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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

조셉 S. 나이 지음 | 굿인포메이션
정부의 성과에 대한 평가, 잃어버린 은총: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상실후기물질주의 가치관과 공공기관들의 권위추락결론: 반성과 전망, 그리고 난제들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높았던 1965년, 로버트 레인은 1930년대 이래 신뢰도가 점증한 것은 경제발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풍요의 시대는 항상 신뢰의 시대이며 '국민과 정부간의 화해'의 시대가 될 거라는 그의 예언은 현실에서 그대로 입증되지 못했다.



1979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의 시간당 실질임금은 약 5.5%, 연 평균 0.33% 증가했다. 이것은 전후 초기와 비교했을 때 국민이 예전만 못하다고 정부를 비난하는 이유로 꼽을 만하다. 그러나 이 가설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와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미국에서 1964년부터 1974년까지 신뢰도가 가장 크게 떨어졌는데, 이때는 경제성장이 가장 빨리 진행된 기간이었고 1980년대 초 경기후퇴 때는 거꾸로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지구촌 경쟁 시대의 도래라는 경제적인 토대변화를 그 원인으로 꼽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단순한 경기후퇴가 아니라 국민들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때문에 경기가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풍부한 저임금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는 동아시아 경제와 경쟁하기 위해서 선진국 임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특히 단순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짐에 따라 빈부격차가 커짐으로써 이것이 정치에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기후퇴 시점이 맞지 않는 데 대한 보완 설명으로는 유효하지만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미국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1/10에 불과하며, 임금하락 현상은 무역 관련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나머지 90%의 다른 산업분야에서도 일어났다. 무역 분야로부터 일반산업으로의 파급효과와 다국적 기업들의 해외공장 이전으로 인한 임금하락 현상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무역은 아직도 거대한 미국 경제를 흔들기에는 너무나 작은 깃털에 불과하다. 게다가 미국 무역의 70%는 임금수준이 미국만큼 높은 경제부국들과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구촌경쟁 시대가 중대한 변화를 몰고 오긴 했지만 임금저하가 왜 일어나는 지에 대한 설명으로는 충분치 않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경제적 변화가 직접적인 신뢰 저하를 야기하진 않았더라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긴밀한 상호의존 관계에 접어든 세계시장체제는 주목할 만한 "정치적 변화"를 몰고 왔다. 국민 스스로 자신들의 삶이 세계경쟁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 그 자체가 정치적 현실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가설은 좀더 근본적인 경제변화, 즉 제3의 산업혁명이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20세기 말에 컴퓨터와 정보통신이 변화의 소용돌이를 몰고 왔다. 이러한 국면과 관련해 자본주의를 '창조적 파괴'라고 한 조셉 슘페터의 표현은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구조조정과 함께 이러한 창조적 파괴는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인들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종종 저임금으로 일하고 있으며, 유럽인들은 소득을 보조받으면서 이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로 인해 국민은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경제나 역사적 당위성을 인식하기에 앞서 정부를 비난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원인은 복합적이다. 왜냐하면 경제가 가장 주된 요인이라면 경제적 낙오자들의 불신감이 정부 신뢰 저하의 가장 큰 요소여야 되는데 실제로 정부에 대한 신뢰 저하는 경제적인 승자나 패자 모두에게서 똑같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와 정부에 대한 태도간에 연관성이 부족한 만큼 더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국민정서를 반영하는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그렇다면 신뢰 저하의 원인으로 사회 문화적인 가설들은 어떠한가? 먼저 전반적인 사회 자산의 감소가 있을 수 있다. '사회자산'이란 특별한 개념이 아니라 국민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즉 공동의 일을 추진해나갈 수 있는 신의, 규범, 네트워크 등의 기본 토양을 말한다.

사회과학자들은 그런 능력의 일정 부분이 시민자율단체에서 공동체 활동의 경험을 통해 배양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로버트 퍼트냄은 학부모, 교사연합, YMCA, 걸스카우트 같은 시민 단체들이 1960년대 이래 쇠퇴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쇠퇴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민주정부의 버팀목인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데 필수요소라고 여겼던 중간기구의 몰락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도 비판의 여지가 있긴 하다. 하지만 다양한 요인의 하나로 검토해 볼 만한 가치는 있다.



사회자산의 쇠퇴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소로써 좀더 장기간에 걸친 문화적 변화도 한몫 한다. 선진사회들은 정부뿐 아니라 사회기관들도 장기간에 걸친 신뢰 저하 현상을 겪고 있다. 로널드 잉글하트는 국민의 가치관이 생존에서 삶의 질 향상으로 옮겨감에 따라, 권위에 대한 존중 의식의 쇠퇴가 현대사회에 만연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 '청년반란'은 미국뿐 아니라 많은 선진국들에서 권위와 제도에 대한 도전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서구 사회는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개인과 사회간의 균형에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예로써 이혼 급증, 그리고 그에 따른 가정의 몰락이 있다. 결국 자녀들에게 소홀해지면서 사회의 기초 구성단위가 흔들리게 되었다. 가정의 쇠퇴는 실질적인 정부활동뿐 아니라 정부활동에 대한 국민의 인식 면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공공교육과 청소년 폭력 방지는 국민들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잘 되려면 가정의 역할이 크다. 정부는 학교를 운영하지만 부모들이 가정을 잘 돌보지 못하면 정부의 교육 정책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난은 정부가 떠맡게 된다. "부모 노릇을 게을리 했으니 내가 학교나 정부를 비난할 자격이 없어."라고 말하는 국민은 드물다.



이런 사회적인 변화의 또 다른 특징은 국민의 정치철학이 바뀌면서 권리를 강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 국민들에겐 기본인권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권리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이상하게도 정부에 대한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권리는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권리신장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데, 그 사람은 자신의 피해에 대해 정부를 비난하게 된다. 예를 들면, 1960-70년대에 평등권이 증대되면서 흑인들은 혜택을 봤는데, 그 결과 많은 백인들의 분노를 사서 남부지역이 민주당 지지에서 공화당 지지로 돌아서게 되었다. 사회적인 변화는 대부분 정치적인 변화를 수반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데이비드 킹과 리처드 노이스타트는 정부의 신뢰저하에 대한 정치적인 설명을 한다. 우선 한 가지 가설은 정부에 대한 신뢰 저하가 냉전종식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냉전은 국민의 의견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는데, 이것이 끝나면서 국민들은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분열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신뢰 저하가 196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비춰 냉전종식 시점을 1960년대 후반에서 중반으로 옮기는 데 합의하지 않는 한 이 가설은 빛을 발하기가 힘들다.

또 다른 정치적인 가설은 신뢰 저하가 린든 존슨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 같은 지도자들의 형편없는 자질 탓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을 때와 1972년 워커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 신뢰도가 급격히 추락했다. 그러나 이것들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왜 지금까지 정부에 대한 신뢰 저하가 "계속"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가설은 불신이 점증하는 이유로써 미국 정치에서 부패와 부정의 증가를 꼽는다. 그러나 사실 증가한 것은 스캔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과 정치가들이 썩었다는 국민의 인식이다. 따라서 부패증가도 신뢰 저하의 원인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또 다른 가설은 미국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일본 등 많은 나라에서 정당들의 재편성이 진행되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기존의 제휴관계를 깨는 재편성 과정이 정당뿐 아니라 정부에 대해서까지 신뢰 저하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빚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도 부분적으로는 설명이 가능하나 전체를 아우르지는 못한다. 레이건 1기가 집권 당시에는 신뢰도가 상승하고 2기에는 떨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신뢰 저하를 언론의 역할변화 탓으로 돌리는 가설도 있다. 1960년대 이래 미국뿐 아니라 영국, 스웨덴, 이탈리아 등의 언론보도에 나타난 세 가지 뚜렷한 경향이 있는데, 이 나라들의 신문과 방송뉴스가 부정적인 논조로 변했고, 기자 중심이 되었으며, 본질보다는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해석기능을 통해 언론은 기묘하게도 정치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텔레비전은 여기에 덧붙여 한 가지 더 특별한 가능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은 이제 신문보다 텔레비전을 통해 더 많은 정치 관련 정보를 얻는다. 텔레비전은 적어도 두 가지의 뚜렷한 효과가 있는데 우선 정치형태를 변화시켰다. 정치가들은 당 지도부를 거치지 않고 국민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치가와 국민을 연결시켜 주던 정당들 본연의 역할이 약화되었다.

텔레비전은 때때로 일명 '저속한 효과'라는 것도 만들어냈다. 텔레비전은 극적인 장면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단지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봄으로써 정보를 습득한다. 그 결과 국민은 종종 메시지를 혼동하게 된다. 예를 들면, 미국 중부 뉴욕주 레비타운의 시민들에게 "레비타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한 결과 '범죄율 증가'라는 대답이 높게 나왔다. 실제로 레비타운의 범죄율은 증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텔레비전의 직접적이고 저속한 효과 때문에 범죄율이 얼마나 낮아졌는지 통계표를 기억하기보다는 비상등을 켠 순찰차 앞에서 강도가 활개치는 장면이 시민들에게 각인된 것이다.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면서 정부 종사자들은 한 가지 중요한 사회문화현상에 직면하게 되었다. 정부 종사자들은 국내 및 국제 분야에서 이 시대의 주요문제를 다룰 때 많은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고 정부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1958년 미국 선거조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의 신뢰도를 조사했는데, 미국인의 약 3/4이 워싱턴 정부가 "항상" 또는 "거의 대부분"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응답을 했다. 이 수치는 1968년 61%, 1974년 36%, 그리고 1980년에는 마침내 25%로 떨어졌다. 국민의 신뢰는 1980년대 중반에 상승했지만 1970년대 초반 수준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199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미국인의 1/4만이 연방정부를 신뢰했다.

신뢰저하는 연방정부의 행정부와 입법부 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의 신임도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의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추세는 어느 정당이 대통령직이나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가와는 상관없이 비교적 균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인종, 성별, 나이에 따라 신뢰도는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연방정부 신뢰는 미국인 4명 중 단 1명에 불과하다.



'중앙정부와 주정부 중 어느 정부가 더 일을 잘할 거라고 믿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25%는 연방정부를, 61%는 주정부를 선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주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인 3명 중 단 1명 정도만이 주정부가 항상(5%) 혹은 거의 대부분(30%) 옳은 일을 할 것이라는 신뢰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인의 65%가 주정부에 대해서조차 그다지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는 셈이다.

미국인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복합된 결과이다. 우선 주 요인은 연방정부가 돈을 쓰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비효율성과 낭비, 엉뚱한 곳에 드는 비용이 불신의 주 요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특정 이해집단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인들의 성실성 결여도 주 요인으로 꼽고 있다. 다만 공공정책의 운영 면에서 국민들은 주정부가 더 낫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반면, 경제발전, 평등권 보호, 환경보호, 의료보장제도 개선 등의 몇몇 분야에 있어서는 연방정부가 책임을 맡기를 희망한다.



두 번째 요인은 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임이다. 30년간의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지도자층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붕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방정부와 산하기관들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신뢰가 저하되면서 미국 사회의 다른 많은 주요기관의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도 같이 급락했다. 예를 들면, 대학교 운영자들에 대해 큰 신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미국인의 비율이 1966년 61%에서 1996년 30%로, 언론 지도층은 29%에서 14%로, 의학계 지도층은 73%에서 29%로 감소했다. 이러한 신뢰도 저하는 국민들의 불신이 정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사회현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세 번째 요인은 정부가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인식이다. 이는 국가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연방정부의 많은 노력들이 실패했다는 얘기다. 워싱턴 포스트, 카이저 가족재단, 하버드 대학교 공동설문조사에 따르면 과거 20년간 연방정부가 재원의 상당 부분을 쏟아 부은 6가지 주요 분야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여기는 국민들은 5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연방정부가 경제를 향상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인식은 특히 중요하다. 경제가 전과 마찬가지거나 더 나빠졌다고 대답한 사람 10명 중 6명이 그것을 연방정부 탓으로 돌리면서 연방정부가 뭔가를 잘못했거나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지난 40년 동안 국민들은 점점 더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1958년 대다수의 미국인은 중앙정부에 대해 기본적으로 정직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불신의 비율이 가파르게 상승했으며 1980년대에는 횡보하다가 1994년 최고조에 이르렀다. 설문조사에서 절대 다수인 국민의 51%가 상당히 많은 정부 당국자들이 부패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지난 30여 년 동안 정부의 부패는 늘어나지 않았다. 실제로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평가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료들을 통해 그런 현상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가들에서 정부와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가 하락했다는 것이 눈에 띈다. 그렇게 된 원인을 1990년대 초 집권한 모든 지도자들이(클린턴에서 메이요, 미테랑, 곤살레스, 멀로니, 안드레오티 그리고 호소가와에 이르기까지) 그 나라의 역대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불만족스럽고 불성실한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정말 믿기 어려운 우연이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 기준이 변했으며 국민들이 이제 과거에 적용되던 것보다 더 까다로운 잣대로 지도자와 정부기관들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제발전과 관련이 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비교적 생존에 대한 위협이 사라지자 국민들은 권위를 그다지 존중하지 않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사회에 위기가 닥치면 반동적인 권위주의라 할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불안에 의해 촉발된 반동적인 권위주의는 근본주의 또는 자국민 보호주의로의 역행이 일어나고 강력한 정치 지도자에 대한 추종이 일어난다.



반대로 국민 대다수가 신체적인 생존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면 후기 물질주의자들이 본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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