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안지 않는 연습
마스노 슌묘 지음 | 비전코리아
혼자 떠안지 않는 연습
마스노 슌묘 지음
비전코리아 / 2026년 5월 / 212쪽 / 17,000원
1장. ‘폐’를 끼친다는 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다
폐를 끼친다는 것은 ‘신세를 진다’는 것“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 당연한 진리처럼 회자되지만, 불교에서는 ‘사람은 혼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손을 잡고 함께 걷는다는 뜻의 ‘파수공행(把手共行)’처럼 서로 도우며 살아가며, ‘폐를 끼친다’는 말은 ‘신세를 진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물론 제멋대로 행동해 불필요한 부담을 주는 일은 삼가야겠지만, 바쁜 상사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팀 전체의 업무 순환을 순조롭게 만들듯 겉보기에 폐를 끼치는 것 같은 행동이 상황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누군가의 신세를 지고 또 누군가를 보살피며, 서로 신세를 지고 보살피는 관계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 그 자체입니다. 서로 작은 폐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신뢰가 깊어지고 다정함이 자라나며,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은 사람 사이의 소중한 인연을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관계를 그저 ‘폐’로 규정해 멀리하기보다, 기분 좋게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받들어주고 지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인간다운 삶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존재하며,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져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하며, ‘연기(緣起)’를 통해 모든 것이 인연으로 생겨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설명합니다.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물질적 풍요와 로봇·AI의 혜택 속에 모든 것의 배경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 즉 보이지 않는 실의 존재를 느낄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설령 로봇에 의지하더라도 그 역시 인간이 만든 존재이므로 ‘로봇을 통해 인간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합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모든 것이 누군가의 덕분입니다. 보이지 않는 실 끝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결국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마음을 기울이게 하고, 이 다정한 세계를 지켜나가는 힘이 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지 돌아보라도시에 살더라도 아이와 지역 축제에 참여해 이웃과 인사를 나누거나, 명절에 고향을 찾아 어렸을 때 신세 졌던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지탱받고 있는지 새삼 깨닫고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도시에서는 직함이나 실적 같은 ‘갑옷’으로 자신을 둘러싸지만, 고향 사람들은 그런 잣대로 평가하지 않기에 갑옷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돌아가 마음이 정화됩니다. 평소에는 떨어져 지내며 깊이 얽매이지 않더라도, 축제를 함께 즐기고 옛 지인들과 다시 만나는 것만으로도 ‘서로 돕고 살아간다’는 고마움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는지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저절로 연결되는’ 장소에 가기제가 주지로 있는 절의 꽃 축제에서는 사람들이 저마다 뜻밖의 재능을 발휘하며 얼굴을 맞대고 교류합니다. 회사나 가정에만 머물던 생활에서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던 연결이 실제 공간에서는 굳이 마음먹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지역과 공동체의 유대가 두터워집니다. 회사를 중심으로 살아온 중년 이후의 남성은 회사 밖 공동체를 꺼리다 정년퇴직 후 큰 허전함을 느끼곤 합니다. 지역 행사나 이웃과의 인사가 처음엔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번거로움이 제법무아의 관계를 키워주며, 만남의 번거로움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고마움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표리일체(表裏一體)’ 관계입니다.
‘돌봄’에 감사의 마음을지역 행사에 가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역할을 찾게 되며,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고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쁨을 주는 사람인 동시에 받는 사람이기도 하며, 이것 또한 제법무아가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세상이 효율화되면서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게 일상이 되었지만, 지역 행사는 얼굴을 보고 고마움과 박수를 주고받으며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입구’입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에서 ‘일’은 임금 노동뿐 아니라 봉사처럼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AI에 의지해 사소한 부탁을 덜 하게 된 요즘이지만, 도움을 받은 쪽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하고 도움을 준 쪽은 “도울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따스한 관계와 장소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사람은 남의 도움과 보살핌을 받기만 해서는 살아갈 수 없으며, 자신 또한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합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느 회사 창업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감탄하는 사람들을 보며 기력을 되찾아 한참을 더 살았듯, 사람은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자신의 역할과 사명에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반면 요양원에 들어가 모든 것을 남의 손에 맡기며 역할 없는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되면,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허무감 속에 급격히 기력이 쇠하고 치매가 발병하기도 합니다. 남이 나를 챙겨주는 일과 내가 남을 챙겨주는 일은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균형이 무너지므로,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가족과 왕래하고 손주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도움을 주고받으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벽에 부딪쳤다면 목소리를 내라, 아니면 움직여라무언가에 부딪쳤을 때는 혼자 괴로워하며 버티기보다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를 내야 하며,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면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은둔 상태에 가깝게 지내던 한 청년도 용기를 내어 우리 절의 청소 도우미로 찾아와 몸을 움직이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가슴속 응어리가 풀리고 자신감을 되찾아 정식으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있으면 잡념이 맴돌지만, 지금 이 순간 한 가지 일에 집중해 몸을 움직이면 쓸데없는 생각을 할 틈이 사라집니다. 선불교에서는 생각하기 전에 당장 움직이면 불안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강조하며, 이를 ‘선즉행동(禪卽行動)’이라 합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제멋대로 비관하지 말고 한 걸음, 두렵다면 반 걸음이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는 순간 구체적인 현실이 펼쳐지고 걱정은 사라집니다.
인내 뒤에 숨어 있는 교만참는 것을 미덕처럼 이야기하지만, 선불교에서는 참는 것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아만(我慢)’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교만’을 의미합니다. 무리한 자신감으로 무작정 참다 보면 결국 상대에게 불만을 돌리게 되고, 할 수 없는 일을 떠맡아 주위까지 힘들게 하고 자신도 지쳐버리는 ‘증상만(增上慢)’에 빠지게 됩니다. ‘잘 참고 희생하는 나’를 뿌듯하게 여기는 마음의 뿌리에는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는 교만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겸손함으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솔직하게 표현할 때, 타인과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깊고 풍요로운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2장. 당신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성실한 사람일수록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진지하고 다정한 사람일수록 부담을 주거나 평가가 나빠질까 봐 도움을 청하기를 주저합니다. 또한 사소한 일은 인터넷 검색으로 해결하게 되면서 베테랑의 노하우를 배우고 ‘상부상조’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고 남에게 의지하는 용기를 가져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의 자세도 중요합니다. 상사나 선배가 먼저 “힘든 점은 없나요?”라고 말을 건네고 ‘부하의 도움을 받는 모범’을 보여줘야 하며, 용기 내 찾아온 사람에게 “모르면 같이 해보자”라고 손을 내밀어줄 때 직급을 넘어선 신뢰 관계가 형성됩니다.
마음의 ‘갑옷’을 벗는 법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이면에는 체면과 남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욕구, 타인과 비교하는 잣대가 숨어 있습니다. 선불교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노(露)’라고 하며, 억지로 강한 척하거나 가식을 부릴 필요 없이 부족한 것은 노력해 익히고 모르는 것은 물어봐서 배우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의 직책이나 가정에서의 역할 같은 ‘갑옷’으로 무장한 채 살아가다, 누구나 태어날 때 지닌 부처와 같은 마음인 본래의 자기(‘불성’)를 잃어버립니다. 직함이나 역할의 갑옷을 벗고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며 단 하나뿐인 절대적인 자신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선불교가 말하는 ‘좋은 인생’입니다.
‘꾸미지 않은’ 나로 담담히 살아가기직함과 관계없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섞여 묵묵히 일을 돕는 것, 그것이 바로 ‘그 무엇도 아닌 자신’으로 행동하는 ‘노(露)’입니다. 모임에서 머뭇거려진다면 어깨에서 힘을 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묵묵히 해보세요.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며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기쁨과 안도감을 알게 됩니다. ‘노’의 반대는 ‘꾸미기’입니다. 정원의 장미가 튤립이 되려 하지 않듯, 남과 비교해 따라잡으려 애쓰기보다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꽃을 피우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부처님도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하더라도 마음이 넉넉하고 평온하다”라고 말씀하셨듯, 행복은 겉에 무언가를 덧붙이기보다 안에 있는 ‘부족함’을 아는 데서 찾아옵니다.
베풂은 기대하지 않을 때 완성된다절을 짓고 경전을 번역한 공덕을 묻는 양나라 무제에게 달마 대사는 “무공덕”이라 답하며,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집착을 낳으니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묵묵히 선을 행하는 ‘음덕(陰德)’이 중요하다고 설교했습니다. 베푼 친절에 대해 상대의 반응을 기대하는 순간 스스로 괴로워지므로, 감사 인사가 없더라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니 충분하다’고 여기고 보답을 바라느니 차라리 베푼 친절을 잊어버리는 편이 낫습니다. “하늘이 보고 있다”는 옛말처럼 어딘가에서 지켜보는 이가 반드시 있으며,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작은 선행을 쌓아가는 사람은 항상 밝게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일을 하라머릿속에서 불안을 눈덩이처럼 굴리다 보면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럴 때 떠올려야 할 선불교의 가르침이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라는 ‘이금(而今)’과 ‘선즉행동’입니다. 원래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확실히 일어난 것처럼 느끼는 실체 없는 망상이자 기우일 뿐입니다. 망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도와주고 싶다’, ‘도움을 받고 싶다’고 느낀 그 순간 곧바로 행동하면 인간 본래의 따뜻한 관계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손을 내미는 용기대승불교(북전불교)의 근본정신을 담은 ‘자미득도선도타(自未得度先度他)’는 ‘아직 자신이 완전히 구제되지 않았더라도 먼저 다른 사람을 구제하여 피안을 건너게 해주자’, 즉 자신의 일보다 먼저 남의 행복을 바라는 보살의 행(보살행)을 뜻합니다. 깨달음 직전에 있으면서도 고통받는 중생을 돕기 위해 이 세상에 머무는 관음보살이나 지장보살처럼, 손익이나 폐가 될지를 계산하기 전에 망설임 없이 “괜찮으세요?”라고 말을 건네고 손을 내미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계산 없이 타인을 구하는 행동이 자연스러워졌을 때 우리는 주저함과 불안에서 해방되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집니다.
때로는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려보자현대 사회에서는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가 사양당하거나 병문안 위로가 상처가 되는 등 보살핌과 오지랖의 경계가 모호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망설이지 않고 행동하는 태도는 중요합니다. 설령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끝나더라도 다음번엔 “저는 곧 내립니다”라고 덧붙여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병문안을 거절당하더라도 “건강하신 것 같아 참 다행입니다”라고 산뜻하게 받아넘기면 됩니다. 반대로 남이 친절을 베풀 때도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다 나은 것 같습니다”라고 상대의 진심을 고맙게 받아들이면 서로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실패와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돕는 마음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 배려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친절에도 여백이 필요하다‘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친절도 정도를 넘어서면 상대가 스스로 해내고자 하는 의지와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자유를 빼앗는 참견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해주고 싶은 마음’보다 상대가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헤아리는 완충지대, 즉 상대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바빠 보이는 동료에게 바로 “도와드릴까요?”라고 묻기보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주세요”라고 말하고, 고민이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들어줄게”라고 말해주면 상대는 부담 없이 안도감을 느끼며 자신의 속도에 맞춰 적절한 시점에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친절이다마음 깊은 곳의 고통은 타인이 대신 떠안아줄 수 없으며 섣부른 조언은 도리어 상처가 되므로, 때로는 그저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함께 있어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상대의 마음에 자신의 마음을 포개어 슬픔을 함께 느끼는 선불교의 ‘동사(同事)’와 자비의 눈 ‘자안(慈眼)’으로 고통을 조용히 응시하는 관음보살처럼,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고통 속의 사람은 큰 위안을 받습니다.
‘좋은 사람’보다 ‘솔직한 사람’으로자신의 일만으로도 버거운데 미움받을까 봐 두려워 동료의 부탁이나 내키지 않는 식사 초대를 웃으며 수락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주변에서는 당신을 ‘좋은 사람’이 아니라 귀찮은 일을 떠넘기기 쉬운 ‘이용하기 좋은 사람’으로 여기게 됩니다. 결국 한계를 넘어 자기 일까지 그르치고 자기혐오에 빠지기 쉽습니다. 해답은 ‘좋은 사람’ 연기를 멈추고 ‘솔직한 사람’이 될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지금은 할 일이 많아 어려워요. 내일이라면 도와줄 수 있어요”, “오늘은 피곤해서 쉬어야 할 것 같아. 다음에는 꼭 참석할게”라고 자신의 상황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전달하면, 자신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상대도 당신을 대등한 상대로 믿고 안심하며 다가올 수 있어 건강한 신뢰 관계가 깊어집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사람과 결혼하라결혼할 때는 내가 간병할 수 있는 사람보다 나를 간병해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현명하다고 합니다. 남을 돕는 역할은 노력하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내가 감추고 싶었던 부분까지 드러내며 간병을 받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나를 간병해줄 수 있는 사람이란 약하고 초라한 날것 그대로의 나 자신을 비웃지 않고 받아들여줄 사람을 뜻합니다. 이는 결혼뿐 아니라 동료나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먼저 사회적 갑옷을 벗고 약한 모습을 드러낼 용기를 내면, 상대도 ‘나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있어도 괜찮겠구나’라며 안심하고 마음을 열게 되어 진정한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3장.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꾸면 행복해진다
한마디 말이 관계를 바꾼다부탁할 때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만”이라고 위축된 태도로 사과부터 앞세우면 상대는 ‘얼마나 귀찮은 일일까?’ 경계하게 됩니다. 대신 “선생님처럼 경험과 지혜가 풍부하신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힘을 좀 보태주세요”라고 당신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뜻을 전하면 상대는 자신이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는 메시지에 흔쾌히 돕고 싶어집니다. 또한 막연히 얼버무리지 말고 구체적인 배경과 도와줘야 할 범위, 일정을 부드럽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상대도 구체적으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도움을 받은 뒤에는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라고 감사를 표현해 상대에게 보람과 기쁨을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