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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 한국경제신문사
제1부 신뢰의 이념 : 문화가 경제사회에 미치는 힘



사회적 자본과 신뢰


사회적 자본은 한 사회의 문화적 요소나 그 구성원의 '자발적 사회성'과 '신뢰'의 정도를 말한다. 사회적 자본은 신뢰가 정착되었을 때 생기며 이는 개인적 덕목이 아니라 사회적 덕목에 기초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은 각종 사회에서 똑같이 획일적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공동체에 대한 연대의식과 형태도 그 사회의 문화적 성격에 따라 다르다. 모든 경제활동은 사회적 삶의 중대한 국면을 반영하며, 이러한 사회적 자본에 의해 그 틀이 짜여진다.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지배적인 문화적 특성, 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그 예를 들어보자.



「1970년대 초의 석유파동 때 세계의 정반대에 있는 두 개의 자동차 회사, <마쯔다>와 <다이믈러 벤츠>는 둘 다 판매 감소와 파산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두 회사는 모두 이전부터 거래해 오던 대규모 은행의 자금지원으로 구제되었다. 이들 기업을 구하기 위해 희생을 감수한 은행들의 지원에는 기업을 구한다는 명분도 있었지만, 그 바탕에는 기업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었다. 특히 독일의 경우에는 <벤츠>가 아랍 투자자에게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1983~84년의 불경기로 <뉴코(Nucor)> 역시 심한 타격을 받았다. 뉴코는 독일의 신기술인 연속주조기법을 사용하여 미니 제철소를 짓고 막 제강사업에 손을 댄 참이었다. 제철소는 종래의 러스트 지대(rust belt, 구식 산업공장이 남아있는 미국의 중서부 및 북동부의 중공업 지대)를 벗어나서 인디아나주의 '크로포드빌'에 건설되었고 대부분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전직 농부들을 노동자로 고용하여 가동했다. <뉴코>는 불황에 대처하기 위해 최고 경영자로부터 말단 정비공에 이르기까지 근무 시간을 주당 2~3일로 축소하고 이에 따라 봉급을 삭감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노동자도 해고하지 않았다. 이들은 경제가 회복되어 회사가 다시 살아나자 엄청난 단결심을 보여 미국 철강 산업계의 일급 회사로 부상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겉으로는 서로 달라 보이는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경제행위를 하는 사람들끼리 상호 신뢰에 기초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믿고 서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독일의 경우에는 <메르세데스 벤츠>같이 중요한 독일의 상표가 비독일 투자가의 수중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민족주의적 감정마저 개입되었다. 한편 <뉴코>의 노동자들은 봉급 삭감을 계획한 경영자들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자기들을 해고하지 않으려 한다는 신뢰감 때문에 주급이 대폭 깎이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위의 경우에 나타나는 공동체는 외부적인 규칙과 규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에게 내면화된 윤리적 관습과 호혜적인 도덕적 의무감을 바탕으로 형성된 문화공동체이다. 이 규칙이나 관습은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신뢰의 터전을 마련해 준다. 공동체를 지원하려는 결단은 근시안적인 경제적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경제공동체 내에서의 연대가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성공적인 경제사회에서 이러한 공동체는 언제나 신뢰로 결합된다.



문화의 차이

신뢰를 담는 그릇이자 건강한 경제에 필수적인 사회적 자본은 문화적 바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문화란 그 내용과 전달방식에 있어서 전적으로 반이성적이기 때문에 문화가 경제적 효율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얘기는 언뜻 보기에 아주 역설적으로 들린다. 문화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습은 사람들이 어떻게 식사하고 어떻게 결혼식을 치르는지의 방법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는데 있어서 그 기준이 되는 윤리적 규범과 관계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정생활, 친구나 이웃, 혹은 학교에서 형성되는 단순한 관습화를 통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도덕률을 따르도록 교육받으면서 문화를 형성한다. 사회 환경에 따라 문화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예를 들어보자.

「미국 TV의 어떤 자동차 광고를 보면, 어린 소녀 하나가 억압적인 분위기의 교실에 앉아있고 엄격한 표정의 교사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두 선 밖으로 벗어나지 말고 선을 그어라"라고 계속 말한다. 장면은 갑자기 바뀌어서 어린 소녀는 젊은 여자가 되고 흑백이었던 화면은 컬러가 된다. 여자는 타고 있는 차의 지붕을 열어 둔 채로 머리를 휘날리면서 차를 몬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고속도로의 두 차선 사이로만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활짝 펼쳐진 벌판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그녀는 차의 범퍼에 '권위에 의문을 던져라!'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뽐낸다.



만일 이 같은 광고를 아시아에서 만들었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면 두 선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 선을 그을 수 있는지를 어린 소녀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줄 것이다. 그리고 소녀는 인내심을 가지고 연습한 후에 아주 정확하게 실수 없이 선을 긋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 소녀는 보상으로 받은 새 차의 범퍼에 '권위를 존경하시오'라는 스티커를 붙인 모습으로 묘사될 것이다.」



이러한 두 문화의 차이에서 볼 때, 문화는 도덕적인 교훈으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관습, 사회의 여론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는 이처럼 반이성적이지만 실제로 높은 수준의 합리성을 함축하고 있다. 만일 문화가 도덕과 규범에만 준 한다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제2부 저 신뢰 사회와 가족 가치의 역설



가족 가치


이 장에서는 가족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공동체적 결사체가 상대적으로 미약한 네 개의 사회(중국, 이탈리아, 프랑스, 한국)를 분석한다. 사실 모든 경제적인 시도는 가족기업, 즉 소유와 경영권이 가족 구성원에게 주어져 있는 사업으로 시작된다. 수많은 현대의 거대 기업이 여전히 가족에 의해 소유되고 있지만 사업이 번창함에 따라 그 규모는 한 가족이 운영할 수 있는 범위를 넘기 마련이다. 가족적 유대만을 유지하고자 하는 가족주의는 경제발전에 장애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가족이 너무나 강해서 현대적인 경제조직의 형성을 방해하는 반면, 또 다른 곳에서는 그것이 너무나 약해서 사회화라는 기본적 임무를 수행하지 못 한다. 같은 가족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이처럼 다른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는가를 국가 간의 비교를 통해 분석해 보자.



중국인의 가족주의

중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민족적, 언어적, 문화적 집단을 이루고 있으며 세계도처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가족은 절대적으로 신뢰하되, 친구나 지인들에 대해서는 상호 의존관계가 성립될 정도만큼만 신뢰한다. 그러므로 서로 무관한 사람들이 경제적 사업을 포함하여 집단이나 조직을 형성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피고용인들과의 관계는 매우 소원하여 피고용인들은 같은 회사에서 평생 일하기보다는 자신의 회사를 갖고 싶어 한다. 무수히 많은 거대하고 현대적인 중국인 기업 창업자들은 자신의 가족기업을 존속시키기 위해 부적격한 후손을 예일, 스탠포드, 혹은 MIT의 경영학이나 공학 과정에 보낸다. 그리고 딸을 유능한 경영 인재와 결혼시킴으로써 새로운 전문경영인을 가족으로 끌어들인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1951년에 <왕 연구소>를 설립한 안왕(An Wang)은 상하이에서 태어나 스물다섯 살에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이었는데, 메사추세츠주(州)의 로웰(Lowell)에 <왕(Wang) 연구소>를 설립하여 보스턴 최대 기업 중의 하나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안왕이 은퇴할 때가 되었을 때,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자신의 아들인 프레드 왕(Fred Wang)에게 사업을 물려주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당연히 왕 연구소를 승계할 것이라 믿어지던 존 커닝햄(John Cunningham)을 비롯한 회사에 크게 기여했던 몇 명의 원로 경영자를 물리치고 결국 프레드 왕이 사장으로 승진되었다. 그의 승진은 정실(情實)에 치우친 인사였고, 이에 소외된 미국인 경영자들은 즉각 회사를 떠났다. 그 후 <왕 연구소>의 쇠락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4년 사이에 90%의 시장자본이 소실되었고, 결국 1992년 파산절차를 밟고 말았다. 안왕은 마침내 아들의 부족한 경영자질을 인정하여 그를 해고시켰다.」



<왕 연구소>의 사례는 이민국인 미국에서의 사례지만 중국인들의 사업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가족이란 개념은 서구의 가족개념과는 다르다. 중국의 가족은 엄격한 부계 중심적이고 오직 아들만이 상속할 수 있으며, 아들들에게는 각기 동일한 몫이 배분된다. 그래서 그들의 재산은 세대를 거듭 할수록 잘게 쪼개지게 된다. 이러한 승계과정에 아들들 간의 권력투쟁이 생겨나기도 하고, 유복하게 자란 손자 대에서는 기업경쟁에 대한 희생정신의 결여나 경영에 대한 무관심으로 회사의 붕괴를 가져오기도 한다.



중국계 기업의 동등한 가족승계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세분화되며, 새로운 소규모 기업체를 생성시킨다. 그래서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중국계 국가들에는 수백, 수천의 소규모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이들은 내세울 만한 자체 브랜드가 없다. 그러나 중앙집권적인 기업특성상 의사결정이 빠르기 때문에 신속하게 변화에 가는 시장의 수요에 빠른 대처를 할 수 있는 사업이 알맞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사회성

통상산업화가 늦었고 서유럽에서 경제적으로 침체된 곳의 하나로 간주되던 이탈리아는 그 일부 지역에서 1970~80년대에 섬유와 디자이너 의류에서부터 공작기계와 산업용 로봇에 이르기까지 뭐든 다 만들어 내는 '소기업 관계망'이 급증했다. 이탈리아를 홍콩이나 대만의 유교문화와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지만, 강한 가족적 유대라는 '사회적 자본'의 본질은 유사하다. 산업구조상의 결과도 유사하다. 이탈리아의 대기업은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고, 민간부문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이면서 가족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중국계 사회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역시 가족과 가족 사이에 극심한 경쟁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족이나 문벌적 유대를 벗어난 집단 활동에서의 협동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이탈리아는 크게 남부, 북부, 중부의 세 지역으로 그 사회성이 구분된다. 그 중 남부이탈리아인들은 사회적 신뢰의 정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에게 가족을 벗어난 공동 집단이란 윤리적 규범을 받아들이지 않는 마피아(Mafia) 같은 범죄조직이다. 이는 대리혈연관계와 마찬가지이다. 남부이탈리아의 가장 전통적인 사회성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한 지역의 사회생활을 예로 들어보자



「몬테그라노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는 자기 가족의 희생으로 다른 가족에 이익이 주어지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이렇다 보니 가족이라는 작은 집단의 외부에 위치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어쨌든 잠재적인 경쟁자인 것이다. 다른 가족들이 자기 가족의 성공을 시샘하고 두려워하며 피해를 입히고자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들을 두려워해야 하고, 또 이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피해를 끼칠 힘을 갖지 못하도록 그들에게 피해를 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자녀들은 새로운 가족이 구성되면, 옛날 가족들에 대한 애정이 약해진다. 그리고 옛 가족의 여러 가지 요구로부터 보호하려 한다. 여기저기 분산된 토지 분할은 가족의 불화 때문에 일어난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아들의 애정은 결혼 이후에는 대부분 사라진다. 아들이 아내와 자식을 갖게 되면, 그 부모의 후생에 대한 관심은 그 부모가 굶어죽을 지경이 아닌 한 기대될 수 없는 일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탈리아에서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 가장 높은 지역은 북부와 제3의 이탈리아(테르쨔 이탈리아라고도 함)지역이다. 테르쨔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역동적이었으면서 혁신적이고 수출 지향적이었다. 이 지역은 대만, 홍콩과 가장 흡사한데 이탈리아를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공작기계 생산국으로 끌어올렸던 수치제어공작기계(특히 컴퓨터로 제어되는)를 생산하는 수많은 영세한 제조업자들이 밀집해 있는 공작기계 산업의 중심지이다. 테르쨔 이탈리아에서는 선진자본재를 생산하고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세 번째의 산업용 로봇 생산국이지만, 그 생산량이 소량이며 로봇 같은 경우도 생산량의 3분의 1이 종업원 50명 미만의 기업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영세한 산업과 기술력사이에는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이탈리아가 지역에 따라 왜 이처럼 사회성의 정도가 다양한지 살펴보면, 통일 이전의 사회체제에 그 뿌리를 둔다고 볼 수 있다. 남부는 노르만 왕국의 전제군주제의 가파른 사회적 위계서열의 봉건귀족주의를 갖고 있는 지역이다. 귀족의 탄압과 평민의 분노가 공존했던 지역이다. 그리고 북부와 중부는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독립공화국으로 존재했던 지역이다. 이들 상업적인 도시국가들은 정치적인 자치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 정치적 참여를 요구하는 공화제 형태의 정부를 시행하기도 했다. 과거 이 지역의 분권주의는 현대의 자발적 사회성을 낳는 원천이 되었다. 이처럼 극명하게 대조적인 이들의 역사는 현재까지 서로 다른 사회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대면(對面)기피증

최근 수십 년간 프랑스 정부는 항공, 전기, 컴퓨터 등의 첨단기술 부문에서 자국을 선도적인 지위에 올려놓는데 역점을 두어왔다. 그리고 1981년 좌파 집권 이후 전기와 관련된 전 부문을 비롯해서 수많은 첨단기술에 대해 국영화가 수행되었다.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를 비롯한 잠재력 있는 항공 산업과 우주선 발사 계획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국유화되어 정부 보조금에 크게 의존하던 프랑스 컴퓨터 산업은 정부예산 적자를 증대시키고 환율을 하락시켰다. 프랑스인들의 경제생활은 가족지향적인 기업이나 대규모의 국유회사에 의존해 왔다. 이로 인해 중간조직층의 부재가 생겨나고 이 문제는 프랑스의 산업구조 전반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경영자가 서로 대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쳐왔다. 프랑스는 이탈리아나 중국계 국가의 유교주의 사회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는 것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프랑스는 가톨릭교회와 라틴적 전통이 갖는 의미 이상으로 가족에 대해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는 정교한 이데올로기를 가져 본적이 없었다. 프랑스 경제의 고유한 특성들 중 많은 부분은 특유의 귀족주의에 기원을 두고 있다. 프랑스는 계급사회였다. 그래서 계급간의 분열과 지위 서열이 만연되어 있었다. 때문에 관료체계 내에는 어떤 종류의 집단이나 그룹도 존재하지 않았고, 일이나 여가에 관련된 결사체도 없었다. 따라서 피고용인들은 조직 내에서 우호관계를 가지는 일이 거의 없었고, 조직의 위계서열적 규칙으로만 서로 연결되기를 바랐다.



한 동네에 사는 아이들도 집단이나 무리를 형성하지 않으며 이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유대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한다. 이는 다시 말해서 비공식적인 직접대면(face to face)관계에 대해 뚜렷한 문화적 거부감이 있고, 동시에 위계적이며 합법적으로 규정된 권위에 대한 강한 선호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인의 대면 기피증은 경제생활의 여러 측면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프랑스의 공장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그룹이나 팀을 형성하는 것을 꺼리며 공식적인 규칙에 근거한 형식에 의해 협동하기를 선호한다. 그래서 프랑스 노동조합은 경영자 측과 분쟁이 생길 경우, 이 문제를 상부권위, 즉 정부에 맡기려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인들의 중앙집권화와 그에 상응하는 미약한 공동체적 생활이라는 경향을 가지게 된 역사적 기원은 16~17세기에 걸친 귀족층과의 권력 다툼에서 프랑스 군주가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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