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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

조셉 S. 나이 지음 | 굿인포메이션
1. 정부의 업무영역과 성과



정부의 업무영역의 확장




역사적으로 보면, 정부의 업무영역이 항상 확장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는 일상적인 종교 및 윤리 생활이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개인에게 그 권한이 넘겨졌다.

미국 헌법은 계몽주의의 산물이었다. 즉, 축소된 정부의 사명은 ①정의를 수호하고, ②내정의 안정을 확립하며, ③국토를 방위하고, ④국민복지를 증진시키고, ⑤자유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5가지에 불과한 항목은 이후 얼마든지 그 덩치를 불릴 수 있었으며, 그러한 확장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정부의 업무영역은 이 5가지 영역 내에서 덩치가 커져 왔다.

대공황 이전에 벌써 미국의 정치체제는 남북전쟁 시절의 체제를 뜯어고치고, 단순히 여자와 어린이만을 보호하던 법률들을 정비하여 광범위한 재분배 체제로 전환했다. 이처럼 정부 업무영역이 커진 결정적인 가장 큰 요인은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냉전시대를 겪으면서 복지국가에 대한 요구가 점차 확대되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에 대한 현재의 불만이 정부의 업무영역이 지나치게 팽창되어 결국 개인의 사생활까지 침범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실제로 왜 연방정부를 믿지 않느냐의 질문에 대한 여론조사의 응답은 정부의 거창한 업무영역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의 형편없는 성과를 강조한다. 정부예산이 낭비되고 있으며 비효율적이라는 응답이 81%, 엉뚱한 일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응답이 79%에 달하는 데 반해, 정부가 국민 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소수에 불과했다.

정부가 가장 크게 성장한 시기인 193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정부의 인기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으며, 연방예산에서 사회보장제도와 노후의료보험의 비중이 매우 빠르게 늘어나면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 결여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환경, 제품안전, 작업환경 개선, 불법고용, 연금기금 고갈 등의 문제를 정부가 잘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믿었다.

정부의 성과에 대한 평가, 잃어버린 은총: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상실



연방정부에 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 하나는, 미국인들이 연방정부의 성과를 탐탁치 않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 책임은 워싱턴 행정부에 있다고 여겨 왔다.

정부의 성과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그런 불만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의 성과는 언뜻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어떤 것과 비교해서 복잡한 것일까? 일반적인 기대? 과거? 다른 나라들? 기업이나 비영리 단체들? 정부의 효율성을 위해 사람들이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것은 돈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가치일까? 미국의 선조들은 효율성을 희생시키면서라도 자유를 보호하는 정부체제에 주안점을 두었다. 권력이 여러 기구로 분산된 연방체제는 업무의 효율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은 이것이 바뀌기를 원할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업무평가에 있어서 또 다른 문제는 정부의 개별적인 성과들을 전반적인 성과와 구분해서 생각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전반적인 정부성과의 수준이 변하지 않았다 해도 사회 분야의 성과가 빈약하다면 국민들은 싫어할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학생들의 과학, 수학 성적은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지는데, 이런 격차는 학교 탓이라기보다는 가정이나 사회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불만들은 정부성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수준이 고르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면, 미국인들은 외교정책 중 다른 무엇보다 외국원조에 가장 커다란 불만을 나타내는데, 이것은 미국의 경우 국가규모에 따라 책정된 외국원조 물량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불만과 정부 성과간의 관계에서 이해하기 힘든 점은 국민이 중앙 정부에 대해 이상한 거리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 조사에서 의회에 대한 신뢰도가 낮게 나오는 경우에도, 지역구 의원 개개인에 대한 지지율은 높다. 학교제도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자기 지역의 학교에 대해서는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 연방정부보다 주정부나 지방자치기관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더 높다. 자기 지역의 행정기관이 잘못하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실수로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연방정부의 정책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보자면, 정부에 대한 만족은 국민의 인식과 정부에 대한 기대, 두 가지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의 인식 또한 장기적으로 형성된 것과 단기적으로 형성된 것 두 가지가 있다. 특히 우리의 인식 중에는 과거사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는 게 있다.

그러한 인식들은 비교적 일정 불변하여 향후 여론의 향방이 예측 가능하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면서 위에 언급한 것에 해당되는 인식 두 가지는 정부에 대한 오랜 세월의 의구심과 후기 물질주의 시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의식이다.

이밖에 국민여론 형성에 가장 두드러진 영향을 끼치는 네 가지 단기 요소가 있다. 즉, ①정부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가에 대한 국민의 평가, ②특정 정책 결정에 대한 국민의 동의 여부, ③정부 지도자의 청렴도와 정부의 성실성에 대한 국민의 평가, 그리고 ④영향력 있는 여론 주도층의 정부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2. 다양한 설명들



경제가 정말 문제란 말인가?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높았던 1965년, 로버트 레인은 1930년대 이래 신뢰도가 점증한 것은 경제발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풍요의 시대는 항상 신뢰의 시대이며 '국민과 정부간의 화해'의 시대가 될 거라는 그의 예언은 현실에서 그대로 입증되지 못했다.

1979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의 시간당 실질임금은 약 5.5%, 연 평균 0.33% 증가했다. 이것은 전후 초기와 비교했을 때 국민이 예전만 못하다고 정부를 비난하는 이유로 꼽을 만하다. 그러나 이 가설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와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미국에서 1964년부터 1974년까지 신뢰도가 가장 크게 떨어졌는데, 이때는 경제성장이 가장 빨리 진행된 기간이었고 1980년대 초 경기후퇴 때는 거꾸로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지구촌 경쟁 시대의 도래라는 경제적인 토대변화를 그 원인으로 꼽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단순한 경기후퇴가 아니라 국민들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때문에 경기가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풍부한 저임금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는 동아시아 경제와 경쟁하기 위해서 선진국 임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특히 단순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짐에 따라 빈부격차가 커짐으로써 이것이 정치에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기후퇴 시점이 맞지 않는 데 대한 보완 설명으로는 유효하지만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미국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1/10에 불과하며, 임금하락 현상은 무역 관련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나머지 90%의 다른 산업분야에서도 일어났다. 무역 분야로부터 일반산업으로의 파급효과와 다국적 기업들의 해외공장 이전으로 인한 임금하락 현상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무역은 아직도 거대한 미국 경제를 흔들기에는 너무나 작은 깃털에 불과하다. 게다가 미국 무역의 70%는 임금수준이 미국만큼 높은 경제부국들과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구촌경쟁 시대가 중대한 변화를 몰고 오긴 했지만 임금저하가 왜 일어나는 지에 대한 설명으로는 충분치 않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경제적 변화가 직접적인 신뢰 저하를 야기하진 않았더라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긴밀한 상호의존 관계에 접어든 세계시장체제는 주목할 만한 "정치적 변화"를 몰고 왔다. 국민 스스로 자신들의 삶이 세계경쟁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 그 자체가 정치적 현실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가설은 좀더 근본적인 경제변화, 즉 제3의 산업혁명이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20세기 말에 컴퓨터와 정보통신이 변화의 소용돌이를 몰고 왔다. 이러한 국면과 관련해 자본주의를 '창조적 파괴'라고 한 조셉 슘페터의 표현은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구조조정과 함께 이러한 창조적 파괴는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인들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종종 저임금으로 일하고 있으며, 유럽인들은 소득을 보조받으면서 이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로 인해 국민은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경제나 역사적 당위성을 인식하기에 앞서 정부를 비난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원인은 복합적이다. 왜냐하면 경제가 가장 주된 요인이라면 경제적 낙오자들의 불신감이 정부 신뢰 저하의 가장 큰 요소여야 되는데 실제로 정부에 대한 신뢰 저하는 경제적인 승자나 패자 모두에게서 똑같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와 정부에 대한 태도간에 연관성이 부족한 만큼 더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국민정서를 반영하는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정부에 대한 불만의 사회 문화적인 요인



그렇다면 신뢰 저하의 원인으로 사회 문화적인 가설들은 어떠한가? 먼저 전반적인 사회 자산의 감소가 있을 수 있다. '사회자산'이란 특별한 개념이 아니라 국민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즉 공동의 일을 추진해나갈 수 있는 신의, 규범, 네트워크 등의 기본 토양을 말한다.

사회과학자들은 그런 능력의 일정 부분이 시민자율단체에서 공동체 활동의 경험을 통해 배양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로버트 퍼트냄은 학부모, 교사연합, YMCA, 걸스카우트 같은 시민 단체들이 1960년대 이래 쇠퇴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쇠퇴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민주정부의 버팀목인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데 필수요소라고 여겼던 중간기구의 몰락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도 비판의 여지가 있긴 하다. 하지만 다양한 요인의 하나로 검토해 볼 만한 가치는 있다.

사회자산의 쇠퇴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소로써 좀더 장기간에 걸친 문화적 변화도 한몫 한다. 선진사회들은 정부뿐 아니라 사회기관들도 장기간에 걸친 신뢰 저하 현상을 겪고 있다. 로널드 잉글하트는 국민의 가치관이 생존에서 삶의 질 향상으로 옮겨감에 따라, 권위에 대한 존중 의식의 쇠퇴가 현대사회에 만연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 '청년반란'은 미국뿐 아니라 많은 선진국들에서 권위와 제도에 대한 도전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서구 사회는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개인과 사회간의 균형에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예로써 이혼 급증, 그리고 그에 따른 가정의 몰락이 있다. 결국 자녀들에게 소홀해지면서 사회의 기초 구성단위가 흔들리게 되었다. 가정의 쇠퇴는 실질적인 정부활동뿐 아니라 정부활동에 대한 국민의 인식 면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공공교육과 청소년 폭력 방지는 국민들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잘 되려면 가정의 역할이 크다. 정부는 학교를 운영하지만 부모들이 가정을 잘 돌보지 못하면 정부의 교육 정책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난은 정부가 떠맡게 된다. "부모 노릇을 게을리 했으니 내가 학교나 정부를 비난할 자격이 없어."라고 말하는 국민은 드물다.

이런 사회적인 변화의 또 다른 특징은 국민의 정치철학이 바뀌면서 권리를 강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 국민들에겐 기본인권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권리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이상하게도 정부에 대한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권리는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권리신장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데, 그 사람은 자신의 피해에 대해 정부를 비난하게 된다. 예를 들면, 1960-70년대에 평등권이 증대되면서 흑인들은 혜택을 봤는데, 그 결과 많은 백인들의 분노를 사서 남부지역이 민주당 지지에서 공화당 지지로 돌아서게 되었다. 사회적인 변화는 대부분 정치적인 변화를 수반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정당들의 양극화와 정부에 대한 불신, 불신의 정치학



데이비드 킹과 리처드 노이스타트는 정부의 신뢰저하에 대한 정치적인 설명을 한다. 우선 한 가지 가설은 정부에 대한 신뢰 저하가 냉전종식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냉전은 국민의 의견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는데, 이것이 끝나면서 국민들은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분열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신뢰 저하가 196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비춰 냉전종식 시점을 1960년대 후반에서 중반으로 옮기는 데 합의하지 않는 한 이 가설은 빛을 발하기가 힘들다.

또 다른 정치적인 가설은 신뢰 저하가 린든 존슨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 같은 지도자들의 형편없는 자질 탓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을 때와 1972년 워커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 신뢰도가 급격히 추락했다. 그러나 이것들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왜 지금까지 정부에 대한 신뢰 저하가 "계속"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가설은 불신이 점증하는 이유로써 미국 정치에서 부패와 부정의 증가를 꼽는다. 그러나 사실 증가한 것은 스캔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과 정치가들이 썩었다는 국민의 인식이다. 따라서 부패증가도 신뢰 저하의 원인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또 다른 가설은 미국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일본 등 많은 나라에서 정당들의 재편성이 진행되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기존의 제휴관계를 깨는 재편성 과정이 정당뿐 아니라 정부에 대해서까지 신뢰 저하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빚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도 부분적으로는 설명이 가능하나 전체를 아우르지는 못한다. 레이건 1기가 집권 당시에는 신뢰도가 상승하고 2기에는 떨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신뢰 저하를 언론의 역할변화 탓으로 돌리는 가설도 있다. 1960년대 이래 미국뿐 아니라 영국, 스웨덴, 이탈리아 등의 언론보도에 나타난 세 가지 뚜렷한 경향이 있는데, 이 나라들의 신문과 방송뉴스가 부정적인 논조로 변했고, 기자 중심이 되었으며, 본질보다는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해석기능을 통해 언론은 기묘하게도 정치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텔레비전은 여기에 덧붙여 한 가지 더 특별한 가능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은 이제 신문보다 텔레비전을 통해 더 많은 정치 관련 정보를 얻는다. 텔레비전은 적어도 두 가지의 뚜렷한 효과가 있는데 우선 정치형태를 변화시켰다. 정치가들은 당 지도부를 거치지 않고 국민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치가와 국민을 연결시켜 주던 정당들 본연의 역할이 약화되었다.

텔레비전은 때때로 일명 '저속한 효과'라는 것도 만들어냈다. 텔레비전은 극적인 장면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단지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봄으로써 정보를 습득한다. 그 결과 국민은 종종 메시지를 혼동하게 된다. 예를 들면, 미국 중부 뉴욕주 레비타운의 시민들에게 "레비타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한 결과 '범죄율 증가'라는 대답이 높게 나왔다. 실제로 레비타운의 범죄율은 증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텔레비전의 직접적이고 저속한 효과 때문에 범죄율이 얼마나 낮아졌는지 통계표를 기억하기보다는 비상등을 켠 순찰차 앞에서 강도가 활개치는 장면이 시민들에게 각인된 것이다.

3. 정부 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 변화



미국에서의 태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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