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임원이 되다
김성보 지음 | 동아시아
IT 임원이 되다
김성보 지음
동아시아 / 2024년 7월 / 268쪽 / 17,000원
나의 직장 생활
첫 직장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 입대했기 때문에 제대(1987년)와 동시에 직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좋은 학교를 나왔으니 취업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나 역시 여기저기 원서를 내면서 금세 취직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취업하는 시기를 놓쳤기에 갈 곳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기계공학 전공자를 필요로 하는 근무지는 대체로 지방이었는데, 나는 지방에는 가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기계공학을 버리고 전산으로: 우여곡절 끝에 나는 대우그룹 공채에 합격할 수 있었다. 교육 후 자동차 회사로 배치를 받았고 다시 교육받으며 희망 부서를 적어 내도록 했는데, 기계공학 전공자는 생산기획 또는 생산관리로 배치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나는 새로운 결정을 했다. 대학 4학년 때 배웠던 자동제어에 대한 인상이 대학 4년의 전공을 버리고 과감하게 방향을 틀게 만든 것이었다. 나는 희망 부서를 전산실이라고 썼다. 이 결정 하나로 나는 전산 분야에서 30년 이상 근무하게 된다.
전공이 아닌 전산 분야를 지원했기에 모르는 것이 많았다. 전산 업무는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업무다. 그래서 사용자가 하는 일을 제대로 이해해야 프로그램을 잘 만들 수 있고, 때로는 사용자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서인지 같은 부서 선배들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고, 나 또한 관련 책을 읽으며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현장 사람들보다 현장을 더 많이 알기 위해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공부가 습관이 되었다.
아무튼 배우지 않은 업무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 모험이었다. 그것이 잘한 일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판단할 수 없다. 그 외의 다른 길은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업무를 선택하고, 그 영역에서 모르는 것은 책을 통해 배우려 했던 일은 나에게 공부하는 좋은 습관을 갖게 했고 직장 생활 내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차를 만들 때 컴퓨터는 무슨 일을?: 대우자동차에서는 FA(Factory Automation, 공장자동화)를 채택해 수행했는데, 나는 그 분야에서 2년 동안 다양한 공정에 대한 작업을 수행했다. 일을 배우는 재미도 있었고, 현장과 IT를 결합하는 기초를 튼튼하게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지 몸에 이상이 생기고 허리가 아팠다. 급기야 종아리 마비 증상까지 오게 되었다. 이후 40일 동안 물리치료를 받아 허리는 나아졌지만, 더 무리하다가는 몸에 부담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친구 하나가 K 신문사에서 사람을 뽑는데 생각이 있느냐고 타진해 왔다.
방황하는 IT맨, 그래도 배움은 있었다몸이 아픈 와중에 언론사, 그것도 내가 지닌 종교와 같이 믿음에 도움을 얻을 수도 있는 곳이라는 얘기에 솔깃해서 이직을 결심했다. 이후 K 신문사에 출근해서 근무를 시작했다. K 신문사에 입사 후 받은 직무는 광고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일이었고, K 신문사에서는 2년 가까이 지냈다. 근무 환경이나 급여는 만족스러웠지만, 이곳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입사 초기부터 있었다. 재단 모체 교회로 교적을 옮길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교적이 다르면 뭔가 불이익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문사의 기자들은 큰 영향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자직이 아닌 경우는 교적을 갖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직을 결심하고 새로운 회사를 찾아 떠났다.
프로젝트 관리자로 변신하다: 다음으로 일했던 곳이 H 정보통신이란 회사였다. 그곳에 대리로 입사했는데, 급여는 많지 않았지만 근무는 느슨했다. 매출의 대부분이 모회사인 K 항공과 관련된 일에서 나왔고, 그 나머지도 그룹 회사와의 거래였다. 그룹 관계사를 제외하면 다른 매출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입사한 뒤로 모기업 매출 외에 다른 매출을 만들어 보자는 회사의 방침에 따라 각 사업부는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섰다. 내가 속한 사업 부서도 K 통신 콘텐츠 구축 사업 수주에 나섰고, 우리가 수행했던 제안서 작업으로 결국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그 전에는 ‘갑’으로만 생활했던 내가 처음으로 ‘을’의 입장으로 작업했고, 그렇게 획득한 첫 성과였다. 우리가 외주 작업 사업자로 선정되어 비로소 대외 매출이 발생하게 되었고,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참고로 정해진 납품 기간을 맞추기 위해서 모두 열심히 일했는데, 그때 출력했던 문서만도 5,000페이지가 넘었던 기억이 있다
또다시 직장을 옮기다: H 정보통신에 근무하면서 나 홀로 두 건의 제안서를 썼고 모두 수주에 성공했다. 이런 결과를 보여줬기에 사업부에서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즐겁고 행복하지는 않았다. 회사에서 인정받을수록 늦게 퇴근하고 밤을 새워야 하는 경우가 늘어나 내 생활이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이를 되돌리기 위해서 이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만두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담당 임원이 설득에 나서기도 했지만, 생활의 균형이 깨진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이직을 고민하던 때에 당시 IT 업계 3위였던 H 정보기술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직을 생각할 때마다 희한하게 제비처럼 소식을 물고 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때도 역시 그랬다. 그쪽은 일이 깔끔해 보였으며 평소에 선망하던 금융 분야라서 더욱 마음이 끌렸다. 결국 1995년 H 정보기술에 지원해서 합격하고 H 화재보험 IT실로 발령을 받았다.
새 직장에 입성하다
이직 후 5년 그리고 보험사로: 입사 후 처음에 6개월짜리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는데, 3번이나 종료가 연기되면서 1년 반 동안 그 프로젝트만 하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거듭 연장하게 된 것은 처음에는 쉬운 것을 주문하고 지켜봤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운 업무까지 프로젝트에 포함시켜 해달라는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 나의 보직은 프로그래머에서 기획자로 탈바꿈했다. H 정보통신에 입사해서 2000년에 H 화재보험으로 옮기기까지 5년 동안 이곳에서 일했다.
H 화재보험으로 이직하게 된 사정은 이랬다. 어느 날엔가 울산행 비행기 안에서 H 화재보험의 CIO(최고정보책임자)와 내가 근무하는 H 정보기술의 경영관리 담당 임원이 이듬해의 시스템 운영과 관련한 비용 문제로 협상을 하고 있었다. H 정보기술에서는 매년 H 화재보험에 비용을 청구하는데, 그 규모에 서로 차이가 있기에 협상에 시간이 꽤 걸린다. 그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내가 협상 조건의 중요한 하나로 들어갔다고 한다. CIO가 시스템 운영 비용을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당신 회사의 김 아무개를 자기 회사로 보내라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갑이 원하는데 고객사의 요구를 거절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CIO는 당시 최고경영자의 친구이기도 했으니 더 긴장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나의 이직은 프로 운동선수의 트레이드처럼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되었다.
보험맨이 되다: 2000년 2월 1일 H 화재보험에 과장으로 입사해서 퇴직하기까지 22년 동안 이곳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처음 맡은 일은 IT 기획이었다. 그런데 누군지도 모르는 새 사람이 와서 기획 업무를 한다고 하니 시선이 곱지 않았다. 결국 한 달 만에 사직서를 써야 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나를 반기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는 것 같은 조직에 내가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사이 나를 데려왔던 CIO마저 회사의 권력 싸움에 밀려 퇴사했다. 회사 안의 응원군은 하나도 없던 형국이었다. 급기야 나는 다른 외국계 회사에 면접까지 보고 출근하는 날짜까지 협의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나를 내쫓으려 선동하던 부장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붙잡겠다고 180도 태도를 바꿨다. 이미 회사를 나갈 준비가 다 되었던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충언을 했다는 얘기도 들리긴 했다. 그런데 그 조직 안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데 그럴 수 있을까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나중에 들으니 그는 내가 읽는 책과 하는 말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그때 그의 태도 변화에 대한 내 추측은 이랬다. 전임 임원이 쫓겨났으니 이제 부장은 자신이 책임자가 될 것으로 예상했고, 그런 상황에서 자기가 봐도 휘하에 일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내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자기 상사가 나를 쓰려고 채용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상사는 떠나고 나는 당당하게 사직서를 들고 왔으니 난감했을 것이다. 더구나 나는 당시 회사 CFO를 맡고 있던 임원의 대학 후배인데, 부장 자신이 핍박해서 회사를 그만두게 했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그만두겠다고 고집하다 결국 CFO에게까지 불려갔고, 그 선배에게 호통을 듣고 결국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퇴사를 접게 되고 나서 다시 매일 출근하면 부장에게 불려가 몇 시간이고 붙잡혀 그와 회의를 해야 했다. 그는 늘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 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냐 등을 물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의견을 묻고 또 자신이 윗사람에게 지시받은 업무 처리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그의 머리와 손발이 되어 아무런 잡음이 나지 않게 모든 일을 처리했다. 해결사 역할이 나의 주된 임무였다. 지시했던 윗사람은 잡음 없는 일 처리에 신기해했다고 들었다. 아무튼 그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임원으로 승진하기까지는 그런 나의 뒷받침도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부장 승진의 벽: 나는 한동안 회사에서 차장까지는 무난하게 승진하며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당시 회사 인사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었다. 현직에 부장이 있으면 그 아랫사람이 아무리 평가가 좋아도 부장 승진을 하지 못한다. 나는 부장 승진을 해야 할 때 고과에서 전체 승진 대상자 가운데 1등을 했다. 고과 성적으로 보면 부장으로 승진해야 했지만 현직 부장이 버티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승진에서 누락되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 부장 보직을 받았고, 이듬해 인사 때 부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당시 실무자로서 내가 했던 일은 앞서가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IT 업무에서 업계 최고의 회사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목표였다. 날마다 어떻게 하면 앞서가는 회사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골몰하고 있었다. 늘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만들고자 했다. 새로운 프로세스와 제도를 만들었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IT 전략 컨설팅을 수행해 미래 시스템 방향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렸다. 이런저런 문제나 해결해야 할 일들이 생기면 대부분 내 몫이었다. 나는 조용한 일 처리를 신조로 삼았다. 그래서 어떤 일이 해결되어도 윗사람 한두 사람 정도만 알고 지나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부장으로 살아가기나는 2006년부터 부장으로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부장 위에 임원이 있었지만 다양하게 발생하는 여러 사안에 대해서는 임원이 책임질 일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반면 부장은 어떤 일이라도 문제없이 다 해결하고 책임지는 자리 같았다. 부장 업무는 바빴다. 이런저런 회의도 많았다. 상급 임원들과의 회의도 있고, 부서 안에서도 회의를 주재해야 했다.
그리고 회사 밖의 회의도 있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았다. 또 방문해야 할 현장도 있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지쳐 자리로 돌아오면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나 있을 때가 많았고, 책상 위에는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부장이 되면서 다짐했던 한 가지는 결재해야 할 사안을 미루지 않고 빨리 처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실무자가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재를 마치고 나면 9시 무렵이 되었다.
초보 부장의 좌충우돌: 처음 부장이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당시 CIO는 나에게 이제 부장이 되었으니 강력한 인사권으로 직원들을 잘 관리하면 된다고 격려했다. 나 역시 이전과는 다른 자세와 태도를 보이는 직원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장 생활이 1년 차를 지나면서 직원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회사를 여러 번 이직했던 경력이 있었고, 이직 과정에서 새로운 곳에 채용되기 위해서는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직원에게는 과중하게 업무 부담을 주었고, 어떤 직원에게는 자존심을 긁는 막말로 직무에 몰입하도록 자극했다. 직원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원들 생각은 달랐다. 특히 가장 협조적이어야 할 팀장들의 방관과 비협조는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성장 동기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높은 수준을 제시하며 강요하는 부장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아무튼 이 시기는 초보 부장의 좌충우돌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 부장이 되고 나서 전부터 있었던 문제가 더 골이 깊어져 피곤하기도 했다. 전임 CIO가 퇴임하고 내 위에 있던 부장이 임원으로 승진했는데, 나는 부장이 되었기에 이제는 서로 신경 쓸 일이 없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그는 내가 부장이 된 날부터 나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그가 원하던 일들을 내가 해결하고 처리해 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래저래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좌충우돌했던 초보 부장 시절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누구도 필요한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 다만 내가 부장으로서 했던 행동은 결코 나쁜 동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회사를 위하는 마음에서였다는 것에 스스로 위로를 삼았다. 그렇지만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또는 잘 아는 사람일지라도 어떤 상황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외롭고 고달픈 부장 시절: 부장이 된 초기에는 신이 나서 피곤한 줄 몰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갈등이 지속되자 하루하루가 피곤하고 고달프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이 시기가 나에게는 그동안의 직장 생활 가운데 가장 괴로웠던 시간이었다. 한편 부장으로서 상사인 임원에게 책임이 돌아가게 하는 순간 나의 직장 생활은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몸도 마음도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부장이라는 직책을 감당하는 것은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장이 된 지 2년 정도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임원이 되면 실무는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 고달픈 시간은 보내지 않아도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곁에서 늘 보던 임원의 생활은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나도 임원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회사를 위해 임원이 되어 더 큰일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좋은 차를 타고 사람들의 의전을 받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다.
다만 그저 좀 편안하게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여유롭게 지내고 싶었던 게 전부였다. 아무튼 부장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외로운 시간이었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직원을 바라보면 위로가 되었지만, 부서 직원 모두가 부장의 마음과 같을 수는 없었다. 부장은 부장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던 것이고, 그것은 직원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었다.
자회사 시절의 인생 공부: 2010년 7월, 회사로부터 IT를 주업으로 하는 자회사로 옮겨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기존의 기획 업무를 가져가서 수행하라고 했다. 업무는 달라지는 것이 없었지만 소속이 달라지는 일이었다. 당시 자회사 이직을 권유받았던 직원들은 고심했다. 일부 직원은 일보다는 소속이 달라지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 어떤 직원은 자신의 전문적인 일을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하겠다며 자회사 이직을 꺼렸다. 결국 일부 직원들은 자회사 이직을 거부했고, 몇 명의 직원은 본사에 남게 되었는데, 그 직원들 중에는 직전까지 상사였던 나에게 ‘네가 뭔데’ 하는 태도를 보인 사람까지 있었다.