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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명저)오다 노부나가의 카리스마 경영

도몬 후유지 지음 | 경영정신


오다 노부나가의 카리스마 경영

도몬 후유지 지음

경영정신 / 2000년 9월 / 264쪽 / 8,500원





제1장 역사의 법칙과 민중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한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사람에 관한 유명한 말이 있다. 울지 않는 두견새가 있을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가.

노부나가: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버린다.

히데요시: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만든다.

이에야스: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



위 세 사람의 성격과 리더십의 단면을 보여주는 말이다.



전국시대는 ‘천하를 움켜쥔다’는 목표를 가진 무장들이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되풀이한 시대다. 천하를 움켜쥐겠다는 그들의 꿈은 교토로 상경하여 자신의 깃발을 높이고 천하를 호령하는 것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국민을 지배하고, 오직 자신만 누릴 수 있는 영광을 탐닉하는 것이 야망을 충족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의 마음가짐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어떻게든 사회의 욕구, 민중의 욕구에 대응해야 한다는 자세가 있었다. “영웅은 민중의 노예다.” 그들에게는 이런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정치는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인가?” 이 질문은 국가와 사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국가를 운영하는 책임자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과 연결된다. 오다 노부나가는 이것을 민감하게 파악한 인물이다. 노부나가가 보았을 때, 일본의 주권은 처음에 천황이 가지고 있다가 그 다음에는 귀족들이 움켜쥐었다. 이어서 귀족의 경호원에 지나지 않던 무사의 손으로 넘어갔고 그 무사들 사이에 계층이 형성되면서 넓은 영지를 소유한 무사인 다이묘들이 움켜쥐었다. “천하는 천하의 소유물이다.” 이것이 바로 노부나가의 생각이었다. 자신이 천하를 손에 넣어도 자신의 능력을 능가하는 우수한 인물이 나타나면 천하는 당연히 그 인물에게 이양되어야 한다는 발상이었다.



제2장 낡은 가치는 철저하게 파괴한다


노부나가에게 평생 따라다니던 말이 있다. ‘잔인한 악마’, ‘추악한 마귀’ 등이다. 노부나가가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그가 히에이 산을 토벌하고 나서부터이다.

히에이 산은 야마시로와 오우미의 국경에 남북으로 걸려 있는 히라(比良) 산지의 남부에 있다. 지금의 교토 시와 오쓰 시의 경계다. 동서 양쪽은 경사가 급한데 가장 높은 곳은 해발 848미터로 본격적으로 방어하겠다는 마음만 먹는다면 간단히 공략하기 어려운 천연 요새다. 그 때문에 히에이 산의 폭도들은 마음을 놓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히에이 산에 엄청난 대군을 보냈다. 그리고 불상을 비롯하여 경전까지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승려는 물론이고 신자들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목을 벴다. 여자들과 아이들이 아무리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목이 잘린 시체는 수천 구에 이르렀다.

히에이 산 토벌은 노부나가의 충동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그는 이 싸움에 세 가지 의의를 두고 있었다. 첫째는 요충지 확보다. 히에이 산 정상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경사가 심한 언덕 아래에 히와 호 일대가 손에 잡힐 듯이 보이고 서쪽 아래는 와카시(若狹) 가도의 야세를 거쳐 이와쿠라에 이른다. 교토 거리는 서남쪽에 위치한다. 전국시대의 무장으로 전략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이곳을 탐낼 것이다.

두 번째 의의는 낡은 권위의 파괴다. 미쓰히데, 노부모리 등 역전의 명장들조차 사찰에 불을 지르라는 명령을 듣고 공포에 몸을 떨었지만 정작 그 사찰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여자를 강간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서는 어지간한 성 하나쯤은 충분히 함락할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갖추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그 베일을 철저히 벗겼다. 중세에는 정치가 종교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정치에 개입했다. 노부나가는 어떤 의미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강행한 것이다.

세 번째 의의는 카리스마적 리더라는 이미지를 확립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도 리더에게 등을 돌리는 자를 그대로 방치하면 부하들은 리더를 우유부단한 인물로 보고 차례로 떠나버린다. 하물며 피로 피를 씻는 전국시대의 무장이 적에게 모욕을 당하고 그대로 있을 경우, 안팎으로 경멸을 당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히에이 산 사찰 토벌 효과는 매우 컸다. ‘악마’, ‘마귀’라는 평가 뒤에 감추어진 공포는 그 이후 노부나가가 천하를 움켜쥐는 과정에서 강력한 무기로 작용했다.

노부나가는 또한 일본 전역을 떠돌아다니는 유랑자들을 중시하여 그 정신을 자신의 정책 전개에 도입했다. 노부나가가 주목한 유랑자들의 정신은 끈질긴 생명력과 탁월한 정보 수집력, 유연한 발상과 사고력, 인정에 좌우되지 않는 합리적인 정신, 결단력, 실행력, 그리고 그들의 상승 지향성이었다. 이런 특성을 가진 유랑자들에게 주목한 이유는 그들 각자가 지닌 능력을 시대를 변화시킬 만한 강력한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3장 뛰어난 현실주의자의 시대 개혁


노부나가가 평화 유지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군사 개혁이었다. 그의 군사 개혁은 병농일치 정책을 개혁하여 시민 생활이나 농경 생활을 하는 사람을 그 생활에 전념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그는 검지(檢地)라는 토지 조사를 실시하여 토지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했다. 군사를 전문화한다는 노부나가의 정책은, 검지를 통해서 농민을 농사에 전념시켜 생산력을 높임으로써 농촌을 풍요롭게 한다는 데서 출발했다. 농촌이 풍요로워지면 잉여 노동력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잉여 노동력을 군사력으로 이용하여 전문적인 병사로 만드는 것이다.

평화 시대에 필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도시 정책이다. 이는 국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대도시에 집중시켜 그 장소에서 한 번에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노부나가는 번화가를 정비하여 그곳에 상인과 기술자를 모았다. 빚을 탕감해주고 세금을 면제해준다고 하자 전국의 상인들은 기꺼이 도시로 모여들었다. 도로를 정비하고 다리를 설치하고 관문을 철폐하고 통행세를 폐지하자, 자연히 사람들의 통행과 물건의 유통이 활발해졌고 일본 전역에 활기가 넘쳤다.



제4장 개방, 자유, 진취의 상징화


아즈치는 히와 호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는 지역이다. 일본열도는 히와 호 근처에서 쏙 들어간 모습이고 동해에서 와카사 만, 태평양에서 이세 만이 히와 호를 향해 깊이 파고들어 있다. 이 지역은 히와 호를 이용한 병력 수송과 상업 유통의 요지일 뿐 아니라 겨울에는 눈으로 인해 북쪽으로부터의 공격이 차단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노부나가는 여기에 성을 쌓고 천하통일의 거점으로 삼았다. 성을 천하통일의 상징물로 삼은 만큼 그 규모와 화려함은 당시에는 비할 데 없는 것이었다. 노부나가의 도시 정책을 요약하면, ‘개방, 자유, 진취’라는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이것은 히데요시에게도 이양되었고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라는 독특한 문화로 불렸다.



제5장 노부나가의 카리스마 리더십 (1) - 발상의 전환


영웅들은 모두 과감하고 결단력이 있다는 특성이 있다. 판단이 빠르다는 의미의 결단력이다. 그러나 결단을 내리려면 그 전에 선택 방법이 정리되어야 한다. 선택 방법을 정리하려면 문제점을 파악해야 하고 문제점을 파악하려면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노부나가는 그 시대의 무장 중에서도 가장 결단이 빠른 인물이었다. 그것은 그가 정보를 중시했으며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입수했는지를 대변해 준다.

그가 정보를 중시한 예를 들면 유명한 오케하지마 전투에서의 기습 작전을 꼽을 수 있다. 오케하자마의 기습은 오와리의 소 다이묘에 지나지 않는 노부나가가 스루가 제일의 대 다이묘인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공격한 사건이다. 이 싸움 전날 밤, 오와리 성에서는 노부나가의 중신들이 모여 회의를 개최했다. “교토를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해오는 이마가와 군의 4만 병사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성을 무덤 삼아 깨끗하게 자결합시다.”

중신들이 그러한 결정을 내리자 가문의 당주인 노부나가는 코웃음을 치더니 자기 방으로 돌아가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그러나 한밤중이 되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시를 읊기 시작했다. “인생 50년, 천하 만물과 비교하면 덧없는 꿈과 같은 것, 한 번 생을 얻어 멸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 과연 존재하겠는가….” 시를 읊던 노부나가는 갑자기 차를 가져오게 하여 단숨에 들이키고는 말 위에 올라 출정 명령을 내렸다.

오케하자마에 도착했을 때 노부나가의 뒤를 따르는 병사는 4,000~5,00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노부나가는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물리치고 중부 지방의 패권을 움켜쥐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노부나가는 논공행상을 실시했는데, 수훈자 1위는 요시모토의 목을 벤 모리 신스케가 이니고 야나다 마사쓰나라는 그 지역 호족이었다.

야나다는 이마가와 본진의 행군 경로와 휴식 장소, 전쟁 당일의 기상 상황 등을 알려주었고 그의 예측대로 요시모토는 본진을 오케하자마에 둔 채 그곳에서 꽤 멀리 떨어진 덴가쿠하지마에 진영을 만들고 점심식사를 했다. 약간의 병사가 함께 있을 뿐 호위병은 거의 없었다. 당일, 점심 무렵이 되자 하늘이 흐려졌고 검은 구름이 잔뜩 끼더니 천둥이 울리며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다. 노부나가 군은 그 비를 맞으며 기슭에 있는 요시모토의 진영을 향해 단숨에 언덕을 달려 내려가 요시모토의 목을 베어 버렸다.

노부나가가 정보를 중시한 또 다른 예는 젊은 시절에 매일 나고야의 번화가를 어슬렁거린 일이다. 현대사회와 비교하면 그는 완전한 히피였다. 지저분한 복장에 묘한 화장까지 하고 번화가를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그를 그곳 사람들은 눈을 흘기며 흉을 보았다. “저 녀석이 오다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이야. 저렇게 멍청해서야…. 오다 가문도 이제 끝장난 거야.”

그가 거리를 방황한 것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번화가를 지나는 유랑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승려, 여행자, 상인, 떠돌이 농민, 예능인, 거지 등이었다. 노부나가는 왜 그들에게 돈까지 쥐어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을까?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정보가 풍부했다. 노부나가는 그 정보를 얻으려 했다. 한 지역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결코 살아있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유랑자들은 폭이 넓고, 강물이 흐르듯 유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 장소에만 매달려 하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 매달려 얽매이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노부나가에게 그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후일 노부나가의 오른팔과 왼팔이 되는 인물은 바로 이 유랑자 출신의 아케치 미쓰히데와 농민 출신의 하시바 히데요시(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옛 이름)였다.



제6장 노부나가의 카리스마 리더십 (2)


노부나가는 엄하고 비정했다. 그렇다고 부하들이 그를 미워하거나 기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노부나가를 따랐다. 부하들은 확실한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고 잘못을 분명하게 지적해주기를 바란다.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있다가 욕구불만이 고조되었을 때, 해고해버리는 식이라면 부하는 모이지 않는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항상 부하들에게 진실을 요구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의욕이 있는 부하들의 입장에서 노부나가는 일하기 편한 상사였다.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의 유능함을 사랑했다. 그는 짚신장수였던 히데요시를 다카기부교(장작을 관리하는 담당자), 후신부교(건축이나 토목공사 관리 담당), 사교부교(작업관리 감독)로 승진시켰고 결국에는 한 성의 주인, 그리고 지방군의 사령관으로 승격시켰다. 히데요시도 노부나가의 신뢰에 부응했다. 언젠가 그는 선배 다카기부교를 곁눈질하며 노부나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라면 성안의 장작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 좋다. 그럼 너를 다카기부교로 임명하겠다. 하지만 만약 절반으로 줄이지 못한다면 목을 베겠다.”

다카기부교가 된 히데요시는 성안의 장작 비용을 3분의 1로 줄였다. 경제관념이 발달해 있던 노부나가는 평소에도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의 전쟁은 경제 전쟁이야. 병사를 양성하고 소총을 만들고, 각 전선에 군량미를 보내려면 자금 조달이 가장 중요해.”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히데요시의 공적을 인정하고, 칭찬했다. “너를 다카기부교로 두는 것은 준마에게 수레를 끌게 하는 것과 같다. 큰 재목으로 이쑤시개를 만들 수는 없는 일이지….”

노부나가는 자신이 유능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유능함을 사랑하는 합리적인 일면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신분이나 출신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주의 인사를 감행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과거의 실적이나 신분만을 내세우는 무능한 중신들에게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노부나가의 암살 사건인 본능사의 변은 아케치 미쓰히데가 일으킨 모반 사건인데 아케치 미쓰히데가 왜 모반을 일으켰는지는 수수께끼였다. 왜냐하면 미쓰히데의 행동에 계획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쓰히데에게는 정권을 쟁탈한 이후의 구상이 전혀 없었다. 군사, 정치, 경제, 모든 부문에서 아무런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유력한 설로는 히데요시가 주고쿠를 공격하고 시바타 가쓰이에가 호쿠라쿠를, 다키가와 가즈마스가 간토를, 니와 나가히데가 시고쿠를 공격하는 동안 노부나가가 불과 70명의 호위병들과 함께 본능사에 묵게 된 우연한 기회를 충동적으로 이용한 행동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리고 아케치 미쓰히데가 모반을 마음먹게 된 것은 좌천 인사에 대한 불만이 순간적으로 표출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노부나가가 미쓰히데에게 주고쿠의 모리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전교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이번에 빗추를 정리하기 위해 가까운 시일 안에 모리를 공격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선봉을 맡아 나보다 먼저 모리의 영지로 달려가 히데요시의 지시를 받도록 하라.” 이 한 구절 때문에 미쓰히데의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버렸다. 동료인 히데요시 아래로 들어가라는 명령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히데요시의 이름은 그가 별로 신경도 쓰지 않던 인물들보다도 하위에 있었다.

질투는 여자의 전유물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자들의 질투심은 샐러리맨 사회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엘리트일수록 질투심이 강하다. 질투 따위는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다면 중요 인물로 발탁된 적이 없거나 신경이 매우 둔한 사람일 것이다. 미쓰히데도 가혹한 명령을 받은 것뿐이라면 모반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데요시의 지휘를 받으라는, 자신의 위치를 평가 절하시키는 명령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히데요시의 지시를 받도록 하라.” 이 명령 때문에 노부나가는 목숨을 잃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노부나가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면서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언행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독단적인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그런 독단성이 한계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7장 노부나가의 인재 등용법


오다 노부나가는 부하를 다음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그 유형에 맞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끈 우수한 관리자였다. A.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부하, B. 말을 하면 즉시 이해하는 부하, C.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하. 그런데 문제는 C그룹에 해당하는 인물들이었다. 충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노부나가의 행동을 탄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히라테 마사히데조차 노부나가가 볼 때에는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부나가가 그 부하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내용,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무엇일까? 바꿔 말하면 노부나가는 부하에게 무엇들 요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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