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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학 개론

이동헌 지음 | 나비의활주로


노빠꾸학 개론

이동헌 지음

나비의활주로 / 2025년 6월 / 256쪽 / 18,000원





PART 1 삶이 혹독하지 않은데, 어떻게 ‘생존법’을 체득할 수 있겠는가?

- 새로운 마인드 세팅이 바꾸는 놀라운 미래




특수부대원들이 받는 훈련을 흔히 ‘지옥 훈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그들에게 단순히 고통을 안겨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훈련이 지옥 같을 때 실전에서는 달콤한 승리를 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지옥 훈련은 곧 생존 훈련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때의 삶은 지옥이 되기도 한다. 특정한 사건이 지옥을 만들기도 하고, 또 고통을 견디기 힘든 오랜 시기도 거친다. 하지만 이 역시 생존 훈련이다. 혹독한 환경에 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생존법을 체득할 수 없고, 절망에 빠져 보지 않은 사람은 노력과 희망의 진짜 가치를 잘 모른다.

나의 삶 역시 끝없이 실패와 성공이 교차하며 진동했다. 초기에는 그 진폭이 너무나 커서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 정도였지만, 경험이 쌓이고 그 안에서 나만의 지혜를 길러 올리다 보니 이제 그 진폭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뒤를 돌아보면 그 모든 과정은 생존을 위한 혹독한 훈련의 기간이었다. 지금 자기 삶이 힘들고 고민되고 괴롭다면, 아주 잘 가고 있다고 여겨도 된다. 그 시기가 지나면 드디어 안개가 걷히고 조금씩 길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폭탄 맞은 마음에서 새로운 도전이라는 싹을 틔울 수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실패 자체도 매우 근사한 것처럼 보인다. 성공으로 가는 든든한 징검다리라고 하니, 뭐 한두 번의 실패라면 오히려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닌가? 더 나아가 ‘그래, 나도 실패를 감당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 왠지 용기가 불끈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한두 번의 실패가 아니라 20~30번의 실패라면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때의 마음은 전쟁에서 폭탄을 많이 맞은 건물이나 땅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한마디로 박살이 난다는 의미다. 곳곳이 상처투성이라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안 되는 인간인가 보다’라며 낙담하는 것은 차라리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스스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은 아마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감정일 것이다. 바로 내가 이런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학부모에게 쌍욕을 먹는 아픈 경험: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군포에서 방문 과외를 시작하면서 사교육 커리어가 시작됐다. 돈은 벌고 싶었지만 아르바이트는 하기 싫었기에 수학에서 해법을 찾았다. 사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공부를 약간 게을리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의 수학 실력은 화려했다. 중학생 당시 대략 10번 정도 수학 시험을 치면 8~9번은 만점을 받았다. 그러니 중학교 수학 과외 정도야 자신만만이었다. 처음 한 명의 학생을 등록하게 하기까지가 어려웠지만 곧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학생 수가 늘어났다. ‘와, 내가 예상보다 잘하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 이후에는 ‘좀 더 꽃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방을 시작하면서 규모를 좀 더 키우기 시작했다.

방문과외는 선생님이 발품을 팔아야 해서 시간이나 에너지 소모가 크지만, 공부방은 학생이 선생의 집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선생의 입장에서는 시간과 체력을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더 많은 학생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에 수익도 훨씬 나을 수밖에 없다. 알아보니 반지하에서도 얼마든지 공부방을 열 수 있었다.

역시 출발은 소위 ‘전단지’였다. ‘딱 한 명이 등록할 때까지 붙인다’는 마음에 아마도 수천 장은 붙였을 것이다. 그러던 중 정말로 한 명이 등록했다. 곧이어 네 명까지 늘어났다. 일단 ‘출발이 좋다’고 여겨졌지만, 악몽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나를 찾아왔다.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방이 기억난다면 한여름 폭우가 쏟아질 때 어떤 상태가 되는지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방에 있는 내 허리까지 물이 찼다. 문제는 공부방 과외 학생을 데려다주는 한 학부모님이 그 장면을 보셨다는 점이다. 그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쌍욕을 들었다. 마음은 아팠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나 또한 그분과 동일한 심정일 것이라 이해한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허리까지 차는 곳에 공부방을 마련한 나를 미친놈이라고 여겼을 것 같다.

그날 이후 어렵게 모은 네 명의 학생은 모두 다 떨어져 나갔다. 처참한 실패였다. 그런데 나의 실패 퍼레이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군대에 입대한 후 ‘나는 정말로 큰 사업가가 될 거야!’라는 야심만만한 마음으로 온라인 마케팅에 대한 지식을 쌓은 후 제대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한 한지 생산업체의 한지를 온라인으로 홍보해 주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단건을 홍보해 주는 것으로 끝나면서 더 이상 일은 들어오지 않았다. 또 실패였다. 그 이후로 크고 작은 창업을 한 20번 이상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아, 원래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인간인가?’



사람에 의한 뼈아픈 상처:
폭삭 망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의 처참한 기억은 또 있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다시 시작했던 공부방의 학생들은 나날이 늘어나서 팔십 명에 육박했다. 더 이상 하나의 공부방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공부방으로는 나름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방은 법적으로 자기 집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명의로 2호점을 오픈하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사업 파트너를 찾아서 투자를 한 후 수익을 5:5로 나누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렇게 투자까지 할 정도로 상대방을 철석같이 믿었었기에, 그가 나에게 큰 상처를 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첫 출발은 좋았다. 2호점의 학생까지 합치면 백 명이 넘어서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안정되다 싶었는데, 또 하나의 시련이 폭풍처럼 들이닥쳤다. 백 명에 달하던 수강생이 갑자기 아홉 명이 되어 버렸다. 2호점을 운영했던 파트너가 1호점 학생들을 한두 명씩 빼가더니 결국 나의 찐 팬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까지도 빼내 갔기 때문이었다. 그 이전에도 무수한 실패를 했지만, 사람의 마음이 변해서 당한 일이라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1호점의 2층에는 자습실이 있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이는 불법이었다. 하지만 대형 학원도 아니고 조그만 공부방 2층의 자습실을 누군가 신고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1호점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 내가 타격을 입기를 바라는 사람이 신고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망하면 자신이 성공하는 사람이 신고자일 것이다. 교육청에서는 1년 영업 정지를 하겠다고 했고 나는 울면서 반성문을 100장 정도나 썼다. 마치 범죄자가 된 것처럼 치욕감마저 들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자부할 때였다. 내 명의로 된 벤츠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힘든 고개를 넘어 정상을 바라볼 때 겪은 실패라서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

당시에는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꿈 같은 건 꾸지 못했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니 말이다. 가슴이 패이고, 힘이 빠지며, 멍해진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노력 자체가 허망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약 그것을 일단 한 번 박차고 튀어오를 수 있다면 그때부터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 이는 20번이 넘는 실패를 겪으면서 얻게 된 깨달음이다.

성공자는 타고난 능력자가 아니라 압도적인 인풋을 견딘 이들이다


막상 무엇인가에 도전하려다 보면, 자신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보일 때가 많다. 자신이 가진 조건도 열악한 것 같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거의 없는 것 같으며, 거기다가 가진 돈도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면 출발부터 힘이 빠지고 완주할 수 있을지부터 걱정된다. 그럼에도 한두 번 시도해 보기는 하지만, 생각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더 큰 실망감을 느낀다.

대학 시절, 방문 과외에 처음 도전했을 때가 딱 이랬다. 물론 수학교습 자체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문제는 나의 학벌이었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도 합격하기는 했지만, 4년 전액 장학금 주겠다는 한 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사정일 뿐, 학부모들이 과외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단연 선생님의 학력이다. 명문대, 그것도 SKY대학이면 최적의 조건이며, 거기다가 전공까지 수학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기준에 비하면 나는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 전공은 전자공학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리한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됐다. 2학년에 올라간 뒤 대학 중퇴를 결정하고 말았으니, 그때부터 내 공식 학력은 고졸인 셈이다. 정말로 아주 잘해봐야 초등생 수학 전문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초등 전문은 물론, 중등 전문, 고등 전문, 심지어 재수 전문의 수준에까지 올랐다. 한마디로 누구를 데려놔도 다 성적을 올려주는 ‘올 라운드 수학 공부방 원장’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내 단점과 결점을 채워줄 ‘압도적인 인풋(Input)’이었다.

불리한 입장,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인풋이라면 보통 공부나 배움 등의 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고, 아웃풋은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역동적인 결과라고 여긴다. 그런데 내 생각은 정반대다. 인풋은 현장에서 땀 흘리며 경험하고, 실전에서 직접 실행하며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생겨나는 깨달음과 지혜, 노하우가 진정한 아웃풋이다. 이러한 아웃풋은 다음 번 인풋에 변화를 준다. 뭔가를 깨달았으니 이제 더 효율적이고 스마트한 방식으로 인풋을 하게 된다. 그러면 점점 가성비가 높아지고, 언젠가부터는 ‘하나를 보면 열을 깨닫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처음 공부방을 시작할 때였다. 당시 한 사이트에서는 과외 선생님을 구하려는 부모들의 글이 수시로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나는 사실 내세울 만한 스펙이 별로 없었다. 그때부터 압도적인 인풋을 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자판의 F4를 무한 반복적으로 두드리면서 새롭게 업데이트되어 올라오는 모든 글에 즉각적으로 준비된 멘트를 문자로 보내는 일이었다. 열 명, 스무 명에게 문자를 보내는 수준이 아니었다. F4의 달인이 되어 백 명, 이백 명에게 문자를 보내며 영업했다. 그렇게 하면 대략 50퍼센트의 학부모가 연락을 해왔고, 그러면 바로 전화를 걸어 무료 시범 수업 약속을 잡으면서 점차 계약을 늘리고 유료 강의를 늘려왔다. 사실 무료 강의라는 것도 인풋의 하나였다. 나를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내 시간을 투자해서 직접 검증받겠다는 실행의 차원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학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굳이 F4를 무한 반복하며 백 명, 이백 명에게 문자를 보내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지만 부족한 것이 많았던 나에게는 압도적인 인풋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변변치 못한 조건을 가졌기에 그 한계를 이겨낸 방법은 ‘무한 반복적 F4→ 문자→ 상담→ 무료 강의’라는 인풋이었다. 이렇게 해서 2010년 당시, 그 나이 또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돈을 벌 수 있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모르니까 해보면서 알아가면 된다:
군에서 제대를 한 뒤 공부방을 다시 시작하려니 조금은 막막했다. 2년이라는 세월 동안 문제 풀이 방식을 많이 잊어버렸고, 당시 수학문제의 트렌드에도 익숙하지 못했다. 잘해봤자 중학교 3학년 정도를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그 이상의 학년은 가르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광고한 첫날에 느닷없이 고3 학생을 받아 줄 수 있는지 문의가 들어왔다. 할까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과거에 했던 압도적인 인풋의 힘을 믿었다. 일단 과외를 승낙하고 그날 밤부터 인터넷 강의를 틀어놓고 밤을 새우며 고3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에 유명하다는 선생님들의 거의 모든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었으며, 심지어 모의고사도 수십 번씩 풀어보았다. 그리고 과외 내내 그렇게 고3 수학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가르쳤다. 애초에 ‘고3은 받지 못한다’고 했더라면 그런 압도적인 인풋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수많은 실행과 압도적인 인풋이 늘어나다 보니 어느 순간 프로의 아웃풋이 만들어져 갔다. 고3 부모들이 볼 때 나는 고3 전문이고, 초등학생 부모들이 볼 때 나는 초등학생 전문이다. 처음 시작은 ‘그냥 중학교 3학년까지만 가르치자’던 소박한 포부였지만, 압도적인 인풋을 통해 나의 능력치를 훌쩍 키워버린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몰라서 못 한다’, ‘안 해봐서 못 한다’는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지를 말이다. 모르니까 해봐야 하는 것이고, 안 해봤으니까 해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성장의 비결이다.



PART 2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지 않고 생각하는 만큼 이루어진다

- 10배의 성장을 이뤄내는 ‘생각’의 비밀




빠꾸도 계속되면 습관이 된다


내가 살아온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이 늘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대표님은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에너지를 낼 수 있어요?”, “그런 엄청난 도전 정신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인가요?”와 같은 말들이다. 나를 잘 모르는 제삼자가 이런 말을 옆에서 같이 들으면 정말로 내가 엄청난 에너지와 도전 정신으로 세상을 거침없이 살아간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의 내 모습은 완전히 반대다.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로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 심지어 잘 삐지기도 하고, 좌절도 많이 한다. 강의할 때나 수업할 때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일에 관한 스위치 온-오프가 잘될 뿐, 실제 내 모습은 완전히 딴판이다. 스스로를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거나 대단한 도전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제까지 여러 성과를 이루어 왔던 것은 단 하나, ‘노빠꾸 정신’ 덕분이었다.

정신적 루틴은 자기 정체성으로 연결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루틴 만들기’가 큰 유행이다. 소규모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서로 소통하고 인증하면서 일찍 일어나기, 꾸준히 운동하기, 공부하기 등을 습관화하려고 한다. 혼자의 힘으로는 쉽지 않으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그런 루틴을 만드는 노력은 분명 삶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러한 생활상의 루틴보다 더 중요한 루틴이 있다. 그건 바로 ‘정신적 루틴’이다. 사람은 같은 상황에 부딪혀도 생각하는 방식이 제각각이고 이런 각자의 성향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설령 같은 방향의 정신적 루틴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디테일에서는 미묘하게 결이 다르기도 하다. 중요한 점은 이 정신적 루틴이 자신의 판단, 결단, 선택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생각하는 루틴을 가질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항상 긍정적인 측면만 바라보는 습관이 있을 수 있다. 같은 난관에 부딪혀도 한 사람은 위험만 보고, 다른 사람은 기회만 보는 식이다. 이런 정신적 루틴은 보통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기 때문에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정신적 루틴을 하나 말해보라고 한다면 단연 ‘노빠꾸’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나를 도전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웬만하면 그만두거나 포기할 일도 없으니 대단한 에너지와 도전 정신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 무엇이든 빠꾸하는 순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2배 이상의 후퇴가 이뤄진다고 여긴다.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원래의 출발선으로 돌아가서 다시 출발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원점으로 되돌아가면 차라리 다행이다. 실제로는 마이너스(-) 100미터로 후퇴해서 거기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건 정말 인생에서의 엄청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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