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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조윤제 지음 | 비즈니스북스


신독,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조윤제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24년 7월 / 336쪽 / 17,800원





제1장. 내가 가장 경외하는 존재는 나 자신이다 _ 신기독야(愼其獨也)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여백이 있다


防微謹獨 玆守之常 切問近思 曰惟以相(방미근독 자수지상 절문근사 왈유이상)

은미할 때 방비하고 홀로 있을 때 삼가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법도다.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생각해 나감으로써 그 마음을 서로 도와 지키라. _ <구방심재명>

주자의 <구방심재명>에 실린 글이다. ‘구방심재명’은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곳에 새긴 글’이라는 의미로, 주자가 《맹자》에서 인용하여 제자 정정사의 재실에 남겨준 글이다. 그 전문은 이렇다.

“천지에 따라 변화하는 마음을 가리켜 인(仁)이라 한다. 그와 같은 인자함을 이루는 것은 나 자신에게 있으니 그래서 마음은 몸의 주인이 된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은 신명하기에 도무지 측정할 수 없지만, 만 가지 변화를 일으켜 사람의 근본을 세운다. 잠시라도 놓아버리면 천 리 밖으로 달아나니, 참되지 않으면 어찌 가지며 삼가지 않으면 어찌 보존하겠는가? 누가 놓아버렸고 누가 찾았는가? 누가 잃어버렸고 누가 가졌는가? 마음은 팔처럼 굽혀지고 펴지며 손바닥처럼 뒤집어지고 엎어지니, 은미할 때 방비하고 홀로 있을 때 삼가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법도다.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생각해 나감으로써 그 마음을 서로 도와 지키라.”

짧은 글이지만 그 뜻은 깊다. 사람이 하늘과 땅과 함께 세 가지 소중한 존재(三才)가 될 수 있는 까닭은 사람에게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근본이 되는 그 마음을 지키기는 어렵다. 무궁무진하게 변화하고 쉽게 흔들려 붙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놓쳐 버리고 만다. 이목구비의 욕망과 희로애락의 감정에 빼앗기기 때문이다. 한 번 놓쳐 버린 마음은 쉽게 찾을 길이 없다.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주자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을 찾고 지켜야 한다’고 말하며 그 이유와 방법을 알려준다. 먼저 마음이 바로 내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몸이 내 것인 것처럼 마음도 역시 내 것이다. 보존하는 것도 ‘나’이고, 놓쳐버리는 것도 ‘나’다. 앞에 실린 “누가 놓아버렸고 누가 찾았는가? 누가 잃어버렸고 누가 가졌는가”라는 구절이 바로 이러한 이치를 말한다. 팔을 마음대로 굽히고 펴는 것은 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몸을 제대로 지키고 보존하려면 좋은 식사와 적절한 운동 그리고 절제가 필요하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맹자가 ‘공부의 시작과 끝은 오직 마음을 지키는 데 있다’라고 했던 것처럼 마음을 내 것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공부가 필요하다. 주자는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생각해 나감으로써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공자의 제자 자하가 말했던 공부의 법칙으로, 일상에서의 배움을 뜻한다. 특히 혼자 있을 때 마음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예문에 있는 “은미할 때 방비하고 홀로 있을 때 삼가라”가 바로 그것이다.

은미할 때는 마음속 작은 징조가 싹을 트기 쉽다. 일상에서 남겼던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온 마음을 잠식해버린다. 잠식된 마음은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이 훌쩍 떠나 버리기도 쉽다. 아무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가 되는 순간은 마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 또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공상과 욕심에 떠밀린 마음을 붙잡고 잠잠히 자신을 돌아볼 때 아무런 가식도, 허식도 없는 본연의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때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어떻게 지켜야 하는 존재인지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관계에 얽매여 의무감이나 책임감, 중압감에 억눌리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홀로 설 수 있다.



제2장. 사람은 고개를 돌릴수록 성장한다 _ 반구저기(反求諸己)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을 돌아보라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한번 저지른 잘못을 두 번 행하지 않는다. _《논어》



다음은 《논어》 <공야장>에 실려 있는 공자와 제자 자공의 대화다.

공자가 자공에게 말했다. “너와 회 중에 누가 더 나으냐?” 자공이 대답했다. “어찌 제가 감히 회와 견주겠습니까? 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입니다.”공자가 말했다. “그보다 못하리라. 나와 네가 모두 그보다 못할 것이다.”



자공은 스승인 공자의 물음에 정직하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하나를 배우면 자신은 둘을 아는 정도이지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기에 도저히 따르지 못할 경지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공자의 다음 반응이 파격적이다. 아무리 제자가 뛰어나다고 해도 스승을 앞지르기는 힘든 법이다. 더욱이 당대 최고의 학자로 존경을 받던 공자가 스승인 자신보다 안회가 더 낫다고 인정하고, 이를 다른 제자인 자공에게 밝혔다고 하니 보통 사람들은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공자는 이미 여러 곳에서 안회의 뛰어난 점을 인정했는데, <옹야>에 실려 있는 다음 예문도 그중 하나다.

노나라 애공이 “제자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합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안회라는 제자가 배움을 좋아해서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허물을 고치는 데 망설이지 않았으나, 불행히도 단명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사람이 없으니, 그 후로는 아직 배움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공자의 제자는 약 삼천 명에 달한다. 그중에서 고대 학문인 육예에 통달한 제자가 일흔 명이고, 각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제자로는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 불리는 열 명이 있었다. 공자는 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안회만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했고, 그 이후로는 배움을 좋아하는 제자를 보지 못했다고 잘라 말했다. 공자가 그 이유를 말해주는데 바로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다.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한 번 저지른 잘못을 두 번 행하지 않는다.’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는다는 것은 감정의 다스림을 의미한다. 희로애락애오구의 일곱 가지 감정 중에서 가장 다스리기 힘든 것이 노(怒), 즉 노여움이다. 누구든지 스스로를 돌아본다면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화는 폭발적으로 일어나기에 잠잠히 삭히기 어렵고, 그것을 해소할 상대를 찾기 마련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라는 속담처럼, 반드시 그 화를 불러일으킨 사람이 아니라도 상관이 없다.

오래전 높은 수양의 경지에 오른 옛 선인들도 마찬가지 고백을 했다. 성리학의 창시자 주자도 “나의 기질상 병통은 대부분 분노와 원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데 있다”고 토로했다. 공자 역시 ‘군자로서 항상 생각해야 하는 것 아홉 가지’(군자유구사; 君子有九思) 가운데 ‘분사난(忿思難; 화가 난다면 그 뒤에 있을 어려움을 생각해야 한다)’을 강조했다. 절제하지 못하는 분노에는 반드시 어려움이 뒤따르기에 군자라면 분노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가 안회를 인정했던 또 한 가지는 ‘한 번 저질렀던 잘못은 두 번 거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며 살기 마련이다. 완벽할 수 없기에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저질렀던 잘못을 두 번 거듭하지 않는다’ 역시 보통의 경지로는 어렵다.



제3장. 나를 깨달아야 나를 사랑할 수 있다 _ 지자자지(知者自知)



나를 마주 보고, 나를 깨뜨리고, 나를 사랑하라


지인자지 자지자명(知人者智 自知者明)

사람을 아는 것은 지혜이고, 나 자신을 아는 것은 명철함이다. _《도덕경》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한다. 만약 내가 설득하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란 너무나 쉬운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처세술의 가장 높은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을 아는 것은 오직 지혜로운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 힘이 되는 것이 바로 공부다. 특히 사람에 관한 학문인 인문 고전은 사람을 아는 통찰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노자는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을 이야기하는데, 바로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공부를 통해 가능하지만, 나 자신을 아는 것은 내가 지닌 한계를 벗어나야 하기에 어렵다. 욕심, 자존심, 자만심, 교만, 자기 연민, 비교 의식 등 스스로 제어하기 어려운 장애물들이 가로막는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내 마음이다.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대하는 상대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마음을 통제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자는 제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러한 이치를 말해준다. 《순자》, 《공자가어》 등에 실려 있다.공자가 자로에게 물었다. “지혜로운 자는 어떠하며, 인한 자는 어떠하냐?” 자로가 답했다. “지혜로운 자는 남들이 알아주고, 인한 자는 사람에게 사랑받습니다.” 같은 질문을 자공에게 하자 이렇게 답이 돌아왔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알고, 인한 자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안회는 같은 질문에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알고, 인한 자는 자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대화 후에 공자는 자로를 군자, 자공을 선비다운 군자(사군자, 士君子), 안회를 명철한 군자(명군자, 明君子)라고 칭했다. 군자보다는 사군자가 차원이 높고, 명군자는 가장 높은 차원이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배움의 목표이자 정점이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이 차원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고 수양했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평안을 얻어야 한다. 시시때때로 흔들리는 마음으로는 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흐르는 물에는 얼굴을 비춰볼 수 없듯이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일에 몰두하는 바쁜 일상에서는 더더욱 ‘잠시 멈춤’의 여유를 내기 어렵다. 혼자됨이 필요한 이유다.

매일 밤 잠잠히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진실한 내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나를 직시할 수 있다면 현재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내가 나아갈 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부(富)에 처하면 겸손한 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빈천에 처하면 잠잠히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키우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크게 그려볼 수 있다면, 우리를 밤마다 뒤척이게 하는 일상의 작은 고민은 사라질 것이다.



제4장. 몸에 새기고 마음을 벼리듯 공부하라 _ 절차탁마(切磋琢磨)



날마다 자신을 허물지 못하면 일상에 허물어지게 된다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구일신 일일신 우일신)

진실로 하루를 새롭게 하고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나날이 새롭게 하라. _《대학》



어른의 학문인 《대학》의 첫머리에는 이렇게 실려 있다.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신민 재지어지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 데 있다는 의미다.

옛 선비들은 사람의 도리를 배우는 《소학》을 마무리하면 그 다음은 《대학》을 통해 세상에 나가 큰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공부를 시작했다. 그 공부에서 제시하는 세 가지 강령이 바로 덕을 키우고, 사람을 새롭게 하고, 선(善)을 지키는 것이다. 장차 세상을 다스릴 지도자가 배우고 익혀야 할 도리라고 할 수 있다. 지도자는 밝은 덕을 지닌 존재가 되어야 하고 올바른 선을 지니고 지켜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새롭게 될 수 있고, 주변 사람들도 새롭고 올바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예문은 지도자가 자신을 새롭게 하는 방법이다. 사람들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지도자 자신부터 새롭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날마다 계속되어야 한다. 진정한 변화란 단 한 번 크게 변하는 것도, 이벤트처럼 특별한 날에 한 번 시도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새해를 맞으며 그때마다 변화하겠다고 결심했던 우리가 항상 작심삼일에 그쳤던 경험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중국 은나라의 탕왕은 자신의 대야에 이 글을 새겨 놓았다. 하루를 시작하며 세수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날마다 마주하며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세수를 하고 목욕을 하면 얼굴과 몸이 깨끗해지듯이 날마다 마음을 닦아 새롭게 하면 마음이 깨끗해진다.

사람들은 모두 날마다 새로운 몸과 마음이 되기를 원한다. 날마다 얼굴을 씻는 것은 잊지 않지만, 마음을 닦고 학문을 연마하는 일은 작심삼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얼굴은 씻으면 바로 개운해지지만 마음이나 학문은 그 변화가 더디기 때문이다. 자신의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기에 점차 지치고, 결국 포기하고 만다.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바로 지금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달라져야 한다. 이전의 나와 확실하게 결별하고, 새로운 나로 바뀌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진정한 변화를 이끌 수 있다. 그다음은 날마다 변화해야 한다. 오늘 하루의 변화에 만족하지 않고 날마다 변화할 때, 하루하루 성장하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변화에 둔감해져서도, 지쳐서도 안 된다. 변화한다는 것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맞을 때 하루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고자 노력하는 나날이 쌓이다 보면 우리 인생은 곧 의미로 채워질 것이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우리의 하루는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지루할 것이다. 정해진 일상을 반복하면서 그 속에서 변화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방법도 탕왕이 가르쳐 준다. 하루에서 변화를 위한 시간을 정하는 것이다. 탕왕은 그 시간을 세수하는 때로 정했다. 세수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지 않을 수 없기에 탕왕은 그때를 자신을 바꿀 시간으로 삼았다. 그리고 깔끔해진 외모와 깨끗하게 비운 마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맞을 준비를 했다.

우리도 하루 중 가장 조용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새로운 자신과 만날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그 변화를 위한 시간에 잠잠히 자신을 돌아보면 하루 중에 아쉬운 일, 부끄러운 일, 고쳤으면 하는 일이 떠오를 것이다. 그것을 되새기며 더 이상 같은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날마다 시도하는 변화는 크고 대단한 일이 아니다. 어제의 부족했던 자신을 단 하나라도 새롭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변화다.



제5장. 말의 참뜻은 말과 말 사이에 머문다 _ 지지능득(知止能得)



어른에게는 선뜻 답하기 힘든 인생의 질문이 있다


讀書貴能疑 疑乃可以啓信(독서귀능의 의내가이계신)

공부에서 가장 귀한 덕목은 의문을 갖는 것이다. 의문을 가지면 해답이 열린다. _《격언연벽》

서양 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성찰은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단지 아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다”라는 ‘무지(無知)의 지(知)’를 핵심으로 한다. 이처럼 자신의 무지에 대한 깨달음은 곧 진리를 찾는 첫걸음이다. 그 바탕이 되는 것이 생각이다. 그 수단은 질문과 대화다. 생각을 통해 세상의 진리를 알고, 질문을 통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무지를 깨닫게 함으로써 진리를 찾는 여정을 시작했던 것이다.

공자 역시 배움에는 반드시 생각이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정》에는 이런 말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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