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히토리의 어떻게 살 것인가
사이토 히토리 지음 | 현대지성
사이토 히토리의 어떻게 살 것인가
사이토 히토리 지음
현대지성 / 2026년 1월 / 232쪽 / 13,000원
1장 자존: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반드시 있다
당신은 생각보다 더 굉장하다모든 사람에게는 ‘나는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기 존중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쉽게 말하면 ‘나는 굉장해’라고 느끼는 감각인데 이것이 없으면 불운에 무척 취약합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쉽게 상처받고 마음이 꺾여버리고 말지요. 반대로 자신이 굉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웬만한 풍파도 너끈히 넘길 만큼 아주 강력하답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쳐도 결코 쓰러지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애초에 마음이 지치는 일 자체가 드물거든요.
자기 존중감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존재는 애초에 유일무이하기 때문입니다. 생명, 즉 ‘영혼’은 우주를 창조한 신이 나누어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본질은 세상을 만든 힘 그 자체이므로 우리는 신만큼이나 위대한 존재라는 의미이지요. 그런데 ‘나 같은 게 뭐라고. 어차피 난 안 될 거야’라고 자기 자신을 부정하면 자아상과 본래의 모습 사이에 큰 거리감이 생겨버립니다.
영혼은 이렇게 괴리된 상태를 싫어해서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문제는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다는 영혼의 호소가 우리의 마음에 직접적인 울림을 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남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존중받지 못한 경험이 마음에 두꺼운 때처럼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분노와 괴로움, 슬픔, 억울함까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마음에 들러붙어 있지요. 이런 더러움이 영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그래서 곧잘 ‘남들에게 칭찬받고 싶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다’처럼 내 안의 진짜 목소리와 어긋난 방법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실감하려는 우를 범합니다.
그 모습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억누르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굴하게 굴거나 혹은 상대방을 자신보다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남들을 얕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는 사람은 언뜻 자신감이 넘치고 강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자기 존중감이 약해서 마음이 너덜너덜한 상태입니다. 사실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우월한 점을 과시하는 행동은 필사적으로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영혼의 구조 신호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억지로 꾸며내려 하지 말고 당신의 본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세요. 우리는 모두가 본디 굉장한 존재입니다. 지레짐작으로 남들에게 미움을 받을까 봐 걱정할 필요도, 일부러 다른 사람이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 세계에서 유일한 존재이며 단 한 사람이라도 없다면 이 세상의 조화는 깨지고 맙니다. 이 세계에 없어도 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되찾는다면 눈 앞에 펼쳐지는 세계는 놀랄 정도로 밝아집니다. 내가 아닌 다른 것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먼저 나를 존중해주세요. 그러면 당신이라는 신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이 시작될 것입니다.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방법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부차적인 일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제쳐두고 다른 사람의 행복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사랑을 경험하고 그 감정이 조금씩 마음에 축적되다가 이윽고 넘쳐흐를 정도로 커졌을 때 비로소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바랄 수 있습니다. 사랑이 넘쳐흐르는 상태이니 ‘갚을 필요는 없어요’ 하며 기쁘게 베풀 수 있지요. 앞날을 생각해서 행한 일이 아니므로 보답을 바라는 마음을 품지도 않게 됩니다.
이 점을 명심하세요. 다른 사람을 도울 때는 언제나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랑’으로 임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자신이 준 만큼 돌려받지 못했다며 서운해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여겨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돕기에 앞서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모두를 위해서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눌러왔다면 그 생각을 근본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가장 소중한 자신부터 넘치게 채워주세요.
혹시라도 ‘나 같은 건 도무지 괜찮은 구석이 없어’ 하는 생각이 든다면 시작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칭찬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데 이 세상 어디에도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리해서 훌륭해질 필요도 없어요. 신이 인간에게 바라는 것은 결코 완벽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이루어야 할 과업은 나의 개성을 갈고닦아 매력으로 바꾸고 그 매력을 이용해 무럭무럭 성장해 행복해지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입니다. 미숙해도 괜찮으니 자신에게 없는 것을 굳이 찾으려 하지 마세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갈고닦아서 그것으로 승부를 보면 됩니다.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고 더 훌륭하고 멋진 다른 존재가 되려고 발버둥 쳐도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어요. 너무 어려운 일,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위로 올라가려고 억지를 쓰면 지친 나머지 결국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일이 풀리지 않아.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야’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포기하게 됩니다.
자신을 향해 ‘지금 모습 그대로도 괜찮아’라고 말해보세요. 그러면 갑자기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듯이 마음이 가벼워질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이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그럼 이 모습 그대로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볼까’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꽤나 높은 곳에 올라와 있는 나를 발견할 거예요. 이것이 위로 올라가는 올바른 방법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잘 풀리는 사람의 비밀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어떤 상황에서든 ‘나는 행복하다’라고 생각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좋은 일이 있으면 행복하다’,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불행하다’처럼 행복을 어떤 일에 뒤따르는 반응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행복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럴 땐 좋고 저럴 땐 좋지 않은 것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지 말고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처음부터 정해버리면 어떤 일이 생겨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까닭은 온갖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두근거리고 스릴이 넘치고 재미도 있는 것이지요. 안 좋은 일은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지만, 오히려 우리는 곤란한 일을 겪으면서 고민과 실패를 거듭하고 많은 것을 배우며 단단해져갑니다. 힘든 일을 충분히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서는 깊이를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성취감이나 기쁨은 평탄하기만 한 일상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니 좋은 일만 있는 인생보다는 안 좋은 일도 있는 인생이 단연코 더 낫습니다. 안 좋은 일도 행복한 인생의 일부이고 당신은 언제라도 행복한 사람이니까요.
애당초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중립적입니다. 현상 자체에 선과 악은 없습니다. 같은 비가 내려도 어떤 사람은 싫어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은혜로운 비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좋고 나쁨은 인간이 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생각의 초점을 어디에 두는지에 달렸습니다. 같은 일을 경험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어떤 사람은 불행으로 받아들입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행복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잘 풀립니다. 행복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한 사람에게만 행운이 집중되는 일은 없고,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에게 불행만 쏟아지는 일도 없습니다. 다만 이미 일어난 일의 밝은 면을 보느냐 어두운 면을 보느냐에 따라 이후의 전개가 달라질 뿐입니다. 밝은 면에 집중하면 좋은 것이 많이 보입니다. 밝기 때문에 좋은 인연이나 기회가 눈에 잘 보이고 결과적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립니다. 뭘 해도 잘 풀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부 행복의 일부라고 생각해보세요. 자연스럽게 밝은 면에 눈이 가고 그곳에 숨어 있는 기회와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누구든 응원해주고 싶은 법이라 신도 계시를 내려줍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든 척척 해결해 나가게 되지요.
2장 습관: 사소한 태도가 행운과 불운을 가른다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내는 법마치 신이 응원해주는 것처럼 손대는 족족 일이 잘 풀리는 사람들은 행복의 힘을 자가발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외부의 다른 요인이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밝은 생각과 태도를 갖추어서 행복의 동력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저는 이러한 동력을 ‘파동’이라고 부릅니다.
파동은 작은 입자가 모여서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전파나 주파수 같은 것인데 저는 이 세계의 모든 것에 파동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인간은 물론이고 모든 생물과 사물, 현상까지도 이러한 에너지를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제가 파동이라고 하는 것을 신의 에너지 혹은 생명의 원천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물이나 현상의 파동은 대체로 일정한 데 비해 인간은 생각과 감정에 따라 파동이 크게 바뀌며 이 파동은 다시 우리의 사고와 기분에 영향을 미칩니다. 기분이 좋으면 파동이 상승하면서 마음이 가벼워지고 생각도 맑아지지요.
또 파동은 비슷한 것끼리 모이는 성질도 갖고 있습니다. 좋은 파동을 가지면 좋은 일이 일어나고, 파동이 약해지면 안 좋은 일이 늘어납니다. 즉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우리의 파동이 가져온 결과라는 뜻이지요. 그러니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파동이 약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지금보다 더 만족스러운 인생을 누리고 싶다면 파동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바로 여기서 행복을 자가발전하는 힘이 시험대에 오릅니다.
자가발전을 잘하는 사람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파동이 약해져도 금세 추가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보살필 힘이 있기 때문에 파동이 약해지더라도 그 상태가 오래 가지 않습니다. 반면에 자가발전이 서툰 사람은 약해진 파동을 스스로의 힘만으로 끌어올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점점 불행으로 끌려가고 그럴수록 더욱 헤어나올 수 없게 되는 악순환에 휘말립니다. 파동이 약해지고 흐려질수록 더욱 큰 고난이 찾아오니까요. 이처럼 자가발전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자가발전이라고 하면 엄청난 능력이 필요할 것 같지만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행복하다’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됩니다. 언제나 표정을 밝게 유지하고 무조건 참거나 양보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면 충분합니다. 이렇게 일상의 생각과 감정을 아주 살짝만 바꾸어도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이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미한 변화가 차곡차곡 쌓이면 조만간 커다란 파동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들을 끌어당기면서 경직되어 있던 삶이 밝은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풍요로운 파동에는 반드시 풍요로운 것들이 몰려듭니다. 우주의 법칙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생각 하나로 이 법칙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지요. 실로 커다란 특권을 지니고 태어난 셈입니다.
내가 하는 말은 신에게 보내는 주문서다인간의 뇌는 정밀해서 조금이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어긋나 있으면 어떻게든 올바른 상황으로 가려고 노력하지요. 그러니 설령 불만이 있더라도 “나는 행복하다!” 하고 말해보거나 속으로 크게 외쳐보면 뇌가 머리와 마음의 괴리를 메우려고 하면서 행복을 향해 마음을 옮기려고 합니다.
‘행복’이라는 말에는 행복의 파동이 깃들어 있습니다. “즐겁다”라고 말하면 말한 사람도 들은 사람도 즐거운 파동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말의 파동을 일본에서는 ‘언령(言靈)’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서 말에 깃든 영적인 힘이라는 뜻입니다. 즉 즐겁고 좋은 말을 사용하면 뇌의 작용에도 좋고 언령을 통해서도 힘을 얻으니 두 배로 강력한 자가발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말은 결국 ‘신에게 보내는 주문서’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튀김 덮밥을 먹고 싶어서 식당에 갔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정작 주문할 때 ‘국수 주세요’라고 말해버린다면 당연히 점원은 국수를 내오겠지요. 튀김 덮밥을 먹고 싶다면 ‘튀김 덮밥 주세요’ 하고 제대로 주문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일이 우리 인생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행복을 바란다면 “나는 행복해”라고 말해야 합니다. 아무리 마음속으로는 행복을 바라더라도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정말 “싫어”, “용서할 수 없어”라는 불만과 불평이라면 튀김 덮밥을 원하면서도 국수를 주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불만과 불평의 목소리가 전달되면 신은 ‘이 아이는 불만과 우는 소리로 이어지는 일을 바라는구나’라고 받아들이겠지요. 그러니 내게만 안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면 이는 신의 실수가 아니라 주문하는 쪽의 문제입니다.
지금 처한 현실은 우리가 지금까지 신에게 보낸 주문의 결과입니다. 인생이 괴로운 사람은 틀림없이 과거에 괴로움을 주문했을 것입니다. ‘인생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라는 생각 자체가 잘 풀리지 않는 일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좋든 나쁘든 모든 것은 우리의 뜻대로 펼쳐집니다.
미래를 밝게 바꾸고 싶다면 일상 속의 말부터 바꾸어보세요. 저는 수십 년 전부터 천국의 말을 사용하고 지옥의 말을 버려야 한다고 전파해왔습니다. 천국의 말이란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기분 좋게 만드는 말을 말합니다. ‘사랑해’, ‘운이 좋아’, ‘행복해’, ‘기뻐’, ‘고마워’ 같은 말이 여기에 속하지요. 반면 지옥의 말은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기분이 안 좋아지는 말입니다. ‘무서워’, ‘재수 없어’, ‘용서 못 해’ 같은 말이나 불평, 불만, 험담, 걱정이 대표적입니다.
천국의 말을 사용하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와 신에게 보내는 주문이 일치해서 생각이 곧 현실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자신이 바란 것보다 더 좋은 인생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상상을 넘어서는 밝은 내일이 기대되지 않나요?
3장 인연: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다
우리에게는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어린 시절 저는 공부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고 숙제도 제대로 해간 적이 없었습니다.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했고요. 다만 학교 자체는 좋아했습니다.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즐거워서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학교에 가고는 했지요. 보통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들은 친구도 별로 없는데 저는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결석한 날에도 방과 후에 여러 친구가 우리 집을 찾아왔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제대로 출석도 하지 않는 제 주변에 친구들이 가득했다는 것이 의외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에게는 어떤 일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제가 당당하게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비굴해지기는커녕 원하는 대로 살면서 활기차게 행동했습니다. 그런 저의 밝은 면모가 모두를 매료시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는 학교를 자주 빠지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충실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자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