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다이어리
스티븐 바틀렛 지음 | 윌북
CEO의 다이어리
스티븐 바틀렛 지음
윌북 / 2025년 7월 / 368쪽 / 19,800원
1부 자기 자신
다섯 버킷을 순서대로 채우라어느 날 아침, 내 친구 데이비드는 자기 집 앞 정원에서 에스프레소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낡은 운동복 차림으로 조깅을 하던 한 남자가 땀에 흠뻑 젖은 채 데이비드가 앉아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는 숨을 고르며 데이비드에게 인사했다. 그는 자기가 우주선을 만들고 있으며, 원숭이의 뇌에 마이크로칩을 삽입할 것이고, 인공지능으로 구동되는 가정용 로봇을 만들 것이라는 둥 별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바로 일론 머스크였다. 이 남자의 정체를 모른다면, 근처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환자쯤으로 의심할 만하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깨닫는 순간 그 헛소리들이 갑자기 전부 설득력 있게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유가 뭘까? 일론 머스크는 ‘다섯 개의 내공 버킷’을 모두 채웠기 때문이다.
다섯 버킷의 합은 곧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의 총합이다. 버킷들을 얼마나 잘 채웠는가가 꿈의 크기, 설득력, 달성 가능성을 결정한다.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들은 다섯 버킷을 갖게 되기까지 최소 수년 많게는 수십 년이 걸렸다. 그 버킷은 다음과 같다.
★ 다섯 가지 버킷
나는 무엇을 아는가(지식)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역량)
나는 누구를 아는가(인맥)
나는 무엇을 갖고 있는가(자원)
세상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평판)
열여덟 살 때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나를 괴롭히는 고민이 한 가지 있었다. 상당히 도의적인 고민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회사를 잘 키워 부를 쌓는 것과 (내가 태어난) 아프리카로 돌아가 생명을 하나라도 더 구하는 것 중 어느 쪽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몇 년 동안이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뉴욕에서의 우연한 만남에서 구하게 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적 구루(스승)인 승려 라다나트 스와미가 개최한 행사에서였다.
구름처럼 모여든 청중을 향해 구루가 질문이 있는지 물었을 때 나는 손을 들고 질문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사업으로 성공하는 것이 진정 의미 있는 일인지 고민이 됩니다. 아프리카로 돌아가 생명을 구하는 쪽이 훨씬 고귀한 일 아닐까 싶고요.”그러자 그는 내 영혼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듯 뚫어지게 바라봤고, 한참을 침묵하다 말문을 열었다. “빈 버킷으로는 물을 부을 수가 없겠지요.”
10년이 지난 지금은 나 자신의 버킷을 채우는 데 집중하라는 게 무슨 뜻인지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내 안의 버킷을 먼저 채워야 뜻을 펼쳐 세상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큰 회사를 여럿 설립했고, 세계적인 기업 다수와 일해보았고,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수천 명의 임직원을 책임지고 있다. 많은 책을 읽었고, 세계적인 인사들과도 대화했다. 그 결과 내 안의 양동이는 가득 찼다. 이제 나는 충분한 지식, 역량, 인맥, 자원, 명성을 갖춰 자선 활동, 기부, 미디어 회사 설립, 학교 설립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원래 원했던 대로 전 세계 수백만 명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가능해졌다.
다섯 분야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를 채우면 다른 것도 잘 채워지며, 보통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로 차오르게 된다.지식 → 역량 → 인맥 → 자원 → 평판
일반적으로 사람은 학교에서 지식을 습득한 뒤 일하는 삶을 시작하고, 배운 지식을 잘 활용하면 역량이 된다. 그렇게 지식과 역량을 겸비하게 되면, 일을 할수록 남에게 가치를 전달하게 되고 인맥도 확장된다. 지식, 역량, 인맥을 확보하면 자원 접근성이 높아지고, 지식, 역량, 좋은 인맥, 자원을 갖추면 평판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
다섯 버킷과 상호 연관성을 따져보면, 첫 번째 버킷(지식)에 대한 투자가 수익성이 최고인 투자임이 분명하다. 지식이 차오르면 역량이 차오르고, 차오른 것들이 옆에 있는 버킷으로 계속 흘러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이해하게 되면, 당장 돈(자원)을 얻더라도 지식과 역량을 많이 쌓을 수 없는 일은 장기적으로 가치가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의식(ego)이다. 자의식은 대체로 논리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을 흐려지게 한다. 우리의 자의식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버킷을 건너뛰게 만드는 위험한 힘을 갖고 있다. 성공에 필요한 지식(버킷 1)이나 역량(버킷 2)을 쌓기도 전에 높은 보수(버킷 4)나 직책, 지위, 명성(버킷 5)이 따르는 자리를 찾아가도록 이끈다.
이러한 유혹에 굴복하는 것은 약한 토대 위에 커리어를 쌓는 것과 같다. 당장의 만족을 미루고 인내심을 발휘해 처음 두 버킷에 투자하지 않는 근시안적 결정을 하면 언젠가는 밑천이 드러난다.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할지, 어떤 일을 수락할지, 여가 시간을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할 때 지식을 바탕으로 역량이 생기면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처음 두 버킷을 먼저 채우면, 살면서 어떤 지진을 겪어도 흔들림 없이 오래 받쳐줄 견고한 기반을 다질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도 마음을 열어라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다: “사람들은 음악을 사랑한다. 고로 우리 사업은 계속될 것이다.” 세계 최대 CD 음반 매장 대표가 2층 발코니에서 분주한 매장을 내려다보며 했던 말이다. 몇 년 후, 그 매장은 문을 닫았다.
그의 말이 다 틀린 건 아니다.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CD를 사기 위해 비를 맞으며 한 시간 동안 이동해, 북새통에서 CD를 찾은 후, 결제하기 위해 줄을 서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는 고객이 원하는 것에 대해 오판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음악이었을 뿐 CD가 아니었다. 2003년 봄, 애플의 디지털 음악 플랫폼 아이튠스가 등장했다. 그동안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CD를 구매해왔던 고객들은 이제 원하는 음악을 편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당시 대표는 디지털 음악에 매우 냉소적이었다고 한다. 대표는 시장을 이해하지 못했고, 불법 복제가 만연하지만 사람들의 CD 사랑에는 직접적인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오판하고 디지털 음악 시장을 ‘애써 외면’했다고 한다.
1992년 당시 인텔의 CEO 앤디 그로브는 “모든 사람이 호주머니에 개인용 커뮤니케이터를 넣고 다니게 하겠다는 발상은 탐욕이 부추긴 헛된 꿈”이라고 폄하하며 분명히 다가올 미래를 애써 외면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전 CEO 스티브 발머가 “아이폰이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 가능성은 없다”며 애플을 비웃었을 때 그 또한 확실히 다가올 미래를 애써 외면했다.
열아홉 살 때 나는 어느 유명 패션 브랜드의 아름다운 런던 사무실에서 미팅을 했다. 2012년 당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미 소셜미디어가 확산되고 있었지만, 늘상 그렇듯 기업들은 기술 발전에 뒤처져 있었다. 그날 나의 임무는 그 브랜드의 마케팅디렉터에게 소셜미디어의 중요성을 인지시키고 브랜드의 소셜계정을 개설하도록 설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질타당하고, 조롱당하고, 무시당했다. 발표를 듣던 마케팅디렉터 얼굴에 황당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사람들이 게시물에 댓글을 달고 회사를 비판할 수 있다는 겁니까?”라고 물었고, “우리 브랜드가 바이럴을 타는 것은 원치 않아요. 어떻게 통제합니까?”라고 또 물었다. “지금 잡지 광고 효과가 잘 나오고 있어요. 소셜미디어는 너무 위험해요.” 그는 내 발표가 끝나기도 전에 회의를 끝내 버렸고, 내게 다시 연락하지 않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브랜드는 2019년에 파산 신청을 했다.
왜 ‘애써 외면’하는가: ‘외면한다’는 것은 ‘틀렸다’는 개념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는 자만심에 빠져 새로운 정보를 듣지도, 배우려 하지도 않고, 관심을 갖지도 않는 ‘태도’를 말한다. 사람들이 중요한, 그리고 잠재적으로 결정적일 수 있을 정보를 외면하는 이유는 ‘인지부조화’라는 심리 현상 때문이다.
인지부조화는 1950년대에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만든 말로, 생각과 행동이 상충할 때 사람들이 겪는 긴장 상태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흡연자로 사는 것은 부조화 상태에 해당한다. 흡연이 건강과 상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흡연자는 이러한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 흡연을 포기하거나 흡연을 정당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주 피우는 건 아니다’부터 ‘담배보다 몸에 더 해로운 것도 많은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좀 하면 안 되나?’에 이르기까지.
죽으면 죽었지 틀릴 수 없다: 인텔 CEO가 휴대폰에,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아이폰에 관해 언급했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위험하다. 이건 마치 관에 못 하나를 더 박는 것과 같다. 어떤 신념을 공공연히 밝히게 되면, 설사 그 신념이 분명히 잘못된 것일지라도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의 뇌가 쉼 없이 싸우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당을 찍겠다’, ‘이 동네에 집을 사겠다’, ‘위험성이 과장되고 있다’ 등 어떤 입장을 정해버리면, 우리는 그 결정을 저절로 정당화하고 합리화한다.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앞의 패션 브랜드 마케팅디렉터만 나를 무시했던 건 아니다. 소셜미디어 마케팅대행사를 설립하고 첫 삼 년 동안 공격, 질타, 비판받기는 내 일상이었다. 사람들은 우리 회사를 ‘기생충’이라고 불렀고, 우리 사업을 ‘반짝 유행’이라고 폄하하며 ‘몇 달 안에 파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놀랍지 않았다. 이러한 저격은 TV, 인쇄물, 라디오 등 ‘전통적인’ 미디어마케터들이 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우리는 성가신 존재, 즉 ‘마케팅 판에 굴러들어온 또라이’였다. 사실 우리가 무슨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저들이 소셜마케팅이 뭔지 몰랐을 뿐이다.
우리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 새로운 개념이나 기술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 나아가 그런 새로운 현상들로 정체성, 지적 능력, 생계 등을 위협받을 때 인지부조화를 느낀다. 그런데 그런 부조화를 완화하기 위해 도전에 귀 기울이고 수용하려 하기(lean-in)보다는 밖으로 내쳐버리고 공격하게 되는(lean-out) 경우가 많다. 당장은 기분이 괜찮을지 모르지만, 위기 상황에서 머리만 모래에 숨기는 타조는 잡아 먹힐 위험이 큰 법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중대한 혁신이 최초로 등장했을 때, 즉 그로 인해 사람들의 정체성, 지식, 이해 방식이 위협받았을 때 가장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나에겐 한 가지 믿음이 생겨났다. 어떤 신기술이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면 그 기술의 전망이 좋을 수 있으며, 새로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을 확률이 높고, 누군가 위협을 느끼고 있다면 혁신이 다가오는 신호라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수용적인 사람이 되려면: 교육 기업가 마이클 시몬스는 이런 말을 했다. “현재 40세인 사람이 20년 후, 즉 60세가 되었을 때 경험하는 변화의 속도는 지금의 네 배에 달할 것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1년 치 변화가 3개월 만에 일어날 것이다. 현재 10세인 사람이 60세가 되면 1년 치 변화가 단 11일 만에 일어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므로 인지부조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럴 때 즉각적인 자기정당화나 무시에 빠지기보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며,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부조화를 감수해야 한다.
인지부조화가 발생하는 순간 가장 중요한 자세는 섣불리 판단하려는 유혹을 자제하는 것이다. 섣부른 판단은 인지부조화의 상태에서 쉽고 빠르게 벗어나고 싶은 심리 작용이다. 새로운 것들은 수용하고, 공부해 보고, 솔직한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믿는 것을 왜 믿고 있는지,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내가 과연 무슨 말인지 알고 말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그냥 무시해버린 건 아닌지, 내 신념이 나만의 신념인지 아니면 나와 비슷한 부류들의 공통된 신념인지 등을 고심해 봐야 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애써서 더 수용하자. 우리의 지성이 도전을 받으면 더 수용하자.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면 더 수용하자. 그래야 더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다. 마음의 문을 닫으면 퇴보하게 된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의견을 회피하려 하지 말고 정면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사실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위험이다. 성공하려면 실패를 감수해야 한다. 박수를 받으려는 자는 손가락질도 감수해야 한다. 위험을 피해 살려고 하면, 인생 자체를 놓칠 위험이 있다.
2부 자기 서사
‘쓸모없는’ 것이 쓸모를 정의한다처음으로 마케팅 회사를 차렸을 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내 경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회사가 빠르게 성장했고, 창업 1년 만에 최대 고객사로부터 3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경험이 부족한 20세의 초짜 CEO에게 평생 본 적도 없는 그렇게 큰돈이 생기게 되면, 정말 어리석은 짓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정말 그런 짓을 저질렀다.
그 돈으로 일단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400평 넘는 대형 창고를 10년 계약으로 임차했다. 수백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넓은 면적인데, 우리 회사 직원은 달랑 10명이었다. 업무용 책상을 구입하기도 전에 나는 복층 공사를 했고, 그 공간에 직원들과 비디오 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룸을 만들었다. 게임룸에서 계단으로 내려오면 어쩐지 식상하단 느낌이 들어서 파란색 미끄럼틀을 타고 볼풀로 착지하도록 설치하는 데 1만 3,000파운드를 들였다.
책상이 도착할 즈음까지 나는 이미 농구 골대와 맥주 탭을 설치하고 음료와 간식으로 사내 스낵바를 충전했으며, 사무실 한가운데에 거대한 나무를 세우고 그 밖에 여러 유치한 구조물들로 사무실을 꾸몄다.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스물하나일 정도로 젊은 회사였지만 그 후 몇 년이 지나 우리는 동종 업계에서 가장 파괴력 있는 회사로도 우뚝 섰다. 매출은 수년 연속 연평균 200퍼센트 이상 성장했다. 회사 고객은 세계 최대 브랜드였으며, 내가 스물다섯 살이 될 무렵에는 직원 수가 500명 이상으로 성장했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획기적인 부분은 우리 회사에는 영업팀이 없었다는 점이다. 거대한 파란색 미끄럼틀 덕분이었다.
무슨 헛소리(뻥이나 과장)쯤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이다. 창립 초기 몇 년간 바로 그 거대한 파란 미끄럼틀이 미디어 홍보의 가장 큰 그리고 유일한 원천이었다. 우리 회사에 대한 기사를 쓴 주요 언론사, TV 채널, 블로그라면 모두 파란 미끄럼틀을 언급하거나, 관련하여 농담을 하거나 집중 조명했다. 창립 3주년이 될 때까지 기자들이 파란 미끄럼틀을 수백 번쯤 찍어갔다. 기자들이 취재를 오면 볼풀에 누워 있는 포즈를 하도 요청해서 직원들 사이에 농담거리가 될 정도였다. 인터뷰하러 기자가 리셉션에 도착하기라도 하면, 직원 중 누군가가 어김없이 외쳤다. “대표님, 어서 볼풀에 들어가세요!” 수많은 미디어에서 우리 회사를 취재하려고 줄을 섰고, 기사의 헤드라인에는 거의 항상 파란 미끄럼틀 사진이 실렸다. 어떤 기사에는 우리 사무실이 영국 내에서 ‘가장 쿨한 사무실’로 소개됐다.
돌이켜보면, 비록 한심하고 별 의도도 없었으며 유치했지만, 1만 3,000파운드를 써 파란색 미끄럼틀을 구입한 것이 회사 재무와 관련해 최고로 잘한 결정 중 하나라는 사실에는 창업 멤버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이 미끄럼틀의 유용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원래의 용도가 아니라 마케팅 메시지 전달을 위한 효과에 더 가까웠다. 파란 미끄럼틀은 ‘이 회사는 뭔가 다르고, 젊고, 파격적이고, 혁신적’이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외치고 있었다. 우리가 했던 그 어떤 마케팅 캠페인보다 더 크고 설득력 있게 회사의 정체성을 세상에 전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