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시작
아가와 사와코 지음 | 밀리언서재
말의 시작
아가와 사와코 지음
밀리언서재 / 2026년 4월 / 232쪽 / 18,800원
Part 1 말은 마음속 서랍을 여는 것이다
해야 할 말은 상대방의 이야기 속에 있다미디어와 관련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선배가 인터뷰를 할 때 질문을 하나만 준비하라고 알려줬다. 새내기 인터뷰어에게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다. 질문 하나만 준비하고 인터뷰에 임하면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돌아온 시점에서 대담이 끝나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대담은 끝나지 않는다. 질문하는 사람은 두 번째 질문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할까? 그렇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상대방의 대답에 귀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떤 질문이 솟아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질문을 이런 식으로 해봤다고 하자. “사장으로 취임하신 지 2년이 지났는데 지금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십니까?” 그러면 대답이 돌아온다. “벌써 2년이나 지났다니 저도 놀랍습니다. 애초에 제가 사장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한번은 좌천당했을 정도로 열등한 사원이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면 놀라지 않겠는가? “네? 좌천당하셨다고요? 그때가 몇 살쯤이었나요? 무슨 이유로 좌천당하셨죠?” 얼마든지 질문거리가 솟아날 것이다. 그런데 미리 항목별로 질문을 열 개씩 준비해놓았다고 하면 어떨까? 첫 번째 질문에 사장이 대답하는 내내 두 번째 질문을 언제 꺼내야 할지에만 정신이 팔렸을 것이다. 즉, 상대방의 대답을 잘 듣지 않게 된다. 그러나 질문을 하나만 준비해놓았다면 상대의 대답에 귀 기울이고 있다가 거기에서 들은 말로 대화를 넓혀가려고 할 것이다.
질문은 상대의 대답에서 찾는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면 말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고, 생각지도 못한 재미있는 일화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 화젯거리를 찾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찾느라 애쓸 필요 없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 얼마든지 널려 있다. 그것을 잘 주워 담으면 입과 마음이 조금씩 열릴 것이다.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스피치도 마찬가지다. 스피치에서 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자신보다 먼저 스피치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속에서 찾아보자. 만약 자신이 가장 먼저 스피치해야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그럴 때는 직접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또는 스피치가 시작되기 전에 사회자의 말이나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 등을 관찰하다 보면 무엇인가 참고할 만한 것이 눈에 띌 것이다.
대화 톤을 부드럽게 만드는 장치오래전 아버지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였다. 현지에 거주하던 분이 마중을 나왔고 공항에서부터 호텔 체크인에 이르기까지 도와주셨다. 저녁때는 그분이 차를 운전해 레스토랑으로 안내해주셨다. 식당으로 가는 도중 아버지는 일찍이 방문한 적이 있는 그 거리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하며 혼잣말을 꺼냈다. “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맛있는 스파게티를 파는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그러면 그분은 지체 없이 아버지의 말에 이렇게 동조했다. “맞아요. 스파게티가 맛있는 식당이 있었는데, 아직도 있을 겁니다. 이름은… 뭐더라, 나중에 찾아놓겠습니다.” 또 잠시 가다가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오호, 이 근방은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나?”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꽤 변했지요.” 안내를 맡은 그분은 아버지의 기분을 추측해서 공감해주셨다. 그 덕택에 아버지는 흡족해했고 즐거운 기분으로 그 거리를 지나갔다.
딸인 나는 반성하며 그분을 흉내 내보기로 했다. 아버지가 무슨 말만 하면 내가 ‘네?’, ‘그쪽이에요?’, ‘지금 당장요?’라는 식으로 일일이 반론하거나 의아한 표정을 짓는 탓에 아버지가 짜증을 내던 참이었다. 일단 전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도 겸손하고 밝게! “얘야, 오늘 저녁은 중화요리를 먹으러 갈까?” 그러자 나는 즉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해요. 중화요리가 좋겠네요.” “오늘은 날씨가 안 좋구나.” “그러게요. 날씨가 별로네요.” “○○ 씨에게 줄 선물은 어떻게 할까? 그림엽서를 고를 수도 없고.” “그러게 말이에요.”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긍정적으로 응답하자 나중에는 “너, 지금 놀리는 거냐? 적당히 좀 해”라며 언짢아하셨다. 부녀 관계라면 너무 가까운 사이라서 실패했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끼리 대화할 때 ‘동의’와 ‘공감’을 해주면 대화의 동기부여가 단번에 올라간다.
부딪히지 않고 주도권을 가져오는 대화법: 사회를 맡은 TV 프로그램 <비트 다케시의 TV 태클>의 출연자는 기본적으로 수다를 떨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어서 한꺼번에 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자인 내가 수습하지 못할 경우에는 게스트들이 자신의 발언 시간을 만들려고 한다. 그중 자신의 차례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 말하는 사람에게 큰 목소리로 찬성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었다. “○○ 씨, 그 말씀이 맞습니다. 지당한 의견입니다!” 그때까지 발언권을 독점하던 사람은 말을 멈추고 ‘내 의견에 찬성해주는 건가?’ 하며 흐뭇해했다. 그러자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방금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다만 저는 조금 다른 의견이 있는데요….” 그때부터 단숨에 발언의 바통이 넘어간다.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자신이 말할 기회를 잡아채는 방법이다.
대화를 끊어야 할 때와 이어야 할 때누군가 내 말을 끊으면 기분 좋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비트 다케시의 TV 태클>을 녹화하던 중 고이치 씨가 지나치게 혼자만 계속 떠들어대니 다른 게스트들이 끼어들지 못했다. 그럴 때 PD가 진행을 맡은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다른 게스트한테 발언을 넘겨!” 계속 말하는 고이치 씨를 멈추기는 어려웠지만 PD의 지시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말을 끊을 틈을 노리면서 나는 고이치 씨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말을 단숨에 이어나가도 때때로 숨을 돌린다는 점을 깨달았다. 고이치 씨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찰나에 나는 용기를 내서 끼어들었다. “미야케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러자 미야케 씨가 말을 이어받았다. “글쎄요. 제 생각엔 말이죠.”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넘길 수 있었다. 이후로는 혼자 계속 말한다 싶으면 숨 돌리는 타이밍을 엿보고 끼어들었다. 한 사람이 발언권을 독점하지 않도록, 그리고 다른 게스트들이 침묵한 상태로 끝나지 않도록 진행자가 적절하게 끊어주는 것이 좋다.
끊어진 대화를 이어주는 한마디: TV 프로그램의 토론 자리뿐만이 아니다. 모처럼 내가 말하는데 어떤 사정이 생겨서 누군가 내 말을 끊는 상황이 종종 있다. 예컨대 파티에서 내가 특정 주제에 관해 열변을 토하는 중이라고 하자. 그때 갑자기 누군가 다가와 내 말을 듣고 있던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 씨, 오랜만입니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의 관심이 새로운 인물에게 옮겨 가는 바람에 나는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어색해진다. 또는 레스토랑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직원이 음식을 갖고 온다. 요리에 대한 설명이 한바탕 끝나면 모두 먹는 데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럼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그만두는 게 좋을까? 요리 설명이 끝나자마자 “그래서 말이야”라고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억지로 화제를 되돌려야 할 정도로 중요한 내용인가 싶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 막 재미있어지려는 참이었는데’ 하고 찝찝한 기분이 들 것이다.
이야기를 제대로 끝맺지 못해서 찝찝한 기분이 들더라도 그때의 상황에 맞춰 판단한다. 이미 그 자리의 분위기가 내 이야기를 원하지 않는 듯하면 단념한다. 하지만 말이 끊긴 탓에 삐친 것은 아닌지 주위 사람들이 억측하는 것도 불편하다. 뻔뻔하게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삐친 기분을 감추고 깨끗이 접을 것인가. 그럴 때 “그래서?”라고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꺼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사람이다. 나의 시시한 잡담을 계속 듣고 싶어 하다니 말이다. 그래서 나도 반대의 입장이 되었을 때 이야기를 강제로 멈추게 된 사람을 발견하면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마저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아까 하던 얘기 계속해봐.” 단 한마디로 그 후의 대화가 얼마나 사랑과 평화로 넘치게 될지 상상해보자.
Part 2 스스럼없지만 선을 넘지 않는 말
관심을 부르는 말
말의 우선권을 상대에게 넘긴다: 영화배우 이시다 준이치 씨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당시 그는 인기가 어마어마해서 남자들도 그를 흉내 내기 바빴다.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하면 인기남이 될 수 있는지 남자들에게 전해주실 만한 비결이 있나요?” 그러자 이시다 씨는 대답했다. “자기 이야기는 하지 말고 먼저 여성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랄까요?” 나는 그 대답에 감탄했다. 여성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남성들은 빨리 자신을 알리고 싶어서 자신의 성과와 지금 어떤 문제로 싸우고 있는지 필사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그런 이야기는 대부분 자랑이기 때문이다.
이시다 씨는 자기 이야기는 제쳐놓고 여성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요즘 어떤 것에 관심이 있나요?”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패션, 화장은 무엇을 참고하나요?” “어떤 음악을 좋아합니까?” 뭐든 좋으니 여성이 대답하기 쉬운 화제를 찾아서 이야기를 할 기회를 만들어준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심문하듯이 다그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친절하게 관심을 보이며 자연스럽게 말한다. “저는 패션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하지만 어떻게 하면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말이 여성의 입에서 나오면 기회다. “그렇군요. 실은 제 친구 중에 스타일리스트가 있어요. 그녀는 지금 여배우 ○○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지요.” “정말요?” 여성은 남자의 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궁금한 것이 많은 여성은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다. 대화의 분위기가 무르익다 보면 남자가 자기 이야기를 할 타이밍이 온다. 여성으로부터 다시 만나자는 연락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인기 있는 사람은 자랑을 늘어놓지 않고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단, 남의 말을 워낙 잘 들어주고 상대방을 치켜세우는 데 지나치게 능숙한 사람은 자칫 꿍꿍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거리감은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 거리감은 대화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왠지 편하다’고 생각해서 단숨에 거리를 좁혀봤는데 오히려 대화가 어색해진 경우도 있고, 처음 만났을 때 의기투합해서 두 번째 만남에서는 친한 사이처럼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가 실패한 적도 있다. 어떤 대담에서 만난 여성과 열띠게 이야기하던 도중 같은 친구를 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에 셋이 밥을 먹자고 약속했고, 얼마 후 식당에서 만났다. 친구와의 즐거운 술자리. 나는 여느 때처럼 기쁜 나머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며 모임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담에서 만난 여성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녀는 말이 별로 없었다. 그런 분위기가 흐르는 상태로 모임이 끝났다. 아마도 추측이지만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대담 자리에서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온화하게 질문을 던지더니 사적인 자리에서는 자기 위주로 떠들어대네. 기세에 눌리니 뒤로 물러나야겠다.’ 그렇게 나에 대한 인상이 달라진 충격으로 흥이 오르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한 번 만나고 친해졌다고 착각해서 두 번째 만났을 때 급격하게 거리를 좁히면 상대는 그 2배로 거리를 둘 수 있다.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히고 싶더라도 그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말투만큼은 공손하게 쓰도록 유의하자. 아무리 친근하게 다가와도 공손하게 말하면 부담감이 덜하다. 하물며 그렇게 공손한 말과 태도로 다가오는 사람이 자기보다 나이와 지위가 높을 경우에는 황송한 마음까지 들 것이다. 나를 이토록 소중하게 여기는구나 하고 자신의 마음도 다잡을 것이다.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는 자리오래전 <정보 데스크 투데이>라는 심야 TV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적이 있다. 생방송이 끝난 후 피드백을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출연자와 스태프가 대기실에 모여 개선해야 할 점 등에 대해 잡담을 나누는 자리였다. 주로 떠드는 사람은 캐스터 아키모토 씨와 메인 PD, 진행자 정도였다. 나머지 디렉터들과 말단 직원은 대화에 끼어들 용기도 기력도 없이 가만히 앉아 끝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가장 말이 없는 사람에게 말 걸기: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공동 진행자였던 잇케이 씨가 대기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신입 조연출, 즉 프로그램 안에서 가장 아랫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 이름이 뭐였더라?” 느닷없이 질문을 받은 신입은 이름을 말했다. “그래? 오늘 프로그램 어땠어?” 신입은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선배들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감상을 말할 수 없어서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잇케이 씨가 물었다. “자네, 얼굴색이 안 좋은데? 도시락 먹었어? 뭐야, 아직 안 먹은 거야?” 신입 조연출은 송구스러워서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괜찮으니까 여기서 먹어. 뭣하면 두 개 들고 퇴근해!” 잇케이 씨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스태프가 참견했다. “이 녀석 점심 도시락은 두 개나 먹었어요.” 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사람들이 떠들기 시작했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유롭게 말을 주고받는 분위기가 되었다.
나중에 이 현상에 관하여 잇케이 씨에게 물어봤더니 잇케이 씨가 알려주었다. “대체로 상하 관계가 뒤섞인 자리에서 말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해 대화가 일직선으로 흐르고 말지. 그럴 때는 그 모임 안에서 가장 젊거나 눈에 띄지 않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거야.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중간층이 움직이기 시작해.” 마치 화학반응과도 같은 이 방법을 그 후 어떤 격식 있는 자리에서도 떠올리며 최대한 실천하려고 한다. 물론 효과 만점인 것은 확실하다.
접속어가 말을 살린다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대화의 첫머리에 어떤 접속어를 붙이는가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참고로 나는 인터뷰 중에 ‘그런데’를 서두에 붙여서 대화를 진행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그런데’는 원래 화제를 앞의 내용과 관련시키면서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때 사용하는 접속사다. 즉 내가 말했거나 또는 상대에게 들은 이야기의 내용과 반대되는 말을 하고 싶을 때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반대되는 말을 하려고 ‘그런데’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상대방이 말하는 포인트에서 화제를 살짝 바꾸려고 할 때 ‘그런데’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를 지나치게 사용해서 혼난 적은 없지만, 사실 똑같은 접속사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그리 좋은 습관이 아니다.
대화의 맥을 끊는 접속어: 대화를 시작할 때 ‘그것보다’, ‘그게 아니라’, ‘아니’ 등의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방의 말을 부정하려는 의도 없이 ‘내 의견을 하나 추가하고 싶다’는 정도로 그런 접속어를 내뱉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것보다’라는 말이 나오면 내 발언과 상반되는 말을 하겠구나 싶어 긴장하게 된다. 이런 경우 결국 자신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기분이 상할 수 있다. ‘그러니까’라는 접속사를 버릇처럼 쓰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말하고 나서 ‘그러니까’라는 말이 이어지면 ‘아까도 말했던가?’ 하고 뜨끔해진다. 그러나 이 말을 한 사람도 질책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결국은’, ‘즉’과 같은 의미로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불쾌할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사용하는 접속사가 있지 않은지 살펴보고 부적절하다면 고쳐나가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