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리치의 지갑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한지우 지음 | 미디어숲
해피리치의 지갑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한지우 지음
미디어숲 / 2024년 12월 / 256쪽 / 17,800원
1장. 행복한 부자, ‘해피리치’를 향해
오직 ‘머니 러시’만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
“가즈아! 돔황챠!”: 이 두 단어는 지난 몇 년간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유행어입니다. ‘가즈아’는 자산가치가 오를 때의 흥분이 담긴 ‘가자’에서 응용된 표현이고, ‘돔황챠’는 자산가치가 하락할 때 위험을 피하기 위해 ‘도망쳐’에서 응용된 표현입니다. 이 두 단어가 유행어가 되었다는 것으로 그만큼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얼마나 요동치는 ‘돈’에 열광하고 좌절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의 글로벌 팬데믹 시대는 역사적으로도 사회의 변동성이 극대화된 시기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변화시켰고, 예상치 못했던 리스크들이 확대되면서 경제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르게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부동산과 주식 같은 전통적인 자산은 물론, ‘가상화폐’라는 새로운 전자화폐도 자산으로 인정받으며 변동성을 키워왔습니다.
특히 자산가치의 상승 시기에는 ‘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SNS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사람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누구누구는 몇천만 원으로 코인을 사서 몇십억 원의 이익을 봤다더라’ 하는 소위 ‘카더라’식의 떠도는 이야기들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며 ‘돈’이라는 주제는 말 그대로 가장 ‘핫’한 주제였습니다. 이런 현상은 과거 미국 서부 시대의 골드러시에 빗대어 ‘머니 러시(money rush)’라고 이름 붙여지기도 했습니다. 현대인들이 이렇게 돈에 대해 뜨겁게 반응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돈의 가치가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교환 수단이었던 돈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입지가 커져서 현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가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이제 돈만 있으면 불가능한 것이 없고 그로 인해 삶의 안정성이 높아지고 더 큰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고 믿게 되었죠. 그리고 미디어나 SNS 등에서 마치 옆집 형, 언니 같은 사람들이 ‘영앤리치’, ‘슈퍼리치’라는 타이틀을 달고 우리의 마음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죠. 우리는 젊은 나이에 원하는 것을 얻고 멋진 여행지로 언제든 떠나는 그들의 모습을 동경합니다. 이처럼 돈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크게만 느껴집니다.
둘째, 현대인의 삶이 점점 불안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불확실하고 복잡하며 모호하다는 의미의 ‘뷰카(VUCA, Volatile, Uncertainty, Complexity, Ambiguity)의 시대’라고도 불립니다. 질병과 재해는 끊이지 않고 있으며 평균 수명은 길어지고 일할 수 있는 정년은 짧아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뉴스도 자주 들려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을 해결해 줄 수단으로 ‘돈’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한 끼 식사도 할 수 없고, 잠시 쉴 곳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돈이 없다는 것은 엄청난 공포 그 자체입니다.
제2의 아메리카, 대한민국: 프랑스의 문화 심리학자 클로테르 라파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국민이 사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가 제시한 미국인들의 문화 코드 중 하나는 바로 ‘돈에 대한 집중’입니다. 그는 미국인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없고, 미개척지인 서부를 개척해야 하는 척박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런 문화코드를 만들어 냈다고 보았습니다. 즉, 모두가 무일푼인 가난뱅이로 출발한 셈입니다.
실제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음에도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에는 ‘무’에서 이루어냈다는 생각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일을 찬양하고 단순한 ‘부’가 아닌 아주 큰 부를 이루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업가인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워런 버핏은 미국 국민에게 슈퍼스타로 보입니다. 미국인들에게 돈은 성공의 척도이고, 근근이 사는 인생은 실패나 다름없습니다. 돈이 충분히 많은데도 계속 돈을 더 벌기 위해 노력하는 미국인의 모습은 유럽인에겐 다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미국인들의 모습, 어딘가 익숙하지 않나요? 한국인들의 눈에는 미국인의 태도가 그렇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비슷한 문화 코드를 가졌기 때문이죠.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한국을 비롯한 17개 선진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가’를 물어본 결과, 대부분은 ‘가족’을 의미 있는 삶의 큰 원천으로 꼽았습니다. 그런데 17개국 중 한국인만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라고 답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돈’에 집중하고 물질적 풍요로움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생각합니다. 심리학자 허태균 교수는 그에 대한 이유를 한국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찾습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왜곡된 부의 심리: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한 사회경제 발전을 단기간에 이루었습니다. 한 인간으로 따지면 질풍노도, 극도의 불안과 흥분 상태인 ‘사춘기’의 심리상태입니다. 이 심리상태에서는 추상적인 내면의 소프트웨어보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확실한 하드웨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생존경쟁이 심하고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을 믿으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특유의 물질주의, 성공지상주의, 결과주의 등의 현상들이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인에게는 ‘부자를 동경하고, 부자가 되면 삶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심리 코드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왜 돈을 버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맹목적으로 좇아가며 부작용을 낳는 겁니다.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한 사회의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 권력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것 자체를 행복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이런 가치관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능한 한 많은 소유물을 가질 때 비로소 만족을 느낍니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어’와 같은 말은 공허하게 들립니다. 슬프게도 우리에게 ‘돈’은 성공의 척도이자 행복이라는 목적을 이루는 결정적인 수단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과연 돈이 진정한 행복을 이루는 결정적 수단이 될까?’
2장. 행복한 부자를 위한 해피 마인드: 진짜 행복과 가짜 행복을 구분하라
지금까지의 행복이 모두 가짜였다면?‘헤비메탈’ 하면 곧바로 과격한 음악과 가사 그리고 무서운 분장과 기괴한 복장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 헤비메탈 장르가 발달해서 ‘헤비메탈의 나라’라고 불리는 국가가 있습니다. 바로 북유럽의 복지국가 ‘핀란드’입니다. 왜 이 평화로운 나라에서 과격한 헤비메탈이 유행일까요?
핀란드는 선진국으로 경제·사회적 발달이 충분히 이루어져 국민들이 안전한 삶을 영위하고 있죠. 그런데 이렇게 안정적인 사회일수록 권태로움이 사람들을 괴롭히곤 합니다. 너무 편안하고 안정적인 사회에서 살다 보니 하루하루가 지루하게 느껴지고, 이 ‘지루함’이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죠. 딱히 할 일도, 벌어지는 일도 없는 그저 그런 날들이 거의 365일 일어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처음엔 행복하겠지만 서서히 끔찍하게 느껴질 겁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평화로운 선진국에서는 호기심과 짜릿함에 대한 추구가 더욱 강렬합니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인들은 ‘행복한 지옥’에 살고, 선진국은 ‘지루한 천국’에서 산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는 지옥처럼 치열하고 모순이 많은 사회이지만, 역동적이고 하루하루가 짜릿한 사회입니다. 하지만 선진국은 안정적이지만 큰 변화가 없는 지루한 사회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가 행복한 지옥에서 지루한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루한 천국도 힘든데, 지루한 지옥이라니요. 슈퍼리치를 지향하는 삶이 바로 이런 지루한 지옥에서 사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핀란드와 같이 행복지수가 높다고 알려진 북유럽 국가들은 소수의 슈퍼리치보다 다수가 적당한 풍요로움을 느끼는 것을 선호합니다. 이미 우리 사회도 핀란드처럼 물질적 차원에서는 선진국에 진입했습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도 이제는 돈과 행복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이 절실히 필요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한 마디로 풍요롭지만 정서적으로는 다소 빈곤한 ‘풍요-빈곤의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도 구성원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고 돈의 크기로 계층을 나누는 성향이 강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행복의 정의도 조금 다르죠. 이때 돈은 단순히 생존을 해결해 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우월함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돈을 행복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복의 추구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북유럽처럼 지루한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지루한 천국에서 추구하는 행복은 다소 평화롭고 조용합니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지만 대단한 부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나와 비슷하게 사는 이웃과 내 조그만 앞마당에서 어울리는 것을 더 큰 행복으로 느낍니다. 소유와 존재가 균형 잡힌 삶이 높게 평가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죠. 그리고 이 사회를 구성하는 건강한 인간상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진정한 ‘해피리치’입니다.
더 큰 결핍을 만드는 가짜 행복의 민낯: 우리는 행복한 삶을 꿈꿉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행복에 대해 무지하거나 행복을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행복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연히 들렀던 식당에서 찐 맛을 발견했을 때, 고된 일상을 보내다 그동안 꿈꿨던 여행지의 공항에 도착했을 때, 자동차를 구입해 첫 시동을 걸던 순간 등. 그런데 이중 어떤 게 진짜 행복인지, 가짜 행복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현대의 ‘행복’이라는 개념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우리가 부르는 ‘행복’이라는 것이 진정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심각하게 왜곡함으로써 사람들을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행복은 마케팅 차원에서 가장 많이 왜곡된 단어입니다. 우리가 수시로 접하는 매체에서는 ‘행복=소비’라고 우리에게 주입합니다. 그래서 이 물건을 소비해야 행복해진다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 단단히 뿌리내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20세기 후반부터 불어닥친 행복 열풍은 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위해 고안된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가짜 행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회심리학자 김태형 박사는 현대사회를 ‘행복 경쟁 사회’라고 정의합니다. 이 사회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들보다 행복해지는 것이 목적이 된 사회입니다. 이 사회에서는 절대적인 행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남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낍니다. 이렇게 ‘행복 경쟁’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가짜 행복이라도 느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보다 행복해야 하고, 옆집 친구보다 행복해야 하고, SNS 속 다른 인친보다 행복함을 내세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죠. 그러니 행복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항상 뜨거운 열정으로 쉼 없이 달려야 합니다. 그 어떤 누구보다 빨리 ‘행복’을 쟁취해야 하기 때문이죠.
행복경쟁 사회는 모두가 행복한 척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보면 결국 아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런 행복 경쟁 사회가 위험한 건 많은 사람을 더 큰 자극을 원하는 ‘행복 중독자’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돈을 벌었지만 이상하게 행복감은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권태롭고 공허해집니다. 소비의 충족감은 점차 둔감해지고, 더 큰 자극이 아니고는 느끼기 힘든 무감각한 상태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가짜 행복은 우리에게 만족이 아니라 더 큰 결핍을 만듭니다.
철학자의 ‘진짜 행복론’을 경청하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크게 두 가지로 정의합니다. 하나는 긍정적이고 순간적이며 자기중심적인 ‘헤도니아(Hedonia)’이고 다른 하나는 선한 내면의 정신과 조화를 이루는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입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헤도니아를 추구하는 삶보다 에우다이모니아를 추구하는 삶이 고귀하다고 주장하며 이런 삶을 지지하죠.
독일의 경제학자 하노 벡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두 가지 행복관을 토대로 현대사회의 행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는 행복이라고 할 때 순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헤도니아’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광고에서는 헤도니아적 행복을 지속적으로 각인시킵니다. 그러나 쾌락의 행복인 헤도니아는 지속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마케팅적으로 이렇게 계속해서 주입하는 이유는 이것이 지속되기 어려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쾌락이 충족될 때 우리 뇌에서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도파민은 늘 유사한 자극을 원하고 더 많이 자주 느끼길 원합니다. 우리가 게임이나 술, 담배, 도박 등에 중독될 때 도파민 회로의 출발점이라고 불리는 복측피개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중독성이 있어 더 강한 자극을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또 다른 행복인 에우다이모니아는 다릅니다. 이는 강렬하진 않지만 오랫동안 은은한 빛을 냅니다. 이 행복의 성격은 조용하고, 평온하며, 지속적입니다. 이런 경우는 뇌에서 주로 ‘세로토닌’이 분비됩니다. ‘세로토닌’은 평화로운 명상이나 산책을 할 때 많이 분비됩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다이모니아를 이성적이면서 동시에 감정적인 행복이라고 말하죠. 우리가 조용히 성찰하고 마음을 갈고 닦고 이타적인 생각을 할 때 세상이 질서 있게 작동함을 느낍니다. 이때 고요히 내면에 스며들듯 무심히 찾아와 마치 터줏대감처럼 차분히 자리를 잡는 것이 바로 에우다이모니아입니다. 이 행복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제 가짜 행복과 진짜 행복의 차이가 느껴지나요? 소유 지향적인 헤도니아는 쾌락적이고 일시적인 가짜 행복이며, 존재 지향적인 에우다이모니아는 성장하며 지속가능한 진짜 행복인 것입니다.
현재를 사는 나에게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론을 분석했다면 에리히 프롬은 쾌락과 기쁨에 대해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기쁨은 행복에 가까운 속성을 가진 감정입니다. 그에 따르면 현대인은 쾌락과 기쁨, 이 두 가지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현대사회가 ‘기쁨 없는 쾌락’의 세계이기 때문이죠. 현대인들은 쾌락의 만족을 기쁨이나 행복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소비하는 방식인 쾌락의 만족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프롬에 의하면 이는 능동성이 결여된 일시적 ‘흥분’일 뿐입니다. 쾌락이 진정한 행복이 아닌 이유는 성장이 없는 어떤 욕망의 만족만을 채우는 행위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오랫동안 갈망했던 명품 운동화나 백을 샀을 때의 감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우리 내면의 또 다른 욕구인 내적 성장이 빠져 있기 때문에 쾌락이 충족되고 난 후에는 항상 공허한 슬픔 같은 것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기쁨이 없는 쾌락의 쳇바퀴에서 우리는 더 큰 자극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존재 지향적 행복은 절정에 이르렀다가 사라지는 방식이 아니라 성장을 가져오는 것이며, 조용하고 내밀합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존재 지향적 행복은 ‘지금 이곳이 영원’이라는 의식입니다. 존재 지향적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 기쁨, 진리는 시간을 초월한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이죠.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마음보다는 항상 성장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길러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의 두 가지 구분은 에리히 프롬의 소유와 존재의 개념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짜 행복은 헤도니아 즉, 소유 지향적 행복이라고 할 수 있고, 진짜 행복은 에우다이모니아 즉, 존재 지향적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짜 행복인 헤도니아 혹은 소유 지향적 행복과 진짜 행복인 에우다이모니아, 존재 지향적 행복을 구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