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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유쾌한 반란

와다 히데키 지음 | 지니의서재


나이? 유쾌한 반란

와다 히데키 지음

지니의서재 / 2024년 11월 / 224쪽 / 17,800원





prologue 노화를 못 박아 버리는 나이의 주박



마음의 자유를 빼앗기는 순간


누구나 자신의 나이를 안다. 하지만 평소에 나이를 의식하는 일은 거의 없다. 새해가 밝거나 생일을 맞이했을 때 ‘아아, ○○살이 됐구나.’라고 실감하는 정도 아닐까? 고령자를 예로 들어보자. 한 사람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라며 자신의 실제 나이를 의식하며 살고, 한 사람은 나이를 잊고 좋아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에 푹 빠져서 산다. 누가 더 매일 즐겁고 활기차게 살고 있을까?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이다.

나이를 의식한다는 것은 실감이 나지 않는 사실을 굳이 꺼내 거기에 자신을 맞춰 생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삶은 매우 빡빡해진다.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삶을 사는 이유는 스스로 족쇄를 채우려고 하기 때문 아닐까? 자유를 속박하는 쇠고랑이나 족쇄를 마음에도 채워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나이란 아주 손쉬운 족쇄다. ‘일흔다섯이나 먹어서….’, ‘여든이 넘은 나이에 무슨….’이라는 말은 온갖 관심이나 소망을 닫아 버릴 수 있다. 마음의 자유를 빼앗으려는 수상한 ‘주술’인 셈이다. 그런 건 왜 생겨날까?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나이의 주박’이라는 말이다.

마음의 자유를 되찾아라


나는 이 책에서 나이의 주박을 벗어나는 간단한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롭게 살아야 기분이 좋고 편하다는 걸 깨닫는 일이다. 불편함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순순히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 간단한 방법을 사람들은 잘 실천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부자유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젊은 시절부터 이미 다양한 부자유를 습득해 왔다.

“눈치를 살펴라.” “남에게 폐를 끼치니 투정 부리거나 멋대로 행동하지 마라.” 어려서부터 이게 당연한 듯 배웠다. 그리고 세상의 상식이나 조직의 룰에 항상 맞춰 살아왔다. 그러나 살짝 어겨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 일도 아주 많다. 더욱이 이제 더 이상 구속하는 조직도 없고, 가족이나 회사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무나 책임도 없다. 집의 대출이며 자녀의 교육비, 혹은 지위에 맞는 성과나 실적은 머리에서 떨쳐 버려도 된다. 과거와 비교하면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자유를 충분히 즐기도록 허용되는 나이다. 그런데도 자꾸 나이가 의식된다면, ‘그렇구나, 무슨 일을 해도 괜찮은 나이구나.’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명심하자. 바로 지금이 마음의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 나이라는 걸 알기 바란다.



1장 실제 나이? 의미 없다



실제 나이는 의미 없는 시대


우리가 실제로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일본인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만화 <사자에 씨>의 배경은 1940년대 중반의 도쿄다. 그 당시 일본인의 평균 연령은 20대 후반이었다. 참고로 1955년의 평균 연령은 대략 24세다. 1980년의 평균 연령 역시 30세를 살짝 넘은 정도다. 지금은 어떨까? 2020년의 데이터를 보면 49세다. 세계적으로 봐도 최고령 평균 나이다.

평균 연령이 젊은 사회에서는 그 나이를 넘으면 노인 취급을 받는다. 평균 연령이 20대 후반이었던 시대에는 30세를 넘으면 아저씨 아줌마였고, 50세를 넘으면 노인으로 분류되는 게 지극히 당연했다. 그런데 평균 연령이 50세에 가까워진 지금 시대에 그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

실제로 아이돌 예능인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 전 쟈니스 그룹 ‘아라시’ 멤버들의 평균 나이는 40세를 넘었다. 나이만 보면 옛날에는 모두 중년의 아저씨들이겠지만, 지금의 일본인 평균 연령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아이돌 세대다. 그들은 아직 젊고, 옛날 기준으로 보면 20대 젊은이로 통하는 세대나 마찬가지다. 아이돌 그룹인 아라시가 40대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 사실이 놀랍다면 ‘실제 나이는 이제 의미가 없는 시대구나.’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나도 사람들이 아직 60대로 보던데?’ ‘나도 여든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라.’ 요즘 이런 경험을 가진 고령자도 많다. 젊은 외모나 인상이 실제 나이보다 먼저다. 젊게 보인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 기쁜 일이다. 그렇게 보이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뻐하면 된다. 나이의 주박을 훌훌 털어 버리고 마음의 자유를 되찾은 사람이 긴 고령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지금은 그런 시대라는 걸 명심하자.

노인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지금의 70대와 80대들에 대해 대부분 잊은 사실이 있다. 이 세대 남성들 대부분 경제 성장이 절정에 달했던 쇼와 말기에 현역 샐러리맨들이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는 그야말로 샐러리맨들의 천국이었다. 몸에 명품 정장을 두르고 고급 자동차를 골라 타며 고급 레스토랑이나 클럽에 드나들었다. 일 때문에 걸핏하면 해외에도 많이 나갔다. 실질적인 임금이 오르지 않고 불경기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금 시대에 비하면 흥청망청 돈을 쓰며 활력이 넘치던 시기였다.

그때 한창 일하던 40대들이 지금의 70대와 80대다. 그랬던 세대가 이제 나이 들었으니 얌전하게 살라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으니 무조건 절약을 외치며 조용히 살 수 있을까? 늦은 시간까지 지루한 방송이나 틀어 놓고 잠자코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삼시 세끼 집에서 꼬박꼬박 부부가 마주 보고 앉아 먹을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은 답답하고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여든이니 참아야 한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마음은 ‘내 맘대로 살고 싶어!’라고 외치고 있을 것이다.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면 된다. 애초에 80대가 되었다고 쇼와 세대의 화이트칼라를 노인이나 고령자라는 말로 묶어 버리는 건 억지이다. 그러니 나이의 주박을 훌훌 벗어던지자.

마음의 노화가 느껴지지 않으면 청춘이다


평균 수명이 높아지니 엄청난 장점도 생겼다. 사람들은 의외로 이 장점을 간과한다. 그건 무슨 일을 시작하든 ‘이미 늦었어.’라거나 ‘지금 시작해 봤자 되겠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평균 수명이 60대였던 시대에는 대부분 ‘30대 안에’, 혹은 ‘40대까지는’이라는 기한을 두었다. 커리어를 쌓거나 나아갈 길을 정하는 중요한 길목에서 ‘25세까지는 정해야지.’라는 식으로 나이 제한을 두는 사람도 있었다. 고작 30대나 40대에 ‘지금부터 하면 늦어.’라거나 ‘조금 더 젊었더라면’이라며 일찌감치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70, 80대에도 아직 건강한 사람이 당연해지고 일도 70대까지 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은 시대가 되니 나이 제한의 의미가 없어졌다. 적어도 전보다는 훨씬 뒷세대로 늘려도 될 것 같다. 실제로 요즘은 60대 후반이 되어서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는 사람도 많다.

취미나 배움의 세계는 더 자유롭다. 70세나 80세가 넘는 나이에 악기나 어학, 그림을 배우는 사람들도 많다. 뇌가 건강하니 의욕이나 호기심만 잃지 않는다면 어떤 분야든 가능하다. 이직이나 창업 역시 40대나 50대에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다. 100세 시대 세상인데 아직 절반밖에 오지 않은 나이가 어떻게 늦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현실은 비록 나이가 들었다 해도 마음의 자유를 잃지 않은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을 방증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고령자가 이렇게 두꺼운 연령층을 형성하고 난 뒤부터는 조금씩 나이의 주박이 약해지고 있다.



2장 ‘마음의 노화’란 무엇인가



리스크를 회피하면 자유를 뺏긴다


흔히들 중국에는 자유가 없다고 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의 탄압으로 언론이나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것처럼 외부에 비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일본은 그래도 자유로운 축에 속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럼 마음의 자유는 어떨까. 우리는 눈치 살피랴, 상식 있게 행동하랴 등등. 온갖 마음의 족쇄를 차고 있다. 그리고 그 족쇄가 알게 모르게 자기 마음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중국에 언론의 자유는 없을지언정, 나라가 하는 일을 비판하는 소리는 있다. 리스크가 따르긴 하겠지만 일본인만큼 순종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는다. 그러나 주변을 배려하는 행동이 몸에 배면 마음의 자유 영역은 좁아진다. 그리고는 참는 게 차라리 편하고 안전하다고 다독였다. 나이의 주박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라며 자유분방하게 행동하기보다는 ‘이제 먹을 만큼 먹었으니까.’라며 나이에 맞게 행동하려고 한다. 그래야 주변에서도 너그럽게 봐주고 친절하게 대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음의 안정감이 자유보다 더 중요해진 것이다. 누구나 자유를 추구할 때는 패션 하나 갖고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손가락질받거나, 나이 들어 그게 뭐냐며 바보 취급당할 리스크를 안고 있다. 실패할 가능성을 항상 품고 다니는 것이다. 그런 리스크를 회피하려 할 때 마음의 노화가 시작된다.

나이를 신경 쓰면 마음의 노화가 시작된다


나이에 관한 생각이 머리에 자리 잡은 고령자는 만약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데도 힘이 넘치거나 매일 즐겁고 자유롭게 사는 친구를 보며 ‘나랑 나이가 비슷할 텐데 어쩜 저렇게 힘이 넘칠까?’라며 부러워한다. 자신도 뭔가 도전해 보고 싶지만 ‘이제 와 무슨 수로?’, ‘안 될 텐데.’라는 생각에 발목이 잡혀 포기한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자꾸 나이가 머리에 아른거리니 단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대방이나 주변 사람들의 나이도 따진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을 보면 ‘저분은 나보다 한 살 많으니까 85세일 텐데.’라며 자신의 나이와 대조하여 생각한다. 마치 나이에 맞게 늙어가지 않는 사람을 특별 취급하는 듯이 말이다. 마음이 나이에 묶여 있어 생각이나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라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 나이가 같아도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은 어떨까? 그런 사람은 뭔가 떠오르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해 보고 싶은 일을 꼭 한다. 나이는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지 오래다. 가끔 몸이 힘들면 ‘역시 나이가 들었나 봐.’라고 생각할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 즐거웠다.’라며 만족스러워 한다. 마음이 자유로우니 나이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어느 쪽 삶이 고령기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지, 자유롭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지, 결과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지 않은가.

상황에 맞게 나이와 어울리는 법


자꾸 나이를 의식하지 말라는 데는 더 단순한 이유가 있다. 머릿속으로 나이를 생각하지 않아도 어차피 언젠가 깨닫는 날이 오기 때문이다. 죽는 순간까지 건강한 사람은 없다. 85세 정도의 나이가 되면 체력도 빠르게 떨어지고 운동 기능도 퇴화한다. 어찌어찌 할 수 있었던 일도 점점 못 하게 된다. 걷거나 일어서는 것조차 마음처럼 되지 않고 자꾸 힘에 부친다. 그런 상황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나이 생각이 난다. ‘내가 몇 살이더라. 아, 벌써 여든일곱이구나. 몸이 안 따라 주는 것도 어쩔 수 없지.’라며 납득한다.

이럴 때 나이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쯤 되면 차라리 편한 삶을 택하는 게 좋다. ‘편하게 살자. 못 하겠으면 남의 손을 빌리거나 부탁을 하자. 할 수 있는 일만 즐기면서 살자.’ 이렇게 내려놓으면 마음이 자유로워진다. 남에게 부탁하지 않겠다. 나이에 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자신을 밀어붙이게 된다. 그것 또한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다.

그렇게 될 바엔 ‘이제는 노력 안 할래.’라며 내려놓는 게 편하다. 몸이 생각대로 따라 주지 않아도 음악을 듣거나 노래하거나 책을 읽을 수는 있다. 뇌만 건강하다면 앉거나 누운 채로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오디오북도 많이 나와 있으므로 읽고 싶은 책을 헤드폰으로 즐길 수도 있다. 먼 거리가 아니더라도 다리나 허리를 단련하기 위해 좋아하는 장소나 코스를 지팡이라도 짚고 천천히 산책하는 것도 좋다. 좋아하는 카페나 간식 먹을 수 있는 곳을 코스에 넣고, 거기에 앉아 한숨 돌리는 재미를 기대해도 좋다. 절대 무리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무궁무진해진다.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자유를 지킬 수 있다면, 나이를 거스르지 않고 늙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생도 전혀 나쁘지 않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어울리면 되는 것이다.



3장 마음은 신체보다 빨리 늙기 시작한다



전두엽을 살려야 설렘이 살아난다


뇌도 신체의 일부라 나이가 들면서 노화한다. 뇌 중에서도 특히 전두엽이라 불리는 부위는 노화가 빨리 시작되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40대쯤부터 기능이 점점 떨어진다. 전두엽이 노화하면 감격하거나 감동받는 감정의 변화가 적어진다. 쉽게 감정의 노화라고 하는데 바깥세상에 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면 호기심이나 동경 같은 마음의 설렘도 점점 사라진다. 설렘이 사라지면 여행을 하든 맛집을 가든 자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도 줄어든다. 시간이 없다는 둥 피곤하다는 둥 자꾸만 변명을 대기 시작한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지지만 사실 가장 큰 원인은 설렘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전두엽이 젊었을 때는 ‘와, 가고 싶다.’라며 설렘이 폭발해 뒤로 미룬다는 핑계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설렘이 줄어들면 마음의 노화가 시작된다.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결과가 보장되어야 안심하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 설렘을 느끼는 전두엽 기능이 떨어지면 아무래도 익숙한 세계를 고르게 된다. 마음의 노화는 점심 메뉴에도 나타난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점심 메뉴가 굳어진다. ‘○○집의 라멘’이나 ‘□□ 집의 튀김 메밀국수’라는 식으로 메뉴가 정해지고, 다른 가게에는 잘 가지 않는다.

실패를 창피해하는 건 호들갑이다


해외 여행하기, 만져본 적도 없는 악기 연주에 도전해 보기 등 무슨 일이든 즉흥적으로 기분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이 젊은 사람이다. 즉흥적인 기분으로 움직일 때도 마찬가지다. 고령이 되면 아무래도 시간이 여유롭다. 현역 시절처럼 바빠서 못한다는 제약은 없다. 지금까지 자신을 가로막은 제약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일을 해도 되는 시기다.

만약 실패했다 해도 크게 타격을 받는 일이 있을까? 해외에 나가면 음식이 맞지 않아 끙끙 앓아누울 수도 있다. 피아노를 배워 봤는데 초등학생과 같이 발표회에 나갔다가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겨우 그 정도 아닐까? 일은 뒷전에 두고 놀기만 한 것도 아니고, 고작 ‘나이를 좀 생각해.’라며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다.

70, 80대씩이나 되어 아이들처럼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이 젊다는 뜻이다. 창피하기는커녕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해도 좋다. 실패하더라도 웃고 넘길 수 있는 나이다. “자꾸 나이를 까먹네.”라고 웃어넘기면, 주변 사람들도 “나도 도전해 볼까?”라며 재밌어할 수 있다. 나이가 들었을 때는 오히려 실패를 즐기자는 식으로 마음을 내려놔야 인생이 유쾌해진다. 젊은 시절에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제약으로 우울해지지 마라


생각이나 공상의 자유까지 스스로 멀리하면 무엇이 남을까? 몸이 불편해지면 행동반경도 점점 좁아진다. 그러면 마음은 더 울적해진다. 외부에서 받는 자극도 없으니 인지 기능도 떨어진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노인성 우울증이다. 고령자의 우울증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 눈에 치매나 멍하니 있는 것으로 비추어진다. 그걸 전부 다 나이 탓으로 치부하는 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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