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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으로 가는 11시 45분

조은우 지음 | 나비의활주로


성공으로 가는 11시 45분

조은우 지음

나비의활주로 / 2026년 4월 / 248쪽 / 18,800원





프롤로그 _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도전이다


저는 7번의 창업을 했습니다. 두 번의 고깃집, 죽 전문점, 이유식 업체를 운영했고, 빵과 호떡에 이어 치즈스틱 사업을 했습니다. 때로는 나름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는 모두 실패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8번째 냉동 김밥 사업을 통해 제 인생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큰 성공을 이뤘습니다. 단지 이제까지의 사업 중에서 매출이 가장 높다는 점 때문에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저 혼자서 걸어갔고, 마침내 세계의 인정을 받는 성과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냉동 김밥을 시작할 때 주변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그냥 즉석 김밥도 많은데 뭐 하러 얼린 김밥을 먹겠냐고 했고, 해외에서는 김이라는 음식 자체를 싫어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김밥을 시골에서 도시로, 그리고 도시를 넘어 더 넓은 해외 시장까지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 최초의 ‘다이어트 비건 냉동 김밥’을 개발하게 되었고, 현재는 전 세계 20여 개국에 수출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전 세계인에게 맛보게 하겠다’는 저의 가치와 비전 역시 현실로 만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7번의 실패 후 도전을 포기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성과였을 것입니다.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끝없이 새롭고 다른 방법을 찾아 또다시 도전했던 결과였습니다.

숱한 고생 끝에 이제 겨우 ‘11시45분 냉동 김밥’으로 세상에 저만의 기록을 썼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지금도 ‘고생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고생을 고생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겪어야 할 일이고, 그것을 능히 감당했을 때 저에게 주어질 또 하나의 가슴 벅찬 선물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PART 1 성장은 고통이 축적된 시간에서 피어난다

_ 결핍과 갈망이 만들어낸 청년의 질주, 혹은 방랑



실패해도 정직하게, 손해 봐도 정정당당하게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일정한 결핍이 생깁니다. 나에게는 크게 두 가지 결핍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사랑에 대한 갈구와, 아버지의 무능력으로 인해 17살부터 시작된 돈에 대한 강력한 욕망이었습니다.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은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의 기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어머니는 학교에 다녀오면 집에 아무도 없을 테니 작은아버지 집으로 가라는 말을 남기고, 네 살 된 동생만 데리고 집을 떠났습니다. 훗날 알고 보니 아버지의 무능함과 가정불화로 인해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몇 개월 동안 나는 끊임없이 울었고, 결국 아버지가 나를 어머니에게 데려다주면서 다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버림받는다는 느낌과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쓸쓸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어머니와 살게 된 이후, 나는 다시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칭찬과 사랑을 갈구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자식이 공부를 잘할 때 칭찬을 해주셨는데, 문제는 내가 공부를 너무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반에서 꼴찌 수준이었습니다. 성적표를 본 어머니의 실망한 기색에 다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 나는 결국 성적표 위조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사랑받는 느낌에 취해 3년 내내 거짓으로 나 자신과 부모님을 속였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 상담 중 담임선생님에 의해 모든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줄 알았던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았고, 결국 나는 야간고등학교 전자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부정직한 일에는 반드시 가혹한 대가가 따르며, 누군가를 속이는 일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3년간 어머니를 속이며 느꼈던 그 불안감과 죄책감을 기억하기에 훗날 사업을 할 때 차라리 손해를 보더라도 정정당당하게 사는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는 이유


돈에 대한 결핍 역시 내 삶을 지배했습니다. 어머니의 가출과 가정불화의 근원이 돈이었기에, 17살 때부터 나는 무조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며 낮에는 공장 납땜, 주유소, 자장면 배달, 막노동 등 한 푼이라도 더 주는 곳을 찾아 끊임없이 옮겨 다녔습니다. 20살 무렵에는 룸살롱 웨이터로 일하며 한 달에 200만 원이 넘는 돈을 벌었습니다. IMF 외환위기 시절이었음에도 일반 직장인보다 많은 수익을 올린다는 사실에 짜릿함과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27살 형의 모습을 보며 문득 내 미래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내가 계속 이 일을 한다면 7년 뒤에도 저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20살이었던 저는 그 형을 보면서 저의 미래를 본 것입니다. 돈만 좇으며 방랑하듯 살아온 지난 시간 동안 나 자신이 전혀 진화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 당장의 즐거움과 돈만 선택한 대가였습니다.

룸살롱 웨이터 형의 모습에서 내 미래를 발견한 일은 인생의 큰 방향 전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부를 멀리했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디자인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밤에는 웨이터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학원에 발을 들였을 때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며 비로소 내가 다시 건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평화와 안정을 느꼈습니다.

나의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뿐


디자인 학원을 다녔던 6개월의 기간은 공부가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원 수료만으로는 진로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 끝에 대학에 진학해 디자인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실기 시험에 합격해 캠퍼스를 밟았을 때의 기분은 희망 그 자체였습니다. 룸살롱 웨이터를 하던 제가 대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해, 불량해 보이던 옷들을 버리고 단정한 브랜드의 옷을 사 입으며 나 자신을 바꿔나갔습니다. 그렇게 1년간의 대학 생활을 거친 후 군대에 가게 됐습니다.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성실함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제대 후에는 김포의 실리콘 제조회사를 거쳐 소방 기기 회사에 입사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국 퇴사하고 말았습니다. 26살이 되었을 때 저는 그동안 저축한 돈과 어머니께 빌린 돈으로 고깃집을 인수해 첫 사업에 도전했습니다. 주변에서 성공했다는 형들이 대부분 식당을 했기에 저도 외식업이 성공의 지름길이라 믿었습니다. 처음 한 달은 제 인맥과 친구들 덕분에 장사가 잘되는 듯했지만, 두 달째부터 손님이 급감해 결국 3개월 만에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뼈아픈 실패였지만, 이를 통해 단순히 성실함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게만 연다고 손님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기획과 참신한 아이디어, 그리고 마케팅의 중요성을 어렴풋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첫 음식 사업 실패 후 다시 취업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다시 입사할 때는 일이 힘들어도 월급을 많이 주는 곳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다음 사업 자금을 빠르게 마련하고 어머니에게 갚아야 할 돈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주물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틈틈이 미래의 외식 사업을 준비했습니다. 주말마다 서울, 대구, 대전, 부산 등 전국의 유명 음식점을 찾아 벤치마킹을 하고 마케팅과 창업 서적을 읽으며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대기업 원청회사 직원의 무례하고 부당한 갑질에 분노가 폭발해 “당신 자녀가 이런 취급을 받으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쏘아붙이고는 그 길로 퇴사를 선언하고 공장을 나왔습니다. 나는 그날의 갑질을 분노의 힘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갑질당하는 인생을 끝내기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의지는 새로운 창업을 준비하는 강력한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PART 2 넘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 실패다

_ 29살에 거둔 최초의 성공과 연이은 실패, 그리고 배신의 아픔



과거의 경험에 발목 잡히지 않고 미래로 향하는 법


그 사건이 있었던 날, 나는 홀로 국밥집에 갔습니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국밥 연기가 식욕을 당길 법도 했지만, 나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당했을까, 내가 세상에 대해 아는 것도 없이 바보처럼 살아와서 이렇게 당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똑똑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그때 옆 테이블 신문에 실린 책 광고가 운명처럼 눈에 들어왔습니다. 프랑스 유학 후 단칸방에서 경매로 성공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쇼핑보다 경매투자가 좋다』라는 책이었습니다.

다음 날 바로 책을 사서 읽으며 식당 말고도 큰돈을 벌 방법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도 성공해서 이런 책을 써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그때부터 책은 나의 인생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경제, 인문,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인문 고전과 역사, 철학을 통해 생각이 진화하면서, 독서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을 넘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나의 변화를 위한 가장 최소한의 노력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08년 나는 다시 창업 전선에 나섰습니다. 과거 고깃집 운영 실패가 경험 부족 때문이었음을 알았기에, 무작정 시작하기보다 현장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벌집 삼겹살 식당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고기 수급부터 서빙 동선까지 수개월 동안 치밀하게 관찰하며 미래를 설계했습니다.

벤치마킹을 위해 찾은 서울 중계동의 한 화로집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어두운 조명에 재즈가 흐르고 와인을 파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고기 맛만 좋으면 그만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고깃집을 이렇게 멋지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나는 진주에서 이런 스타일로 승부를 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인테리어부터 로고, 음악까지 세심하게 준비했습니다. 자금이 부족해 주방 집기와 식탁은 외상으로 가져오며 욕을 먹기도 했지만, 내 운명이 걸린 일이었기에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나만의 브랜드 화씨화로가 탄생했습니다.

지방 손님들은 낯선 분위기에 처음에는 선뜻 들어오지 않았지만,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손님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쳤습니다. 29살의 나이에 한 달 순수익 2천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만 영업하고도 주변의 그 어떤 선배들보다 압도적인 수입을 올렸습니다. 이는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10년의 후회와 첫 실패, 억울한 직장 생활을 견디며 이뤄낸 결실이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못 배운 탓을 하지 않게 되었고, 공부하고 도전하면 해낼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과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욕심은 크게 가지지만, 욕심을 부리지는 말자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심이 있고, 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살아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일단 욕심이 있어야 도전에 나서게 되고, 그래야 성취라는 결과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욕심을 크게 가지는 것과 욕심을 부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크게 가지는 것은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실행력을 강하게 만들지만, 욕심을 부리는 것은 준비나 책임감 없이 결과만 과도하게 원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태도는 타인의 몫을 침범하거나 속이는 행위로 이어지고, 결국 인간관계와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내가 이런 철학을 갖게 된 것은 사업을 하며 만난 사람들 중 일부가 욕심을 부려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화씨화로 창업 당시 빚을 갚기 위해 식자재를 공급하던 형을 동업자로 참여시켰습니다. 그 형 덕분에 안정적으로 고기를 공급받으며 식당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단골손님인 변리사를 통해 내 식당 상표를 등록하려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미 화씨화로라는 상표가 등록되어 있었는데, 등록자가 바로 그 형이었던 것입니다. 따져 묻자 남이 뺏어갈까 봐 대신 등록했다는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이는 명백히 기회를 봐서 내 것을 뺏으려 했던 의도였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나는 돈 욕심을 부리면 모든 것이 망가진다는 철학을 세웠습니다. 직원의 월급을 아까워하거나 식재료비를 줄이려 들면 결국 신뢰를 잃고 망하게 됩니다. 돈을 제대로 벌기 위해서는 오히려 돈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사업의 진실입니다.

닫힌 문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새롭게 열릴 문에 도전하라


사업을 하다 보면,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이 잘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할지, 언제 소비자의 트렌드가 변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좀 더 다양한 사업의 영역으로 나가보고 싶다는 성장에 대한 욕구도 생겼고, 또한 지금의 식당 경험을 되살려 좀 더 큰 외식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화씨화로를 운영하던 중에 또 다른 여러 사업에 도전했습니다.

부동산 중개에 이어 꽃 배달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모두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고 사업 경험을 쌓는 수준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업은 캠핑장이나 펜션의 고기 배달 사업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캠핑장이나 펜션에 머물게 되면 거의 대부분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곤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다소 귀찮은 건 사실입니다. 숯을 구해 오고, 불을 피워야 하고, 고기도 사 와서 구워야 합니다. 채소, 마늘, 된장 등 준비해야 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바로 이런 일을 대행해주는 일입니다. 특히나 화씨화로는 이런 준비를 해줄 수 있는 최적의 베이스 기지입니다. 고기가 있고, 숯도 있고, 화로까지 있고, 각종 양념까지 있으니, 아르바이트 학생 한두 명과 배달을 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펜션과 캠핑장 사장님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손님 중 고기와 야채가 필요한 고객이 있으면 전화를 달라고 했고, 사전에 예약한 고객이 있다면 역시 고기 주문 예약도 함께 받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거기다가 펜션 사장님을 대신해 숯불도 피워 주고 화로까지 제공해 손님들이 다 같이 편안하게 고기를 먹을 수 있게 서비스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대가로 매출의 20%를 수수료로 드리겠다고 했으니, 사장님들에게도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닌 듯했습니다.

화씨화로는 그대로 운영을 하면서 의욕적으로 신사업을 준비하던 때가 바로 2010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재앙이 시작됐습니다. 우리나라에 ‘구제역’이 발생해 그 피해가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살처분된 돼지 수가 300만 마리를 넘어서면서, 축산업 전반과 연관 산업이 입은 피해 규모도 3조 원에 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외식 수요도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화씨화로 역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고, 출장 고기 뷔페 사업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 시기,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주력으로 하던 많은 식당들이 하나둘 폐업하게 됐습니다. 저는 폐업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다음 사업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더욱 서둘렀습니다.

당시 저는 고령화 사회를 대비해 노인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죽 사업을 구상했고, 산청에서 먹어본 약초 샤부샤부에서 영감을 얻어 약초 국물을 낸 죽 브랜드 반기다를 만들었습니다. 밥 반(飯), 기운 기(氣), 차 다(茶)를 합친 이름처럼 건강한 죽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반기다는 내가 진주라는 지역적 한계와 고기라는 아이템을 벗어나 서울로 진출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 과정은 나를 단순한 자영업자에서 본격적인 사업가로 성장시키는 도약대가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가장 큰 위험은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아서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너무 낮게 잡아서 달성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기다를 향한 도전은 나에게 성공 이상의 큰 교훈과 경험을 남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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