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말하기 수업
테리 수플랫 지음 | 현대지성
백악관 말하기 수업
테리 수플랫 지음
현대지성 / 2025년 8월 / 384쪽 / 19,900원
1부 언제까지 말하기를 두려워하며 살 수는 없다
절대로 말할 자격을 의심하지 말라스피치나 프레젠테이션을 잘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믿음이다. 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즉, 내 목소리가 중요하고 사람들이 마땅히 귀 기울여야 한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거부하고 그늘로 들어가 목소리를 감춘다. 다른 사람들의 거절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말이다. 나 역시 워싱턴 D.C.에 있는 대학에 들어간 후로는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을 피해왔다.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은 본능이다: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할 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전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다. 도대체 사람은 왜 말하기 전에 두려움을 느낄까? 보스턴대학교의 불안 및 관련 장애 센터의 엘런 헨드릭슨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안전, 사랑, 소속감의 욕구가 충족되어야만 합니다. 거절은 생존에 치명적이었어요. 가족이나 부족에서 쫓겨나면 곧바로 늑대 무리에 던져지는 셈이니까요. 말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 있었죠.” 그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말이 듣는 사람들에게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생존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 “사회적 거절은 죽음으로 가는 급행열차처럼 느껴질 수 있죠.” 설명을 듣자 내가 성인이 된 후 대중 연설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의 이유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워싱턴 D.C.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한 후 대학생 인턴으로 백악관에서 일할 때는 빌 클린턴의 연설문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대통령의 말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국방부에서 연설문 작성 업무를 하게 되었고 국방부 장관의 수석 연설문 작성자가 되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지 몇 달 후에는 그의 외교 정책 연설문 작성자 중 한 명이 되었다. 당시 내 나이는 겨우 서른여섯이었다. 나는 오바마 대통령을 처음 만난 날을 결코 잊지 못한다. 나는 오바마의 첫 연설인 해군 사관학교 졸업식 축사를 작성했다. 오바마는 그 연설문을 보고 액설로드의 사무실까지 찾아와 “연설문 아주 좋았어요”라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온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워싱턴 D.C.에서는 가문과 권력, 부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나는 금수저 출신도, 미국 토박이도 아니었다. 아버지 대에서 이민 온 우크라이나계 미국인이었기에 집안은 거의 빈털터리였다. 나와 내 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부모님은 엄청나게 고생했다. 덕분에 나는 워싱턴 D.C.의 명문대 아메리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교수진 아래서 수학하며 백악관과 상원의 인턴으로 근무하고 영국 의회에서 일하는 엄청난 기회도 누릴 수 있었다.
솔직히 대학 시절에 나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지만 로스쿨에 합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재수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국방부에서 연설문 작성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일이 꽤 재미있어서 언젠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겠다는 새로운 꿈을 품었다. 그리고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도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자신에 대한 확신보다는 부족한 점들에 집중하곤 했다. 겉으로는 잘 숨겼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내가 남들보다 자격도, 경험도, 스펙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목소리가 나를 격려해주었다. 그가 젊은 시절 남들 앞에서 말하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려주는 그의 힘 있는 목소리는 나를 서서히 바꾸어놓았다.
연설 천재 오바마도 수없이 실패했다: 대학을 마친 후 오바마는 시카고 사우스 사이드 지역의 여러 교회에서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들을 조직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어. 원래 쉽게 긴장하는 성격도 아니고.” 그러나 어느 날, 자신만만함이 그에게 끔찍한 좌절을 안겼다. “그날 일이 아직도 생생해.” 당시 그는 스물네 살이었고, 시카고 도심 고층 빌딩의 회의실을 꽉 채운 자선사업가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독려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자신감이 너무 넘쳐서 원고도 준비하지 않았어. 어디서든 누구 앞에서든 즉석에서 척척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 큰 오산이었지.”
그는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정장 입은 사람들이 잔뜩 앉아 있었는데, 그걸 보니 내 차림새가 그 자리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시작한 지 4~5분쯤 지났을 때였나, 갑자기 몸이 굳어버렸지. 생각의 흐름이 완전히 끊긴 거야.”
낯선 환경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 앞이었던 데다가, 지역사회 프로젝트를 위해 상당한 자금을 모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만 얼어붙어버린 것이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두서없이 말하느라 논리도 사라졌다. 그때의 느낌을 기억하는지 물어보자 오바마는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기억에서 싹 지워버렸지. 그때의 기분이란… 바보가 된 것 같았거든. 정말 창피했지.”그렇다면 오바마는 어떻게 지금의 놀라운 연설 실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찾으면 달라진다: 청중 앞에서 완전히 얼어붙는 경험을 한 후에도 오바마는 커뮤니티 조직자로서 활동을 계속했다. 덕분에 뛰어난 연사로 거듭나게 된 첫 번째 기회를 만난다. 바로 교회 지하실에서였다. 처음에는 청중이 열두 명뿐일 때도 있었지만, 오바마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차근차근 자신감을 쌓아나갔다. 그 과정에서 소통의 중요한 법칙도 배웠다. 말하기 전에 일단 듣는 것이다. 교회 지하실에서 한 연설은 발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역 주민들과의 대화이기도 했다.
“최고의 연사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지.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거야. 그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 가치관과 신념, 두려움과 실망 등 과거, 미래의 목표 이야기 말이야. 누구에게나 고유한 이야기가 있었어. 그 사람의 진정한 본질을 드러내는 이야기였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더군.”
그는 교회 지하실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위층의 설교단에서 목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사가 되는 법을 배웠다.“내게 가장 훌륭한 코치는 함께 교회에 있던 흑인 목사님들이었어. 낮에는 버스 기사로 일하고 토요일이면 건물 구석의 작은 교회에서 설교하는 목사님들 말이야. 그분들은 보통 백 명 남짓한 신도들 앞에서 말하는데, 이야기를 전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어. 설교자들은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지를 잘 알아. 그걸 그저 듣고, 보는 것만으로 많은 걸 배웠지.”
그 후 그는 스물여덟 살 때 하버드 로스쿨에서 배운 것을 제대로 펼칠 기회를 만난다. 당시 오바마는 하버드 로스쿨의 법률 학술지 「하버드 로 리뷰 Harvard Law Review」의 회장이었는데, 연례 만찬에서 하원의원 존 루이스를 소개하는 일을 맡았던 것이다. 존 루이스는 흑인 민권 운동의 아이콘이었고, 오바마는 그를 어릴 때부터 동경해왔기에 그를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는 몇백 명 앞에서 5~7분 정도의 간단한 연설을 했다. 연설은 성공적이었다.
오바마는 점차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기 시작했고, 그 후 10여 년 동안 목소리를 다듬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 재직할 당시 시카고대학교 로스쿨에서 헌법, 시민권, 투표권에 관한 강의를 했던 경험도 그중 하나였다.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편안하게 대화하는 법을 배웠지.”
그리고 2000년에는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이는 그가 유일하게 패배한 선거였다. “처음 하원의원 선거운동을 할 때 나는 이야기를 풀어놓기보다 논점이나 사실, 정책을 나열하는 데 집중했어. 너무 추상적이고 어려운 내용이라 말은 항상 장황해졌지. 한마디로 경험이 부족했던 거야. 낯선 사람들 앞에서 즉흥적으로 연설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어.”
그로부터 4년 후인 2004년, 오바마는 그를 전국적인 스타로 만드는 결정적인 기회를 맞이한다.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의 기조연설을 맡은 것이다. 나는 당시 선거운동 자원봉사 차원에서 민주당 전당대회의 연설문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 기조연설자로 나선다는 소식에, 그가 누구인지 보려고 대회장으로 나갔다.
버락 오바마는 미소 띤 얼굴로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며 무대에 올랐다. 마이크를 조정한 후 그는 대회장의 사람들과 집에서 지켜보는 수백만 명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제 아버지는 케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염소를 몰고 초라한 양철지붕의 판잣집 학교에서 공부했지요. 아버지는 미국에 와서 공부하던 중에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케냐와는 반대편에 있는 캔자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지요. 두 분은 제게 ‘축복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아프리카식 이름, 버락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관용과 포용의 나라 미국이라면 그런 이름이 결코 성공의 걸림돌이 되지 않으리라 믿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저는 제 혈통의 다양성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제 이야기가 더 큰 미국 이야기의 일부이며, 먼저 길을 닦아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이 세상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결코 쓰이지 못했을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군중은 그의 연설에 열광하며 환호했다. 16분 동안 이어진 연설에는 오바마가 수년간 터득한 스피치의 교훈이 전부 담겨 있었다. 그는 교회 설교단에서 배운 말하기의 리듬으로 일리노이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으며, 일방적으로 말하는 대신 청중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려운 용어나 정보를 나열하는 대신 더 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의 가치, 우리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설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그의 목소리는 점점 고조되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자유주의적인 미국도, 보수주의적인 미국도 없습니다. 오직 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입니다. 흑인의 미국, 백인의 미국, 라틴계의 미국, 아시아계의 미국도 없습니다. 오직 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입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소수자성을 약점으로 여기지 않고, 찬미하고 키워야 할 강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다양성을 위해 목소리를 보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미국이라는 나라에 자기 자리가 있을 거라고 믿었던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말라깽이 소년”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을.
이처럼 놀라운 오바마의 말하기에 대해 그의 보좌관을 지낸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수년 뒤 이렇게 평했다. “오바마가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정체성에 대해 깊이 숙고하지 않았다면 절대 그런 연설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자신이 살아온 궤적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죠.” 결국 오바마가 훌륭한 연설을 해낼 수 있었던 비결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데 있었다.
나의 출신과 배경을 자랑스러워하라: 오바마가 연사로 성장한 과정과 두려움을 극복한 용기를 살펴보면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말을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말하기 역시 기술이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 배울 수 있고 갈고닦을 수 있다. 그 시작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하는 것이 좋다.
나 역시 처음에는 스스로의 자격에 의문을 가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겪어온 이야기를 깊이 이해하고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 정의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진정한 내가 누구이며 내 인생의 이야기가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직시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를 느낀다. 가족을 위해 아끼고 절약하며 생계를 위해 투잡, 쓰리잡까지 하면서 자식들에게 대학 공부를 시켜주셨기 때문이다. 인내심으로 지도해준 멘토들에게도 큰 빚을 졌다. 그들은 새로운 시각에서 듣고 글 쓰고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중에는 오바마 대통령도 있다. 한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궤도를 지나온 내 인생을 돌아보면,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백악관에 들어가 대통령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일을 도왔다는 서사가 완성된다.
말하기의 본질을 파악하라자칫 대실패로 돌아갈 뻔한 나의 첫 번째 오바마 대통령 연설문 작업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오바마는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사이버 안보 체계를 전면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수년 전부터 미국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이 급증하고 있어서 대책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보고서가 완성되었고, 나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연설문 초안을 작성해서 백악관의 정책 전문가들에게 피드백을 요청했다. 그러나 수정안을 받아본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쓴 문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한마디로 끔찍했다. 누군가 보고서의 문장을 그대로 연설문에 붙여넣은 것이었다. 정책 전문가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럴 만도 했다. 어차피 보고서 내용을 발표하는 연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이 보고서 문장을 앵무새처럼 읽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막막해졌다. 당시 나는 백악관에 들어온 지 몇 주밖에 되지 않은 신입이라 정책 전문가들에게 대놓고 반박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결국 연설문을 담당하는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인 벤 로즈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이렇게 조언해주었다.“걱정하지 말게. 그냥 오바마가 해야 할 말을 쓰면 돼.”
그렇다. 대통령이 해야 할 말. 대통령은 연단에 서서 내가 쓴 문장을 한 줄 한 줄 읽어야 한다. 모든 단어를 또렷하게 발음하고, 연설을 듣는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만약 보고서에서 가져온 문장을 그대로 읊는다면 어떨까? 그야말로 재앙일 것이다. 결국 나는 정책 전문가들의 수정 사항을 대부분 무시한 채, 내가 대통령에게서 듣고 싶은 언어로 돌아갔다.
오바마는 그 연설문을 보고 사이버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어휘를 배워야 했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다만 당일 그가 한 연설에는 정부 보고서에서 그대로 가져온 문장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바마는 그 연설을 하기 위해 새로운 어휘를 공부했지만, 연설에서는 단순하고 간결하며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사용했다. 리더의 언어 말이다.
말하기는 연극과 닮았다: 오바마의 사이버 안보 연설문 수정 과정에는 우리가 말하기 이전에 반드시 고민해 봐야 할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말하기, 즉 스피치의 본질이다. 말하기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하기는 무엇이 아닌가’부터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먼저, 연설은 수업 시간에 제출하는 에세이와 다르다. 또한 뉴스 기사나 책과도 다르다. 사실 말하기는 연극과 가장 비슷하다.
프레젠테이션을 연극이라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떨리고 긴장돼 죽겠는데 연기까지 하라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행위는 어느 정도 연극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 말하기가 연극의 일종, 즉 퍼포먼스라는 점을 이해하고 말을 할 때 주도권을 놓치지 말자는 뜻이다. 이렇게 할 때 아마도 해방감마저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