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 명저)긍정의 힘
조엘 오스틴 지음 | 두란노
긍정의 힘 Your Best Life Now
조엘 오스틴 지음
두란노 / 2005년 5월 / 320쪽 / 12,000원
1부 - 나는 비전을 키우는 사람이다
비전을 키우라언젠가 아내와 함께 하와이로 휴가를 떠났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 부부를 차에 태우고 섬 곳곳의 멋진 풍경을 보여 주었다.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푸르른 야자수와 아름다운 화초가 가득한 집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 집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남자는 문득 아내와 친구에게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은 저런 집을 꿈도 꿀 수 없겠지?” 순간 그의 마음에서 뭔가가 속삭였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넌 안돼. 너는 저렇게 멋진 곳에서 절대 살 수 없어.’ 깜짝 놀란 그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아니, 왜지?’ ‘상상하지 않는 한, 마음으로 보지 않는 한, 그런 멋진 일은 결코 네게 일어나지 않아.’ 그는 평범한 생각과 태도가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람뿐 아니라 누구나 마찬가지다. 마음에 품지 않은 복은 절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원이나 우리의 재능이 부족해서 성공하지 못하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원인은 바로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 당장 최선의 삶을 살려면, 먼저 믿음의 눈으로 삶을 바라봐야 한다. 높은 단계로 도약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라. 부부관계가 회복되고 가정이 번창하는 모습을,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상상하라. 마음에 품고 굳게 믿어야 꿈은 이루어진다.
원하는 모습을 그리라: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마음속에 원하는 삶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말고 이 이미지를 자신의 일부로 삼아야 한다. 생각과 대화, 깊은 잠재의식, 행동을 비롯해서 자기 존재의 모든 부분에 이 이미지를 심어야 한다. 패배와 실패의 이미지를 그리는 사람은 실패자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러나 승리와 성공, 건강, 풍요로움, 기쁨, 평화, 행복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리 큰 장애물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런 인생을 살게 된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이 우리 인생 최고의 순간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니 부정적인 생각과 패배감 속에서 허우적댈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마음에 커다란 그릇을 마련한 사람에게만 복을 넘치도록 부어 주신다. 머리와 가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상상해야 실제로 그것을 받을 수 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하나님은 우리 마음 밭에 끊임없이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계신다. 우리 맘속에서 낡아빠진 생각을 뽑아내고 끊임없이 창조적 생각의 씨앗을 뿌리신다. 단, 이 씨앗은 믿음의 토양 위에서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자라날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는 뿌리를 내리려는 씨앗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다. 하나님은 엄청난 소망과 기대의 씨앗으로 우리를 채워 주신다. 이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서 엄청난 열매를 맺기만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사 43:19)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삶을 통해 새로운 일을 행하시기 위해 언제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신다. 단, 조건이 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이 말은 이렇게 바꿀 수 있다. “마음에 충분한 그릇을 준비해 놓았느냐? 성장을 믿느냐? 직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줄 믿느냐? 뛰어난 리더와 훌륭한 부모가 되리라 확신하느냐?” 커다란 비전을 품으라는 말씀이다. 의심의 토양 위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당신은 씨앗이 뿌리를 내릴 줄 믿는가? 천사는 마리아에게 남자와 관계하지 않고서 임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일을 이루신다. 은행에서 대출받지 못해도 상관없다.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도 괜찮다. 우리의 과거야 어쨌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능히 못할 일이 없다. 주위에서 아무리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
기대 수준을 높이라우리 인생은 꿈보다는 ‘기대’를 따라간다. 기대한 만큼 이룬다. 긍정적 생각을 품은 인생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인생은 꼬이게 마련이다. 패배와 실패, 삼류인생을 기대하면 잠재의식은 우리를 그쪽으로 몰아가, 평범한 수준 이상의 어떤 시도도 못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을 확장하려면 기대 수준을 높여야 한다. 삶의 변화는 바로 생각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기대한 만큼의 복을 주신다: 기대하지 않은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영(0)에 가깝다. 기대하지 않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늘 똑같은 수준을 기대하는 사람은 영원히 제자리를 맴돈다. 기대가 삶의 한계를 긋는다. 예수님은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마 9:29)고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기대한 만큼 주겠다”는 뜻이다. 늘 최악의 상황만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너무나 ‘잘 아는’ 그들은 항상 축 쳐진 어깨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다. “하나님, 왜 저만 요 모양 요 꼴로 놔두시는 겁니까? 정말 불공평하십니다.” 이들의 미래는 기대한 그대로다. 마음의 거짓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라. 하나님은 커다란 소망을 품으라고 말씀하신다. 소망이 없는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히 11:1). 소망의 또 다른 이름은 ‘높은 기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해야 한다. 기대는 기회의 문을 열고 사회적 성공을 가져다주며 인생의 난관을 뛰어넘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믿음의 눈으로 보라: ‘믿음의 눈’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고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해야 한다. 미래가 암울해 보여도, 낙심하고 절망하고 싶은 유혹이 들어도, 소망의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서 힘을 얻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기대 없이 절망스런 말만 늘어놓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내게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겠어?” “결혼? 꿈에서나 가능하겠지. 십 년 동안 데이트 한 번 못해 봤어.” “차라리 신용 불량자가 되는 게 낫겠어. 빚과 청구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 다른 길이 없잖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런 말은 입에 담지 말라. 마음에 기대하는 대로 행동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항상 승리와 풍요로움, 축복과 희망을 생각하라. 긍정적이고 순수하고 멋진 생각을 품으라. 당신은 마음으로 어떤 미래를 보는가? 지금보다 강하고 행복하고 건강한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가? 하나님의 복으로 가득한 미래가 보이는가? 마음으로 본 복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오게 되어 있다.
꿈꿀 수 있는 곳을 찾으라: 지혜로운 자와 사귀면 지혜를 얻는 것처럼, 성공한 사람과 함께하면 오래지 않아 성공을 얻게 된다. 성공한 사람의 비전은 전염성이 강해서 우리 마음속으로 금세 파고든다. 승리의 분위기에 머물면 오래지 않아 승리의 이미지를 얻는다. 암탉과 함께 모이를 쪼고 있는 한, 독수리와 함께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는 없다. 당신에게 기대 수준을 높이라고, 복 받는 자신의 모습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기대하라. 성장과 승진을 기대하라.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놀라운 선물을 준비하고 계시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열정 속에서 매일 아침을 맞으라. 혹시 상황이 당신 뜻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주저앉지 말라. 올바른 방향을 마음에 새기고 그 방향으로 끝까지 나아가라.
2부 - 나는 건강한 자아상을 일군다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건강한 자아상을 확립하라: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한 두 번째 단계는 건강한 자아상을 확립하는 것이다. 사람이 정해놓은 변덕스럽고 거짓된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에 따라 자아상을 개발하는 것이다. 자신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성공의 크기가, 아니 성공의 여부가 판가름 난다. 자아상은 일종의 자화상(self-portrait)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을 그린 그림인 셈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자아상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보다는 자신에 대한 ‘시각’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당신은 스스로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건강한 자아상은 개인의 성공과 행복을 결정하는 핵심요소 중 하나다. 자기개념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반응한다는 데 있다. 심리학적 증거에 따르면, 우리의 행동은 자아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마음에 품은 이미지 이상으로 성공할 수 없다.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왜 하필 나야?”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어.” 자아상이 약한 사람의 대화 속에는 늘 이런 생각이 따라다닌다. 반면 하나님과 같은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만족한 삶을 살아간다.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음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자아상을 바꾸라: 누구나 자아상을 바꿀 수 있다. 그 방법은 이렇다. 먼저, 하나님의 의견에 동의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강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큰 영광과 용기가 있는 남녀로 보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왕보다도 큰 자로 여기신다. 이런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라. 변명 따위는 이제 그만하고 믿음으로 나아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을 행하라.
모세는 히브리 백성 2백만 명 이상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구해냈다. 그 후 히브리 백성은 광야를 넘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국경에 도착했다. 그렇게 그들은 약속의 땅, 즉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유토피아’를 눈앞에 바라보며 장막을 쳤다. 문제는 그 유토피아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힘든 싸움이 되리라 예상한 모세는 전투에 앞서 적을 알고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다. 6주 후에 정탐꾼들이 정보를 입수하여 돌아왔다. 일단 그들 모두의 입에서 반가운 소식이 나왔다. “우리가 듣던 대로 정말 훌륭한 땅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소식이 영 떨떠름했다. “하지만 그 땅에는 거인들이 있더군요.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떼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스스로 보기에도”에 주목하자. 그들 앞에 놓인 적과 장애물에 비해 그들의 자아상은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그들은 적이 몰려오기도 전에 스스로 무력하게 쓰러지는 불쌍한 메뚜기 떼와 똑같았다.
하지만 나머지 두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완전히 달랐다. 분명히 정탐하고 온 땅은 똑같았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마치 다른 땅을 다녀온 것처럼 말했다. “모세, 우리는 충분히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 무시무시한 거인들이 사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보다 훨씬 크십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어서 가서 그 땅을 차지합시다.” 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인가?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가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지극히 강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큰 능력을 잠시나마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완벽한 사람만 사용하려 하신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약점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알라
하나님은 우리의 두 걸음을 보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리를 이렇게 보신다. 우리가 쓰러 넘어지는 순간이나 실수하는 순간은 보지 않으신다. 우리의 두 걸음을 보시고 우리가 잘한 일을 보신다. 최고의 순간을 기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실수한다. 해서는 안 될 행동도 한다. 이때는 하나님과 우리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지만, 언제까지 자책하며 죄책감 속에 빠져 있어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며 자신감 있게 고개를 들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완성되어 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자신을 보려면 어떤 실수를 하든지 자신의 내재 가치(intrinsic value)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신의 내재 가치를 판단할 때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성과를 거두었는지,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내가 얼마나 인기 있고 성공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오직 우리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자신의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나 조직이나 환경 때문에 우리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 말라. 누군가에게 학대받고 이용당한 쓰디쓴 아픔이 있는가? 좋은 친구가 아무런 이유 없이 등을 돌리는 바람에 외톨이가 된 기분인가? 어렸을 적에 학대당한 후 죄책감과 수치 속에 살아왔는가? 과거에 일어난 모든 나쁜 일이 자신의 잘못 때문인 것 같은가? 그래서 스스로 상심과 고통, 죄책감, 자기비하 속에 살아 마땅한 사람이라 여기는가? 모두 헛되고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일이 중요하다. 삶을 제대로 누리고 싶다면 현재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들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도 사랑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남을 사랑하기 위한 출발점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를 잘 아신다: 어릴 적에 큰 학대를 당한 스티브란 젊은이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스티브의 부모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식으로 항상 그의 기를 꺾어 놓았다. 날이면 날마다 파괴적인 말이 스티브의 생각과 잠재의식을 파고들면서 자아성과 자기가치는 점점 파괴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문제의 원인은 부모가 딸을 원했던 것이었다. 스티브가 태어나자 부모는 딸이 아니라서 크게 실망했고, 결국 그는 엄청난 죄책감과 수치 속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그런 스티브에게 용기를 심어 주고 싶었다. “스티브, 다른 사람의 대우 때문에 자네의 자존감과 자기가치를 내던지지 말게.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네를 버려도 하나님만은 자네를 받아주신다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계속해서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이 말씀은 내가 좋아하는 시편 27편 10절이라네. 하나님은 자네를 절대 버리시지 않아. 언제나 자네를 영접해 주신단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자네를 버려도 자네는 자신을 버려서는 안 돼.” 스티브는 내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현재 그는 행복하고 생산적인 삶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틈만 나면 우리를 깔아뭉개고 비난하며 단점만 지적하는 사람과 함께 살거나 일하고 있어 가슴이 답답한가? 그런 허튼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라.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항상 되새기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임을 잊지 말라. 희망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가치를 회복하라고 말씀하신다. 다윗은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시고 새 노래를 내 입에 두셨도다.”라고 기록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새로운 희망의 노래를 두고자 하신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무너진 꿈을 아름다운 꿈으로 바꿔주신다.
나와 남의 차이를 인정하라: 많은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자신을 남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기분이 좋았는데 직장 동료가 새 차를 몰고 출근하는 것을 본 순간, 기분이 확 잡친다. ‘나도 새 차를 갖고 싶어. 이런 똥차를 몰고 다니는 내 신세가 참 처량하군.’ 갑자기 힘이 쭉 빠지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자기 재능이나 능력, 교육 수준을 남과 비교하는 것은, 자기 배우자를 남의 배우자와 비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런 비교는 우리의 기쁨을 앗아간다. 남 눈치 보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가라.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위한 특별 계획을 갖고 계신다. 그래서 남에게 통하는 방법이 꼭 내게 통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소명대로 일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하지만 남을 모방하려는 노력은 좌절로 이어지기 쉬우며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행동에 불과하다. 심지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놓칠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도 따라갈 필요가 없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경주를 하며 독특한 존재로 살아가면 된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소명대로 일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지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자신만의 경주에서 최선을 다하면 자신감은 저절로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