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를 마주할 결심
스즈키 유스케 지음 | 밀리언서재
또 다른 나를 마주할 결심
스즈키 유스케 지음
밀리언서재 / 2025년 4월 / 232쪽 / 18,000원
1장 나를 버티게 해준 ‘또 다른 나’
하고 싶지 않은데,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속으로는 거절하고 싶은데, 겉으로는 웃으면서 부탁을 들어준다. 소중한 사람인데,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에 만나기를 거절한다. 이렇게 마음속에 서로 상반된 충동이 존재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며,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자기모순·자기혐오가 쌓이면서 ‘나 같은 사람은 행복해질 가치도 없다’라는 부정적인 신념이 생기는데, 이러한 심리를 ‘정체성 장애’라고 하기도 한다. 일관된 자신의 모습을 느끼지 못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말한다. 심한 경우에는 내가 ‘분열’된 것처럼 느껴진다. ‘라면이 먹고 싶지만 살찌면 안 되니 참을까?’와 같이 누구나 겪는 모순·갈등과 ‘자기분열’은 무엇이 다를까? 중요한 것은 갈등이 나의 의식 안에서 일어난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시소를 보고 있는 자신을 상상해보라. 라면을 먹고 싶은 충동은 ‘라면을 먹을까?’와 ‘살찌니까 먹지 말까?’라는 2가지 마음이 시소의 양 끝에 놓여 있는 것을 내가 파악한 상태와 같다. 내가 의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상반된 욕구가 솟구치며 갈등에 빠지는 것이다. 한편 내가 의식할 수 있는 범위 밖에서 일어난 갈등이란 시소의 반대편 자리에 정체불명의 감정이 올라타 요동치는 상태와 같다. 예를 들어 연인에게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헤어지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다는 공포에 사로잡히는 경우이다. 불현듯 튀어나온 감정에 혼란스러운 감각, 이것이 자기분열을 동반하는 갈등이다.
내 안에 살아 있는 또 다른 나그렇다면 나는 왜 분열한 걸까? 이것을 설명하는 단어가 ‘트라우마’와 ‘생존 전략’이다. 트라우마는 극심한 스트레스나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뒤에 나타나는 심리적·정서적 반응을 말한다. 트라우마는 강렬하고 부정적인 감정이나 기억, 신체 반응 등을 유발한다. 이런 감정이 남아 있으면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없다. 일상생활을 유지하려면 이 감정을 의식할 수 없는 곳에 가둬놓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벽’을 세우고 그 너머에 감정을 봉인한다. 벽 너머에서는 그 감정을 떠맡을 ‘또 다른 나’가 태어난다. 그리고 ‘본래의 나’는 괴로운 감정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보호받는다. 벽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나’를 ‘트라우마 반응 자아’라고 하자. 이것이 인간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중에 만들어낸 생존 전략이다.
나를 보호하려고 태어난 ‘또 다른 나’는 위기 상황이 끝난 후에도 내 안에 존재한다. 방대한 양의 감정과 함께 말이다. 스트레스 등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본래의 나’와 ‘또 다른 나’를 분리하던 벽의 힘이 느슨해진다. 예전에 가둬놓은 ‘위기’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깊숙이 봉인된 ‘또 다른 나’의 감정이 폭발한다. 그러면 ‘또 다른 나’의 감정이나 기억이 억제되지 못하고 새어 나오거나, 넘쳐흐르기도 한다. 이렇게 트라우마 반응 자아에 압도당하면 나를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만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화를 내거나 경주마처럼 전력 질주하는 ‘또 다른 나’에게 끌려 다니는 듯한 느낌의 정체와 이유가 바로 트라우마이다.
나에게 필요한 건 나 자신의 관심이다어찌할 수 없는 감정에 압도당해 괴로운 순간에는 내가 무엇 때문에 상처받았는지, 상처로 인해 내 몸과 마음에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살펴봐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관심’이다.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생각하다 보면 격렬한 흐름이 잦아들게 된다. 일반적으로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어른이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이성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감정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을 위험이 있다. 트라우마로 인한 감정은 일반적인 감정의 문제와 비교했을 때 고통의 크기와 대처법도 다르므로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2장 꾸역꾸역 삼키던 감정 그냥 흘려보내기
감정에 이름표를 붙이는 건 나 자신이다최근 연구에 따르면 감정은 신체 반응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신체 반응에 따라 감정의 강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슴이나 목 주변이 조이는 듯한 불쾌감이 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불안감을 느낀다. 이런 불쾌한 신체 감각은 가슴 한 곳으로 집중되어 ‘이건 불안이다’, ‘분노다’라는 이름표가 붙는다. 두려워서 심장이 뛰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 뛰는 신체 반응이 나타나니 ‘두려운’ 감정이 생겼다고 뇌에서 판단한다는 뜻이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과 같이 감정에 이름표가 붙기 전에 신체 반응이 따르는 강렬한 감정 상태를 ‘정동(情動, affect)’이라고 한다. 일시적으로 급격히 일어나는 감정을 말한다. 정동은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동물적인 신체 반응을 동반한다.
마음 가는 대로 내 몸이 따르지 않을 때최근 수많은 연구에서는 트라우마도 ‘마음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신체의 문제’로 바라보는 추세다. 충격적인 사건이나 스트레스를 겪으면 근육이 긴장되고 호르몬이 분비된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은 몸에 기억되었다가 ‘A라는 사건이 일어나면 B라는 신체 반응(정동)이 나타난다’는 일련의 흐름으로 재현된다. 이러한 신체의 기억을 ‘절차 기억’이라고 한다.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는 수준으로 신체에 스며든 기억이다. 그래서 트라우마는 이성이나 의지로는 통제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이 차에 기름을 넣으려 할 때 심장이 뛰는(정동) 경우가 있다. 심장이 뛰는 신체 반응을 뇌가 인지한 뒤 극심한 불안이라는 감정의 이름표를 붙인다. 기름 냄새를 맡고서 몸이 기억하는 공포(절차 기억)가 재현된 상황이지만, 반사적으로 나온 충동이라 자신도 왜 도망치고 싶은지 모른 채 두려워한다. 이것이 ‘트라우마 반응’으로 일어나는 감정의 특징이다. 이처럼 특정 상황에 의해 반사적인 감정, 신체 반응, 기억이 일어나는 것이 트라우마 반응의 기본 구조이다.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차단할 때 생기는 일들뇌는 전기회로와 같다. 큰 상처를 받은 경험은 전기 충격에 비유할 수 있다. 정교한 회로에 고압 전류가 흐르면 회로가 합선되어 망가져버린다. 따라서 합선을 막기 위해 차단기를 내리듯이 일부 뇌의 기능을 정지시켜 몸과 마음의 접속을 끊고 타인에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넘겨버리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타나는 것이 ‘해리’라는 현상이다. 네트워크의 중추인 ‘메인 인격을 담당하는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 네트워크를 분리하고 ‘보조 회로(부분)’를 만든다. 그리고 분리된 보조 회로 쪽으로 괴로운 경험에서 느낀 ‘아픔’의 충격을 흘려보내 처리한다. 힘든 일이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거나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도 해리에 의한 방어이다. 메인 인격이 ‘본래의 나’이고, 보조 회로가 ‘또 다른 나’이다.
아픔을 덜 느끼려고 잠시 덮어두는 것일 뿐해리에는 격리(해리성 기억상실)와 구획화(정체장애)가 있다. 격리는 ‘나’와 ‘세상’ 사이에 벽을 세우는 이미지와 같다. 의식을 멍하게 만들어 현실감을 줄이고 고통을 덜 느끼는 방어이다. ‘세상이 베일에 싸인 듯한, 내가 나인 것 같지 않은’ 감각이 느껴진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그때 일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뇌의 기능 일부를 중단해서 고통을 마비시킴으로써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구획화는 ‘내 마음속’에 벽을 세우고 ‘본래의 나’를 여러 구획으로 나누는 이미지와 같다. 괴로운 기억·감정이 생기면 ‘본래의 나’를 상처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그래서 ‘본래의 나’가 접근할 수 없는 구획을 만든 다음, 이곳에 분노, 슬픔 등의 감정을 몰아넣어 고통에서 벗어난다.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더 힘들다해리성 정체장애(다중인격)는 ‘구획화’에 해당한다. 겉보기에 정상적인 메인 인격은 ‘일상 담당 자아’, 강렬한 감정을 떠맡는 부분은 ‘트라우마 반응 자아’라고 한다. ‘일상 담당 자아’는 일상 기능을 수행하며 외상을 회피하고, ‘트라우마 반응 자아’는 외상과 관련된 강렬한 감정을 떠맡아 그 경험을 재현하거나 표출한다. 평상시에는 두 자아가 ‘격리’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과거의 트라우마 경험과 유사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트라우마 반응 자아가 격렬한 정동과 함께 등장한다.
이 칸막이 구조가 복잡한 정도에 따라 해리는 3단계로 분류된다. ‘제1차 구조적 해리’는 일상 담당 자아, 트라우마 반응 자아가 하나씩 있다. 평소 생활은 일상 담당 자아가 감당하고, 어떠한 계기로 하나의 트라우마 반응 자아가 나타난다. 지진을 겪은 후 미세한 진동만 느껴도 공황에 빠지는 증상이 여기에 해당한다. ‘단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불리는 상태이다. ‘제2차 구조적 해리’는 일상 담당 자아가 하나, 트라우마 반응 자아가 여러 개 있다. 예를 들어 괴로운 일이 생겼을 때, 괴로움을 경험하는 자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자아, 나를 보호해줄 누군가에게 매달리는 자아 등이 함께 나타난다.
평소에는 온화하다가 갑자기 분노가 폭발하거나, 주변의 기대에 지나치게 맞추려다 피폐해지는 이유는, 서로 다른 트라우마 반응 자아들의 등장으로 일상 담당 자아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성격 문제’, ‘감정 조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복합 PTSD’에 해당한다. ‘제3차 구조적 해리’는 해리가 진행되어 일상 담당 자아도 여러 개가 있는 상태이다. 이른바 ‘다중인격’이다. 일상적으로 다수의 인격이 나타나면서 다른 사람들도 알아차린다. 일상 담당 자아가 빈번하게 교체되면, 그 사이의 기억이 흐릿해져 스스로 해리 상태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또 다른 나’를 받아들이기애쓰다 지친다는 것은 ‘본래의 나’가 스트레스, 피로, 질병 등을 더 이상 수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일상에 필요한 에너지를 차지하기 위해 ‘본래의 나’와 ‘또 다른 나’가 쟁탈전을 벌인다. 트라우마 반응 자아가 안고 있는 괴로움을 자극하는 사건이 일어나면 ‘또 다른 나’의 힘은 세진다. 트라우마 반응 자아가 커지면, 그들이 안고 있는 괴로움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고, ‘본래의 나’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축소되어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이 구조가 ‘애쓰다 지쳐버린’ 근본적인 원인이다. ‘애쓰는’ 자아는 과거에 상처받은 아픔이 있는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태어났다. 두 번 다시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 ‘애쓰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는 한 내가 부정당할 위험은 줄어든다. ‘애쓰기’라는 방어책을 포기하려고 하면 엄청난 공포가 뒤따른다.
‘본래의 나’는 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벽 너머에서 ‘지금 더 잘하지 않으면 위험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에 순응해 애쓰다 보면 ‘본래의 나’가 갖고 있는 수용력은 줄어든다. 반대로 ‘본래의 나’가 더 크면 ‘또 다른 나’의 괴로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수용력이 있어야 편히 쉴 수 있고 고통도 적다. 쉬는 것이 불안하더라도 ‘본래의 나’의 수용력을 확보하기 위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각각의 존재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고통을 줄이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3장 애쓰지 않아도 소중한 존재
화내는 타인에게 휘둘린 기억평소에는 온화한데 가끔 분노를 폭발시키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불같이 화를 내는 순간은 ‘분노를 담당하는 자아’가 뇌의 조종석을 빼앗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분노라는 감정을 억누르는 배경에는 부모 등 타인의 분노에 휘둘려 깊은 상처를 받은 경험이나 자신의 분노로 소중한 관계를 망친 경험이 있다. 격렬한 감정 자체에 두려움을 느껴 자신의 감정에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어릴 때 어머니가 화를 내서 상처받은 사람이 있다. 그로 인해 분노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어 평소에는 분노를 표현하지 않고 억누른다. 그러다 직장 동료가 부조리한 행동을 하면 참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하고 만다. 그러고는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고 자책한다. 이처럼 분노의 감정으로 인한 상처는 복잡하다.
분노는 나를 보호하는 감정이다불같이 화내는 ‘또 다른 나’와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모든 감정에는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분노는 상대방이 경계선을 넘어왔다고 알려주는 감정이다. 불쾌한 어긋남이나 위험이 느껴지면 분노라는 감정이 생기고 거기에 맞춰 나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는 평소의 ‘나’는 부당한 취급을 받아도 반격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분노를 담당하는 ‘또 다른 나’가 등장해 위해를 가하는 타인에게 반격하고 ‘본래의 나’를 수호한다. 분노와 관련 있는 감정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생긴 감정이 부정적인 것이어도 억누르거나 없었던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분노가 발동했다면 우선 그 감정을 소중하게 받아들여 보자.
분노의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분노라는 감정은 외로움이나 수치심, 슬픔 등의 감정 표현으로 나타난다. 연인한테 메시지를 보냈는데 곧바로 답장이 오지 않아 슬픔을 느꼈을 때의 강도를 ‘3’이라고 해보자. ‘3’의 섭섭한 감정이 벽 너머의 자아에 의해 ‘100’으로 증폭되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증폭된 감정은 분노로 변해 ‘100’으로 되돌려주기도 한다.
관대한 사람은 몇 번 받아줄지도 모르지만, 받아준 ‘97’의 분노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부채’로 남아 있다. 이 부채가 쌓이면 ‘이렇게까지 화낼 일이야?’라며 부채액이 불어난다. 그런데 당신이 ‘그 사람이 날 화나게 했으니 이 정도는 화낼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한 이 분노의 격차를 깨닫지 못한다. 바로 여기에 소통을 막는 위험이 존재한다. 이 위험을 회피하려면 본래 느낀 ‘3’의 감정과 증폭된 ‘97’의 감정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체감상 분노는 ‘100’이지만, 본래 느껴야 할 분노는 ‘3’ 정도라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증폭된 분노는 스스로 해소하고, ‘3’만큼의 불만만 말한다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조금 어긋나도 맞춰나가는 관계분노를 지나치게 크게 터뜨리면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충격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3’의 과실을 ‘3’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만, ‘10’ 정도라면 몇 번은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97’이라면 힘들지 않을까? 내게 중요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과 맞지 않는 부분을 인정한다는 것이 괴로운 일이다. 그만큼 해당 부분을 지적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어긋남을 마주하고 서로 맞춰나가는 태도는 더 안정적이고 깊은 관계를 맺는 데 중요하다. 분노는 이렇듯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정보이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를 통해 상대와 관계가 더 좋아지려면, ‘본래의 나’의 분노와 ‘또 다른 나’로 인해 증폭된 분노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적절한 방법으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느라 버거운 사람상대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거나,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애쓰는 것도 트라우마 반응의 일종이다. 나의 안전을 위해 사람들과의 싸움을 피하거나, 상대를 기쁘게 해주려고 필사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비위 맞춤 반응’이라고 한다. 비위 맞춤 반응을 하는 사람은 온화하고 사려 깊으며 친절한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겉으로는 온화해 보여도 늘 ‘소통의 정답’을 찾느라 내면은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내 진짜 모습을 알면 날 싫어할 거야’라는 생각에 자신을 낮게 평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답(기쁘게 해주는 방법)을 알 수 없는 상대’나 ‘꿈이 뭐예요?’라고 질문하는 사람을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