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흔들려야 무너지지 않는다

가토 다이조 지음 | 밀리언서재


흔들려야 무너지지 않는다

가토 다이조 지음

밀리언서재 / 2025년 8월 / 240쪽 / 18,500원





1장 무리하며 애써온 나와의 결별



지금의 고통은 과거의 상처가 문을 두드린 것


지금 내가 느끼는 불쾌한 감정은 단지 현재의 상황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불쾌했던 경험이 무의식 속에서 재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괴로움은 실제로는 과거의 특정한 사건에 대해 내가 어떤 방식으로 반응했고,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했는가에 달려있다. 괴로움의 핵심은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가 아니라 과거의 경험에 있다는 말이다. 어릴 적 어떤 사람에게 분노를 느꼈는데 그 사람이 무서워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고 무의식의 세계로 깊숙이 억눌러버린 경우가 있다. 이런 억압된 감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가 현재 눈앞에 벌어진 사건을 계기로 표출되는데, 그것이 지금 느끼는 괴로움이다.

보통은 지금 눈앞에 일어난 사건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과 괴로움의 정도는 다르다. 이것은 괴로움이 외부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내부의 심리적 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다. 지금 느끼는 괴로움은 과거에 심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를 전이(transference)라고 부른다. 과거의 감정을 현재의 관계나 상황에 덧입히는 것이다. 이처럼 괴로움은 단순히 외부 자극을 없앤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의 행동 패턴이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도 감정의 뿌리가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해결되지 못한 문제에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지금 내가 왜 이렇게 불쾌한 걸까?’ 하고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져본다. 무의식에 잠들어 있는 과거의 감정을 끄집어내서 마주하면 더욱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괴로움이야말로 불쾌한 감정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억눌러온 감정을 인정하고 마주해야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더 이상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여성에게 차인 남자가 ‘저런 여자는 원래 그래’라고 상대 여성의 탓으로 돌리면 당장은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왜 그녀에게 차였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며 사는 사람이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반성을 통해 현실을 마주하고 성장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심리적 과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바꾸는 일이다. 실연이나 실직과 같은 눈앞의 고난보다 과거에 표출하지 못하고 억눌렀던 감정이 심리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괴로움의 늪에 빠져 옴짝달싹 못 하는 사람은 과거에 심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떠안은 채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마치 과거의 계산서를 아직 치르지 못한 것과 같다. 심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문제가 현재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우리는 그 감정이 다시 작동하는 순간 그것을 해석하고 다르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행복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가?


삶이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뚜렷한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흔히 이럴 때 자기도 모르게 불행한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인간은 살아가는 의미와 목적을 찾지 못할 때 괴로움에 빠진다. 흔히 머리로는 행복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멈칫하고 만다. 그리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들거나 괴로울 때 ‘행복하게 살고 싶어’, ‘편하게 살고 싶어’, ‘이 고민만 사라지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어’라고 한탄하면서도 시간을 덧없이 흘려보낸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 힘든 걸까? 그 이유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 탓하거나 스쳐 지나가듯 넘기면 고민과 괴로움은 반복될 뿐이다. 진짜 원인을 제대로 찾아야 비로소 나 자신도, 내 삶도 조금씩 바뀔 수 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들여다볼 때 비로소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힘듦을 무작정 견디기만 하지 말고 그 안에 숨은 신호를 읽어야 한다. 그것이 자기 자신과 진짜 삶을 다시 연결하는 가장 깊고 단단한 첫걸음이다.

해야만 하는 일을 멈추면 삶이 새롭게 보인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는 ‘비합리적 신념’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자신은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생각 등이다. 비합리적 신념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비합리적인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예를 들어 믿을 만한 사람을 믿지 못하고 성실한 사람을 의심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믿음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성장하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도 믿지 못한다. 믿을 수 없는 사람들만 만나고 살면 타인을 믿는 능력이 생기지 않는다. 이는 감정적 기억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저렇게 좋은 환경인데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런 환경에 놓인다면 틀림없이 행복할 거라고 믿는다. ‘사람이 걸리는 질병 가운데 이토록 공감이 절실한데도 이토록 공감을 얻지 못하는 질병이 또 있을까.’

‘왜 저럴까?’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의 감정은 비합리적 감정이다. 우울증 환자는 불합리하지만 그렇게 느낀다. 보통 연애를 하면 마음이 들뜨게 마련이지만 우울증 환자는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보통 사람이 봤을 때는 즐거운 일도 즐겁지 않다.

비합리적 신념과 비합리적 감정은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므로 이 2가지를 제거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우선 자신이 어떤 비합리적 신념을 지녔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의외로 자신이 비합리적 신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예를 들어 연인에게 책망하는 말이나 비난하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이럴 때는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연인은 항상 칭찬만 해야 한다’라는 믿음이야말로 비합리적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우울할 때는 자기 생각이 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저 연인이 비난했다는 사실에 상처받을 뿐이다. 앨버트 엘리스는 우울하다면 자신이 ‘~해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라고 제안한다.

물론 몇십 년 동안 몸에 밴 마음의 습관을 하루 이틀에 고칠 수는 없다. 끈기 있게 연습해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눈앞의 순간이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긴 시간을 들여 정성껏 내면을 가꾸지 못한다. 항상 그 순간순간에 매몰되어 살아가다 보면 아무것도 축적되지 않는다. 항상 그 순간에 느끼는 고통만 허둥지둥 대처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우울해한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우울감은 집착에서 비롯된다. 그 집착의 밑바닥에는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우울하다는 것은 자신이 싫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자신이 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자신이 싫어진 것이다. 그 바탕에는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현실의 모습과 이상 사이의 간극이 불안과 실망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의 진짜 고민은 무엇일까? 바로 “지금의 나는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끝없는 비교와 자기비판이다. “이번에도 못 했어”라는 말을 마음속에서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조심스럽게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한번 말했다고 해서 그다음에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용기를 냈지만 다음 번에는 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순종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사람이 마음 습관을 바꾸는 데는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만일 불쾌한 감정으로 괴롭다면, 지금 내 마음속 어딘가에 비합리적 신념이 있지는 않은지 구석구석 찾아봐야 한다. 그리고 그걸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더 불쾌해지거나 손해 볼 일은 없다. 처음에는 이 정도로 만족하자. 계속 연습하다 보면 나름대로 효과가 나타날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는 점차 커질 것이다.



2장 잊혀져가는 나를 소환하다



무리하게 애쓰지 않아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자신은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간다. 마음 한편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은 사랑받을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가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자기 안에 ‘최악의 모습’이 숨어 있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진짜 두려움은 그것만이 아니다.

이 사람은 지금까지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전제 아래 행동해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타인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어온 것이다. 이들은 사랑받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돈이나 명예, 노동력, 복종을 통해 상대방의 지배욕을 채워주거나, 기분을 맞춰줌으로써 상대의 무력감을 달래주거나, 성적 만족을 제공하는 등 어떤 형태로든 상대에게 ‘무언가’를 주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자신을 지켜왔고, 그런 행동과 말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이것이 자신이 살아온 익숙한 세상이다.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


지금 괴로움을 견딜 힘이 없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권위와의 싸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권위적인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아실현을 이루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도 모르게 순응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싸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몸에 익힌 방식일 뿐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며 버텼다면 이상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다면 무척 대단한 일을 해냈을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고 실제로 하지 않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실제로 가지 않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가고 싶지 않은데 “가고 싶다”고 말하고 실제로 가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미움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 혹은 잘 보이기 위해 싫어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한 것이다. 이 때문에 마음은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괴팍한 사람에게 잘 보인다고 해서 좋은 일이 일어날 리 없다. 괴팍한 사람에게 미움받는다고 해서 곤란한 일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괴팍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잘 보이려고 무리하다 자기 몸을 망가트리고 만다. 자기 인생은 실패했다고 인정하면 바로잡을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불안한 긴장감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로 불행한 사람은 싫어하는 일로 성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면 바로잡을 수 있다. 인정하는 데 정해진 때란 없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좋은 때인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출세하고 명성을 얻는 일과 진정한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돈, 지위, 명성은 타인이 주는 것이지만, 마음의 평안과 진정한 자기 이해는 오직 자신만이 만들어갈 수 있다.

나만의 살아가는 방식이 없을 때 마음이 흔들린다


과거에 겪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는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극단적인 자해 행동이나 타인을 향한 학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나면,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낮아지고, 감정적인 고통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신체화(somatization)가 자주 나타난다. 또한 내면에 공격성이 쌓여 자신이나 타인을 향한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

특히 사랑과 증오처럼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 동시에 얽힌 관계를 상실했을 때 큰 상처를 받는다. 이런 감정은 주로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데, 그 관계가 갑작스럽게 끊어졌을 때(예를 들어 부모를 잃었을 때) 상실감은 더 깊고 복잡하다. 그만큼 마음의 상처도 크게 남아서 종종 심각한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는 시간이 흐를수록 누적되어 성격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트라우마가 남기는 첫 번째 영향은 불안이며, 사랑하는 대상을 잃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우울증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안과 우울이 뒤섞여서 나타난다. 애착 대상을 잃고도 슬픔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면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활기 넘치면서도 안정된 마음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뚜렷한 목적이 생기면 마음이 안정된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없다. 자신만의 중심축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자신만의 중심축이란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말한다. 마음이 안정된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자신만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적이 필요하지만 그 목적을 잘못 설정하면 안 된다.

무엇을 하든 의욕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어린 시절 좋아하는 사람에게 기대한 만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함께 있어 주길 바랄 때 그 사람이 곁에 있어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절망이 마음속에 쌓여 있다. 자신을 믿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속 깊이 쌓여 있는 절망을 알아차리는 일이 중요하다. “엄마, 날 봐주세요. 나만을 위한 엄마가 되어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엄마가 봐주지 않은 경험이 쌓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렇게 외치는 것조차 그만두게 된다.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절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활기차고 솔직해질 수는 없다. 왜 의욕이 생기지 않는 걸까? 왜 자신을 믿지 못하는 걸까? 왜 활기차게 살아가지 못할까? 왜 실제로 변하지 못하는 걸까? 이럴 때는 왜 마음을 닫아버렸는지 스스로 분석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안정된 마음으로 살아가려면 마음이 가벼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한다. 가벼운 심리상태가 바로 중심축이 되어 내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준다.

살아온 인생은 편도체에 새겨진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노먼 E. 로젠탈은 무의식을 바람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면 어느 방향에서 불어오는지는 알 수 있다. 이처럼 타인이 나에게 보여주는 태도에서 무의식이 드러난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생색을 내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려 한다.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상대에게 주입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의 존재 가치는 오히려 가벼워진다. 생색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스스로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분노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인간관계에서 과거에 채우지 못한 것들을 보충하려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안전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지나치게 클 경우 다른 욕구들을 억눌러버리기도 한다.

전쟁터에서 어머니를 부르며 죽어가는 병사가 있다. 그런 사람은 살아있을 때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준 존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런 어머니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버팀목이 되는 ‘어머니’가 없는 사람의 편도체는 과도한 각성 상태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마음이 안전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기 쉽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