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마이클 거베이스, 케빈 레이크 지음 | 흐름출판
스포트라이트
마이클 거베이스 외 지음
흐름출판 / 2025년 7월 / 272쪽 / 19,000원
1부. 당신은 FOPO인가?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 _ 인정과 찬사를 받기 위해 달려가는 삶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FOPO)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당신도, 나도, 세계적인 운동선수도, 예외는 없다. 위대한 예술가조차도 FOPO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FOPO의 힘에 맞서고 그것을 극복해낸 사람만이 비로소 진정한 거장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베토벤을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신이 선택한 존재’로 여겼다. 그의 음악은 클래식의 모든 장르를 변화시켰고 기존의 규칙을 깨부수며 인류 역사상 가장 숭고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런 베토벤조차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한 시간이 있었다. 그것도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는 경력이 정점에 오른 순간 사람들 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자신의 비밀이 밝혀지면 모든 것이 무너질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자신의 불우한 운명과 불공정한 세상에 맞서 싸운 예술가였지만, 이 한마디를 입 밖에 내는 것만큼은 두려워했다.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다.”
베토벤은 20대 중반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했다. 그는 청력에 좋다는 온갖 방법을 찾아다녔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베토벤은 자신의 청각 장애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괴짜 천재 예술가처럼 행동했다.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말해도, 소리에 대해 언급해도, 그는 마치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거나 멍하니 있다 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
베토벤은 청력 상실이 그의 음악, 특히 피아노 연주 능력에 미칠 영향에 대해 깊이 우려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었다. 당시 음악가는 귀족들의 후원에 의존해야 했다. 만약 그의 장애가 알려진다면 후원이 끊기고 음악가로서의 생명이 끝날지도 몰랐다. 하지만 더 큰 두려움은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그는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내가, 누구보다 완벽한 청각을 가졌던 내가, 이토록 치명적인 결함을 인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음악의 신 베토벤이었고, 음악의 신은 보통 사람들보다 음악을 더 잘 들어야 했다.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가 구축한 자신에 대한 이미지와 충돌했다. 베토벤이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정체성은 확고했다. 타인의 인정과 찬사가 그 기반이었으며, 그것은 그의 뼈와 살처럼 분명하고 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즉 그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바꾸기보다는 세상을 자신이 보고 싶은 방식대로 바꾸려 했다.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면서도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조차 두려워했으며 괴팍한 성격을 연기하며 세상과 단절했다. 결국 베토벤은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렀고 심각한 우울 속에서 자살까지 고민했다.
랍투스, 고독의 황홀경: 베토벤은 어린 시절부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버지 요한은 평범한 테너 가수였고, 알코올 의존증으로 음악가로서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꿈을 아들의 재능으로 이루려 했다. 베토벤의 재능이 점점 뚜렷해지자 요한은 아들이 유럽 최고의 음악가가 되길 바랐다. 베토벤은 일찌감치 깨달았다.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이루어내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는 그에게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와도 같았다.
그런 베토벤에게는 타인의 의견이 침범할 수 없고, 자기 의심이 들어설 틈이 없으며, 경제적 후원을 해주는 귀족들의 영향력조차 미치지 못하는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의 ‘내면’이었다. 베토벤은 음악에 완전히 몰입해 주변을 잊고 자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오롯이 자신의 세계로 사라지는 능력을 키웠다. 어디에 있든 상관없었다.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을 때든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에서 즉흥 연주를 하고 있을 때든 마찬가지였다.
전기 작가 얀 스와포드는 베토벤의 이런 상태를 ‘황홀경’에 비유하며 “그는 사람들 속에서도 고독을 찾을 수 있었다.”라고 묘사했다. 베토벤의 어린 시절을 후원했던 한 지인은 이 상태를 ‘랍투스(raptus: 라틴어로 ‘황홀경’)’라고 불렀다. 베토벤의 ‘랍투스’는 그의 가까운 지인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졌으며, 그가 내면으로 침잠할 때면 “오늘도 베토벤은 랍투스에 빠졌군.”이라고 말했다. 베토벤은 이 랍투스를 통해 내외부의 방해 요소를 차단하고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렀다. 타인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은 그만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며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가 랍투스에서 벗어나 다시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현실로 돌아왔을 때였다.
나에게 쏟아지는 시선과의 싸움: 베토벤은 마침내 자신의 청각 장애를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1802년 10월 6일, 동생들에게 절절하고 고통 어린 편지를 보내 자신의 상황을 토로했다. 이 편지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로 알려져 있다.
오, 나를 악의적이고 고집스럽고 인간을 혐오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나를 너무나 오해하고 있다. 나를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비밀스러운 이유를 당신들은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지만 그럴 때면 공포가 나를 엄습한다. 내 상태가 드러날까 봐 두려운 것이다. 나는 망명자처럼 살아야만 한다. 누군가가 멀리서 들려오는 플루트 소리를 듣고 감탄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 때, 또는 누군가가 들판에서 노래하는 양치기의 목소리를 듣지만 나는 전혀 듣지 못할 때, 그런 순간들은 나를 절망에 빠뜨렸다. 조금만 더 그런 상황이 계속되었다면 나는 내 생을 스스로 끝냈을 것이다.
우리는 인생이 밑바닥을 치거나, 고통이 극에 달하면 그때야 비로소 변화를 결심하게 된다. 베토벤에게도 극심한 고통이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는 베토벤이 바닥을 친 순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그 고통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집착을 내려놓고 자신의 예술적 사명을 받아들이는 전환점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베토벤은 자신의 청각 장애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예술적 잠재력을 온전히 펼치기로 결심했다. 편지 말미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삶을 끝내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를 붙잡은 것은 예술이었다. 내가 세상에 남겨야 할 작품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기에 떠날 수 없었다. 인내, 사람들이 말하듯 그것이 이제 나를 인도하는 길이며 나는 그 길을 따르기로 했다.
베토벤은 자신의 가장 큰 두려움을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그는 “모든 악은 신비로우며, 고립된 채로 바라보면 더 커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논의하면 더 견디기 쉬워진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 그것은 이미 극복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썼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나서 그는 자유로워졌으며, 타인의 평가를 관리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주도권을 되찾았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할수록 삶의 주도권을 잃는다: 베토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면의 진실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내면을 음악으로 표현하여 거장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베토벤은 비로소 거장이 되는 길을 열었다. 베토벤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오로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영역에 집중했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작곡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에게 몰두하자, 그는 마침내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었다. 베토벤은 이전에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음악 세계를 창조해냈다.
삶의 마지막 무렵, 청력을 완전히 잃은 베토벤은 인류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평가받는 마지막 교향곡을 완성했다. 1824년 5월 7일, 베토벤은 빈의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 열린 교향곡 9번 초연 무대에 10여 년 만에 섰다. 비록 귀가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자신의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실제로 단원들은 다른 지휘자의 지휘를 따랐지만, 베토벤은 작품에 대한 자신의 의도와 에너지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에게는 들리지 않는 연주였지만, 베토벤의 마음속에서는 누구보다 생생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연주가 끝난 후에도 베토벤은 여전히 관객을 등지고 오케스트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콘트랄토 가수가 다가와 그의 팔을 살며시 두드렸고 베토벤이 돌아섰을 때, 그는 환호하는 관중과 하늘 높이 흔들리는 손수건과 모자를 보았다. 비록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음악은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세상을 울리고 있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통제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집착할수록 정작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은 잃어버리게 된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는 순간, 그들의 포로가 되고 만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언제나 100%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싶다면,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 그것이 진정한 자유로 가는 첫걸음이다.
두려움의 메커니즘 _ 두려움을 통제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
본능적이고 필수적인 반응: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두려움 자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두려움은 본래 생존을 위한 진화적 적응 반응이다. 원시시대의 인간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외부 침입에 맞서야 했기에 집단에 소속되어 협력하는 것이 필수적 생존 방식이었다. 두려움은 생존에 유리한 전략이었다. 덤불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때 도망쳤는데 그것이 호랑이가 아니라 작은 동물이었다고 해도 손해 볼 것은 없었다. 그러나 위험 신호를 무시했다가 진짜 호랑이를 만난다면 생명을 잃을 위험이 있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집단의 규범에 맞춰 행동하는 것은 안전을 보장했지만, 집단에서 배제되면 생존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자연 상태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고독하고, 가난하며, 불쾌하고, 거칠고, 짧은 삶”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에 의해 인간의 뇌는 위협을 예민하게 감지하도록 설계되었고, 이 두려움의 메커니즘은 수백만 년에 걸쳐 깊숙이 각인되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유산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생존을 돕던 것이 족쇄가 되다: 두려움의 핵심 목적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시스템이 특정한 위협이 아니어도 반응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두려움은 고전적 조건 형성을 통해 학습된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 개들은 여러 차례의 반복 학습을 거쳐 반응을 보였지만, 인간은 단 한 번의 강렬한 경험으로도 깊은 두려움이 형성될 수 있다. 가령 중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발표하다 얼어붙었던 경험이나 거의 익사할 뻔한 경험 등은 단 한 번의 경험으로도 평생 가는 두려움이 된다. 진화적 관점에서 두려움을 빠르게 학습하는 것은 생존에 유리한 특성으로 자리 잡았고,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들이 생존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단발성 사건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반복된 경험에 의해서도 학습된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따돌림을 당한 학생은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직장에서 정서적 학대를 당한 직원은 권위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된다. 이처럼 두려움은 본래 생존을 돕기 위해 설계되었지만,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우리의 삶을 제한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두려움을 이해하고 그것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을 아는 것으로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첫걸음을 뗀 것이니까.
최고의 선수가 느끼는 공포: 현재까지 두려움 반응을 다루는 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심리 치료법은 인지행동치료(CBT)와 수용전념치료(ACT)이다. 특히 인지행동치료의 한 기법인 노출 치료(Exposure Therapy)는 심리학자가 안전한 환경을 조성한 상태에서 환자가 두려워하는 상황이나 대상에 점진적으로 노출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환자는 해당 자극에 대한 과민 반응을 줄이거나 궁극적으로는 공포 반응을 완전히 없앨 수도 있다.
나는 스포츠 심리학자로서 선수들이 이와 같은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투수와 이 과정을 함께한 적이 있다. 그는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 최고의 투수에게 수여하는 사이영상 수상자였고 경기장에서 누구보다 강인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남들의 평가와 비판에 대한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와 함께 체계적 둔감화를 진행했다. 이는 공포를 점진적으로 마주하면서 불안을 조절하는 치료법이다. 가장 먼저 나는 그가 두려움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이해해야 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당신에게 성공과 실패는 어떤 의미인가요?
- 야구는 당신의 정체성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나요?
- 작은 일에도 쉽게 흔들리나요?
-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걱정한 적이 있나요?
-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나요?
그는 신체적 증상과 정신적 증상을 모두 경험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투구 메커니즘을 분석했고 타자를 거를까 고민했으며 심지어 점심 메뉴조차 결정하기 힘들어했다. 그의 불안은 심리적 반응을 넘어 근육 경직, 땀 과다 분비, 심박수 증가 같은 생리적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그의 뇌는 과도한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했고, 그 결과 그는 자신의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체계를 잡아드릴 수는 있지만 결국 이 과정을 해내는 건 본인이에요. 만약 이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이신다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동기가 될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은 야구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에서 새로운 태도를 가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계세요.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더 가볍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경기를 즐길 수도 있어요.”
그러자 그의 표정은 한순간에 밝아졌고 눈썹이 올라가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며 말했다. “정말 가능할까요? 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까지 마운드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그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프로에 갓 입단했을 때였어요. 야구장이 거대한 캔버스처럼 느껴졌어요. 하얀 라인을 넘어 그라운드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게 사라지고 오로지 야구만 존재했어요. 그때 저는 제 기량을 100% 믿었고 머릿속이 맑았어요. 어떤 잡념도 방해도 없었어요. 팀원들과도 완전히 연결된 느낌이었고. 그때 야구가 너무나 좋았어요.”
나는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좋아요, 이제 당신에게 14살 난 아들이 있다고 상상해보죠.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가 다가와서 이렇게 물어요. ‘아빠, 정말 힘들 때가 있어요. 너무 벅차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그냥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어요. 아빠도 그런 적 있어요?’라고요.”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아들이 바라보면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상상해보기를 권하니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사이영상을 받은 그다음 해가 최악이었어요. 불안이 너무 심했죠. 마운드 위에서 5만 명의 관중이 나를 보고 있는데 그저 숨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