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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평평하다

토머스 프리드먼 지음 | 창해
1부 세계는 언제, 어떻게 평평해졌는가?



우리가 잠자는 동안에도 세상은 변한다




지금 나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방갈로르에 있다. 콜럼버스가 초보적인 항해술로 수평선 너머를 항해하고 세계가 둥글다는 걸 입증한 지 500여 년이 지난 뒤에 말이다. 그런데 인도에서 최고 교육을 받고 지금 시대 최고의 기술을 다루는 한 인도인이 나에게 세계가 평평하다고 말하는 중이다. 그의 말은 인도 같은 나라도 지금은 세계무대에서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도 그에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글로벌 경쟁무대에서 지금은 누구나 평평하다. 세계는 이제 평평해진 것이다. 나는 흥분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왜냐하면 평평해진다는 건 정치적 힘이나 테러리즘이 장애가 되지만 않는다면, 지구상의 모든 지적 자산을 하나의 네트워크에 연결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번영과 혁신이 가능한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분노와 좌절 속에서 인간을 경멸하는 어떤 그룹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라는 점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라는 예전의 내 책과 이 책을 묶어서 생각한다면 독자들은 세계화가 세 번의 큰 시기로 이뤄졌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시기는 물론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항해해 구세계와 신세계의 장벽을 허문 1492년에서 1800년 전후까지로 볼 수 있다. 나는 이때를 세계화 1.0 시대라고 부르고 싶다. 이 시기는 세계를 중간 정도의 크기로 줄여놓았으며, 국가와 힘의 시대였다. 두 번째 중요한 시기는 세계화 2.0 시대라 부르자. 이 시기는 1800년 무렵에서 대공황과 1, 2차 세계대전에 의해 잠시 방해를 받기는 했지만 대략 2000년까지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세계적 통합을 가져오는 변화의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다국적기업이었다. 2000년 이후의 세계화 3.0 시대는 그렇지 않아도 작은 세계를 더욱 작게 만들고 있다. 그뿐 아니라 게임의 무대를 평평하게 만들고 있다. 3.0 시대의 변화의 주체이자 동력은 개인이다. 개인이 세계화를 해나가는 데 필요한 힘 역시 광케이블을 통한 네트워크와 여러 가지 새로운 형태의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주어진 근본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이 시대의 세계적 경쟁과 기회의 무대에 과연 적응할 수 있는가?



세계가 평평해지고 있다는 나의 견해가 옳다면, 이는 민족국가의 형성이나 산업혁명 같은 근본적인 변화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클린턴 정부의 상무성 고위관리였으며 지금은 개인 전략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데이비드 로스코프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에는 전환점 혹은 분수령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점은 전환이 발생하는 당시에는 그 변화가 너무 광범위하고 다양해서 예측이 어렵지요." 세계가 평평해지고 그에 따른 압박감과 이전 시대와의 단절, 그리고 이에 따른 기회 등으로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세계가 평평해지고 있는 지금의 변화에는 이전의 변화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그 속도와 범위 말이다. 지금 세계가 평평해지는 과정은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면서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게 동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달리 설명하자면, 지난 수십 년간 세계가 평평해짐에 따라 시장에서 일어난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하이테크 기업들의 경험은 이러한 변화에 직면한 모든 비즈니스, 제도, 국민, 국가에게 하나의 경고가 될 수 있다. 그들이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까닭은 리더십, 유연성,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상상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리석거나 이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의 속도가 그들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제는 이러한 변화에 압도당하거나 뒤처지지 않도록 소화해내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자 불가피한 책무이다. 이 책을 쓴 목적은 세계가 평평해지는 데 대해 사고하는 방식과 그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도록 관리할 기본적인 사고의 틀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세계를 평평하게 만드는 10가지 동력



평평화 동력 1 - 베를린 장벽 붕괴와 윈도즈 출현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소련제국 내에서 억압 받아온 모든 주민들을 궁극적으로 해방시킬 동력을 작동시키는 시발점이었다. 실제로 장벽 붕괴는 그 이상의 일을 해냈다. 한 부문에서의 자유는 또 다른 부문에서의 자유를 촉진했고, 이 과정은 위는 낮추고 아래는 높이면서 세계를 평평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장벽의 붕괴는 표준 채택을 용이하게 만들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최상의 관행이 자유로이 확산되도록 도왔다. 경제적·기술적 표준이 출현해 세계무대에서 우수성이 증명되기만 하면 그 표준은 장벽이 붕괴되기 전보다 훨씬 더 빨리 채택되었다. 장벽 붕괴의 긍정적 효과는 금방 드러났지만 그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여러 원인 가운데 한 가지만을 지적하라고 한다면 나는 1980년대 초중반에 시작된 정보혁명을 꼽겠다. 왜냐하면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비약적으로 증가해서 공산주의가 기반으로 삼는 철저한 수직적 커뮤니케이션 양식이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최초의 IBM PC가 1981년 시장에 출현했다. 동시에 세계의 많은 컴퓨터 과학자들이 인터넷과 전자우편이라 불리는 것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윈도즈의 시대가 열려서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더 평평해졌다. 그러나 단절되지 않은 지구적 커뮤니케이션의 시대가 온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했지만 이 흥분되는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의 이름은 오사마 빈 라덴이었고 그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빈 라덴과 로널드 레이건은 둘 다 소비에트 연방을 '악의 제국'으로 여겼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빈 라덴은 미국 역시 '악의 제국'으로 보았다. 줄여서 말하자면, 우리가 11.9(1989년 11월 9일)를 경축하고 있을 때 또 하나 기억해야 할 날짜인 9.11(2001년 9월 11일)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평평화 동력 2 - 넷스케이프 출시

1990년대 중반, PC 윈도즈의 네트워크 혁명은 한계에 도달했다. 세계가 정말 연결되고 평평해지려면 네트워크 혁명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간 핵심은 전자우편과 인터넷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상상력을 사로잡은 것은 웹 브라우저였다. 최초의 주류 브라우저, 즉 일반 대중도 이용이 가능한 웹 브라우징을 탄생시키고 그 문화를 출범시킨 것은 작은 회사 넷스케이프였다. 넷스케이프는 1995년 8월 9일 주식시장에 공개되었고, 이후 세계는 변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일반 소비자들은 웹에서 다른 일들을 하길 원했다. 그들은 단어, 음악, 데이터, 사진을 쉽게 디지털화하고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컴퓨터로 보낼 수 있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원거리 통신망을 갈망하게 되었다. 이러한 욕구는 촉매역할을 할 다른 사건에 의해 충족되었다. 넷스케이프가 기업공개를 한지 일주일 만에 윈도즈 95가 출시된 것이다.



넷스케이프는 궁극적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압도적인 위력에 희생되었다(법원은 독점이라고 판정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을 지배하는 윈도즈 운영체제의 부속품으로 브라우저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집어넣어 무상 공급한 것은 넷스케이프의 시장점유율 저하를 가져왔다. 넷스케이프의 최고경영자를 지낸 짐 박스데일은 이렇게 말한다. "대중화된 넷스케이프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리고 사업가들과 일반인들은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습니다." 인터넷 주식 붐은 광통신 케이블 회사에 엄청난 과잉투자를 유발했다. 기업들은 육지와 해저에 대규모 광통신망을 깔았고, 이는 지구 어느 곳에서든 전화 통화료와 데이터 전송비용을 크게 낮추었다. 이제 광섬유 네트워크가 깔린 세계는 평평해졌다. 지역주의가 무너졌고, 단절 없는 세계적 상업망이 형성되었으며, 디지털화된 노동력(서비스와 지식노동)이 저비용 국가로 이동하는 것이 수월해지고 비용도 크게 줄었다.



평평화 동력 3 - 워크플로 소프트웨어

우리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 인터넷에서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한다면, 세계를 평평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한 획을 더 그어야 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을 자신만의 응용 소프트웨어와 연결해주는 인터넷에서 나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다른 사람의 어떠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도 연결될 수 있는 인터넷으로 넘어가야 했다. 그래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함께 일할 수 있게 된다. 1990년대 후반 소프트웨어 산업은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조용한 혁명이었다. IBM의 전략기획부 책임자인 조엘 콜리는 말했다. "표준은 혁신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준은 사람들을 혁신에 집중하도록 합니다. 진정한 가치가 있는 곳에 노력을 집중하도록 만드는 거죠. 누구나 표준에 가치를 보탤 수 있습니다."



인도 출신으로 미국인들의 회계업무를 대행하는 기업가 제리 라오는 말했다. "우리는 각각의 일을 나누어 누구든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보냅니다. 이것은 시시한 변화가 아닙니다. 거대한 혁명입니다. 혁명으로 인해 사장과 종업원이 각기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 일 년에 365일을 일합니다. 이 모든 변화는 순식간에, 최근 2~3년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물론 세계가 진실로 평평해지려면 좀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 뭔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IBM의 전략 담당 콜리는 주장했다. "핵심적인 열쇠는 전보다 의사소통이 원활해 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처음 단계부터 동맹을 맺고, 프로젝트를 세우고, 최종 생산물을 만드는 데 전보다 훨씬 더 협력할 수 있게 되었어요." 세계를 평평하게 만드는 나머지 동력들은 이 새로운 플랫폼이 기회를 만들어준 협업의 새로운 형태들이다.



평평화 동력 4 - 오픈소싱

'오픈 소스'라는 말은 기업이나 특정 그룹이 소스 코드(응용 소프트웨어를 작동시키는 프로그래밍 지시어)를 온라인에 공개해서 누구나 그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고, 동시에 수백만 명이 무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상업적 소프트웨어는 복제되어 유료로 팔리고, 그것을 제조한 기업은 당연히 소스코드를 보석처럼 보관한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버전 개발에 필요한 비용을 뽑는다. 반면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공유되고, 사용자들은 끊임없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며, 동시에 누구나 무료로 사용한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를 개선한 사용자는 다시 모두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그 프로그램을 공개한다. 어쨌든 이들은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논쟁거리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형태의 협력을 하고 있다. 이것은 평평해진 세계 때문에 가능해졌지만, 한편으로는 세계를 더욱 평평하게 만들고 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오픈소스 운동의 놀라운 점은, 급속하게 다른 분야로 번져 협동하는 커뮤니티가 스스로 만들어지고 그들이 기존 질서를 무너뜨려 세계를 평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1인 온라인 평론가인 블로거들이 활동하는 뉴스 계통에서 가장 생생한 본보기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념에 기초한 오픈소스 뉴스망을 만들어 냈다. 시민기자 군단은 겨우 녹음기, 카메라 폰, 웹사이트로 무장하고 있으나 평평한 세계에서는 CBS 방송이나 <뉴욕 타임스> 못지않게 영향력이 크다. 오픈소스를 통한 네트워크 결합은 지시하고 복종하는 상하관계 대신, 누구나 동반자로서 참여하는 수평적 혁신 모델로서 위계적 질서에 도전할 수 있다는 측면만으로도 세계를 평평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이러한 혁신 모델은 점점 더 많은 분야에서 이루어 지고 있다. 그러나 누가 무엇을 소유하고, 개인이든 기업이든 애써 창조한 생산물로부터 어떻게 이윤을 얻을까 하는 문제는 전 세계적인 논란거리로 남을 것이다.



평평화 동력 5 - 아웃소싱

IIT(인도공과대학)는 처음 50년간 미국이 바겐세일로 인재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다 넷스케이프가 개발되었고, 1996년에는 인도 통신사업이 민영화되었다. 광케이블 등의 통신수단이 전 세계를 한데 묶었다. 세계는 평평해졌고 모든 일의 작업형태가 달라졌다. 1990년대 후반 행운의 여신이 동시에 두 방향에서 나타났다. 정보통신 버블이 팽창하기 시작해서 인도와 미국을 연결했고, 이른바 밀레니엄 버그라 불리는 Y2K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컴퓨터를 교정하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세계 어디에 이 일을 할 수 있는 많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있는가? 답은 인도였다. Y2K 문제가 목전에 다가오자 미국과 인도는 데이트를 시작했고, 그 밀월관계는 세계를 평평하게 하는 거대한 힘이 되었다. 왜냐하면 PC, 인터넷, 광섬유 케이블의 조합은 아웃소싱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협력과 수평적 가치 창출의 가능성을 모든 비즈니스에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콜센터, 비즈니스 지원 작업, 또는 어떤 다른 지적인 작업이든 디지털화될 수 있는 모든 서비스 산업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가장 값싸고 능력 있는 공급자에게 아웃소싱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시절을 인도에서 보낸 존스 홉킨스 대학의 외교정책 전문가 마이클 만델바움은 이렇게 표현한다. "Y2K는 인도의 독립기념일로 불려야 한다. 광섬유 네트워크로 인해 긴밀한 상호의존이 가능해졌고, 인도가 서방 기업과 협력하게 되면서 인도인들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1947년 8월 15일은 인도에 정치적 독립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Y2K는 인도인에게 경제적 독립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확실히 인도는 운이 좋았다. 그러나 인도는 노력과 교육, 그리고 IIT를 세운 선각자들을 통해 뿌린 씨를 거둔 것이다. 오래 전에 루이 파스퇴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운명의 여신은 준비한 자에게 복을 준다."



평평화 동력 6 - 오프쇼어링

2001년 12월 11일, 중국이 드디어 세계무역기구(WTO)에 공식가입했다. 중국의 WTO 가입으로 지난 수십 년간 있어온 오프쇼어링(off-shoring: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이 가속화 되었다. 오프쇼어링과 아웃소싱은 다르다. 아웃소싱은 연구개발이나 콜센터, 회계 같은 기업 기능의 일부를 다른 기업에 맡기는 것이다. 그에 비해 오프쇼어링은 통째로 옮기는 걸 말한다. Y2K 문제가 인도와 세계를 한 차원 높은 아웃소싱으로 끌어들였다면, 중국의 WTO 가입은 중국과 세계를 한 단계 높은 오프쇼어링으로 끌어올려 세계적 제품공급망에 통합시켰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마에 겐이치는 저서 『중국합중국』에서 이렇게 말한다. "중국은 위협이지만 고객이자 기회입니다. 중국이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중국을 이용해야지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을 적으로 여기고 경쟁하기보다는, 현재 자신의 사업에서 어떤 부분을 떼어내 중국에서 생산하고, 또 무엇을 팔고 무엇을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오마에는 주장한다.



정말로 겁나는 것은 가격경쟁력만으로 전 세계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중국의 단기 전략에 불과하다. 제조업에서 생산성이 증가함에 따라 중국은 미국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처럼 3차 산업이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중국의 진정한 장기 전략은 미국과 유럽까지 앞지르자는 것이다. 30년 안에 중국은 단순한 제품판매 시장에서 저임금의 매력을 가진 생산기지로, 다시 첨단 제품을 디자인하고 고안하는 곳으로 변모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불안이 발생하지만 않는다면 중국은 전 세계를 평평하게 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미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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