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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 가세요, 런던의 심리상담실

인이이 지음 | 이든서재


잠시 쉬어 가세요, 런던의 심리상담실

인이이 지음

이든서재 / 2025년 4월 / 288쪽 / 18,800원





CHAPTER 1. 불안과 우울을 직면하라



최고의 효율을 위해 질주하는 남성 _ ‘효율’이라는 말로 자신을 옭아매지 마라


내가 소속된 상담실은 런던에서도 상담비가 비싼 센터 중 하나로, 유명한 투자은행과 하이테크 기업을 포함한 많은 대기업이 사원들의 심리상담을 지정한 곳이다. 이런 환경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들 눈에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매일 만났다. 그리고 오늘의 내담자도 그중 한 명이다.

얼핏 서른 정도로 보이는 그는 혹여나 머리카락이 한 가닥이라도 삐져나올세라 가지런히 빗어 넘기고, 잘 단련된 몸에 고급 맞춤 양복을 입은 전형적인 엘리트 직장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가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이렇게 묻는 게 아닌가. “박사님, 상담을 10분만 일찍 끝내줄 수 있어요? 회의가 있는데 늦을까 봐 걱정돼서요. 오늘 박사님과 상담하려고 새벽 조깅도 뺐다니까요. 제게 40분이나 할애해 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그럼, 오늘 상담도 ‘빨리 감기’ 모드로 진행하기를 바라시나요? 불안해 보이셔서요.” 나는 농담 삼아 답하며 궁금한 점을 물었다.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제가 불안해서 찾아온 걸 어떻게 아셨어요? 정말 너무 바빠서 불안할 틈도 없을 정도라니까요. 제 증상 좀 빨리 치료해 주세요. 상담 한두 번 받으면 되겠죠?”“불안 증상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오셨으면서 또 불안 때문에 상담 횟수를 8회에서 2회로 줄이자는 말씀이네요. 자신에 대한 인내심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근데 정말 인내심을 가질 시간이 없어요! 저는 회사 관리직 중에 유일한 중국인이에요. 완벽하게 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요. 이 불안 증세가 저를 ‘귀찮게’만 안 했어도 심리상담 같은 거에 시간 낭비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남성은 심리상담을 진행하는 것 자체를 ‘시간 낭비’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저는 노력만 하면 뭐든 최고로 해낼 수 있다고 믿어왔어요. ‘최고만이 가질 만한 가치를 가진다’라는 게 제 인생의 신조였죠. 저는 어릴 때부터 최고로 손꼽히는 학교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받았고, 전액 장학금을 받고 영국 최고의 대학에 입학했어요. 지금 제가 받는 급여도 또래 중에서 가장 많고요. 최고의 모습으로 살아내지 못하면 인생의 패배자라는 기분이 들 것 같아요.”“그럼 항상 ‘이기는 인생’에 대한 대가는 생각해 보셨나요? 모든 결정과 행위에는 대가가 따르죠. 불안도 일종의 대가라고 볼 수 있어요. 정말로 ‘패배하지 않는 인생’을 위해 오랫동안 불안해야 하는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었나요?”

그는 잠시 멈칫했다. 이 질문은 그가 그린 인생의 청사진에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았던 듯, 한참 뜸을 들이며 고심하더니 내게 되물었다.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알고 있어요. 인생의 최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건가요? 이기고 싶다는 게 잘못인가요?”“그런데 인생에 승자 혹은 패자, 이 두 가지 선택지만 있다면 선택의 폭이 너무 좁은 것 아닐까요? 그리고 승패는 결과일 뿐이잖아요? 결과를 얻기 이전에 우리는 길고 긴 과정을 거쳐야 하고요. 인생은 영화가 아니라서 당연히 빨리 감기가 안 돼요. 그렇지 않나요? 제가 빨리 불안을 치료해 주기를 바라시지만, 치유 과정이 시작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고, 본인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이런 것들은 빨리 감기를 할 수가 없으니까요. 더욱이 승패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수도 없고요.”

깊은 생각에 잠긴 그를 보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상상도 하지 못할 노력으로 인생길을 걸어오셨을 거라는 짐작이 가네요. 그런데 말씀하신 최고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도 분명히 있었겠죠? 그때는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당연히 엄청난 좌절감을 느꼈죠. 노력도 부족하고, 아무것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느낌이었어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최고로 해낼 수 있을 거라고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그럼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가 무엇인지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본인에게 최고의 기준은 뭐죠? 그 기준은 어디서 온 건가요?”“최고의 기준이 어디서 나왔냐고요?”

그가 대답을 찾으려 고심했다.

“아마도… 남들의 평가?”

“그러면 그들이 내담자님의 불안을 책임질 수 있나요? 내담자님의 감정과 정신 건강을 지켜줄 수 있을까요?”

심리학에서 ‘최고’라는 단어는 비교의 의미를 크게 내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최고를 이루려고 노력할수록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않을 때 자기 부정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스스로 최고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 ‘실패의 여지가 없다, 착오는 허용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실패나 통제력 상실도 인생의 일부임을 알아야만 한다. 또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실패나 좌절은 더 나은 성장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미국심리학회가 2012년에 제안한 ‘외상 후 성장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실패와 좌절을 겪은 후에 오히려 자극을 받는다. 사지에 몰렸을 때 생존하기 위해 발동한 동기가 내면을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얻은 풍부한 성장 경험이 다음 좌절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길 바란다. 더불어 계속 승자가 될 필요도 없다. 인생은 시합이 아니라 성장의 경험을 하나씩 쌓아 만드는 견고한 보루와 같기 때문이다.

세 번째 상담이 진행되던 날, 그가 주도적으로 내게 물었다.

“더 이상 불안에 떨지 않고 제 감정을 책임지기로 생각을 정리했어요. 이제 방법을 알려주실래요?”“역시 ‘효율의 달인’답게 시간을 알차게 쓰시네요. 방법을 말씀드릴 순 있지만 지름길은 아니랍니다. 우선 새벽 조깅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조깅을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조깅과 제 감정이 무슨 상관이죠?”

그는 의아해하면서도 답을 이어갔다.

“조깅을 시작한 지는 5년 되었어요. 오전 7시부터 8시까지 빅토리아 공원에서 5km를 뛰고 샤워한 다음 출근해요.”“그럼 지난 5년 동안 계절의 변화에 주목한 적은 있었나요? 새싹이 파릇파릇 돋고 꽃이 활짝 피는 걸 눈여겨본 적이 있으신가요? 계절마다 공원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5km의 목표를 완성하고 나면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던가요?”“그렇게 말씀하시니 크게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그저 5km라는 목표만 생각했죠.”“맞아요. 결과에 모든 초점을 맞추면 주변 경치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진정한 삶의 경험도 부족해지죠. 인생은 답안지가 아니라서 정답이 없죠. 대신 종점에 도달하기 전에 더 많이 체험하고 경험해야 진짜 자기 인생의 트랙에서 뛸 수 있어요. ‘불안’은 우리의 내면이 자신에게 ‘액셀을 너무 세게 밟고 있으니, 가끔 브레이크도 밟아야 해.’라고 알려주는 것과 같아요. 만약 불안이 알려주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 거예요. 그럼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게 되죠.”

말을 마친 나의 시선이 창끝에 걸렸다. 때마침 정말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그도 내 시선을 느낀 것 같았다.“이제 알 것 같아요. 저는 ‘승리’를 제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었던 거예요. 이런 마음가짐은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요. 그럼 제가 생활 속에서 실천할 만한 방법이 있을까요?”“그럼요, 다양한 삶을 경험하려 노력하며 최대한 현재를 살아가는 거예요. 매 순간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하면서요. 오늘은 제가 일하면서 느낀 점을 나눠볼까 해요. 지난 몇 년 동안 상담을 하면서 비슷한 유형의 인생 승자들을 여럿 만나보았답니다. 이분들이 공통으로 보여준 인식의 패턴은 이랬어요. 무조건 노력할 목표를 찾아내야 하고, 적극적이고 발전적이어야 하며, 효율적이어야 하죠. 부정적인 감정이나 가라앉는 기분이 끼어들어서는 안 돼요. 그건 시간 낭비나 마찬가지죠. 운동과 일은 당연히 매우 중요하고요. 이들이 하는 가장 큰 착각은 ‘인생도 통제할 수 있고, 행복에도 기술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즐거움과 행복은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와야지, 화려한 명품을 걸치는 것쯤으로 여기면 안 돼요. 그러면 아무리 외부의 인정을 받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해도 내면의 평화를 잃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이에 대한 대가가 무엇인지는 스스로 잘 생각해 보세요.”

이 내담자는 8번의 상담 치료를 끝까지 이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이런 피드백을 주었다.

“심리상담은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었어요. 덕분에 제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분명히 알 수 있었어요. 이제는 삶에 더욱 밀착된 인생을 살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어요. 어제 저녁에는 동문회도 참가했어요. 예전에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동문회에서 여자 후배 한 명을 알게 되었어요. 큰맘 먹고 연락처도 달라고 했고요. 다음 주에 같이 영화 보러 가자고 할 건데, 너무 긴장되네요.”

“괜찮아요. 제가 팁을 알려드릴게요. 심리학의 인지 치료 요법 중 하나인데, 빠르게 긴장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랍니다. 긴장이 되면 일단 10초 정도 숨을 깊이 들이마셔요. 그리고 10초간 호흡을 멈췄다가 10초 동안 천천히 숨을 내뱉는 거예요. 이런 호흡 골든 트라이앵글을 10회 반복하면 대뇌에 충분한 산소가 공급돼서 평소 감정을 되찾을 수 있어요. 데이트는 즐거워야겠죠? 지금의 즐거움을 나누는 방법을 배워보세요. 앞으로 불안이 삶의 부담으로 느껴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상담은 이렇게 종료되었다. ‘불안’이라는 감정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잠시 공유할까 한다.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인생의 의미는 아니다. 인생에는 더 많은 즐거움이 담겨 있는데, 이기고 싶다는 마음에만 매몰되면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게 될 것이다. 결과에 집중하기보다는 과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야 더 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 Dr. Yin의 심리상담 TIP



? 불안을 개선하고 싶다면, 감정을 무조건 배제하기보다 일단 불안한 상태를 인정한 다음, 불안을 야기하는 이유를 내면에서 찾아보기 바랍니다.

? 숨 막히는 효율로 자신을 얽매지 말고, 삶에 여유를 가지세요.



? 매일 최소 15분은 자신의 감정과 대화하고 연결하는 데 할애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이렇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기분이 어땠지? 어떤 경험을 했더라?’ 여기서 포인트는 자신이 경험한 세부적인 내용과 과정이니, 작은 실수 때문에 자책하지 마세요. 그리고 최고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꼭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세요.

? 긴장될 때는 ‘호흡 골든 트라이앵글법’을 몇 차례 반복해 보세요.





CHAPTER 2. 감정은 포용이 필요하다



만인의 평가로 늘 눈치를 보는 여성 _ 수치심이 삶을 통제하게 두지 마라


혹시 살면서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한 것 같다.

? 다른 사람이 실망할까 봐 항상 불안하다.

? 다른 사람의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억지로 타협하는 일이 잦다.



이런 마음이 있다면 잠재의식에서 수치심이 작동 중일 수 있다. 심리학에서 수치심은 ‘자기인식’에 속한다. ‘자기인식’이란 일반적으로 스스로 타인과 다르다고 인식하는 감정을 뜻하며, 간혹 자부심 같은 긍정적인 감정도 있지만, 대부분은 수치심, 부끄러움, 질투심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포함한다. 우울증, 초조함, 섭식 장애 등 정신질환의 여러 증상이 수치심에서 비롯될 만큼 수치심으로 인한 영향은 부정적인 감정 가운데서도 가장 크고 오래 지속된다.

예전에 인도계 영국 이민 2세대 내담자와 상담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세련되고 일 처리가 능숙했으며, 높은 업무 효율과 뛰어난 능력으로 서른이 되기도 전에 금융회사의 고위 세일즈 매니저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추진력을 칭찬하는 한편, 전도유망한 사람이 인품까지 훌륭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가 상담을 의뢰한 이유는 다름 아닌 그 ‘훌륭함’ 때문이었다.

상담 첫날, 그녀는 몸에 꼭 맞는 정장을 입고 그에 어울리는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미소조차 세심하게 연습한 듯 온화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오랜 상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그녀처럼 완벽한 사람은 대개 과도한 긴장감과 관련된 문제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 상담실에 들어온 그녀는 바른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앉은 자세만으로도 나는 확신했다. 그녀가 다른 사람의 평가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나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여기서는 편하게 계셔도 돼요. 저는 당신을 평가하지 않는답니다.”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박사님이 보시기에도 제가 너무 긴장되고 강압적으로 보이시나요?”“솔직히 제겐 긴장하신 모습만 보이는데, 어째서 본인이 강압적이라고 느끼시는 거죠?”

“저희 직원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해요. 다른 팀의 매니저들도 제가 너무 강압적이어서 협업하기가 쉽지 않다고 그러고요. 사실 저희 팀은 엄청난 실적 압박을 받고 있어요. 그러니 실적을 채우려면 사람들의 사정을 다 봐줄 수가 없죠. 그런데 저는 또 이 상황들이 불안하고요.”나는 농담 섞인 말투로 물었다. “원래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부드러운 여상사’가 되고 싶었군요?”“맞아요! 전 직원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요. 그런데 저희 업계는 경쟁이 정말 치열하거든요. 승진하기 위해서는 더 단호하고, 더 적극적이어야 하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기분 나쁠까 봐 걱정이에요. 정말이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불가능한 것 같아요.”“저는 왜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한데요? 아시다시피 그건 굉장히 높은 기준이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이 있고, 그 잣대 또한 다 다르니까요.”“맞아요. 그런데 인도의 문화에서 여성은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거든요. 저희 부모님도 업무 능력보다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죠. 어릴 때부터 ‘네 주장을 너무 내세우지 마라, 그러면 사람들이 널 싫어한다.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다들 널 좋아하게 된다.’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말씀을 듣다 보니, 깊은 수치심과 낙담한 심정이 느껴지는 것 같네요. 어릴 때부터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만이 여자로서 최고의 미덕이라고 배워왔고, 또한 그것이 부모님께 인정받는 가장 익숙하고 빠른 길이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지금 스스로 노력하고 분투해서 승진의 기회를 잡았는데도 본인의 강인함과 결단력 때문에 오히려 인정받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 거죠. 그래서 수치심을 느끼는 거고요.”

나의 분석을 들으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나의 기대와 타인의 기대가 상응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 여성은 사회로부터 타인을 배려하고 친절하며 온화한 역할을 기대받기 때문에, 업무적으로 성취감을 느낄 때 자신의 역할과 타인의 기대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녀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박사님. 제가 생각해도 저는 자부심을 느낄 자격이 있어요. 최연소 고위 매니저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성과가 부정적인 평가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더 큰 수치심이 들어요. 제가 거둔 성과를 숨겨야 한다고 생각될 만큼요.”

어린 시절부터 그녀에게 주입된 ‘모두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라는 가치관, 그리고 성장한 뒤에 형성된 가치관 사이에 충돌이 생기면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편안하게 대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뛰어난 역량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녀는 업무적 성과와 회사에서 분투했던 노력이 남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요소가 될 거라는 생각에 더욱 초조해졌고, 자신이 이룬 성취까지 부끄러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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