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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마다 최고의 나를 만난다

이하율 지음 | 라온북


나는 날마다 최고의 나를 만난다

이하율 지음

라온북 / 2024년 12월 / 288쪽 / 19,500원





Part.1 왜? 나만의 리미티드 에디션을 추구해야 하는가?



나만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깨워라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한눈에 봐도 기상천외한 장애물을 뛰어넘는 철인삼종경기였다. 그 대회의 이름은 ‘스파르탄 레이스’. 레이스의 참가자들은 어떤 장애물을 만나도 기죽지 않고 돌진했다. 그들을 보며 내 가슴도 두근거렸다. 만약 스파르탄처럼 나도 무적의 용기를 가진다면 앞으로 살면서 어떠한 장애물을 만나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들과 나 사이의 간극은 한없이 멀어 보였다. 나의 현실은 학창시절 늘 달리기 하위권, 게다가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스파르탄이 되고자 하는 나의 열망은 강렬했다. 매일 스파르탄들의 영상을 보며 그들과 함께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꿈꿨다. 내면의 불타오르는 열망이 “그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해!”라고 소리쳤다. 결국, 나는 대회 참가신청서를 쓰고, 20만 원이나 되는 참가비용까지 보냈다. 그때 내 귓가에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내 꿈을 위한 여행 피카츄!”라는 포켓몬스터 주제곡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젠 죽기 살기로 도전해 보리라 결심했다.

무모한 도전이 한계 없는 나를 만든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보다 먼저 그 일을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어떻게 준비했는지 후기를 샅샅이 찾아, 정보를 수집했고, 추천한 운동 중 나에게 효과적일 것 같은 운동을 리스트업했다. 곧바로 학원에 등록했고, 하루 운동 루틴을 짰다. 남은 시간은 100일. 일과의 시작은 새벽 5시, 눈을 뜨자마자 찬물 세수를 했다. 해가 뜨기 전 동네 뒷산으로 가서 3시간 동안 등산을 했다.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헬스장에 간다. 그룹 PT를 받고, 런닝머신을 1시간 달렸다. 그리고 줌바댄스를 갔다. “철인삼종경기에 웬 줌바댄스야?”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매일 반복된 일정 속에 흥 많은 나의 숨 돌리기 창구였다. 신나는 라틴음악에 맞춰 댄스 타임이 끝나면, 바로 복싱과 클라이밍 수업, 플라잉 요가를 갔다.

내가 줄줄이 소시지처럼 수업을 들었던 이유가 있다. 스파르탄 레이스는 기상천외한 장애물들이 많다. 마치 영화 실미도에 나올 법한 철조망 기어가기부터 시작해 흙탕물 잠수, 피라미드처럼 높은 정글짐 타고 오르기, 무거운 타이어 끌기 등 강한 체력은 기본이요, 근력과 민첩성이 고루 필요한 경기였다. 제대로 훈련하지 않으면 위험하기도 하다. 그래서 겁이 많은 나는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완주하자’라는 마음으로 더욱 철저하게 준비했다. 무모한 도전이었기에 무모한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버티기 어려울 때, 하나 더! 끝까지 해내는 힘:
어느덧 100일이 지난 후 나는 스파르탄 대회의 출발선에 서 있었다. 검은색 옷을 입은 덩치 큰 스파르탄들이 수백 명 모여 있었다. 그중 햇병아리 같은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출발 전, 우리는 함께 스파르탄의 구호를 외쳤다.“아우, 아우, 아우, 위아 스파르탄”

수백 명이 목이 터져라 외치니, 온몸에는 전율이 흘렀다. 이윽고 출발 총성이 들리자 “두두두두” 소리를 내며 일제히 한 곳을 향해 달려나갔다. 마음속으로 “나는 강한 스파르탄이다, 반드시 해낸다”를 외쳤다. 그럴수록 나의 눈빛도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러나 대회는 예상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영상 속에서만 보던 장애물을 실제로 마주하고 보니 더욱 거대했고, 난이도는 훨씬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내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장애물이었다. 160cm가량 되는 나의 키에 거의 3배 가까이 되는 벽을 한 번에 뛰어넘어야 한다. 다른 스파르탄들은 두세 번 만에 훌쩍 뛰어넘었지만, 나에게 그 장애물은 함락되지 않는 철옹성 같았다. 어느덧 서른 번째, 점프를 했지만 나는 그 벽을 넘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무식하게 벽을 향해 돌진하고, 부딪히고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입고 있던 옷의 무릎 부분이 찢어지면서 피가 났다. 다리를 절뚝이면서 또 다시 점프를 하려던 순간, 한 천사 같은 요원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팁을 툭 던져주었다.“자, 다른 스파르탄을 잘 관찰해보세요. 모든 것엔 다 요령이 있거든요!”



아무리 어려운 장애물이라도 뛰어넘을 방법은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 사람들이 장애물을 넘는 데 공통적으로 사용한 방법을 통해 나는 기적적으로 그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주변에 있던 스파르탄들이 나에게 열렬히 박수를 쳐주었다. 처음 본 누군가가 나를 위해 응원을 해주니 힘이 났다. 나는 다시 젖 먹던 힘으로 달려 나갔다. 어려운 장애물을 뛰어넘고 나니 비교적 다른 것들은 쉽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스파르탄 레이스의 화룡점정, 숯불 뛰어넘기까지 모두 뛰어넘고 나서야 무사히 나의 도전은 마무리될 수 있었다.

100일간의 무한 도전, 그 결과는 여자 참가자 중 1등!:
나는 전체 참가자 300여 명 중 17등. 그리고 여자 참가자들 중에서 1등을 했다. 100일 전의 나를 떠올리면 정말 기적 같은 결과였다. 걱정했던 엄마는 고생이 많았다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리고 그런 도전 정신과 끈기면 앞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며 칭찬해주셨다. 나는 무모했던 도전을 무한도전으로 변화시키며, 사람은 간절한 열망만 있다면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핍은 성장의 도구, 최고의 나로 업그레이드시킨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데, 왜 같은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지?:
중학교 때부터 키워온 꿈, 패션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나는 미대에 진학했다. 새내기 땐 대학 캠퍼스의 로망 MT, 체육대회, 동아리 활동 등으로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나 2학년이 되자 동기들은 하나둘 취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공모전, 자격증, 어학 공부 등 뭐라도 하나 빠지면,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마음이 늘 초조했다. 하고 싶어 한다기보단 하지 않으면 뒤처질까 봐 불안감에 하는 일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운명처럼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라는 책이었다. 20대 창창한 나이에 암 선고를 받은 뒤 버킷리스트를 적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80여 개국을 다니며, 72개의 꿈을 이룬 주인공은 다큐멘터리 감독, 영화배우, 작가이자 강연가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았다. 나는 그 영화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 김수영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고 난 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 번뿐인 내 인생,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10년 안에 내가 꼭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는 무엇일까?’

어쩔 수 없이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기보다 책 속의 주인공처럼 내 마음의 소리에 따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생처음 버킷리스트를 적기 시작했다. 그동안 마음속에 꽁꽁 감춰둔 본심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렇게 나다운 꿈을 적기 시작하니, ‘이렇게 꿈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백지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사람은 간절하면 무엇이든 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삶의 나침반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소심하고 겁이 많았던 내가 ‘혼자 세계 배낭여행’이라는 꿈을 적고 난 뒤 지금껏 하지 않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선,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주변에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서점에 갔다. 여행책 세 권을 사서 책이 너덜거릴 정도로 읽었다. 가장 가고 싶던 미국 뉴욕에 관한 여행책은 그동안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 재밌었다. 정말 뉴욕 척척박사가 될 정도로 공부하듯 읽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 가 보지 않았음에도, 왠지 ‘도전해 볼 만한 걸?’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두 번째 장벽도 있었다. 나는 영어회화 울렁증이 있어 외국인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그래서 영어 뉴스를 음악처럼 들었다. 아나운서가 말을 하면 앵무새처럼 똑같이 따라 읽었다. 화장실에 갈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잠들기 전까지 영어 뉴스를 들으며,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번화가 거리에 나갔다. 외국인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길을 알려주거나 기념사진을 찍어준다는 핑계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어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세 번째 장벽은 바로, 혼자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가족이나 친구와 여행 가는 것이 아니면, 멀리 나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겁이 많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작가님의 강연을 신청해서 혼자 들으러 갔다. 그곳엔 나처럼 혼자 여행을 떠나기 위한 여행 준비생들이 많았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 고민을 이야기하고, 서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공유하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그동안 혼자 여행에 관해 궁금했던 점을 질문했다. 직접 겪은 경험담을 들으며, ‘혼자서도 충분히 여행을 떠날 수 있구나’ 하며 열린 마음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니,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에서 얻는 것이 많았다. 마지막 장벽은 여행을 떠나기 위한 여행경비 모으기였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저녁 파트타임과 주말 풀타임 알바로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이 일을 통해 꿈에 그리던 뉴욕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적극적인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을 마친 뒤 나는 휴학을 했다. 자유의 몸이 된 뒤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경비를 모았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여행지,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물 밖을 나온 겁쟁이 개구리의 세계 배낭여행:
난생처음 혼자 비행기에 타니 다리가 벌벌 떨렸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울려서 12시간의 비행 동안 도통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러니 막상 뉴욕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공항 안은 평화로웠고, 엄청난 해방감이 찾아왔다. 예약해 둔 한인 민박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뉴욕 타임스퀘어로 향했다. 그날은 나의 22번째 생일이었다. 가장 아끼는 트렌치 재킷을 꺼내 입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처럼 거리를 걸었다.

상상 속에서 그리던 뉴욕의 상징인 노란색 택시와 빨간 버스까지 보니,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지도를 달달 외운 덕에 여행 기간 동안 자유의 여신상, 차이나타운, 월스트리트, 월드트레이드센터 등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다녔다. 게다가 준비했던 외국어 회화 실력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날은 미국의 기념일인 콜럼버스데이를 기념해 광장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인터뷰가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나도 참여를 해보았다. 큰 카메라가 여러 대라 떨리긴 했지만 회화를 연습한 덕에 영어로 의견을 이야기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것은 이색적인 추억이 되는 동시에, ‘이제 영어 회화의 장벽은 완전히 사라졌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한 성취감을 주었다.

첫 배낭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나는 또 다른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여행경비를 모으고, 떠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100일간의 시간 동안 내가 다닌 나라는 미국, 유럽, 터키,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호주, 캐나다 등 총 17개국 53개 도시였다. 그리고 여행 버킷리스트였던 알래스카에서 오로라 보기,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낙타 타기,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 융프라우에서 산악열차 타보기, 미국 놀이공원 정복하기, 영화 <해리포터>에 나온 해리포터 스튜디오 가보기,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 보기, 직접 만든 한복 입고 할리우드에서 대한민국 알리기까지 다채로운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모든 일이 다 순탄하게 흘러갔던 것만은 아니다. 영하 30도의 알래스카 오로라를 보려다, 맹추위에 동태가 될 뻔한 적도 있었고, 미국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총을 든 사람에게 위협을 당하기도 하고, 유럽에선 집시에게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이탈리아의 낡은 모텔에서 충전기를 꽂다 감전사고를 당해 머리가 몽땅 타버릴 뻔한 적도 있는 등 예상치 못한 사건은 언제나 벌어졌다. 그러나 그 덕에 미리 대비를 할 수 있는 준비력과 방어력도 생겨났다.

예상치 못한 상황, 침착하게 대처하면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내가 많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세계 미인대회를 마치고 이집트 카이로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던 중 나는 중간 경유지인 도하에서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것도 불과 2분 차이로 말이다. 나는 혼돈의 카오스에 빠졌다. 눈앞이 깜깜했다. 비행기 탑승구는 막히고 항공 승무원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국제 미아가 되다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문득 세계 배낭여행을 할 때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언제나 발생하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라는 말처럼 침착하게 대처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다. 앞으로 이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지에만 집중했다. 항공 창구에 가서 직원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더욱 심각했다. 비자가 없어 공항에 24시간 이상 머무르면 안 된다고 했다. 게다가 한화로 약 200만 원이라는 돈을 주고 티켓을 다시 사야 했다. 이 머나먼 중동 국가에서 국제미아가 된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 주문을 외우듯 “잘되고 있어, 더 좋아지려고 그러는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분명 어려운 상황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마음이 점차 편해졌고, ‘이 순간도 내 삶의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때부터 신기하리만치 문제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 기적처럼 항공사 직원분께서 따로 추가금 없이 다음날 비행기 티켓을 구해주셨고, 하루 동안 타국에 머물러 있으려면 보증서가 필요했는데, 그 보증서를 구입하는 것까지 친절하게 도와주셨다. 덕분에 나는 순식간에 국제 미아에서 ‘자유로운 배낭여행자’로 바뀌었다. 배낭여행 시절의 경험을 되살려 공항 근처 숙소를 잡았고, 하룻밤을 묵으며 야무지게 도하를 구경했다. 처음 간 도하는 예전에 월드컵이 열렸던 곳이라 그런지 관광할 곳도 많았다. 원래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도시를 구경하고 나니, 이 모든 해프닝이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우리가 만나지 못한 우물 밖 세상은 너무나도 넓다!:
10년 전, 만약 내가 그 책을 읽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 나는 우물 안에서 안주하며 우물 밖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모른 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내 안에 꽁꽁 숨겨진 용감하고 대담한 면을 발견하는 것만큼 재밌는 일은 없다. 겁 많던 내가 이제는 전 세계 어디라도 갈 수 있게 되었다. 나이키의 슬로건인 “Just do it!”이라는 말처럼 당신 안에 있는 열망을 실현할 행동을 시작해보자. 인생은 내가 아는 만큼 보이고, 발로 뛴 만큼 펼쳐진다. 어제와는 조금 다른 행동을 시도할 용기만 있다면, 앞으로는 지금껏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도전하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기 응원력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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