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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을 받아들일 때 삶은 더욱 특별해진다

청비쉬엔 지음 | 이든서재


평범함을 받아들일 때 삶은 더욱 특별해진다

청비쉬엔 지음

이든서재 / 2026년 9월 / 256쪽 / 18,800원





Part 1. 때로는 나도 숨어버리고 싶다



사실 넌 그토록 너 자신을 싫어하는 건 아니야


한 사람이 자신을 싫어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란 유년 시절, 과거의 실수들, 타인과의 비교, 살아오는 동안 받은 부정과 억압, 자신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열등감 등 너무 많은 원인이 우리 자신을 미워하게 만드는데, 이 마음이 깊어지면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들은 양보가 미덕이라는 듯이 다른 사람을 앞세운다. 입버릇처럼 “난 상관없어”, “아무거나 다 좋아”라고 말한다. 타인과의 마찰을 두려워하고, 갈등이 생길 때는 항상 도피를 선택하여 모든 것을 망치고는 “난 자격이 없어”라고 말한다. 사실 그들이 이렇게 표현하게 된 것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두려워하는 일이 많을수록 자기혐오감을 느끼기 쉬워져서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먼저 당신은 자신을 그토록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단지 상처받을까 두려워서 스스로 보호하기를 갈망할 뿐이다.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는 마음은 스스로 거는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며 이는 일종의 집념이 되어 자기혐오감을 증폭시킨다. 그런 부정적 경험들이 쌓여 자신을 미워하게 만들고, 열등한 존재로 전락시킨다면 우리는 그 경험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만약 과거의 부정적 경험들을 방치한다면 그 경험들은 당신을 계속 따라다니며 고통 속에 머무르게 할 것이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모든 불행이 바꿀 수 없는 과거에서 시작된 것이라 여기는 태도는 과거 이후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여, 삶이 여전히 ‘상처받은 아이’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픈 과거가 자기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만 한다. 자신에게 아픈 기억을 만든 사람을 원망해도 되지만, 자신에 대한 책임은 직접 감당해야 한다. 평생 자기 연민에 빠져 자신을 내버려둔다면, 과거가 자신의 과오가 아니었음을 증명할 수 없고 오히려 과오를 범한 사람의 명분을 지지하는 불행의 아이콘으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연인과 싸웠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마음에 상처를 입어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를 회피하게 된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싫어서 상대방을 떠난다. 더 이상 상대방에게 상처 주지 않고, 폐를 끼치지 않는 최선의 선택이라 여긴다. 그래서 당신은 문제에서 도망치기도, 의도적으로 관계를 망쳐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으로 야기된 나쁜 결과는 자신을 더 미워하게 만든다. 더 예민해지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자신을 가두게 할 뿐만 아니라 마음을 영원히 한 자리에만 머무르게 한다.

사람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용기를 내어 용감하게 공포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생각하는 바를 능동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단기간에 감정을 잘 처리하는 방법을 익히기는 어려울 테지만 다른 사람과의 더 많은 경험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경험을 쌓다 보면 다음 사랑이 찾아오기 전에 당신은 더 성숙해진 태도로 감정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느끼는 진정한 감정만이 우리 마음의 허전한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 과잉 보상을 바라는 심리와 허구에 가까운 완전무결을 추구하는 마음은 당신이 정한 목표에 가까워지는 듯해도 가슴 한구석에 더 막막하고 공허한 느낌만 남을 뿐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목표를 성취해도 만족감을 느끼기 어렵다. 마음이 자라기 시작하면 자기혐오감이 줄어들어 마음속의 상처받은 아이와 작별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시대 조류에 휩쓸려 표류하며 수동적인 태도로 산다.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괴로워하듯이 어떤 느낌을 받으면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되고, 이 행동은 습관을 만든다. 쉽지 않은 이 일생 동안 마음속에 ‘응어리진 감정’이 생기게 된다. 마음속 응어리가 많아질수록 감정은 소모되기 쉽고 많은 일을 감정적으로 대하게 되면서, 결국 정서적 혼란으로 인한 자아 상실로 자기혐오감이 생성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성장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이를 분석할 때처럼 자신을 냉정하게 분석하다 보면 왜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그 합리적 이유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 일과 관련되었던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배제할 수 있게 된다. 나는 한때 자기혐오감에 빠졌던 사람으로서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한없이 작은 세상 속에 사는 우리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의 한 남학생에게 수차례에 걸쳐 연속으로 면접을 치르게 하는 심리학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면접을 기다리는 대기 시간 동안 실험자는 몇 명의 여학생을 시켜 피실험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하였다. 여학생들이 그가 하는 말마다 관심을 보이도록 상황을 설정했다. 몇 차례의 면접을 치른 후 남학생은 돌연 명랑하고 외향적으로 변하여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발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이 남학생에게 모든 것은 단지 실험이었고 그 여학생들은 그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남학생은 예전처럼 내성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 세상은 크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권은 작다. 우리는 그 작디작은 세상을 온 세상이라 여긴다. 몇몇 사람, 사건, 경험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울타리 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결정한다. 정신적으로 건강했던 사람들도 마이너스 에너지가 가득한 집단에 머무르게 되면 우울한 감정에 잠식되다가 정신 붕괴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절망감이 엄습해 올 때, 이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잠깐 몸담은 작은 잿빛 세상일뿐 온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나쁜 습관이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일을 자기중심적으로 합리화하려 드는 버릇이다. 열등감에 젖어 남과 경쟁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는 고상하고 품위 있어. 그러니 품격 높은 내가 양보하지.” “나는 모든 것에 초연해. 세속적인 가치를 좇아 남들과 다투고 싶지 않아.” 이렇게 합리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자신의 나약함을 잊어버릴 수 있게 되어 처참한 결과를 태연자약한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부모에게 홀대받는 상황에 처해도 자신을 꾸짖는다. “부모님이 이렇게 대하는 것은 다 내 잘못이야. 난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마음속으로 그들의 부모님이 좋은 사람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업무를 할 때 다른 사람과 의견이 다를 경우에도 그들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이내 자신에게 있는 어떤 문제 때문에 이런 결과가 촉발됐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그 문제를 합리화할 수 있는 구실을 찾으려 한다. 이런 거짓에 기대어 간신히 삶을 버텨가고 있으니 그들의 삶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삶이 끝내 무너지는 순간에 이르더라도 진실을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방어 기제(잠재적 불안의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적인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조절, 왜곡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는 심리학적 메커니즘) 중 하나인 자기 합리화는 열악한 환경에서 더 오래, 멀리 갈 수 있도록 하는 끈기와 강한 적응력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익숙해져 버린 고통 속에 가두어 두고 ‘현상 유지’라는 네 글자에 결박시켜 현 상황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다.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단독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그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자 지독한 고통과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싶은 사랑을 만나게 되었고, 강렬한 즐거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 사랑을 잃고 다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지만, 그는 더 숭고한 이상을 찾아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매진함으로써 내면의 기쁨을 되찾았다. 사람은 대체로 정해진 운명에 좌우되어 정해진 자신의 작은 울타리 안에서 살아간다. 강렬한 고통만이 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게 하며,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오래된 울타리를 벗어나 더 넓고 진실한 세상을 볼 수 있다. 이 세상은 우리 주변의 몇 사람, 몇 가지 일, 몇 가지 경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더 많은 생활 방식과 더 많은 일을 경험할 수 있다. 절망으로 가득 차 있는 울타리 너머 세상에는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자리가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Part 2. 머릿속의 불행 회로를 멈춰야 해



사회불안 장애는 미지의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내 생각에 많은 사람이 사회적 관계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미지수 때문이다. 두려움의 근원은 알 수 없는 ‘미지’에서 비롯된다. 사회불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만나는 순간을 위험으로 가득 찬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서 언제나 수동적 자세를 취한다. 그들에게 있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은 모험을 의미하며, 상상할 수 없는 것에 의한 파멸을 의미한다. 이런 연유로 사람을 사귀는 과정에서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상대방의 말 한마디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상대방의 의도를 과대해석하고, 상상력을 동원해 상대방을 대신해 나 자신을 얕잡아 본다. ‘그 사람은 왜 말이 없지? 분명 나를 싫어하는 거야.’ 사회불안 장애가 있으면 낮은 자존감을 기준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을 싫어하리라 추측하고, 그것을 확인하면 자신의 느낌이 정확하다고 판단하며 더욱 수동적으로 변한다.

나는 과거에 사회불안 장애를 앓았기 때문에 혼자 있는 것이 내게 가장 알맞은 생활방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한 행사에서 성공적으로 발표한 일을 기점으로 나는 용감해졌다. 나는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들을 몇 개의 부류로 분류하고,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하며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어떤 태도로 대할까?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까? 나의 어떤 행동이 그들의 생각에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고 통제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더 이상 내가 두려워해야 일은 없었다. 문득 여태껏 두려워해온 것은 미지의 어둠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자신의 느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지의 사물을 직면할 때 느끼는 두려움은 우리 몸이 보내는 알람으로 우리를 보호하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매번 두려움으로 움츠러든다면 미지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영원히 알지 못한다.

우리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상황에 처했을 때 두려워하는 자신을 딛고 과감히 도전하도록 단련해야 한다. 나는 언제든 낯선 사람이나 사물을 마주하게 되면 불안을 느끼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불안과 공포가 지나고 나면 정말 무서운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자신의 정서를 용인하고 나서 그 감정을 똑바로 바라보기만 한다면, 미지의 것들은 점차 진면모를 보여줄 것이다.

우리가 두려운 감정에 휩싸이면 우리 자신에게만 온 정신을 집중하게 되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저하된다. 타인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잘못된 점은 모조리 찾아내지만, 상대방에 대해서는 그 사람을 관찰해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상상을 기반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타인의 존재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 미지의 세상과 다름없다. 그리고 타인 역시 당신이 상상의 세계에서 설정해 놓은 기준의 잣대를 적용해 당신을 바라보고 평가할 것이라 생각한다. 상상 속에서 타인은 당신을 힐난하고 싫어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해서 그들의 생각과 성격, 행동 습관을 알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그 사람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옷가게에서 따라다니며 응대하는 직원이 부담스럽고, 구매하지 않으면 신경질을 낼까 봐 걱정된다면, 당신이 옷가게의 점원이 되어 다른 고객과 여러 상황에 부딪혀보고 나면 모든 게 간단해진다. 사람을 사귈 때는 상대방의 시각으로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게 가능해지면 누구를 마주하든 그와 교류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을 찾을 수 있다.

중증의 ‘사회불안 장애’ 환자였던 나는 ‘경청하기’를 시작하면서 변할 수 있었다. 1년여의 시간 동안 나는 수많은 사람의 사연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을 통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게 되었고, 나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서 나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이제는 상대방의 느낌을 알 수 있고, 상대방과 관계를 맺는 방법도 알고 있고, 이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더 깊은 관계를 맺으려 하면 긴장을 느낀다. 많은 사람이 타인을 경계하는 이유는 과거의 실패한 관계에서 부정적인 체험을 했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그런 자신을 다른 사람이 보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당연히 자기를 미워할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다고 상상하면 상대방이 정말로 자신을 싫어하게 될 때까지 수동적으로 대한 후 자조 섞인 말을 내뱉는다. “역시 내 판단은 정확해.”

우리와 타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 자신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서 생겨난다. 나는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익을 위한 활동에 참가해 보기를 권한다. 감사와 칭찬의 말을 자주 듣다 보면 처음에는 민망하지만 점차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임을 깨닫게 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호의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고, 또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도 있다. 용감하게 문을 박차고 나서라. 그러면 당신이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얼마나 진실하고 선량한지 알게 될 것이다. 또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자격도, 타인에게 사랑받을 가치도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가혹하게 대했던 사람이 당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감정, 자책


자책은 일종의 열등감 표출이다. 유년기에 부모의 지지와 격려,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자라지 못하면 심리적 안정감이 부족하고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안정감의 결핍과 자신에 대한 의심이 소심하고 나약하게 만든다. 이런 성장 환경을 가진 사람은 미움받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이런 사람들의 눈에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조건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조건들을 만족하도록 자신에게 요구한다. 부모가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거나 부부 사이의 문제를 아이에게 전가하는 언행을 한다면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고,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느끼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판단력과 방어력이 부족해 부모를 절대적으로 믿는다. 그래서 부모가 불공평한 처사를 하면 아이는 ‘내가 부족해서 이런 대접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죄책감이 들면 부모의 입장에서 자신을 비난한다.

자책에 익숙한 사람은 자신이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을 공격한다. 오랜 시간 동안 자책에 시달리게 되면 초조해지고 괴로움에 허덕이게 된다. 우리의 행동 능력과 사회성이 훼손을 입어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책의 악순환 고리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우리는 먼저 자신을 과도하게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과도한 자책에 익숙한 사람들은 항상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애를 쓴다. 완벽해지려고 노력하고,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의 요구를 만족시키려 하며, 타인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이 고통을 느낄 때는 자신을 굳게 걸어 잠그고 혼자서 감내한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숨기기에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들이 자책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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