아 있는 인공물'에 비유될 수 있으며, 후에 내가 '의도의 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르게 되는 것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 것이다. 이럴 수가! 매시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검색어들이 서버로 흘러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구글은 우리 문화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글과 같은 기업들이 세계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면, 강력한 힘을 가진 조직들이 이런 기업들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며 반대로 허약한 개인들은 그러한 조직들을 하나의 '공포'로 여길 것이다. 구글의 15만 개가 넘는 서버들의 실리콘칩에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린 동성애자의 고뇌하는 움직임과 폭탄제조를 꿈꾸는 테러리스트의 은밀한 속셈, 그리고 연쇄살인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구글과 같은 기업들과 그들이 일으키는 결과를 통해서 개인의 디지털 정체성은 영구적 생명을 얻게 되지만, 반대로 이러한 정체성은 외부의 요구에 의해 검색가능하기도 하다.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은 현재까지 그러한 요구가 있었던 적도, 또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켜준 적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이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면 그러한 외부의 요구를 과연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궁극적으로 개인의 디지털 정체성을 검색하고자 하는 요구는 앞으로 충분히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요구에 대한 압력은 강력하다. 또한 악의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될 위협도 상당하다. 2001년 9.11 사태가 터진 후 미국 정부는 국내감시권한을 강화하는 법률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의회는 아무 논란 없이 순식간에 미국애국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의 한도 내에서 미국 정부는 구글과 같은 회사들에게 정부기관이 요구하면 정보를 '비밀리에' 제공해줄 것을 강제할 수 있다. 미국연방수사국과 미국국가안전보장국, 그리고 국방부 등 전 부서가 인터넷에 기초한 감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AOL이나 구글, 또는 야후 등이 갖고 있는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들은 결코 소홀히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들이 정부에 제공할 정보에 대해서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법적 의무를 지게 되는 이상 그들은 정부와 수백만 명의 아무것도 모르는 고객들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어떤 하나의 조직이 휘두르는 잔인한 힘은 지금까지 모두 실패해왔고, 앞으로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검색은 그보다는 이미 인터넷상에서 존재하는 지능, 다시 말해 내가 '의도의 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르고 있는 수많은 일상적인 거래와 발언과 행동과 웹의 기반을 형성하는 링크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알고리즘을 똑똑하게 적용시킴으로써 지능을 갖추게 될 가능성이 더욱 크다. 결과적으로 볼 때 구글은 바로 이러한 생각에 기초해서 출발한 것이다. 지능이 있는 검색엔진을 창조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기업이 있다면 그건 바로 구글뿐이다. 과연 세상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온갖 의미를 갖고 있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기업을 세운다면 마케팅과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인간 문화 그 자체와 관련된 가장 난해한 수수께끼를 해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구글이 바로 그런 회사로 자리매김해왔다 할 수 있다.
검색은 어떻게 가치를 창출해내는가검색에는 3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다. 첫째 검색엔진은 크롤(정보수집)을 하고, 둘째는 인덱스(색인)를 만들며, 셋째 결과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세 부분은 웹의 크기와 지속적인 성장에 맞춰 함께 성장해야 한다. 검색엔진이 크롤을 하고, 인덱스를 만들고, 결과를 제공하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구글만 하더라도 이 일을 처리하는데 17만 5,000대 이상의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1970년대에 지구상에 있었던 컴퓨터 수보다 많은 것이다. 사실 우리는 아주 게으르다. 우리는 기껏해야 단어 몇 개를 입력해 놓고는 검색엔진이 완벽한 결과를 찾아주기를 기대한다. 검색자들 중 95퍼센트 이상은 대부분 검색엔진이 제공하는 고급검색기능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검색 전문가들 대부분은 이 비율을 낮추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고급검색기술을 잠깐이라도 공부하면 상당히 나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2004년 여름, 미국의 비영리 인터넷 조사 기관인 퓨 인터넷&아메리칸 라이프 프로젝트는 미국인의 인터넷 사용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모든 미국 인터넷 사용자들 중 85퍼센트인 1억 700만 명 이상이 검색엔진을 활용하고, 평균 한 달에 30건을 검색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렇다면 검색엔진을 사용하는 이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일반 미국인들과는 다른 사람들인가? 한마디로 답은 "그렇다"이다. 퓨 인터넷&아메리칸 라이프 프로젝트는 인터넷 사용을 주도하는 기술 엘리트 집단을 찾아냈다. 그리고 미국 인구의 31퍼센트가 이 엘리트 집단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퓨 인터넷&아메리칸 라이프 프로젝트에 따르면 나이가 어릴수록, 혹은 공부를 잘할수록 검색을 더욱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결과가 있는데, 그것은 검색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인터넷에서 더 오래 시간을 보내며, 더 많은 디지털 기능을 사용하고, 정보 서비스에 더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투자은행인 파이퍼 재프리의 연구에 따르면, 2003년에 세계적으로 매일 5억 5,000만 건의 검색이 이루어졌으며, 이 수치는 앞으로 연간 10~20퍼센트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일 5,000만 개의 독특한 키워드 조합이 검색엔진에 입력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구글은 이보다 많은 키워드 조합이 입력된다고 보고 있다. 구글은 1일 검색어 중 50퍼센트 가까이, 다시 말해 1억 개 이상이 독특하다고 본다. 이러한 검색어의 풍부한 다양성은 검색 자체의 복잡성뿐만 아니라, 검색을 지원하는 확실한 광고모델을 만들어낸다. 어떤 시기에 누군가에게 경제적인 가치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키워드의 수는 말 그대로 수백만 개에 이른다. 논란의 소지는 있겠지만 인터넷에서 모든 의도는 어느 정도 상업적이다. 할머니의 가계(家系)를 찾아보고 있거나 희귀 돌고래에 대한 글을 읽으려 할 때에도 당신의 관심은 누군가에게는 상업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검색자들은 검색을 하는 내내 수많은 광고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런 링크들은 곧 검색엔진업체들이 가공할 만한 수익을 올리는 노다지가 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검색자들은 편하게 느껴지는 곳에서 계속 검색하려고 한다. 검색자의 85퍼센트가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구글, AOL 등 4대 포털사이트를 이용한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 사용해본 검색엔진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검색을 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우리는 대답 이상의 것을 찾기 위해 검색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찾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찾으려 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 무엇이 존재하는가를 이해하려는 욕구는 우리가 인터넷을 더욱 잘 알게 되면서 수그러들었고, 이제 우리는 인터넷에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방대함은 또 다른 종류의 웹문맹을 낳고 있다. 다시 말해서 찾고자 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떻게 찾아야 할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우연히 발견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검색을 한다.
이 모든 검색과 검색자들은 중요한 수익창출 사업의 기회가 되었다. 사실 이것은 미디어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사업임에 틀림없다. 1990년대 후반 처음 시작해서 2004년까지 하나의 사업으로서 유료 검색 광고는 몇 백만 달러에서 총매출 4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으며, 2010년에는 230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파이퍼 재프리는 추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수치로 볼 때 구글이 기업공개를 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주가가 주당 200달러로 솟구친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못 된다. 어째서 이와 같은 엄청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해 유료 검색 광고가 통하기 때문이다. 수억 명의 검색자들이 입력한 검색어에 맞춰 짧은 텍스트 기반 광고를 올림으로써 지극히 효율적으로 마케팅 우위를 창출할 수 있고, 이러한 우위는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가 된다.
검색의 새 장을 연 구글의 탄생캘리포니아 북부 스탠포드대학에서 컴퓨터과학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을 때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래리 페이지에게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대학교수가 되거나 회사를 창업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스탠포드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에 매우 흥분하고 있었다. 내가 갖고 있던 열정을 충족시켜주기에 스탠포드대학만한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실리콘밸리에 가고 싶었다." 스탠포드대학은 휴렛팩커드, 실리콘 그래픽스, 야후, 익사이트 등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탄생한 온상지이다. 컴퓨터과학 교수들 대부분은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기업들을 창립하고, 운영하고, 매각하거나 혹은 그런 기업들에 자문을 해준 경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스탠포드대학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회사 창립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신입생으로 스탠포드대학에 발을 들여놓은 래리 페이지는 지도교수로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분야의 선구자인 테리 위노그래드 교수를 택한다. 그러나 래리 페이지가 처음부터 웹 기반 검색이라는 아이디어에 끌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완전히 달랐다. 스탠포드대학 졸업생들이 인터넷기업을 창립하면서 부자가 되고 있긴 했지만, 그는 무엇보다 수학적인 특성 때문에 웹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테리 위노그래드 교수는 바로 이 점 때문에 래리 페이지에게 월드와이드웹을 논문 주제로 할 것을 권유했고, 래리 페이지는 웹의 링크 구조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한편 세르게이 브린은 래리 페이지의 프로젝트가 갖고 있는 복잡성과 규모에 끌렸다. 논문 주제를 찾지 못하고 이 프로젝트에서 저 프로젝트로 떠돌아다니던 박학다식한 세르게이 브린에게 백럽(Backrub, 링크추적엔진)의 배후 전제는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검색엔진은 단지 성능만 좋은 것은 아니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웹이 커질수록 검색엔진 또한 커진다는 점을 깨달았다. 페이지랭크(PageRank, 래리 페이지가 발명한 것으로, 웹사이트의 인기도를 다른 사이트가 링크한 개수에 의거해 계산해내는 방식)는 링크를 분석하는 형태로 작동하기 때문에 웹이 더 커질수록 이것은 더 좋은 결과를 보여주게 된다. 이 사실이 계기가 되어 그들은 새로운 검색엔진을 '구골(googol, 1에 0을 100개 붙인 수학적 용어)'이란 말을 패러디해서 '구글'이라고 불렀다. 1996년 8월 그들은 구글의 첫 번째 버전을 스탠포드 웹사이트에 올렸다. 스탠포드 내 소수의 사용자들 사이에서 구글은 히트를 쳤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프로젝트는 규모가 엄청났기 때문에 컴퓨터과학과와 캠퍼스 네트워크 관리사무소 내에서 거의 전설적인 프로젝트로 부상했다. 이 프로젝트 때문에 스탠포드대학의 인터넷 연결이 마비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스탠포드대학을 통해 실리콘밸리의 뛰어난 사업가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 때 이 발명가들은 사업가의 고전적인 딜레마에 부딪쳐야 했다. 즉 회사를 창업할 경우 자금이 풍부하고 규모가 큰 경쟁업체에 짓밟힐 가능성이 있는 반면, 성공해서 그 분야의 최고가 되면 무한한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1998년 후반 구글은 하루에 1만 건 이상의 검색어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서비스 수요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걸하다시피해서 얻을 수 있는 컴퓨터 자원의 성능을 능가하게 될 것이 확실했다. 이제는 회사를 창업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또다른 지도교수인 데이비드 체리턴에게 자문을 구했다.
체리턴 교수는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에게 신생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던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창립자인 앤디 벡톨샤임을 만나볼 것을 권했다. "우리가 금액을 제안하자, 그는 '충분한 것 같지 않군요. 저는 그 액수의 2배 정도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라고 말했다."라고 래리 페이지는 말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깜짝 놀랐지만, 당연히 앤디 벡톨샤임이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였다. 앤디 벡톨샤임은 수표에 회사명을 뭐라고 적어야 하는지를 물었다. 구글의 창립자들은 그때까지 회사 이름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자 앤디 벡톨샤임은 서비스의 이름을 따서 구글사로 하자고 제안했고, 그들은 그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리고 몇 분 뒤 그들의 손에는 10만 달러짜리 수표가 쥐어져 있었다. 바로 이런 데 회사를 창업하는 맛이 있는 것이다. 1998년 9월 7일 구글이 공식적으로 첫발을 내딛었고, 래리 페이지는 CEO를, 세르게이 브린은 사장을 맡았다. 1999년 구글은 팔로알토의 중심부에 있는 유니버시티 애버뉴에 보금자리를 튼다. 임대사무실을 쓰면서 직원 수가 10명 가까이 늘어난 이 신생업체는 현금을 만들어낼 수익모델이 필요했고, 결국 영업사원을 충원해야만 했다.
당시 1999년 초는 인터넷 거품이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벤처펀드에는 자금이 넘쳐흘렀고, 구글은 포털이 될 의도가 없었지만 인터넷 프로파일의 거래수요는 매우 높았다. 그래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많은 투자자들 가운데서 선택을 할 수가 있었는데, 그들이 선택한 업체들은 실리콘밸리 내 독특한 업체라는 구글의 이미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가장 경쟁력 있는 최고기업인 세쿼이아 캐피털과 클라이너 퍼킨스 카우필드&바이어즈에게 공동투자를 부탁했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투자회사 2개사가 동시에 투자를 한다면 업계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기 마련이다. 그 두 회사로부터 받은 2,500만 달러 투자는 구글의 실리콘밸리 입성의 신호탄이 되었다. 구글은 이제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구글의 놀라운 질주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다.
1999년 6월, 자금조달이 마무리된 후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투자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 받는 신생기업의 리더라는 새로운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벤처투자자들은 자신들의 투자금을 지키는 데 냉혹한 것으로 아주 유명하다. 그들은 보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