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미디어의 이해
김주환 지음 | 생각의나무
디지털 미디어의 이해
김주환 지음
생각의나무/ 2008년 11월 / 244쪽 / 9,800원
미디어와 기호
기호, 기호물, 미디어미디어(media)는 매개체 또는 매체라는 뜻의 미디엄(medium)의 복수형이다. 미디어는 일단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송신자와 수신자를 매개해주는 물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커뮤니케이션의 수단 혹은 물질적 기반이 곧 미디어이다. 매체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호와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매체는 범주적 개념이다. 이것은 구체적이고도 특정한 대상을 일컫는 개념이 아니라 일정한 성격을 지닌 여러 대상들을 포괄하는 집합적 개념이라는 뜻이다.
한편, 기호는 기능적 또는 관계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기호는 두 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물질적 기반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에 결부되어 있는 다양한 차원의 의미이다. 기호의 물질적 기반을 우리는 기호물이라 부를 수 있다. 기호는 반드시 물질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기호는 지각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 의해 지각될 수 없는 것은 기호가 될 수 없다. 이 기호물은 특정한 지각편린을 생산해낸다. 더 자세히 말하면 기호물은 특정한 감각적 자료와 연관된다. 이런 감각적 자료를 지각편린으로 생산해내는 것이 지각의 과정이며 이는 우리 몸에서 일어난다.
기호란 무엇인가현대 기호학의 기반을 마련한 찰스 퍼스는 "기호는 인간의 정신에 대해 어떤 대상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기호현상은 항상 세 개의 항으로 이루어지는 삼자관계이다. 움베르토 에코 역시 "기호는 어떤 것을 의미 있게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이라고 정의했다. 정리해보면 기호는 어떤 다른 것을 의미 있게 대신할 수 있는 것이며, 기호와 그것이 대신하는 다른 어떤 것과의 '기호관계'는 문화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된다. 거울에 비친 모습과 본래의 모습은 아무런 매개 과정 없이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자기 동일적 관계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기호관계가 맺어질 수 없다는 것이 에코의 입장이다.
기호와 실체의 구성영화 스크린 위의 공룡 이미지는 우선 공룡이라는 대상을 대신하고 있다. 이는 마치 영화배우의 이미지가 그 영화배우를 대신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화배우는 영화 속의 어떤 캐릭터를 대신하는 기호이다. 도깨비나 유니콘 그리고 공룡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실체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사회적으로 형성되어온 실체인 것이다. 여기서 실체라는 것은 물적 토대를 지닌 실체라는 뜻은 아니다. 퍼스는 모든 기호현상이 기호-대상-해석체의 삼자관계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기호가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것은 물질적 대상이 아니라 "지각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기호-대상-해석체"라는 퍼스의 기본 모델에서 "대상"은 객관주의적 의미에서의 물질적 실체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기호의 해석과 가추법기호현상, 즉 대상을 "지각-기호화-해석"하는 것과 퍼스 기호학의 핵심 개념인 가추법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퍼스는 가추법이 연역법, 귀납법과 함께 세 가지 기본적인 논증법이라고 보았다. 가추법이 규칙과 결과로부터 사례에 도달하는 반면, 연역법은 규칙과 사례로부터 결과에 도달한다. 한편, 가추법은 결론의 확실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가장 불확실하고 불안한 논증방법이다. 가추법의 정확성은 연역법은 말할 것도 없고 귀납법에도 전혀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가추법의 장점은 그 생산성에 있다. 퍼스에 따르면 과학적 사유의 출발점이 바로 가추법이다. 관찰이나 연구하기 전에 이미 하나의 가설을 세우기 마련인데, 이러한 가설 세우기에 필수적인 것이 바로 가추법이다. 퍼스는 이것을 "가설적 추론(hypothetical inference)"이라고 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지각하여 기호화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한, 이 세상 만물은 모두 다 기호이며 따라서 모든 현상은 기호현상이다. 그래서 퍼스는 "이 우주는 기호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기호학에 대하여 기호학(semiotic)이란 말이 처음 사용된 것도 우리가 잘 아는 로크의 『인간 오성론』에서이다. 로크는 『인간 오성론』에서 인간의 지식을 사변적인 것과 실행적인 것 둘로 나눈다. 사변적 지식은 자연적 사물에 대한 것이고, 실행적 지식은 인간의 행위나 사유에 그 존재기반을 두는 사물에 대한 것이다. 로크는 이 두 가지 종류의 지식 모두를 획득하고, 발전시키고, 공유하는 '수단'을 바로 기호학이라고 했다. 우리는 기호학의 발전 단계를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해볼 수 있다. 즉 고대기호학은 사물과 사물의 관계에, 중세기호학은 신과 사물의 관계에, 그리고 근대기호학은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통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각각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기호생산이론과 디지털 혁명의 기원
디지털 혁명 기원의 문제많은 학자들이 디지털 미디어와 정보사회의 중요성과 특성, 그리고 정보혁명의 결과와 제반 문제들에 대해 연구해왔다. 이들의 논의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국가경제와 국제 경제 분야에서 정보 부문의 크기와 중요성이 놀랄 만큼 증가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 그 자체가 경제적인 가치를 갖춘 중요한 상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보사회와 디지털 정보혁명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디지털 혁명이 산업사회와 질적으로 다른 사회를 가져왔다고 보는 단절론적 시각과 이와 대조적으로 정보사회를 산업사회의 연장으로 보는 연속론적 시각이 있다. 하지만 이 두 관점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정보의 양적 확산을 논거의 주요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제임스 베니거(Beniger, 1986)는 산업혁명으로 통제에 위기가 닥치자 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방식으로 통제혁명이 일어나야만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산업혁명은 잉여가치의 증대를 위한 물적 노동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일어났으며 그 결과 산업사회를 초래하였다. 물적 노동의 생산성 증가의 한계는 커뮤니케이션 노동의 생산성 향상을 자극했으며 그 결과 통제혁명이 일어나게 되었고 마침내 정보사회를 초래하였다. 산업혁명은 물질적 생산수단의 기술적 혁신이며 통제혁명은 정보생산수단의 기술적 혁신이다.
기호와 상품생산의 동질성: 기호생산이론을 위한 삼중삼각형모델
기호와 상품의 동질성에 대해서 살펴보면 첫째, 기호와 상품은 모두 "다른 이들을 위한" 생산물이다. "다른 이들을 위한 사용가치"인 상품은 다른 이들의 소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기호가 다른 이들의 해석을 위해 생산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기호와 상품은 사회구성원에 의해 공유되거나 교환되어야만 한다. 둘째, 상품과 기호는 모두 물질과 의미의 결합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상품은 물질적 속성과 사회적 의미의 조합체이다. 따라서 그것의 사용가치는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그 대상의 물리적 특질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역사적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 셋째, 상품과 기호는 모두 "물질적 대상, 그 대상에 대한 인간행위, 그리고 그 행위에 의한 생산물"이라는 동일한 세 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동일한 형태의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다. 우선 상품생산과 기호생산과정의 동질성을 삼중삼각형 모델을 통해 살펴보고 나아가 기호생산이론의 다양한 적용가능성에 대해 알아보자.
1. 상품생산의 삼중삼각형 모델상품 생산 관계를 살펴보면, 상품생산을 위해서는 생산원료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상품생산의 출발점인 첫 번째 물질적 대상이다. 다음으로 이 대상에 대한 인간의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물적 노동"이다. 그리고 생산원료에 대한 물적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 "생산물"이다. 따라서 상품생산의 첫 번째 삼자관계는 "생산원료-물적 노동-생산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생산물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교환가능성을 획득해야만 하는데, 생산물을 교환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인간행위가 바로 커뮤니케이션 노동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삼자관계는 "생산물-커뮤니케이션 노동-상품"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생산된 상품은 다른 이들에 의해 소비됨으로써 그 효용성이 실현된다. 따라서 세 번째 삼자관계는 "상품-소비-효율성"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각각의 삼자관계는 모두 "물질적 대상-인간의 행위-생산된 것"이라는 세 개의 항으로 이루어진다.
1) 커뮤니케이션 노동의 필요성
생산물에 투입된 노동이 가치로 전환되는 것은 오로지 교환에 의해서이기 때문에 교환이 없다면 가치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교환의 정보적 조건의 생산은 상품가치 생산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며, 이러한 정보적 조건을 생산하는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 노동이다.
2) 생산적인 노동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 노동
더 많은 양의 커뮤니케이션 노동은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더 큰 수요력을 생산하며 따라서 더 큰 가치를 생산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물질노동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도구들의 발달을 갈망하듯이 커뮤니케이션 노동수단(예컨대 문자 등의 기호체계, 인쇄기술, 매스미디어, 컴퓨터 등)의 발전을 원한다. 생산자들은 물질노동과 커뮤니케이션 노동 모두의 생산성 증대를 원한다.
3) 상품에 대한 해석으로서의 소비
맥주를 예로 들면, 물질적 생산 이전에 맥주는 이미 어떤 일정한 "사회적 욕구"를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기획되어야만 한다. 맥주 생산에 관련된 모든 것(맥주의 알코올농도, 병과 겉포장 디자인, 상품명과 전체 이미지, 맥주 시장에서의 위치, 소구대상 등)이 "새로운 욕구를 위한 새로운 사용가치의 생산"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결정되어야만 한다.
4) 커뮤니케이션 기술 발전의 원동력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 노동
맥주 생산자는 커뮤니케이션 노동에 의하지 않고서는 결코 맥주의 '새로운 의미'를 생산할 수 없다. 커뮤니케이션 노동에 의해서만 가능한 '광고', '포장 디자인', '브랜드네임' 등이 없다면, 소비자는 수많은 종류의 맥주를 구별해내지 못할 것이며,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포장과 맛의 맥주들은 아예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커뮤니케이션 노동이 없다면 "발전적으로 증가하는 자본의 재생산"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커뮤니케이션 노동은 수요력에 작용하여 가치와 잉여가치를 창출해내기 때문에 물질노동과 같은 한계가 없다.
2. 기호생산의 삼중삼각형 모델기호의 첫 번째 삼자관계는 "물질(기호원료)-지각하기-지각된 것"으로 이루어진다. 생산물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교환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듯이 지각된 기호가 되기 위해서는 교환될 수 있는 것, 즉 "사회적 지각편린"이 되어야 한다.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생산물이 커뮤니케이션 노동에 의해 상품이 되는 것처럼 주관적이고도 개별적인 지각편린은 "기호화하기"라는 인간의 행위에 의해 객관화되어 비로소 "기호"가 된다. 그래서 기호현상의 두 번째 삼자관계는 "지각된 것-기호화하기-기호"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생산된 상품이 소비에 의해 그 효용성을 실현하듯이 기호는 "해석하기"에 의해 그 의미, 즉 "해석체"를 실현해낸다. 따라서 기호현상의 세 번째 삼자관계는 "기호-해석하기-해석체"이다.
3. 미술작품 생산의 삼중삼각형 모델일반적인 기호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미술 작품 생산 역시 세 번째 단계부터 이루어진다. 한편 관객은 첫 번째 단계부터 시작한다.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관객은 작품이라는 대상을 지각한다. 그리하여 관객은 자신이 지각한 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받아들여 기호화한다. 그 다음에 감상하기라는 행위가 뒤따르며 그 결과 일정한 미적 감흥을 얻게 된다. 조각가 김용철은 관객의 적극적인 지각하기의 노력을 의도적으로 요구하는 일련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는 기호생산의 첫 번째 단계인 지각하기 과정을 화두로 삼아 관객에게 지각하기-기호화하기-감상하기의 세 단계 '작업'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이다.
4. 신화생산의 삼중삼각형 모델바르트는 신화가 그 이전부터 존재하는 기호적 연쇄에 기반한다는 이유로 이를 "독특한 기호체계"라고 본다. 바르트에 의하면 신화는 하나의 "말하기(une parole)"이다. 그러나 모든 말하기가 다 신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말하기가 신화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이 요구되는데 이것이 바로 "메타언어"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말하기를 다시 또 다른 말하기의 재료로 삼아 2차적 말하기를 생산해내야만 신화가 된다. 바르트는 일차적 언어를 "대상적 언어(language-object)"라고 하며 그 대상적 언어에 기반하는 2차적 언어를 "메타언어(meta-language)"라 부른다.
이것을 도식으로 나타내보면 다음과 같다.
1) 1차 체계(대상적 언어): 의미(sense, 기표)+개념(concept, 기의)=기호(sign)2) 2차 체계(메타언어): 형식(form, 기표)+개념(concept, 기의)=기호체(signification, 신화)
마지막 항인 기호는 신화체계 안으로 붙들려 와서는 하나의 형식으로 전환되어 신화가 의도하는 기의를 나타내는 기표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표와 기의의 결합이 곧 신화인데, 바르트는 이를 기호체라 부르고 있다. 즉 신화는 하나의 기표-신화학적 분석에 의해 기의와 짝 지워지는-가 되고 만다. 그래서 신화학은 메타-메타-언어이며, 3차 기호체계이고 따라서 역시 하나의 기호체계로서의 특징을 지닌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든 기호현상-상품이든, 신화이든-은 "인간의 행위-자연적 대상-생산물"이라는 세 개의 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세상을 이루는 기본요소들이기도 하다. 이것은 지각-지각대상-지각편린이며, 해석하기-기호-해석체이며, 정-반-합이며, 기의-기표-기호이며, 자아(Ego)-원아(id)-초자아(Superego)이다.
매체 발전의 역사와 디지털 혁명의 의미
첫 번째 변화: 문자의 발명문자의 발명과 더불어 인류는 입말에 대비되는 글말이라는 새로운 언어양식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기록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집단기억 수단을 갖게 되었다. 월터 옹(Ong, 1995)에 따르면, 글쓰기는 인간의 내적 의식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으며,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요구되는 기본적 감각을 청각에서 시각으로 영구히 바꾸어놓았다고 했다.
두 번째 변화 : 인쇄매체의 등장과 근대성의 확립
최초의 대중매체라 할 수 있는 인쇄매체의 등장은 종교개혁을 통해 중세사회의 종지부를 찍고 근대사회의 여러 기틀을 마련하였다. 세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종교혁명은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로마 교회의 면죄부 판매와 여러 가지 부정부패를 비판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교회 성문에 붙였다. 1512년 로마교회는 루터를 추방했고 이로 인해 그의 독일어 성경에 대한 엄청난 홍보효과를 가져왔다. 결과적으로 루터는 성경번역과 인쇄술을 통해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인쇄매체가 교회와 봉건영주 중심의 공동체 사회를 해체시키고 평등한 개인과 교회로부터 독립된 근대민족 국가를 형성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둘째, 근대민족주의와 민주주의로 근대민족국가(modern nation state)는 다양한 종족들이 하나의 국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